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PD가 들려주는 뮤지컬 제작기』

충실히 빚어낸 경험의 가치

나윤정_더뮤지컬 기자

▲ 『전PD가 들려주는 뮤지컬 제작기』, 전정수 저 (세창미디어, 2013년)

▲『전PD가 들려주는 뮤지컬 제작기』, 전정수 저
(세창미디어, 2013년)

뮤지컬 <그날들>의 백스테이지 현장을 찾은 적이 있다. 공연 세 시간 전, 객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무대 안팎을 분주히 움직였다. 특히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수많은 스태프들과 조우했다. 분장팀과 의상팀의 손길에 의해 각자 작품 속 역할들로 완벽히 변신했고, 음향팀 앞으로 가서 자신의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게끔 몸 가까이 마이크를 장착했다. 이후 오케스트라팀이 하나 둘 자리에 앉으며 장면 연습이 시작됐고, 배우들은 조명 감독, 무대 감독의 큐사인에 맞춰 실제 공연 같은 연기를 펼쳤다. 무대 앞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장유정 연출은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몸소 시연을 선보이며 세심히 무대를 완성시켜나갔다. 이런 광경들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있자니 새삼 무대는 '종합예술'이란 말이 실감났다. 막이 오르기 직전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의 노력이 쏟아지고 있는데, 하물며 작품이 탄생되는 긴 과정 동안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방울이 담겨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람과 예술의 조화로운 합심

뮤지컬 무대는 마치 백조의 모습과 흡사하다. 백조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물갈퀴를 휘젓는 것처럼, 무대 또한 관객 앞에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뒤편에서 무수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종합예술인 무대를 지지해주는 가장 큰 버팀목은 사람과 사람, 예술과 예술의 조화로운 합심이다. 그 까닭에 미약한 부분이 하나라도 제 기능을 못한다면,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PD가 들려주는 뮤지컬 제작기』는 한 편의 뮤지컬이 제작되기 위한 조화의 과정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다. 이 책이 이론서이기보다는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머리말 속 저자의 바람만으로도 글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공연기획자로 활동한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듯 책 전체엔 현장감이 가득하다. 그 까닭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치 공연 제작 과정을 몸소 탐방한 듯한 느낌도 전해 받을 수 있다.

저자인 전정수는 MBC PD로 재직 중이며, 뮤지컬, 콘서트, 대형전시이벤트 등 다양한 공연 분야의 기획, 제작에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다. 뮤지컬 장르로는 <로미오&베르나뎃>, <안녕, 프란체스카> 등을 기획 제작, <대장금>,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을 공동 제작한 바 있는 베테랑 기획제작자다. 그는 그동안 공연기획제작자의 관점에서 서술된 공연 관련 저서가 드물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산고 끝에 자신의 경험을 되살린 뮤지컬 제작기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출판 동기 자체가 이 책이 다른 공연 도서들과 차별화를 이루는 지점이다. 저자가 공연 과정에서 축적해놓은 실무매뉴얼을 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만큼, 기획전반에서부터 공연 마무리까지 하나의 뮤지컬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전개되어 독자로 하여금 하나의 뮤지컬 작품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 뮤지컬 <로미오&베르나뎃> 공연 모습(사진제공_전정수)

▲ 뮤지컬 <로미오&베르나뎃> 공연 모습

(사진제공_전정수)

▲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모습 (사진제공_더뮤지컬)

▲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모습

(사진제공_더뮤지컬)

 

생활의 발견을 앞세운 설득력

모든 일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기획, 이 책 역시 기획 전반을 다루며 시작된다. 우리 삶 속에서 기획의 중요성을 "늑대 같은 남편과 여우 같은 마눌님 없이는 살 수 있어도 '기획' 없이는 못산다"란 재치 있는 말로 비유하다가도, 공연예술기획의 빛과 그림자를 이야기할 땐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고독한 고난의 행군"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빼놓지 않는다. 이처럼 딱딱한 학술적인 정의보다는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표현들이 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상상력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닌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소위 '생활의 발견'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책은 기획 전반, 제작 준비 과정, 마케팅과 홍보, 마무리로 구성된 4개 챕터 총 12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특히 무게가 실린 부분은 책의 전반부인 기획 전반과 제작준비과정이다. 저자의 전공이 십분 발휘된 만큼 책의 특성이 가장 잘 살아난 지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획 얼개 짜기를 설명할 때 저자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초기 기획단계의 시뮬레이션 요소를 도표로 제시해 시각적인 이해를 돕고, <레 미제라블>, <맘마미아!>, <빨래> 등 10여 편의 국내외 대표 성공작들의 제작 동기 사례들을 정리해 기획에 대한 쉬운 접근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 표지부터 기획 제작사 소개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공연 기획서의 구성 요소나 제작 주체 전용, 협찬용 등으로 분리된 공연 기획서의 종류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구체적인 정보들이 보기 쉽게 나뉘어져 있다.

저자는 실력 있는 공연기획 제작자의 덕목 중 하나로 '자료와 정보 수집을 통한 트렌드 파악 및 분석 능력'을 꼽았는데, 그 자신이 지닌 '정보 수집력'을 방증하듯 이 책을 앞세워 아낌없는 자료 공급에 나선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분야 기획경영 전문인력 수요 및 공급 실태조사』의 직무별 필요 스킬을 비롯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공연예술산업 공연단체 현황』 등을 참고 자료로 활용하여 자신의 경험담에 보다 높은 공신력을 더한 것이다. 또한 책의 곳곳에 '뮤지컬 노트'란 섹션을 더해, 뮤지컬과 관련한 재밌고 유용한 상식들을 채워넣은 점도 인상적이다. 더욱이 공연장 대관 담당자로부터 전해들은 성공적인 대관 노하우나 작품의 다양한 실패 사례 등 단순한 정보 이상의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어, 뮤지컬 공연 전반에 대한 고급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저자 전정수는 뮤지컬 무대를 비빔밥에 비유했다. 갖가지 재료들이 잘 버무려진 비빔밥을 맛볼 때의 기쁨이 잘 만들어진 공연을 마주할 때의 희열과 동일시된다는 건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엄밀히 따지면 공연예술은 이론보다는 실무다. 머리로 인식하는 지식보단 몸으로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공연예술의 훌륭한 재료가 되는 까닭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만 놓고 봤을 땐 결코 알 수 없는 내면의 숨겨진 끈기와 노력. 그것을 몸소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공연예술의 참맛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아는 만큼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면 저자와 독자 모두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이라 생각한다.

 

 

 

 
 
나윤정 필자소개
나윤정은 월간 『객석』을 거쳐 현재 『더뮤지컬』 기자로 활동하며 공연을 보고 듣고 쓰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며, 문화 저널리즘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진심이 담긴 글을 통해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며, 그와 관련한 소중한 꿈을 품고 있다.
 

 

덧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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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정수
  • 2013-08-29 오후 2:26:11
나윤정 님, 졸저에 대해 관심 가져주신데 대해 그리고 섬세하면서도 과분한 평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저 이 책이 뮤지컬을 위시해 공연계의 발전에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기를 다시한번 기원해봅니다.[Del]
  • 위클리 예술경영
  • 2013-08-31 오후 2:01:16
저자께서 직접 방문해 주셨네요! 환영하옵고, 위클리 예술경영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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