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술경영인에게 영감을 주는 책 ② 『변방을 찾아서』

변방(邊方)을 바라보는 예술적 시선

남윤일_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

 

 

 

 

『걷기 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은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 거처를 정한다."라고 말했다. 속도와 정보의 시대, 정신적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되는 현실에서, 내게는 동감과 함께 작은 위안이 되는 말이다. '걷기'야말로 침묵과 명상, 자유와 보람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자아 훈련이자 정신적 호사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자연을 찾을 수 없다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어둑한 저녁 무렵에 동네 주변을 배회하거나, 약속 장소에서 집으로 향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공상, 명상, 반성이 결핍된 자신이 무력하다 치면 언제든 어디든 다시 걷기를 시작할 요량이던 차에, 요즘은 함께 걷자고 상대에게 동행을 권한다. 침묵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자아 발견이 하나의 이유라면, 다그침 없이 두 발로 걸어 스스로의 감각을 깨우는 관능적 체험을 나누고픈 마음이 다른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새로운 공간으로 걸음을 이끄는 책이 있다.

변방을 찾아 떠나는 여행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저(돌베게, 2012)

▲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저(돌베게, 2012)

변방(邊方)의 사전적 정의는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이다. 『변방을 찾아서』는 신영복 선생이 직접 자신의 글씨가 있는 곳을 답사하고, 그 글씨가 쓰여진 유래와 의미, 그리고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낸 글이다. (많이 알려 졌지만, 신용복 선생은 개성 있는 서체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글씨가 생명을 갖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있으며, 병렬적으로 나열된 여덟 곳의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영복 선생이 쓴 글씨들이 대체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있고, 그곳의 성격 또한 주류 담론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책의 백미는 변방으로 불리는 '그 공간'에 있다.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글씨와 배경(역사, 경제, 정치적 사건과 사실)을 설명하고, 작가 특유의 관점을 열거한다.

이야기의 흐름은 작가가 밤마을을 나선 듯 정겹다. 해남 땅끝마을의 서정분교를 시작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석이 있는 경남 봉하마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가슴에 파장을 일으키는 사연이 등장하여 독자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향토적인 사진과 공간에 이끼 낀 역동적인 사연들이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변방의 풍경을 담고 있다. 독자의 노스탤지어를 이끌어 내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변방의 창조성

책의 매력은 낡고, 모르고, 잊혀진 이야기를 들춰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오늘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변방 특유의 철학을 통해 미래로 향해 있다. 우선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편협한 사고에 대해 반문한다.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고, 왜 문명이 변방으로 이동하는지, 변방이 왜 항상 다음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리엔트의 변방인 그리스•로마, 그리스•로마의 변방인 합스부르크와 비잔틴, 근대사의 시작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은 그 중심지가 부단히 변방으로 이동해 간 역사였음을 설명한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원동력과 잠재력을 갖춘, 생명력 넘치는 변방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변방의 중요성을 문화•예술의 영역에 대입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 예술계의 주요 화두 중의 하나인 예술 생태계 보존을 위해 공공과 민간의 예술 지원 영역을 불문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예술 활동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창작자들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 영역을 확대하려는 기본 취지에 공감이 형성되어 있다. 공연예술계의 창작 환경 변화와 더불어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지원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예술을 형성하는 다양성만큼 다양한 영역의 젊은 창작자들이 펼치는 예술 활동의 장(場)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어떠한가. 젊은 창작자를 발굴,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비해 그 온전한 기능에 대한 고민은 진행형이다. 결국 젊은 창작자들에 대한 창작 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적의 전제는, 그들의 활동을 들여다보는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그들은, 예술적 성취를 위한 도전에 보내는 격려와 응원보다는 소외된 시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의 예술을 보여줄 장소도, 그에 대한 담론이 펼쳐질 환경도 여전히 척박하다고 느껴졌다.

그들의 주요 활동지는 변방이 가지고 있는 '주변부'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낙후되어 있고,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갖는 관심은 사회적 약자나 마이너리티에 대한 온정주의적, 감상적 관점이 대부분이다. 나는 신영복 선생을 통해 예술자의 현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보게 되었다.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 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한 공간으로 인식함으로써 변방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일이 과제처럼 주어졌다. 민간 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는 '나'의 역할과 '하는 일'에 대한 의미에 대해 되묻게 된다. 젊은 창작자들을 만나는 지점에서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이들의 신념과도 닿아 있는 지점이다. 나는 기획자이지, 창작자가 아니다. 같은 영역에서 함께 고민하고 동행하지만, 그들이 예술적 성취를 위해 가지는 그 핵심적 열망까지는 그들과 함께 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온전하게 그들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매 순간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껍데기를 벗은 변방의 자유

변방의 의미와 더불어 창작자들을 위한 제언 같은 목소리가 저서에 담겨 있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고 한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허망한 환상과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하고 교조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젊은 창작자들이 예술적 성취를 위해, 그 '무엇'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 잠식당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경쟁적으로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의 속도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무게를 지탱하기란 힘들다. 또한 생존을 위한 경쟁이 만연한 가운데 속도와 효율성의 논리를 이겨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콤플렉스의 개입을 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기도 어렵다) 신영복 선생은 이런 콤플렉스는 잠재의식처럼 무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가를 깨닫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한 자각이 그나마 가능한 공간으로 변화와 창조가 역동적인, 변방으로 인지하고 있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젊은 창작자는 거대한 주류 예술의 원심력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작은 목소리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전달되는 장소가 협소할지라도) 예술 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야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온몸으로 부딪치는 현재의 문제에 대해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저항의 모습을 나타낸다. 어쩌면 지금 머무르는 변방은 미래의 중심일 수 있다. 변방과 중심의 순환, 예술가와 예술경영인에게 변방 정신이 접목되어야 예술이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도 생물이어서 부단히 변화하지 않으면 존속하지 못한다. 변화와 소통은 곧 예술이 생명을 얻는 과정인 것 같다. 젊은 창작자가 서식하는 곳, 변방을 찾아가는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닐까.

 

사진출처_신영복의 더불어숲

 
 
필자사진_남윤일 필자소개
남윤일은 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 선정하여 창작활동을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두산아트랩,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두산 빅보이 어워드)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듀싱 씨어터에서 젊은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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