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비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양육’”

양지연 _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

 


[CEO에게듣다]는 문화예술분야의 CEO를 만나 예술경영의 철학과 방향을 듣는 기획이다. 최고경영자들의 경험과 비전이 현장실무자와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주


 

노소영

[weekly@예술경영] 창간호의 첫 CEO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먼저 아트센터 나비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할까 한다.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도, 새로운 세기의 전환기에서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 출발하였다. 그 동안 아트센터 나비가 걸어 온 길과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 달라.

 

2-3년 간의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올해로 한 10년 되었다. 나비가 출범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1995년경에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급격히 확산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당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가족, 교육, 사람, 그야말로 모든 것을 디지털 미디어가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사실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지금도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비가 시작할 당시에는 인터넷과 미디어가 자가발전하며 붐이 일어날 때였고 새로운 산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그것이 예술분야까지 퍼져서 미디어 기술이 기존의 예술과 만나서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전세계적으로 팽배했다. 일본의 NTT나 독일의 ZKM과 같은 뉴미디어 아트센터들이 선진국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비가 출발했을 때는 어떻게 새로운 예술이 나올 수 있으며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바뀌고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약 10년 동안 우리는 그러한 실험을 한 셈이다. 지금은 카이스트나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본격적으로 과학기술과 예술의 접목, 통섭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한국에서 그런 생각 자체가 생소했다. 특히 미술계의 주목을 거의 못 받았다. '관장이 공대를 다녀서 그런가보다' 정도로만 여겨지고(웃음) 별로 이해를 얻지 못했다.

세계적인 트렌드로 볼 때 우리의 경우 10~15년 뒤늦은 것인데, 인터넷 미디어의 양상은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 선진국에서는 이제 과학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명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사실 지금이 나비로서는 전환점이다. 그동안이 기술과 예술의 통합, 통섭, 새로운 예술이 뭔가 보자 하는 실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제 방향을 전환해가려고 한다.

그것이 앞으로 아트센터 나비가 추구하는 방향이 될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달라.

앞으로는 기술 의존적이거나 기술 편향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서구 담론에서도 벗어나려고 한다. 우리가 서구 이론의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우리 것을 그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가 예술 쪽에 입문한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담론들을 접하다보니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양은 세상을 인식하는 양태가 서양과 다르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된다. 말하자면 다른 족보에서 시작된 것인데 서구의 것을 그대로 수입하여 보편적인 진리인양 접목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을 넘어서 좋지 않은 것 같다. 우리에게는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것이 있는 사람은 깊이가 있다.

나비의 새로운 방향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 생활, 사고방식, 관계, 소통 등 우리에게 말이 되는 예술, 그런 예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우리 식으로 나가야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이상한글> 전시와 같이 한글을 소재로 하는 프로젝트가 그러한 방향성의 한 예인가?

그렇다.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 '혼을 판다', '정신이 나갔다' 그런 표현이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정신이 팔리고 혼이 나간 상황이다. 우리한테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다. 19~20세기부터 문화적인 콤플렉스가 생겨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문화예술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우리 문화 가치를 재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될 것 같다.

어느 예술단체든지 우리가 사회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 자신을 세워주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통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때 기술은 써도 좋고,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기술은 참 재미있다. 예술에 기술이 들어가면 재미있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얘기가 있을 때 거기에 기술을 가미하면 훨씬 더 재미있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얘기가 없는데 기술을 앞세우면 의미가 없다. 그런 것은 이제 좀 그만하자는 생각이다.

전시전경<커넥티드>(2006) (사진제공:아트센터 나비)

전시전경<커넥티드>(2006) (사진제공:아트센터 나비)

'기술'은 아트센터 나비의 정체성이었는데, 그것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이자 새로운 이야기로 들린다.

기술을 배제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를 중요하게 대변해 주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이다. 그것을 떨치거나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젊은이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는 그것을 넘어서서 이야기할 수 없다. 때문에 기술을 버린다는 얘긴 아니고, 가져가되, '내 얘기와 정신이 먼저다' 라는 생각이다. 기술은 도구다. 예술과 기술이 동등한 입장에서 뭔가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트센터 나비는 미디어아트 전문 문화공간인 동시에, 기업이 지원하는 문화기관의 성격도 갖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아트센터 나비가 추구하는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아직 기업이나 사회를 보고 일하진 않는다. 기업은 고맙게도 스폰서를 해주는 것인데, 10년 동안 나비를 운영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재정적으로 자립도를 굉장히 많이 올렸다는 것이다. SK가 지원금을 주지 않더라도 활동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 자립했다. 그건 무척 중요한 것 같다. 기업이 망하면 나비의 활동도 못하게 되거나 기업에 예술이 예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필요로 하는 작품 활동이나 전시활동을 한다면 기업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독립된 법인으로 재정 상황도 거의 독립했다. 경영면에서 내 목표중 하나가 SK가 지원을 중단해도 나비가 지속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사회에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활동의 연장으로 일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아트센터 나비 자료실 (사진제공:아트센터 나비)

아트센터 나비 자료실 (사진제공:아트센터 나비)

하나의 조직체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문화기관을 운영하는 CEO의 중요한 자질이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10년 동안 시행착오를 굉장히 많이 겪었다. 문화예술을 잘 모르고 시작했고, 경영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경영자의 자질로서 중요한 것은, 일단 확실한 비전이 있어야 하고, 두번째는 그것을 잘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내부의 분위기에 대한 것인데, 우리가 하는 일은 정신적인 것을 생산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거나 기업이 돈을 버는 것과도 다르다. 그래서 조직 문화라고 할까, 내부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우리 직원이 10여명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돈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일종의 헌신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가치에 대한 헌신인데, 그러려면 서로 간에 그 가치를 공유하고 베푸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회사 조직처럼 목표 달성이 있고 전시를 몇 회 하고 몇 명 모으고 그런 것은 아니다. 성숙시키고 키워가는(nurturing)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비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큰 애로점은 어떤 것이었는가.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사람마다 색깔도 다르고 성장하고자 하는 지향점도 다르다. 거의 엄마가 자식들의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각자 잘 성장할 수 있게 끌어주는 것처럼 사람을 개별적인 관점에서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부터가 성숙해야 하는데, 나도 젊은 날 시작하여 좋은 양육자가 되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문화예술 조직 운영에 있어 리더십의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 문화예술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말씀하신 '양육자로서의 CEO'라는 개념은 매우 신선하고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이제까지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다보니 가치를 추구하려면 돈은 포기해야 하고, 그래서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은퇴해서 좋은 일 해야지 하고 생각해 왔다. 최근 아이비리그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돈만 벌고 살고 싶지도 않고, 가치만 추구해서 굶고 싶지도 않고,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으로 성공한 사례도 꽤 있다. 가치도 추구하고 경영도 되는. 그러나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능력(skill)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꿈만 가진 게 아니라 이 업계에서 스스로 능력을 쌓은 후에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설득해야 한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자기가 가진 스킬을 가치 있는 것과 같이 가져가는 것이다. 기본적인 것은 스킬이다. 스킬이 없는 사람이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정부 기금을 타는 방법 말고는 없다.

나비가 지향하는 것은 각자가 실력이 있고 스킬이 있어서 나가서 돈을 벌수도 있지만, 연봉을 좀 줄이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것이다. '양육'이라는 것도 구성원에게 이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공부도 가르쳐야 하고, 훈련도 해야 하고, 실력을 키워주어야 하고, 거기다 인성까지 돌보아야 한다. 시작은 SK의 보호와 지원 하에 시작했지만 사회적 기업처럼 스킬이 있는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같이 해가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예술경영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장님의 생각과 전망을 들려 달라.

젊고 유능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기존의 미술계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경쟁도 심하고,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다. 특히 현대 미술은 서양인들이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가 담론과 흐름, 작품 가격을 끌어가지 못한다. 디지털 미디어와 같은 새로운 분야는 그래도 열려있는 분야고,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또한 미술, 음악 등 모든 장르가 통합되는 분야이다. 공연, 인스톨레이션, 건축, 광고, 출판, 디자인, 조경, 쇼윈도우까지 디지털미디어가 안 들어가는 데가 없다.

창조산업의 새로운 분야에 사람들이 도전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분과적인 지식만으로는 어렵다. 미술을 하더라도 음악도 알아야 하고. 한쪽만 해서는 경쟁력이 없다.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서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정신적 가치와 경영을 결합한'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아트센터 나비를 지향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헌신하면서 양육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관장님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시는 예술 분야의 리더십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솔한 말씀 감사드린다.

 


 

필자 소개
양지연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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