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무대의 탄생』, 『예술경영』

현장인들의 생생 예술경영론

이지영_칼럼니스트

▲ 『무대의 탄생』소홍삼 저(미래의창, 2013년)

▲ 『무대의 탄생』소홍삼 저
(미래의창, 2013년)

기획이 곧 예술이다

『무대의 탄생(기획이 곧 예술이다)』은 현장의 소리를 담은 흥미로운 책이다. 최근 20여 년 간 한국 공연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10개의 공연을 중심으로 기획 단계부터 홍보 과정, 작품성 평가, 손익, 이 작품으로 인해 공연계에 미친 영향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획물들은 장르별로 다양하다. 연극계에 '프로듀서 시대'를 열어준 <연극 열전>,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쉬와 LG아트센터가 만들어낸 <러프컷>, 대형 야외오페라가 몰고 온 한탕주의 기획 시리즈 <운동장 오페라>,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가져온 시키의 <라이온 킹>, 클래식 공연장에 오빠부대를 몰고 온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지역문예회관 역작의 빛과 그림자, 뮤지컬 <남한산성>, 동춘서커스의 블루오션 찾기 <동춘서커스>, 고궁을 무대로 다시 태어난 뮤지컬 <대장금>, 태생적으로 글로벌 무대 지향한 뮤지컬 <영웅> 등 10개 작품의 이모저모가 담겨 있다.

연극제작, 프로듀서 시스템으로의 진화를 이끌어낸 '연극열전'은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담한 기획과 시선을 끄는 홍보, 치밀한 마케팅을 갖춘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기본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는 신뢰감까지 얻으며 연극으로서는 드물게 객석점유율 78%이상을 기록했다. 사진전시, 이벤트 행사, 프로그램북 제작 등 확장제품을 다양화하면서 이후 이 시리즈는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됐다. 장르에 관심 없었던 사람이라도 연극에 관심을 보이는 계기를 마련했고, 예술장르에서 연극의 이미지를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IMF란 국가적으로 우울한 배경에서 부흥한 '악극'과 '동춘서커스'의 진화도 지난 십여 년 간 공연계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연극의 위상이 축소되는 때에 부활한 악극은 부담을 주지 않는 주제와 정서, 부담스럽지 않은 관람을 이끌면서 새롭게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 관객층이 고령화되고 있지만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온 '앙상블 디토'의 성공적인 사례는 '기획이 곧 예술이다'라는 근사한 명제를 이끌어냈다. 일관된 방향성, 꾸준한 투자, 독보적인 기획력을 갖춰온 LG아트센터와 피나 바우쉬와의 협업 <러프컷>은 기업은 물론 국가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까지 큰 성과를 거뒀고, 그것을 읽는 이도 뿌듯하게 만든다.

흰 코끼리 프로젝트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 표본이 될 만한 기획물도 있지만 <태양의 서커스>로 대변되는 전 세계적인 '서커스 열풍'에도 불구, 총체적 난국을 갖고 있는 우리의 동춘서커스는 2009년 가까스로 해체 위기를 넘겨야했다. 러시아, 중국, 호주, 캐나다에서는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는 장르이지만 어떤 이유에서 동춘서커스는 어려운 것인지 SWOT 분석도 눈길을 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문제점을 양산하면서도 개선되지 않아 악순환을 반복하는 기획물도 소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페스티벌, 이탈리아의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핀란드의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 등 야외에서 열리는 해외 대형 오페라 축제는 관광과 감동까지 이끌어내며 브랜드로 지속성을 갖는데, 오페라의 대중화를 이끈다면서 오히려 한탕주의의 표본처럼 오페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든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필자에게는 성남아트센터에서 제작한 뮤지컬 <남한산성>이 가장 뼈아프게 느껴진다. 당시 이 공연의 언론 홍보를 담당했던 탓에 치열했던 순간순간이 객관화 된 정보로 읽혀지고 마는 것이 새삼스럽게 섭섭하다.

<남한산성>은 민간 기획사는 다루지 못한 무겁고, 어두우며, 진지한 소재의 창작물이었다. 힘없는 나라의 패배의 역사 가운데 각기 소신을 갖고 있던 인물들의 충돌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이 뮤지컬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남한산성>은 인터파크 뮤지컬 부문 예매랭킹 2주 연속 1위는 물론 70%에 달하는 객석점유율, 음악과 무대예술의 깊이가 끌어낸 감동, 여기에 언론 평가도 좋았다. 다듬어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작곡상, 특별상, 무대상, 의상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주어진 트로피와 감동을 나누는 관객의 온라인 댓글은 격려 그 이상이 호평이었다. 하지만 이런 배경에도 불구, <남한산성>은 레퍼토리로 정착하지 못했고 2011년 무대는 폐기처분 되어 다시 볼 수 없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어느 공연이나 '문제점'을 갖고 있고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개선하느냐에 따라 존폐가 좌우된다. 시 산하 출연기관이기에 가능했던 프로젝트였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중장기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문화풍토와 시스템 부재가 궁극적인 문제였다. 저자 소홍삼은 <남한산성>을 가리켜 '보완하고 발전시킬 가치와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처치 곤란한 '흰 코끼리 프로젝트'가 되었다'고 했다.

『무대의 탄생』을 덮으면서 공연예술에 대한 지원은 어디까지가 적정한 것인지 물음이 생겼다. 지금도 국공기관의 지원으로 창작물이 만들어지고, 역사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무대에 오른 오페라도, 무용도 만난다. 그런데 그 많은 작품들은 다 어디 갔을까? '동춘서커스'도 노동부의 지원으로 단원들의 월급을 지원하고 있지만 예술에 대한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지원은 어디까지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 공연계의 눈에 띄는 현상은 대기업의 물량공세로 수입해 온 해외 공연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자본이 있으면 기존의 유명 상품 들여오기는 쉽다. 소비도 가능할 만큼 관객의 규모도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에는 재빠르고 생산하고 성장시키는 데에는 게으르다. 문화를 창조하고 이를 양산해내는 데에 호흡이 너무 짧다. 『무대의 탄생』은 추천할만한 책이다. 현장의 이야기이지만 문화 이론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짚어보는 진단을 곁들여 공연 관계자나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는 학생들 혹은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도 유용하다. 편한 문장으로 기록해 술술 읽히고 창작물이 만들어지기까지 기획단계 준비와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결과물에 대한 평가와 이로 인한 당면과제 여기에 객관화 시킨 데이터가 모두 좋은 자료가 된다. 해외 어느 유명 서적보다도 우리에게 유용한, 실제 경험이 살아있는 책이다.

예술경영 책표지 이미지

▲ 『예술경영』임연철,박정배 공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년)

손에 쥐는 예술경영 집약 개념서

임연철 전 국립극장장과 박정배 교수의 공저 『예술경영』은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핸드북'이다. '예술경영'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서적이 출간되고 있지만 무겁고 어딘가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160페이지 가량 되는 얇고 '작은' 사이즈의 이 책의 어느 부분을 펼쳐 봐도 긴 맥락으로 구구절절 풀이하지 않는다. 작지만 알찬 내용으로 채워진 책은 '예술경영'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부담스러운 어감을 날려 버린다. 저자인 임연철과 박정배는 공연 바닥에서 수 십 년간 '판을 읽어온' 사람들이다. 임연철은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대학에서 공연 전시 마케팅과 홍보를 강의했다.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역임을 비롯해 서울예술단, 국립오페라단, 서울시향 등의 국공립단체의 이사를 지냈고, 예술경영 관련 저술을 발표해 온 산 증인이다. 청운대 공연기획경영학과 교수인 박정배 역시 국내 4년제 대학 최초로 예술대학에 공연기획공영학과의 틀을 만든 인물로 (사)한국이벤트연구소장, (사)한국예술경영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자문과 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이 엮어놓은 예술경영 이야기는 공연문화 고객확대와 예술경영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 예술경영의 생성과 본질, 고전예술과 대중예술, 예술경영의 마케팅 전략, 전술, 문화예술 홍보, 관객충성도 구축, 예술경영의 e비즈니스 활용, 예술교육, 예술경영 스폰서십, 직원 단원 관리 등 10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궁금한 부분을 찾아 읽어보면 될 텐데 두 사람이 엮어낸 '개론'은 뜬구름 잡는 이론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예를 들어 전반적인 흐름을 읽도록 만든 집약 개념서이다.

 
 
이지영 필자소개
이지영은 월간 [피아노음악] 수석기자와 월간 [Joy Classic], [VOX] 편집장 직무대행을 역임했으며, KBS 클래식 FM의 'FM 실황음악회'와 KBS 1FM의 '출발 FM과 함께'에서 음반 및 공연을 소개하며 고정 출연자로 활동했다. KBS 1FM의 'KBS 음악실' 방송작가로 일한 후, [클럽발코니], [월간 객석] 등에 원고를 게재하기도 했으며 현재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성남아트센터에서 홍보미디어실 및 공연기획부 과장으로 근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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