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술경영인에게 영감을 주는 책 ③ 『창조성과 고통』외 2편

남을 위한 삶에 익숙해진 당신을 위해

김서령_문화역서울 284 예술기획팀 공연감독

『창조성과 고통』필립 샌드블롬 저, 박승숙 역(아트북스, 2003년)

▲ 『창조성과 고통』필립 샌드블롬 저, 박승숙 역(아트북스, 2003년)

『창조성과 고통』: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병자다”

예술가들과 동반 관계에 있는 예술경영인들에게는 그들의 예술 세계를, 삶에 대한 태도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때로는 일반인들과 사뭇 다른 사고와 정서, 대화 방식을 가진 예술가들과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상황들조차 위대한 예술의 이름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1982년 초판이 나오고 1997년까지 무려 열 번의 개정판을 낸 이 책의 저자 필립 샌드블롬은 외과 의학 교수로 영국 왕립 의과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의학자이다.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의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질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예술가들의 질환과 그 고통을 쫓아가며 창작 작업과의 연관성을 탐구했다.

몬드리안, 프리다 칼로, 세잔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고 탄생한 명작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면서 색다른 관점의 예술사가 완성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질환이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창조성에 광범위하게 미치는 영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 인상적인 몇 구절을 옮겨본다.

“분명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는 아무것도 평범한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범상한 인간들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처럼 그들은 순진한 눈으로 모든 것을 마치 처음 보는 듯이 바라본다. 예술가들의 고유한 경험과 독창적인 관찰이 미래에 쓰이기 위해 마음속 깊이 저장되어 성숙한다.” “예술가에게는 동료와 소통하려는 충동이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신선하고도 개인적인 표현 수단과 창조물들을 감상하고 그들의 가장 깊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려는 그들의 지독한 필요’를 알아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이러한 충동은 처참한 출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정신 질환 때문에 자신의 방에 갇혀 있어야 했던 스웨덴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 가운데 한명인 힐은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자신의 그림들을 던지기도 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개척자임에 틀림없다. 애호가도 추종자도 없이 새 길을 감히 개척하려고 한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을 알고 완전히 기죽어 창작을 포기하는 예술가들도 있을 것이고, 세잔처럼 정신적으로 좀 더 강한 예술가들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외로운 행로를 계속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이 말을 걸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생명을 불어 넣는다

『건축이 말을 걸다-오래된 건물에 귀 기울이기』데이비드 리틀필드·사스키아 루이스 저, 온영태·신춘규·이준석 역(대가북스, 2013년)

▲ 『건축이 말을 걸다-오래된 건물에 귀 기울이기』데이비드 리틀필드·사스키아 루이스 저, 온영태·신춘규·이준석 역(대가북스, 2013년)

시공간을 공유하고 조정한다는 점에서 공연과 건축은 유사한 점이 많은 예술 장르이다.

일반적인 극장보다는 색다른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사람과 예술이 조화롭게 만남을 이루어 시공간을 변화시키는 창작 작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차에 운명처럼 만나게 된 구 서울역-문화역서울 284에서의 작업은 공간과 사람, 그리고 예술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잠시 접고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도 이 공간이 나에게 던지는 이야기들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고, 그 이야기에 답하고 싶었고, 그것을 예술가들과, 또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겁이 많아 어두운 밤에는 주택가 골목길도 혼자 걸어가질 못하는 내가 남들은 무섭다고, 음산하다고, 기가 세다고 하는 이 건물에서는 겁도 없이 혼자 다니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일이 안 풀릴 때는 공간을 조용히 산책하며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내곤 한다. 가끔은 조용히 공간에 머물면서 벽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거나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건축이 말을 걸다-오래된 건물에 귀 기울이기』데이비드 리틀필드·사스키아 루이스 저, 온영태·신춘규·이준석 역(대가북스, 2013년)

▲ 2013 서울역문화공작소-금민정 ‘Abstract Breathing’(사진제공: 필자)

2013 서울역문화공작소-금민정 ‘Abstract Breathing’

 

수많은 사연들을, 삶의 이야기를 닮고 있는 이 낡은 공간에 사람의 온기로 새 생명을 불어 넣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술가들과 만나 새로운 작품들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오래된 공간이야말로 생명력 넘치는 공연예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고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가능한 백지 같은 공간이기에 이곳의 가치를 읽어내는 예술가들과의 창작 작업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새로운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나의 고민과 생각들을 마치 스캔해 낸 듯 써 내려간 책이 바로 『건축이 말을 걸다-오래된 건물에 귀 기울이기』이다. 이 책에서는 오래된 건축물의 쉽게 보이지 않는 곳들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이러한 구조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저자는 “모든 건축물은 상상력의 산물이며, 어느 정도는 심리적 실체이며, 나아가서는 심리적 투영물이다. 모든 건축물은 우리의 자아, 사회, 지위, 유산, 가치 등의 개념을 붙잡고 있는 골격, 즉 이념의 표현이다. 그리고 건축 본연의 가치는 사람들의 삶을 충실히 담아내는 데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알랭 드 보통이 머리말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건축적인 시각에서 건축물의 외향이나 시각적, 기술적인 것에서 벗어나 건축물이 발현하는 가치 쪽으로 논의의 초점을 바꿔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축 작품의 외관에 대한 논의를 인간 그리고 사상 및 정치적 의제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오래된 건물은 자신의 몸에 남겨진 여러 흔적이나 상처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나의 [빈칸] 책』: 나를 다시 찾는 묘한 시간

『나의 [빈칸] 책』이명석, 박사 저(홍시, 2014)

▲ 『나의 [빈칸] 책』이명석, 박사 저(홍시, 2014)

예술가, 창작자, 스태프, 관객 등 타자와의 관계성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나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갖게 해 준 책이 바로 이 『나의 [빈칸] 책』이다. 지난해 문화역서울284의 첫 기획 프로그램 〈여가의 새발견〉을 기획하면서 만나게 된 이명석 박사님의 공동 저서인 이 책은 2006년에 초판되어 2014년 11쇄까지 인쇄된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서 한 방 맞은 듯 그동안 나는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술적 고민, 개인사까지 궁금해 하면서도 내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저 뒤편에 미뤄놓고 지내고 있었다.

책인지 게임인지 모를 이 책은 내 기억의 창고에 있던 나만의 기억들을 꺼내 하나씩 빈칸을 채우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묘한 구성의 책이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외면하고 내버려 두었던 ‘나’를 다시 찾아다 제자리에 둘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술 생산자와 예술 소비자, 그들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휴일도, 개인 시간도 반납하고 고민하고 일에 매진해야 하는 우리는 남을 위한 삶이 익숙해져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자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8월 15일 금요일의 광복절이다. 분명 법적으로 쉬라고 공표한 빨간 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과 공간을 오가며 휴일을 보내다가 잠시 『나의 빈칸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본다.

오늘 당첨된 나의 빈칸 채우기 페이지는
‘나의 [세계 여행]’이었다.
떠날 수 없음에 절망하지 않고 잠시 마음을 비운 채 책 속으로 나만의 세계 여행을 떠나본다.

 
 
필자사진_김서령 필자소개
김서령은 1999년부터 공연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로 무용, 연극, 축제, 예술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 및 제작을 진행해 왔다. 2013년부터는 문화역서울 284 예술기획팀 공연 감독으로 재직하며 새로운 공간과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업,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인 역할과 기능에 대한 탐험과 실험을 진행 중에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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