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공연기획과 축제경영의 현장읽기』

수많은 변수들과의 싸움의 기록

강일중_공연칼럼니스트

▲청소년연극 <아가사의 여행>의 한 장면

수 년 전 일이다. 공연예술축제에 관한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한창 모으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귀중한 글 모음을 발견했다. 김우옥 서울아시테지(ASSITEJ: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축제 예술감독(당시)이 아시테지 사이트에 연재한 글들이었다. 일종의 일기 형식으로 쓰인 여럿 단편적인 글들에는 축제 준비과정에서 생긴 돌발적인 일들, 위기극복 사례 등 그가 예술감독직을 수행하면서 겪은 우여곡절, 애환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축제경영에 관한 온갖 이론이 그 글들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욕심 같아서는 그때 출처를 밝히고 김 감독의 글들을 몽땅 퍼다 내 책에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김 감독의 허가를 얻어 일부 내용을 내 책에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김 감독은 연극연출가 출신이며 아시테지 한국본부 이사장을 맡아 국내 아동청소년연극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예술감독으로서 그의 이런 소중한 경험 사례나 단상이 책으로 엮어지면 축제경영에 관심 있는 후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혼자서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글들은 한동안 아시테지 사이트에 올라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볼 수 없게 됐고 이후 책의 출간으로도 이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이런 과거의 일이 번뜩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 것은 공연기획가 송애경(아시테지 한국본부 이사) 씨의 신간『공연기획과 축제경영의 현장읽기』(352쪽)를 읽게 되면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김 감독의 인터넷 글을 볼 때 느꼈던 공연기획 현장의 펄떡거리는 움직임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연극과 무용 분야 기획현장 기록

서울세계무용축제 제작발표회장의 저자(왼쪽에서 두 번째)

▲서울세계무용축제 제작발표회장의 저자
(왼쪽에서 두 번째)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글에 나온 것처럼 학문적 탐구나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공연기획자와 축제경영자 입장에서 현장에서 겪은 경험들의 기록"이다. 이 책은 모두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동청소년연극과 무용 분야의 축제 공연 기획 및 제작 현장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 개 장르의 국제교류 부문 경험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저자의 책을 지금까지 출간된 적지 않은 숫자의 다른 공연기획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국립극장에서 약 8년간 기획 업무를 하다 프리랜서 공연기획자로 독립했다. 그 이래 서울에서 잇따라 열린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들에 축제 공연 및 부대행사 기획자로서 참여했다. 세계무용연맹(WDA) 창립총회 및 페스티벌(1995), 국제극예술협회(ITI) 세계총회 및 세계연극제(1997),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및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창설(1998), 아시테지 세계총회 및 공연예술축제(2002) 등이다. 아시테지 한국본부 업무에는 국제 담당 이사로서 지금까지도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시댄스의 경우는 창설 이래 오랜 기간 사무국장직을 맡으며 무용 분야의 공연 기획 경험을 축적했다. 책 속에는 자연스럽게 아동청소년연극과 무용 분야의 공연기획 전문성이 녹아 있다.

국제교류에 의한 공연기획 사례 소개에 방점

10대를 위한 연극 <쉬반의 신발>의 한 장면

▲10대를 위한 연극 <쉬반의 신발>의 한 장면

제1장 「곁방살이 신세 아동청소년연극」에는 국내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았던 두 건의 아동청소년연극 기획 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하나는 2011년 6월 서강대학교 메리홀 무대에 올려진 유럽의 다국적 청소년 공연전문극단 NIE(New International Encounter)의 <아가사의 여행>(원제 The End of Everything Ever). 다른 작품은 같은 해 7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쉬반의 신발>(원제 Shopping for Shoes)이다. 전현아 배우의 1인극인 후자의 경우 독일의 유명 아동극 연출가 브리깃 데티에가 무대화했다. 두 건의 국제교류에 의한 공연기획 과정에서 기획자를 좌불안석(坐不安席)하게 했던 사건들과 상황이 이 부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상황 자체가 극적이며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국제협력을 통한 공연을 구상하고 있는 기획자들에게는 매우 좋은 정보 자료로 활용될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제1장을 비롯해 책의 여러 곳에는 공연기획이나 축제경영에 있어 중요한 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제2장 「축제, 공연예술 사고 팔기」는 개별 공연 보다 전반적인 축제경영에 대한 글을 담아냈다. 축제의 구상 및 기획 단계에서 축제의 진행과 사후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을 국내외의 축제경영 사례를 들어 정리해 두었다. 덴마크 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나 노르웨이 아시테지 세계총회 및 페스티벌 등의 해외출장을 통해 저자가 생각해낸 이상적인 축제의 모델 등이 제시되어 있다.

제3장 「유감 있습니다. 그 기획!」은 전반부에 국내 무용 분야의 공연기획에 있어서의 허와 실이 많은 사례들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갖고 있는 국내 무용계의 부정적인 면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부각되어 있다.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상당수의 단위 글들은 저자가 지난 25년간 공연기획 일을 하면서 틈틈이 국·공립 예술단체가 발행하는 월간지나 공연예술 전문지 등에 기고했던 것들이다. 게 중에는 워낙 오래전에 쓰여 부분적으로 시의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예전의 글들에서 공연계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지금도 그리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무용계가 그렇다. 물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상황이 변한 것도 많이 있다. 그런 부분은 공연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제4장 「기획자의 눈으로 꼬집어 본 무대」는 주로 연극을 중심으로 기획자의 시각에서 관극한 작품에 대한 평들을 모아놓았다. 또 제5장 「쉬엄쉬엄, 놀면서 일하면서」는 저자가 공연기획자로서 활동해오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단상들과 개인적 경험담을 정리해 둔 것이다.
 

『공연기획과 축제경영의 현장읽기』송애경 저(연극과인간, 2014년)

▲『공연기획과 축제경영의 현장읽기』
송애경 저(연극과인간, 2014년)

『공연기획과 축제경영의 현장읽기』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케 한다. 각기 다른 매체에 기고한 그간의 글들을 애써 모아 일관성을 부여해 한 권의 책으로 펴낸 저자의 노고가 엿보인다.

책에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예전에 썼던 글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시의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추가 취재를 통해 현실감 있게 보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의 사진자료들을 확보해 넣었더라면 시각적인 면에서 내용이 더욱 풍성해졌을 것이다. 또 저자 스스로가 탓하듯 공연예술 관련 대형 국제회의 및 페스티벌에 기획자로서 참여하면서 얻은 국제교류 현장경험을 책 속에 충분히 녹여내지 못한 점도 독자 입장에서는 섭섭한 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는 공연기획 또는 축제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일반 공연애호가들이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느낄만한 자료가 듬뿍 들어있다. 본인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겠지만 저자가 여전히 공연기획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만큼 보다 풍부한 내용으로 제 2의 『공연기획과 축제경영의 현장읽기』가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_강일중

 
 
필자사진_강일중 필자소개
강일중은 공연전문기자 겸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에서 줄곧 일해왔으며 뉴욕특파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뉴욕 문화가 산책』(2005)과 『공연예술축제를 만드는 사람들』(2009)이 있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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