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F1] 유니버설발레단의 고객지향적 마케팅

사랑하고 사랑하라, 헛사랑 말고!

김소연 편집장

임소영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사업팀장은 공연홍보마케팅의 떠오르는 스타 강사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경영아카데미 '홍보마케팅 개념 및 홍보전략 수립 실습', 예술정책포럼 '예술, 산업적 활용과 미래', 메세나협회 '2008 예술단체 비즈니스 실전 워크샵', 서울아트스쿨 문화예술원 '공연홍보 전문가과정', (주)쇼틱커뮤니케이션스의 'PD Class'. 각종 기관 단체에서 주최하는 공연홍보마케팅 강의, 워크샵, 토론 등에서 부쩍 자주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임소영 팀장이 이렇게 홍보마케팅 분야의 스타강사인 이유는 국내외를 망라하는 생생한 자료로 홍보마케팅 개념과 기법을 잘 정돈하여 전달하는 강의 비법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전문분야인 '발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발레공연으로 수차례 전석매진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세련된 홍보컨셉이나 마케팅 등을 보면서, 아마도 해외의 유수한 공연단체나 기관에서 갈고 닦은 해외파일거라는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짐작은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기만 해도 금방 깨지고 만다. 임 팀장의 강의에는 '실전' '실습' '사례분석'과 같은 말들이 부제로 붙게 마련인데, 92년 "춤의 해" 기획으로 공연계에 입문한 이래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그리고 지금 일하고 있는 유니버설발레단까지 현장과 실무를 한 번도 떠나지 않고 공연홍보마케팅 분야를 개척해온 말 그대로 '현장통 전문가' 이다.

고객지향적 마케팅'이라는 말도 예술경영지원센터 강의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다. 나는 계속 단체에서 일해 왔고 어떻게 하면 홍보를 잘할까, 어떻게 하면 표를 많이 팔까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했던 것이지 어떤 방법 개념을 배워서 적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하지만 그녀의 작업들은 이미 혁혁한(?) 매표율로 증명되듯이 요즘 각광받는 관계마케팅 등 새로운 마케팅 방법론의 성공사례로 종종 소개된다.


돈도 없다 인력도 없다?
기꺼이 즐겁게 함께 일할 '팬'을 만들어라

유니버설발레단(UBC)의 '고객지향적 마케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97년 PC통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국립발레단에서 기획홍보마케팅 등 1인 3역을 해야 했던 임 팀장은 그 와중에도 10여 개의 공연 관련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유니텔의 '무대 위의 소인국'이 활발했는데 그곳의 '춤' 방장을 맡고 있었다. 국립단체라는 곳이 물론 민간단체에 비하면 적은 예산이 아니지만 또 단체 규모를 생각한다면 넉넉한 살림도 아니다. 그러니 일은 많고 일할 사람은 턱 없이 부족했지만 인력을 늘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여 임 팀장은 어떻게 동호회 회원들의 손을 빌릴 수 없을까 하는 직업적 사심(?)으로 동호회 활동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예를 들면 국립발레단 연습을 참관하고 사진을 찍는 번개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이다. 회원들은 무척 즐거워했고 자연스럽게 국립발레단 공연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국립발레단이 2000년 예술의전당으로 이전하면서 자체 홈페이지에 동호회를 운영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회원들은 공연 홍보물이 나오면 직접 홍보물을 자신이 다니는 학교나 집근처에 배포하는가 하면 공연 당일에는 로비에서 진행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또 주역 무용수들에게만 꽃다발이 쏟아질 때 군무단을 위해 수십 개의 꽃다발을 준비하기도 했다.

홍보비도 없고 일할 사람도 없어서 "돈 받지 않고도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굴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였지만 국립발레단 동호회는 그 이상이었다. 국립발레단 동호회의 활발한 활동은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등 일간지에서 단독기사로 다룰 만큼 당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다. 물론 그러한 기사들 자체가 국립발레단에게는 매우 소중한 홍보기사이기도 하다. 국립발레단 동호회 1기 회원들 중에는 극장, 단체 등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동호회가 기획경영 아카데미 역할까지 한 셈이다.

무대 밖 무용수들의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노출시키는 프로그램 등은 지금이야 당연한 프로그램이지만 97년 98년 당시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선진적이다.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해서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국립발레단 동호회를 비롯하여 UBC에서의 다양한 관객 프로그램 등은 '관계마케팅'의 성공적 사례의 하나다.


트렌드를 읽는다? NO!
스스로 트렌드를 즐겨라

2004년 UBC로 자리를 옮겼을 때 PC통신에서 시작하여 국립발레단 동호회까지의 소중한 경험은 벌써 낡은 방식이 되어 버렸다. 그 사이 인터넷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 문화는 동호회에서 1인 매체가 대세가 되어 있었다. 동호회에서는 리더가 의견을 제시하면 회원들이 따라와 주었지만 1인 매체 시대에 사람들은 점점으로 흩어져 있다. 게다가 국립발레단의 사례를 경쟁단체라 할 UBC에 그대로 옮겨올 수도 없지 않나.

그때 우연히 싸이월드에서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던 타운홈피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제안을 받자마자 곧바로 타운홈피를 열었다. 사람들은 굳이 UBC 홈페이지를 찾아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놀다가 UBC타운홈피로 접속했다. 발레는 콘텐츠도 많다. '그림이 되는' 이미지들이 무궁무진했다. 남자 무용수들의 사진을 올리면 1촌들은 '오빠들'의 멋진 모습에 열광했다. 1촌을 타고 UBC의 소식들이 '퍼 날라'졌다. 회원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서버의 부담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싸이월드 서버를 사용하는 것이니. 2005년 <돈키호테> 공연을 홍보하면서 무려 1촌수가 8천 명이 늘었다.

요즘 임 팀장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세컨드라이프이다. 세컨드라이프는 아바타로 살아가는 가상세계이다. 60대 할아버지로 들어가서 전세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땅도 사고 되팔 수도 있고 사이버머니를 현실 화폐로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안 된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호주는 세컨드라이프에서 장사해서 백만장자 된 사람들이 있다. 발레가 앞으로 10년 20년 계속 살아남으려면 젊은 층을 공략해야 한다. 지금 젊은 층은 사이버에서 논다. 게임을 좋아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 그럼 이들이 그 넓은 사이버공간의 어디에 있는가. "블로그도 아니고 미니홈피도 아니고, 바로 여기다.

국립발레단 동호회나 UBC타운홈피 등 지금 들으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방법이 시작될 당시를 조금 구체적으로 떠올려본다면 그러한 환경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트렌드'를 강조하지만 먼저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임 팀장은 '읽다'라는 말은 틀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초기에 공략하기 위해서는 읽겠다는 자세로는 안 된다는 것. 임 팀장은 스스로를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저러한 홍보전략을 짜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궁금하고 재미있어서 PC통신을 하고 미니홈피를 만들고 세컨드라이프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스스로 새로운 트렌드를 사는 것. 그것은 한 걸음 떨어져 '읽는' 자세와는 다른 것이다.


고객을 섬기는 것이 헛사랑이 아니려면유니버셜 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심청>, <지젤> 포스터

사실 이번호 프로젝트F1을 기획할 때의 주제는 '유니버설발레단(UBC)의 CRM을 활용한 홍보마케팅 전략'이었다. 임소영 팀장에게 대강의 기획의도를 말했더니 그녀는 단박에 'UBC의 고객지향적 마케팅'으로 주제를 수정했다. 고객정보를 취합해 고객 성향에 맞는 마케팅을 실행하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 관계 관리) 역시 '고객지향적 마케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니 기획방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임 팀장의 제안을 들으면서 '뭐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 팀장은 인터뷰 내내 양자를 분명하게 구분했다. 공연홍보마케팅의 스타강사 답지 않게(?) 그녀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공연을 사랑하고 관객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CRM이라든가 등등은 그냥 기술이고 도구이다, 마음이 지극하면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게 떠오른다는 것. 그런데 '마음'이라니. 어디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관객을 사랑하지 않는 예술가가 있으며, 기획자가 있겠는가. 이런 의심(?)을 들이대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자 여기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이제 곧 여자의 생일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그녀를 기쁘게 해 줄 선물을 고르는 중이다. (여기쯤에서 임 팀장은 필자를 유심히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는 여자의 손에 반지가 없는 것을 보고 반지를 선물한다. 그런데 여자는 없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반지를 끼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남자는 여자가 반지가 없다는 것에서 생각이 멈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왜 반지를 끼지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조금 더 주위 깊게 살펴본다면 그녀의 스타일이 편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것이고 그렇다면 쉽게 반지가 없으니 반지를 사주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유를 듣고 있자니 그녀가 강조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와 닿았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사랑'이란 얼마나 일방적인가. 그것은 홍보마케팅 같은 전문분야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고객을 섬긴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 섬김은 '반지가 없으니 반지를 사주자'에서 멈추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헛사랑'이라고 말한다. 반지가 없으면 '왜 반지를 끼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그래서 상대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녀가 말하는 '지극한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UBC의 고객지향적 마케팅을 이야기하기 전에 국립발레단 동호회 아니 PC통신 시절의 '무대 위의 소인국'까지를 거슬러 올라갔던 것은 단지 그녀의 성공담을 화려하게 펼쳐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예를 들어 CRM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동호회, 타운홈피 등의 관계마케팅은 그 자체의 마케팅 효과만이 아니라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고객의 요구를 어떤 통계수치보다 더 적확하고 깊이 있게 수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랑하면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스스로가 그러하고 또 동호회를 운영한 경험 등으로 임소영 팀장에게 "스스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의 열정과 아이디어"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 방법은 그러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CRM과 '고객지향적 마케팅'을 굳이 나누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믿음 때문이다.

올해 103%의 유료판매율에 오천만원의 수익을 낸 <지젤>의 주요 성공 요인으로 임 팀장은 공연 전 문훈숙 단장이 직접 진행한 해설과 발레 마임 자막을 들었다. 사실 자막을 도입하기까지 망설임도 많았다.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자막이 발레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망설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문훈숙 단장의 결심이 크다. 문훈숙 단장은 발레리나이지만 지금은 CEO로서의 역할이 크다. 문훈숙 단장이 이러저러한 CEO들의 모임 등에서 무용계 밖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사람들은 발레의 아름다운 음악만이나 아름다운 동작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직접 교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에게 발레의 마임은 낯선 언어라는 것이었다. 임 팀장은 관객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자막공연을 시도했고 결과는 알다시피 성공이었다. 관객들의 입장에서 출발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성공이다.

물론 임소영 팀장이 CRM 등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임 팀장은 뮤지컬 <심청>의 고객 성향 분석지를 펼쳐 보이면서 이미 이러한 결과들은 굳이 돈과 인력을 들여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감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 데이터와 분석이 '감'을 현실로 만드는 데에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준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좌석별 판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7, 2008 공연 모두 R>S>A>B순으로 판매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굳이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더라도 그동안의 마케팅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발레 공연은 고가 티켓을 지불할 수 있는 애호가 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유료판매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등급인 B석 이벤트를 진행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젤> 공연에서 B석을 모두 1만원에 판매하면서 전석판매를 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마케팅 믹스도 더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그녀가 들려준 상당히 흥미로운 여러 마케팅 사례들이 있지만 굳이 지면으로 옮기지는 않겠다. 엔돌핀이 팍팍 솟는 그녀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시길.

그녀는 내내 '지극한 마음'을 강조했지만, 그리고 발레에 대한 공연에 대한 관객에 대한 그녀의 지극한 마음은 십분 납득이 되었지만, 그녀의 작업들을 조금만 눈여겨보더라도 홍보마케팅에서 '감각'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 금방 눈에 띈다. 풍성하게 부풀려진 치마 자락 아래 터닝하고 있는 발레리나의 토슈즈가 분명하게 보이는 발레 <심청>의 이미지는 얼마나 탁월한가. 마음과 성실함과 다양한 기법과 감각까지. 홍보마케팅은 무궁무진하다.


김소연필자소개
김소연 편집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 <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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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달래
  • 2008-12-19 오전 10:16:21
강의를 통해 만났던 임소영 선생님을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에서 다시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소연 편집장님의 글 정말 시원시원하네요 ^^ 두 분 다 멋져요~[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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