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이사

"매력이자 난점은 예술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양지연 _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

좋은 작품을 제대로 된 가격으로, 즉 비싸게 받아야 할 작품은 비싸게, 저렴한 작품은 저렴하게, 작품의  가치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좋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이학준

 

서울옥션 창립 멤버에서 시작하여 작년에 대표

이사로 취임했다. 미술계에서는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최고책임자까지 되는 내부승진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 개인적으로나 업무 면에서 변화가 있다면?

미술시장에서 서울옥션과 같이 상장까지 되는 회사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최고경영자라는 말 자체가 이쪽 분야에서 낯선 용어이지 않은가. 바깥에서 서울옥션을 보는 시각과 기대는 상당히 큰 것 같다.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나서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서울옥션이 한국 미술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20년 넘게 미술시장에서 종사하고 있다. 소위 미술 비전공자로서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했으며, 어떻게 변했는가.

예전부터 그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상경대를 나왔으면 증권회사나 대기업에 가야 한다는. 처음에 화랑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89년 당시는 화랑이 뭐하는 곳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친구들이 화방과 화랑도 구분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미술경제학을 전공했다고 말한다. 비전공자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은 학연이나 지연에서 자유롭게,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화랑에서 국제부 부장으로 오래 일하면서 해외미술품과 미술관을 깊이 있게 볼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한국 작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한국 근현대미술이 서양 근현대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며 작가나 작품을 깊이 있게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조직 내에서는 미술품 경매팀장이 미술 전공자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분야는 전공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 독창적이고 세련되지만 이슈가 부족

 

국제 미술시장에서 아시아 작가, 그 중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선전과 가능성에 대해 여

러 번 언급하였다. 한국작가들의 어떤 요소가 관심을 끈다고 생각하나.

독창성이 있고 세련됐다. 대신 문제점은 한국 현대미술이란 이런 것이라고 인상지울 수 있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중국 현대미술은 '소셜 시니시즘'(social cynicism)으로 대변된다. 한국미술은,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다양하다보니, '이것'이라고 떠오르는 것이 모호하다. 이슈를 만드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 개개인의 기량은 아주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며, 어필이 된다고 생각한다.

 

서울옥션 창립부터 근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의 두드러진 환경 변화는 어떤 것

이었나.

가장 큰 변화라면, 초창기에는 미술품 경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이제 서울옥션이 무엇인지, 미술품 경매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지도는 확실히 높아진 것 같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미술품을 소장하고 즐기는 인구는 생각보다 상당히 적다. 그래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이 가장 중요할 것 같고, 한국 근현대미술품의 국제화를 위해 해외에 소개하는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시장 인프라와 함께 성장할 때

이학준

 

기업의 성장에도 라이프 사이클이 있을

것이다. 현재 서울옥션은 어떤 단계에 있는가.

성장기, 성장통의 시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옥션은 2007년에 전년의 3배 규모로 성장했다. 물론 작년에 40% 줄었지만, 놀랄만한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여러 인프라들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해 부작용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현명하게 극복해야 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성장통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가장 큰 예가, 박수근 화백 <빨래터> 진위 문제 같은 것이다. 그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 한 가지는 우리나라의 감정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런 인프라가 축적되며 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미술 시장만이 성장일변도에 있었다. 또한 사회적인 인식의 문제가 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고가 미술품을 보는 것에 대한 시각이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후 서울옥션이 나아갈 방향으로 감정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는 일에 간접적으로라도 지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의 자료, 사진을 수록하고 작품의 역사를 기록한 출판물)를 만드는 것 같은 일말이다. 해외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우리의 경우 장욱진 선생 외에는 박수근 화백의 카탈로그 레조네도 없지 않나. 카탈로그 레조네 같은 것들이 만들어져서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유통환경이 될 수 있게끔, 서울옥션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기관이나 유족이 하겠다고 하면 지원할 용의가 있다.

 

언급한 예처럼, 옥션 비즈니스와 같이 첨예한 관심과 사건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지않

을 것이다. 위기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옥션의 산업규모나 서울옥션의 매출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일련의 이슈가 그것의 반증이라고 느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매스미디어에 대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 세 번째로 직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의 진행과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직원들이 최소한 집에 가서 좋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웃음) 개방되고 일관된 자세로 직원과 매스미디어를 대하고, 가장 중요한 고객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게끔 하고 있다.



국내 컬렉터, 규모는 작지만 컬렉션은 뛰어나

 

미술시장의 소비자, 즉 컬렉터에 대해 묻고 싶다. 국내 컬렉터와 해외 혹은 아시아 시

장의 컬렉터는 양적, 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국내 컬렉터의 규모를 잠깐 말하겠다. 2008년 연말 기준, 1억 원 이상 고액연봉자가 10만, KIAF(한국국제아트페어)를 보러오는 사람이 6만여 명이다. 이처럼 소장하지 않고, 보고 즐기는 간접 경험을 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소장하는 인구가 적다.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소장하는 인구가 늘어나야 작가들이 보상을 받고 창작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래서 그 저변을 넓히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 시스템은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가장 잘 갖추어져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시스템은 화랑, 경매, 컬렉터 이 세 가지가 잘 구축되어있다. 한국 컬렉터의 수준은, 특히 현대미술에 관해서는, 세계적으로 알아줄 만큼 지적 수준과 컬렉션 수준이 높다.

 

미술과 미술품 구매에 대한 전반적인 수준과 관심은 높아졌는데 실제로 미술품 소비

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사야하는지, 경매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모두가 알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욕구도 있고 생활의 여유가 있어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 10만 명에게 백만 원짜리 작품 하나씩만 팔아도 천 억 시장이 된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산업은행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면, 전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들을 위해 투어도 하고, 미술품을 소장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적극적으로 알려주자고 방향을 잡았다.

 

유통구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 외에 소비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는 방안

이 있다면?

젊은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좀 더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되어야한다. 그것을 경험하고 그 사람들이 고가의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대신 고가의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더 비싸게 거래되어도 상관없고,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옥션이 성공하려면? 좋은 작품을 제대로 된 가격으로

 

옥션의 성공기준은 비교적 명료할 수 있다. 최대한 고가의 작품을 확보하고, 낙찰률

을 높이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 그럼에도 옥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성공요소는 무엇인가.

좋은 작품을 제대로 된 가격으로, 즉 비싸게 받아야 할 작품은 비싸게, 저렴한 작품은 저렴하게, 작품의 가치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좋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옥션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후학들이 많다. 옥션 업무의 매력과 어려운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더불어 필요한 자질은?

매력과 어려운 점이 같다. '예술을 돈으로 환산해야 하는 것' 자체가 매력이자 어려운 점이다. 내가 처음 일할 때만 해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적었는데 최근에는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한다. 소더비 스쿨, 크리스티 스쿨 등에서 전문 과정을 밟은 사람도 많아 미술계와 시장의 장래가 밝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술품 경매팀에 들어와서 빠른 시간 안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미술사적 배경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선은 미술품 자체를 보는 것을 좋아해야하고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호기심이 기본을 제공해주면, 인하우스(in-house) 감정위원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배워가면서 일할 수 있다.

(주)서울옥션 이학준 대표이사는? 화랑과 경매회사에서 20여 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은 미술시장 전문가이다. 고대 경제학과를 나와 1989년부터 (주)가나아트갤러리에 국제부장으로 근무하며 해외미술의 국내 소개 및 한국미술의 해외 프로모션을 담당했다. 1999년 9월, (주)서울경매(현(주)서울옥션)에 창립멤버로 합류한 이래, 2006년 전무이사를 거쳐 2008년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주)서울옥션의 대표이사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홍콩법인을 설립하여 글로벌 경매회사로서의 가능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양지연  

필자소개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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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
  • 2009-03-20 오후 5:45:06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지식은 초보적인 저 같은 사람에게 특히나 좋은 인터뷰기사인 듯 싶습니다. 좋은 기사들 늘 잘 보고 있습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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