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원칙과 상황이 충돌할 때

전시 실현을 위한 순발력과 멀티태스킹

이은하 _ 광주비엔날레 전시팀 코디네이터

행사의 실험성과 근본을 잃지 않으면서 관주도의 행사가 가지고 있는 행정적, 예산상의 한계 내에서 매우 외교적이고 '문화적'인 방법으로 예술가를 이해시키고 현실적인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기술이 필요하다. 전시코디네이터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행사를 진행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예산이나 행정 절차에서 기인하는 문제와 오해들부터, 예민한 국제사회정치 상황에서 기인하는 문제, 문화, 정서적 차이에서 오는 감성적 문제까지 매우다양하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새롭고, 풀기 어려우며 항상 예기치 않게 발생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돌발상황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며, 대부분은 담당 코디네이터의 순발력과 경험의 폭, 아울러 조직에 축적된 노하우와 유연성에 따라 시간의 격차가 날뿐, 어찌되었든 해결되기 마련이다.

비엔날레 전시 코디네이팅을 하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된 업무는 큐레이터-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작품(혹은 현지 프로젝트)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국제전의 코디네이팅은 전시기획에 대한 이해와 사전 리서치는 기본이며 기획자-작가-재단 사이의 중개역할 및 완벽한 조율은 물론 종종 대안의 제시 및 완벽한 해결, 그와 관련된 행정적 실무 처리까지 원스톱에 해결해내야 하는 완벽한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인 것이다. 이 섹션에서 다루어야 하는 '하우투'의 주제가 될 만한 일들이 거의 매일 크고 작게 벌어지며, 생각지 못한 상황들에 봉착해서 난감한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하우투'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일 것이다. 이때 조직에 축적된 노하우와 유연한 시스템은 기본전제 조건임엔 말할 것도 없다.


사례1.
기획자와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되 효율성을 추구하라

현대미술은 항상 새로운 경향을 창조하고 급변하는 세계의 문화, 사회, 정치, 경제의 이슈들을 반영한다. 특히나 국제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품들은 이러한 경향들을 예술적이고 전위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정점에 자리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특성상 행사의 맥락과 상황에 따라 큐레이터의 기획의도가 다르며, 작가들은 그에 맞추어 대부분 신작들을 제작하게 된다. 대부분의 해외작가들이 규모가 큰 작업들을 전시하게 되는 행사의 특성상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연구와 소통, 신경전, 때로는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요구한다.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의 국제현대미술전을 준비하면서 당면하게 되는 '돌발 상황'은 대부분 작가의 작품실현과 관련된 예산 이슈나 이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다양한 행정 절차상의 문제 등이 있다. 특히 해외운송과 관련한 돌발 상황들은 큰 액수의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초기 작품제작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 면밀하게 검토되고 조율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계획된 작품이 대작이거나 기획의 개념상 광주현지에서 제작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운송경비와 현지 작품제작 경비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다. 광주 현지에서 작품을 제작토록 하는 것이 최선인 경우 작가에게 이를 적극 유도하게 된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의 참여 작가 중 아프리카 카메룬 작가 말람의 작품이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사이즈가 큰 작가의 작품을 광주현지에서 제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중 재단과 큐레이터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해의 전시개념의 핵심인 '참여관객' 제도는 현지의 비미술인과 작가가 팀이 되어 예술과 사회, 소통의 문제 등을 토론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와 참여관객이 속한 아프리카(카메룬)의 현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작품의 개념상 결코 작품제작 장소를 광주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이 작가와 큐레이터의 강력한 입장이었으며 타당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단은 예산상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경제상황이 매우 불안정한 국가인 관계로 전시일정에 맞춰서 작품과 작가가 무사히 한국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기에 광주 현지제작을 독려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심지어 재단 내부적으로는 전시의 효율성을 위해 해당 작가의 참여를 취소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게 되었다. 전시개념과 비엔날레의 기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과 설전 후, 결국 재단과 예술총감독은 "비엔날레의 전시 실현과정이 소통과 협업을 기본으로 하면서 최대한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을 추구해야 타당하지만, 전시기획의 의도와 작품개념의 핵심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것임으로 작가와 기획자의 의도를 존중하며, 비엔날레의 전시개념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말람의 카메룬 현지 작업실, 말람의 비엔날레 참가작품



미션 임파서블 : 영화 같았던 작품 공수작전-수백 통의 전화와, 이메일과 공문

물론 현지의 작품제작비는 광주에서의 진행경비보다 월등히 경제적이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막대한 운송비는 작품선적 직전까지도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 탓에 가늠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대한민국 영사관조차 없는 국가 카메룬에서 10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작품을 보름 만에 한국까지 옮겨오는 일은 거의 무모해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막바지에 카메룬 정부의 비협조로 작품운송에 차질이 생기자 작품운송을 담당했던 프랑스운송사가 한국운송사를 거처 재단에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재단 측에서는 일단 인접국가의 한국대사관에 급한 도움을 청하고, 외교통상부를 통해 카메룬 정부 문화성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행정절차를 제대로 밟기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특단의 방법으로 청와대국가안전기획부의 외교통상 담당관을 연결, 역으로 외교통상부 아프리카국에 신속한 업무처리를 지시, 나이지리아 한국 대사관을 통해 카메룬 정부에 관련 업무협조를 압박했다. 결국 전시오프닝 3일 전에 작품이 도착할 수 있는 일정으로 간신히 파리를 경유하는 네덜란드 항공사 편에 작품을 선적할 수 있었다. 작품이 도착한다 해도 그 많은 분량을 2일 안에 설치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작가와 참여관객의 비자와 관련된 어드벤처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그렇게 파리에 도착한 작품이 파리공항 파업의 여파로 항공화물 선적 스케줄이 밀려 2~3일 후에나 연결 항공편에 선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예상치 못한 소식이 몇 시간 후에 날아들었다.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네덜란드 항공사에 사정을 해봤지만, 원칙은 원칙. 피가 마르는 몇 시간을 보낸 후 결국 외교 통상부를 통해서 네덜란드 대사관을 통한 긴급 협조 요청을 항공사 헤드쿼터에 보냈다. 항공사의 답변을 기다리는 몇 시간. 이미 설치 완료된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작품이 설치될 가로 9미터, 세로 9미터 크기의 하얀 빈 공간은 내생에 경험한 그 어떤 공간보다도 크고 비현실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작품을 실은 10톤 트럭이 하루 반 만인 전시 프레오프닝 전날 밤 10시에 전시장으로 들어오던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만감이 교차되던 그날 밤의 소회. '세상엔 안 되는 일이 없구나.'였다.

후일담 : 카메룬의 외지마을에서 작업만 하던 작가는 그 후 광주비엔날레를 계기로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초청되고, 개인전을 여는 등 작가로서의 경력을 탄탄히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사례 2.
결국은 모두가 행복했던 Plan B

소통과 과정, 현장성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경향 상 근래에는 워크숍이 전시행사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으며, 때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비엔날레 전시행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종종 해외 혹은 광주에서 작가 워크숍을 진행한 후 아카이브를 전시에 반영하거나, 워크숍 진행결과를 반영한 작품을 제작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큐레이터가 작품제작 워크숍이나 전시의 일환으로서 혹은 작품의 일부로서 워크숍을 조직하고자 할 경우 비엔날레 재단은 기획자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재단의 예산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종종 재단내부의 예산상황이나 행정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재단-큐레이터-작가 사이엔 만만치 않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6년 본 전시《마지막장》은 다양한 배경의 다국적 작가들을 세 권역으로 나누어 중앙발칸, 아시아, 유렵 , 종동, 북미 남미 등 대상도시의 문화기관이나 대안공간 등의 레지던시를 활용해 협동 프로젝트를 사전에 진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비엔날레 기간 중에 전시하는 기획이었다. 각 도시의 워크숍에서는 해당 도시 및 지역의 사회, 정치, 경제 및 문화적 당면과제와 비엔날레와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를 나누기로 하였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마지막장>의 현지 워크숍 모습소정의 예산을 큐레이터에게 지급해 각각의 큐레이터가 이를 분배하여 적절하게 해외 현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을 기본틀로 진행하였으나, 워크숍이 진행될 현지의 사정과, 큐레이터의 기획, 현지 연계 기관과의 협조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프로젝트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일부를 중단을 고려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특히 유럽섹션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파리, 코펜하겐, 암스테르담/로테르담,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등에서 진행된 현지 워크숍에서 큐레이터의 기획방향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국내실정에 맞는 행정 및 회계 절차를 그대로 진행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큐레이터와 재단 측의 신경전은 절정에 이르러 큐레이터가 사임을 고려하는 험악한 상황까지 사태가 진전되었다. 몇 주간의 조정과 조율을 모색한 끝에, 재단 측도 나름대로 예산의 조기집행을 최대한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유럽 현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워크숍 시기와 예산집행 시기, 무엇보다 애초 현실적이지 않았던 재단 측 예산을 훌쩍 넘어선 실행 예산은 아무리 재단내부 시스템을 탄력적으로 운용한다 해도 해결하기 힘든 그것이었다.


진심이 통해야 차선책도 가능하다

결국 셀 수없는 전화 통화와 궁리 끝에 큐레이터와 코디네이터와 작가들이 다다른 플랜B는 해외문화후원기관 등을 통한 긴급한 펀드레이징이었다. 시기적으로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지만, 모두의 네트워크를 총 동원하였다. 먼저 워크숍이 진행될 해당 국가의 후원기관 및 문화성에 급하게 기금신청서를 제출하고 밀도 있고 긴박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예산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 <마지막장>의 해외작가 작품
대부분의 기관이 기금신청기간이 이미 지났거나 지원대상에 적합하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큐레이터와 코디네이터가 해당 기관의 담당자 및 책임자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프로젝트 기획의도를 충분히 주지시키고 해당 워크숍의 실현이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실현은 물론 해당국가(도시)의 문화 위상에 끼치게 될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며 설득을 계속하였다. 이에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후원기관들이 긍정적인 검토 끝에 매우 신속하게 현금후원으로 답해 주었으며, 현지 기관(리투아니아 빌니우스)이 워크숍 장소 및 진행과 관련한 기자재 등 장비나(파리) 현지에 파견 작가들에게 레지던시 공간을(코펜하겐, 로테르담) 혹은 항공권 제공(프랑스)등으로 답해주었다.

그렇게 진행된 워크숍은 출판물, 영상기록, 사진, 드로잉 및 설치작업등으로 재구성되어 비엔날레 전시관에 전시되었으며, 전시의 내용성을 더욱 강화시켰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큐레이터와-코디네이터와-작가 상호간에 형성된 공감대와 신뢰가 도출해낸 모두에게 매력적인 차선책이었으며 모두에게 윈-윈의 상황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서로의 진심이 통해야 차선책에 대한 의견도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큐레이터 작가 코디네이터사이의 동지애에 가까운 유대감과 재단이 세계 각국의 문화기관과 형성한 네트워크는 보너스였으며, 결국 모두가 행복한 플랜B였다.

십년이 넘은 행사의 축적된 노하우에도 불구하고 극복되지 않은 국제행사로서의 특성상 발생하는 재단의 제도적, 운영상의 원칙과 작가/기획자 간의 충돌지점 및 운영상의 애로사항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며 개선될 수 있을지는 아직도 과제로 남는다. 그 숙제가 풀릴 때 쯤이면 영화 한편은 만들어도 될 법한 우여곡절은 겪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물론 요원한 그때도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은 여전히 존재할 테지만 말이다.





이은하  

필자소개
이은하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미술관학을 전공했다. 뉴욕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연구인턴과 엑시트아트(EXIT ART) 프로젝트 인턴을 거친 후, 서울시하자센터 프로젝트판돌과 대안미술학교VAA 기획자 시절 프로젝트 기획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으며,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관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전시코디네이터였던 인연을 되살려 2004년부터 광주비엔날레 전시팀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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