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F1] ‘2008 시각예술포럼’의 잠재력과 효용성

담론과 실천 융합형 프로젝트

강수미 _ 미학


[프로젝트 F1]은 예술경영 분야의 주목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예술환경의 흐름을 먼저 읽어내는 의미있는 기획력, 프로젝트의 실행에서 부딪치는 예술환경의 문제 등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실행까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대형 국제 전시, 유수의 미술관? 복합문화센터 건립, 미술시장 호황 등 시각예술은 외적으로는 매우 역동적잉고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내실 면에서는 지지부진함과 침체 상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곳 시각예술 영역에 '담론행위가 하나의 예술 형식이 될 가능성'을 발견해 보자는 것이다.


경제라는 강력한 용광로 속으로 우리 삶의 큰 부분부터 세부까지 속속들이 투입되는 와중에, 기존 인문학과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위기'를 알리는 신호가 터져 나왔다. '기초 학문 또는 인문학의 위기', '순수예술의 위기', '비평과 담론의 부재' 등이 그런 신호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한 말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 영역의 당사자들인 학자, 예술가, 비평가, 이론가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학제 간 연구', '통섭(統攝, Consilience)', '다차원적 영역의 융합과 교차', '창조적 실험과 대안적 활동'을 내세우며 기초학문과 순수 문화예술에서 꺼져가는 인식과 창작, 담론 생산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사이 이러한 시도조차 경제적 실용성 또는 효율성에 정향됐다. 또 그런 방법론이 문화산업의 상투형(stereotype)으로 고착되면서, 현재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기초적이고 순수한 학예(學藝)'의 실천은 더욱 힘겨워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시각예술분야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가 이뤄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08 시각예술포럼'이 그것이다. 이 사업은 예의 기관이 직접 기획ㆍ집행한 것이 아니라, 시각예술 분야의 외부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각예술소위원회' 기획팀(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이 사업 전체를 총괄 추진하였다. 필자는 이 포럼이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계에 하나의 생산적 모델을 제공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지면에서 논하고자 한다. 최근 몇 년간 대형 국제 전시나 유수의 미술관ㆍ복합문화센터 건립, 미술시장 호황 등으로 외적으로는 매우 역동적이고 풍요로워졌으나, 내실 면에서는 지지부진함과 침체 상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이곳 시각예술 영역에 '담론행위가 하나의 예술 형식이 될 가능성'을 발견해 보자는 것이다


인식활동이 곧 예술활동

1966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말과 사물』의 서론에서, 우리가 아는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이란 고안된지 "2세기도 채 안 된 하나의 형상"이며, 그 존재는 "지식 내의 단순한 하나의 주름살"에 불과하다는 파괴적 주장을 내놓아1) 서구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의 의식에도 파란을 일으켰다. 그의 논점은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인식의 차원에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각 역사적 에피스테메(épistémè)에 따라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서구 르네상스 시기부터 고전주의를 거쳐, 근대까지 지식과 예술의 표상 변화를 분석하면서 해명했다. 때문에 이를테면 푸코는 이러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대 주체의 동일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다 다원적이고 상호적인 탈 근대적 인간이 출현할 계기를 제공했다고 평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한 철학자의 인식론이 곧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에 박차를 가하는 생산적 지식 모델이었음을 본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 또한 충분히 그런 지식활동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위와 같은 지식 모델에는 꽤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2008 시각예술포럼'은 필자에게 '대화와 담론이 하나의 실체적 형태를 띤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계기를 주었다. 요컨대 시각예술분야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형식이 된 '(볼거리 위주의) 전시 또는 공연'만이 아니라 '포럼, 토론, 심포지엄, 집담회, 세미나' 같은 지적활동이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2008년 시각예술포럼은 "시각예술의 발전 및 사회적 소통과 확산"을 주제로 제3기를 맞이한 행사이다. 앞서 2006년 제1기에서는 "예술가 창작환경조성, 미술시장, 세제 개선방안, 세계화, 시각예술교육에 대한 논의"를 중점적으로 다뤘고, 2007년 제2기를 통해서는 "시각예술과 방계예술과의 연계 및 협업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번 포럼은 그간의 취지와 성과를 이어받는 동시에 각 세부 영역들의 구체화와 정책 현실화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분석하자면, 포럼 1기에서 창작부터 교육까지 광범위하게 제도 문제를 논했고, 2기에서는 앞서 논의한 시각예술 제도 전반에 걸친 실증적ㆍ객관적 담론을 바탕으로 타 예술영역과의 교류 및 공동사업 방안을 모색했으며, 3기는 보다 직접적으로 시각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주체들의 현황과 전망을 정책적 차원에서 담론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기획 측이 제3기 포럼의 목적으로 밝힌 바, "시각예술 영역의 실질적 당사자들이 창작여건의 인프라 스트락쳐(infra structure) 확립과 이를 바탕으로,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한 제도적 장치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적 대안의 확보"라는 문구에 비교적 잘 드러나 있다.
 

<2008 시각예술포럼> 현장

 

그런데 이 같은 포럼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져 있고, 심지어 지나치게 익숙해서 행사 주재자들조차 관례적으로 치르는 '학술행사' 혹은 '공청회'처럼 보이지 않는가? 언제나 그렇듯이, 발표자들의 전문적 언어와 내부자들 간에 오가는 비일상적 담론이 전부일 뿐인 상투적이고 실천력 없는 의식(意識)활동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정형화된 언어로 서술된 기획 측의 사업안 중 '취지 및 목적' 항목만을 보면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또한 여기 기획안에는,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대목이 있다. "현단계 시각예술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학술적 검토를 바탕으로 하되 추상적 차원의 논의를 지양하고 현실에 적용 가능한 담론의 생산에 주력"할 것이라 밝힌 사업 목표 부분이 그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목표는 이번 포럼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아가 '2008 시각예술포럼'이 하나의 의례적 학술행사를 넘어 이론 또는 담론의 발화ㆍ교류행위가 곧 창작의 장(場) 속에 융화할 수 있도록 한 작동장치였다. 말하자면 이 포럼은 '현실의 어려움에 처한 어떤 이의 손도 잡아줄 수 없는' 추상적 이론만 내세우거나 '할 수 있는 말'만을 읊조리는 식의 포럼을 지양하고 생생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담론 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인식활동을 창조적 활동으로 전환 또는 발전시킬 계기를 연 것이다. 이는 4차례에 걸친 포럼의 주제 편성, 발제자 및 질의자들의 텍스트와 현장 발표, 그리고 실제 포럼 현장의 분위기와 논의 양상을 면면에서 들여다보면 감지할 수 있는 성과이다. 그럼 이제,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격주 금요일에 이뤄진 네 번의 포럼(총괄기획자 최태만 국민대 교수)을 각각 살펴보기로 하자.


창작ㆍ비평ㆍ아카이브ㆍ미술과 시각문화의 소통

10월 10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포럼의 주제는 "시각예술 전문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남기가 가능한지 여부에서 시각예술가의 직업적 정체성 문제까지, 한국 미술계의 '천민자본주의'식 경영을 비판하는 화가의 주장부터 기초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지원정책을 제안하는 교수-비평가의 주장까지 걸쳐있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민중미술 화가 중 한 명인 최민화의 발표와 1990년대 말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작가 중 한 명인 김창겸의 발표이다. 이 두 사람은 포럼에서, 각자 자기 미술의 위치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말해줄 것을 기획 측으로부터 요청받았다. 최민화가 화가 자신에게나 미술계 전반을 향해 다소 일반론적인 비판을 한 것과는 달리, 김창겸은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자신이 현대미술가이자 대학의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겪은 경제적 어려움과 각종 제도적 차별을 참고자료와 함께 제시하여2) 청중들에게 새삼 허울만 좋은 미술가의 현실 삶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알 기회를 제공했다.

제2차 포럼, "시각예술과 비평의 역할"은 10월 31일 국민대학교에서 열렸다. 중견 미술비평가 강선학, 이선영 그리고 필자가 각각 "미술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 "인터넷 매체 등의 비평", "저널리즘과 비평"이라는 논제로 발제했고, 큐레이터학과 교수, 비평가 및 미술잡지 기자가 이에 대해 질의했다. 이 제2차 포럼의 백미는 미술계에서 실제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중요한 역할이 부여된 '비평'이 어떻게 생산되며, 작동하고 있는지를 포럼 참여자와 청중 모두가 극히 사실에 입각해 논한 데 있다. 가령 월 단위로 출판되는 미술잡지의 편집 메커니즘과 비평가들이 상정하는 독자의 수준 등이 적나라하게 다뤄졌고, 종합토론에서 질문한 청중들은 그간 알기 어려웠던 비평과 저널의 내면에 대해 듣고자 했으며 그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앞선 1, 2차 포럼이 일반인도 '시각예술'하면 쉽게 떠올릴 만한 주제들을 다뤘다면, 제3차 포럼(11월 14일 아르코미술관 회의실)은 시각예술영역에서 매우 중요하나 상대적으로 논의 선상에 잘 떠오르지 않은 지점을 짚었다. "시각예술아카이브의 네트워크"가 주제였다. 최신 유행과 가시적 성과를 미덕으로 여기는 현재의 문화산업 체제로 볼 때, 자료를 분석 정리ㆍ축적ㆍ보존하는 아카이브(archive) 활동은 언제나 이미 논의 또는 지원 선상에서 배제된다. 때문에 포럼은 오히려 이에 주목하여 시각문화 영역에서 생산되는 유무형의 과거 자료들이 어떻게 미래 문화예술의 발생에 기여할 수 있는지 보려 한 것 같다. 그에 더해 그러한 아카이브들의 연계(network)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아시아 지역 연구원 및 큐레이터의 실무 경험에서 나온 발제를 통해 탐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홍콩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의 수석 연구원인 피비 웡(Phoebe Wong)은 자신이 소속된 아카이브가 2000년부터 펼친 아시아 아카이브 네트워킹을 정연하게 소개함으로써, 이곳의 시각예술 관련 정보 구축에 도움을 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 열리지 않은(11월 28일, 서울시립대 예정) 제4차 포럼의 주제는 "미술과 시각문화의 소통 또는 접점"이다.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이, 이 포럼은 제3기 시각예술포럼을 내부적으로 종합하면서, 시각예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과 만날 수 있고 의사소통 가능한 지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말하자면 1, 2, 3차 포럼이 미술 내부에 상존하지만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거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적 지점들을 다뤘다면, 마지막 포럼을 통해서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안적 정책을 입안하면서 그 정책이 현실 사회와 상통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논의를 확장한 것이다. 디자인 평론가인 최범이 이 4차 포럼을 기획했고, 출판기획자ㆍ도시공학과 교수ㆍ서울시 도시갤러리 사업 추진단장 등이 참여하여 공동체 속 시각문화의 역동적 관계에 대해 논할 것으로 안다.

이상의 본문을 통해서, 필자는 '2008 시각예술포럼'이 무엇이고, 어떤 기획 내용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살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서두에 본인이 제기한 주장으로 돌아와 논의를 마무리하자. 기억하겠지만, 필자는 앞서 이 포럼을 단순히 관행적으로 치러지는 이론활동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활동으로 볼 것을 제안했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충분히 설득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4차에 걸친 시각예술포럼의 구성력과 내용적 충실함,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발생한 청중(public audience)과의 교감 및 파생 담론은 우리로 하여금 미술에서 '물리적 전시'만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최선의 형식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오히려 필자는 점차 개념화되고, 담론의 문맥 속에서 움직이는 현대미술 경향을 고려한다면, 일회적이고 감각적인 스펙터클 전시나 곧바로 상품시장과 연결되는 아트마켓형 창작활동보다는 지적활동의 교류 무대가 더 적합한 미술 형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 일단 그 무대는 가시적 효과가 적고, 무형에다가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사고하고 말하기를 즐겨하며 그 담론을 또한 실천하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꽤 그럴듯한 '지성과 감각의 누림 공간'이 예견 가능하다.
 


강수미필자 소개
강수미는 홍익대 회화과, 대학원 회화과 석사를 거쳐,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테크놀로지 시대의 예술 - 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미학연구자이며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로 일한다. 또한 현재 홍익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덕여대, 성신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1)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이광래 역, 『말과 사물』, 민음사, p. 21참조.
2) 김창겸은 '교통비 7만원의 지급 여부'를 놓고 입장이 갈려, 2004년 광주비엔날레 참여를 보이콧했다. 포럼에 작가가 내놓은 참고자료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주최 측에 보낸 편지들과 한나라당 이주호 국회의원이 2007년 5월 15일 국회에 제출한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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