[프로젝트F1] 대학박물관의 변화하는 운영전략

대학박물관을 지역문화 인프라로 활용하라

문혜영 _ 학예사 · 홍익대학교 박물관

제도적 방치 아래 대학박물관이 고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재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학교박물관의 위치조차 모르고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선 전략으로 변화하는 대학박물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들이 있다.

한국박물관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1909년 순종이 세운 창경궁 제실박물관에서 출발하여 전국 600개를 헤아리게 된 우리 박물관들은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일 년 내내 100주년 잔치를 펼칠 예정이다. 그런데 이런 반가운 분위기에 선뜻 동참하기 어려운 박물관들이 있다. 바로 전국 104개 대학박물관(대학박물관협회 가입기준)이다.

기존 박물관의 역할에 더해 학생교육과 학술활동의 임무까지 부여받은 대학박물관들의 현주소는 주변 대학생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졸업 때까지 학교박물관의 위치조차 모르고 지낸다. 우리 대학박물관들이 왜 이렇게 인기가 없는 것일까? 그 문제점들을 알아보고 그 가운데서도 변화하는 운영전략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는 대학박물관 운영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박물관 100주년과 대학박물관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적인 측면에 있다. 1982년 말까지 유효했던 대학설치령에 의하면 4년제 대학 신설요건에 박물관 건립이 필수적이었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종합대학들이 대학박물관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지어진 대학박물관에 대한 제도적 지원 장치가 몹시 미흡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학박물관은 대학평가 기준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눈앞의 현안과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많은 대학들에게 애물단지로까지 여겨질 수 있다. 대학박물관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대학평가기준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는 이유다.

공간과 인력의 문제 또한 시급하다. 제도적, 재정적 지원이 미흡하니 독립된 박물관 건물과 안정적인 수장고 시설을 확보한 곳이 많지 않다. 게다가 시설이 매우 낡아 제대로 된 유물관리나 전시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전문인력 부족도 문제다. 학예사 자격증 제도의 시행으로 정식 학예사를 고용해야 박물관 등록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아직 전국 30여 곳의 대학박물관이 학예사를 두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획전시나 교육프로그램의 운영도 원활하지 않다. 서울소재 등록대학박물관 총 22곳 가운데 1년에 단 한 번의 특별전만 개최한 곳이 8곳, 특별전 없이 교육프로그램만 운영한 곳이 6곳이었다. 보여줄 전시가 없는 곳에 관객이 올 리 만무하다. 많은 대학박물관들이 이런 악순환 속에서 점차 방치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는 수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대학박물관

이런 난감한 상황을 극복한 경우는 없을까? 당장은 불경기로 위축되어 있다 해도 장기적으로 각 지역별 문화시설에 대한 욕구가 넘쳐나고 있고 정부도 각종 기금사업을 통해 지역문화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이때, 시대를 앞선 전략으로 변화하는 대학박물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몇몇 예들을 살펴보자.


보존처리 특화 프로그램 운영 -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어린이 프로그램숙명여대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추진한 ';제2창학';의 선두에 학교박물관이 앞장섰다. ';문화';를 경쟁력으로 2004년 완공된 르네상스플라자에 숙명여대박물관, 정영양자수박물관, 문신미술관, 연주홀, 요리아카데미가 자리하며 복합문화단지의 시너지 효과로 학교 이미지를 쇄신했다.

숙명여대 박물관 전문인력들 가운데 돋보이는 부분은 대학박물관으로는 드물게 유학파 보존처리 전공자가 부관장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생활사 연구와 유물에 강점을 보이는 숙명여대 박물관의 특성을 살린 것에서 나아가 자체적인 유물 보존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된다. 보존처리 특설과정, 워크숍 및 강연 등 숙명여대 박물관만의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전시 프로그램은 숙명여대 박물관과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로 연간 10여 회 개최된다. 교육프로그램은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한 전통자수 등의 특설과정을 비롯하여 전시연계 교육프로그램, 학부생 교양수업 등으로 운영된다. 예비박물관인 양성을 위한 도슨트와 전문인턴 프로그램 또한 실시중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숙명여대 박물관이 지향하는 모델은 미국 캔사스대학 헬렌 포레스만 스펜서 박물관(The Helen Foresman Spencer Museum of Art)의 학제간 연계전시 및 프로그램 개발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기관과 대학과의 교류전시와 국제연구 활동을 계획 중이다.

숙명여대 박물관의 사례는 각 학교의 특성과 미래 비전에 부합하는 특화된 소장품 정책과 운영전략이 대학박물관에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나 있는 비슷비슷한 유물과 특색 없는 프로그램들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논하기 어렵다.


지역민의 놀이터 - 고려대학교 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1934년에 개관한 최초의 대학박물관이며 10만여 점의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한다. 2005년 100주년기념관으로 이전, 재개관하면서 박물관으로서의 새 면모를 갖추었다. 전시 프로그램으로는 '파평 윤씨 모자 미이라 특별전'(2003)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특별전들을 개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박물관 국제화를 위한 교류 또한 활발해서 90년대 중반부터 미국, 일본, 북한 등과의 교류전시를 진행해 왔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변신은 1990년대 중반 그간의 주요 사업이던 매장문화재 조사활동을 중지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구호를 넘어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전임 최광식 관장 때부터 고고유물 가득한 박물관에서 현대미술전 '상:상의 힘'(2006)을 개최하며 엄숙하던 박물관의 틀을 깬 동네놀이터 개념을 도입하였다.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들을 나누기 위해 주변 지자체의 추천으로 문화혜택이 덜 미치는 아이들을 초청하는 세심한 운영을 하고 있다. 문화강좌는 모두 무료이며 답사에만 실비를 부담한다. 여타 대학박물관과는 달리 일요일에 개관하고 월요일에 휴관하여 가족 관람객을 배려하는 것도 특징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관객과의 소통이 수다스러울 정도로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잦은 질문들에도 성실한 답변이 달리며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별도로 마련된 클럽 홈페이지에 활동사진을 가득 올려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관람객과 소통하는 대학박물관, 지역민의 놀이터가 되는 박물관의 모습이 가까이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황 이루는 '수요 교양강좌' - 서울대학교 박물관

국립기관이라는 차별화된 기반 위에서 성장한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다양하고 뛰어난 소장품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고역사, 전통미술, 인류민속, 자연사부(部)로 구성된 탄탄한 조직과 인력으로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발굴 및 조사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자랑하는 인기프로그램은 벌써 15년째를 맞은 '수요 교양강좌'이다. 다양한 주제의 테마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해 일반인들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한 이 강좌는 매회 150~200명에 이르는 수강생들로 성황을 이룬다. 올 상반기에는 '우주, 지구, 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관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연간 8회 정기문화답사 - 경희대학교 박물관

경희대학교 박물관의 인기 프로그램은 연간 8회에 걸쳐 실시하는 정기문화답사다. 또한 명사초청 강연회나 문화포럼 등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지역사회 연계 활동으로 동대문구 건강가정센터와 함께하는 지역탐방 프로그램, 다문화가정지원센터와 연계한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외에도 대학박물관의 모범으로 꼽히는 이화여대 박물관이나 경북을 대표하는 안동대학교 박물관, 경북대학교 박물관 그리고 영남대학교 박물관과 부산대학교 박물관을 비롯해 올해 부민캠퍼스로 이전하며 재개관하는 동아대학교 박물관 등 훌륭한 소장품과 학술활동, 앞선 운영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이자 교육주체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박물관들이 곳곳에 있다.


맺으며

위기를 맞은 현대인들에게 인문학 회귀현상이 나타나고 문화향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고 있는 시점에 발맞추어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큰 계획들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대학박물관에 대한 지원정책이 시급한 것은 우리 미래의 주역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문화적으로 살찌울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이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문화 관련 사안들은 한쪽만 앞서 나간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학생과 시민관객들의 욕구와 수준은 대학박물관을 지역문화 인프라로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는 정부와 대학이 나서야 할 때다.

 


 

참고자료
한국대학박물관협회 www.kaum.or.kr
「2008 전국문화기반시설총람」, 문화체육관광부, 2008
곽교신,「가자가자 대학박물관(1~6)」, 오마이뉴스, 2006
김재경,「대학박물관 교육프로그램 현황과 활성화방안」,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도움주신 분들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이현숙 부관장, 홍경아 학예사
고려대학교 박물관 정호섭 학예연구사
서울대학교 박물관 진준현 학예연구관, 김승익 학예사
경희대학교 박물관 이정빈 학예사


문혜영  

필자소개
문혜영은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고 '1950~60년대 한국영화포스터의 시각문화적 연구'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인포아트코리아의 문화열차 프로젝트 팀장과 경기 군포문화원 사무국장을 거쳐 2007년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큐레이터로 일했다. 현재 전관 리모델링 중인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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