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김철리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불평가그룹 회장’에서 축제 전문 경영인으로

이승엽 _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

시작은 우연이라고 봐도 된다. 하지만 단발적인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 신문사가 인물정보DB를 만들면서 하고 싶은 일 혹은 적성에 맞는 일을 물었을 때 나는 예술감독이라고 썼다. 해외에는 그런 사례가 많으니 한국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국립극단에서 예술감독직을 맡았을 때는 단장과 예술감독의 더블 포스트제를 도입한 때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축제고 공공극단이고 별로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철리


김철리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은 '전문 예술 감독' 1호로 불린다. 연출, 번역, 연기, 극단 운영, 대학 강의 등 공연예술부문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던 그에게 '예술감독'은 현재의 '직업'이다. 2002년 국립극단, 2004년 수원화성국제연극제에 이어 2006년부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거치며 상임 예술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우연히 그리 된 것일까?

"시작은 우연이라고 봐도 된다. 하지만 그 전에도 한국의 축제나 공공극단에 예술감독이라는 역할이 생긴다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바를 안정된 상태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내 극단의 작업이나 연출가로서의 작업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해외에는 그런 사례가 많으니 한국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언젠가 한 신문사가 인물정보 DB를 만들면서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나,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했나 하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예술감독이라고 썼다. 사실 내가 국립극단에서 예술감독직을 맡았을 때가 국립극단이 단장과 예술감독의 더블 포스트제를 도입한 때였는데 당시 국내에서는 축제고 공공극단이고 별로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작은 우연이지만

그가 맡았던 예술감독이라는 직책은 그 단체나 축제의 살림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연출가 로 또 가끔은 배우로 활동한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예술가로 직접 활동하는 것과 축제를 경영하고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행정적인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웃음) 그렇지만 극단을 운영하고 연출을 한 일이나 교육방송 PD로 일한 것들이 모두 도움을 되었다. 연출이라는 것이 규모가 크든 작든 조직을 운영하고 사람을 운영하는 일이다. 방송국 PD 일도 비슷하다. 작품 단위로 일을 하고 팀을 꾸린다. 행정적인 능력도 필요한 일이다."

배우는 어떤가?

"그것이 지금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항상 배우이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배우로서의 대표작을 꼽아달라) 두 편을 써 달라. 임영웅 연출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와 로버트 윌슨 연출의 <바다의 여인> 등이다. 그러고 보니 2000년대에 출연한 딱 두 작품이다.(웃음)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내가 연출하고 싶었던 작품인데 임 선생님이 계획이 있다고 해서 조르고 졸라 출연한 작품이다. <바다의 여인>은 당당히 오디션을 통과하고 캐스팅된 공연이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오랜 정신적인 오디션을 거친 공연이고."

지금은 축제에 전념하고 있다. 섭섭하지 않나?

"섭섭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솔직히 지금 이 일이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것보다 마음 편한 점도 있다. 아무튼 지금은 축제 일이 내게 최우선이다. 내가 원했던 일이고 내게 주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충실하게 의무를 다하고 싶다. 1년에 한 편 정도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하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덜했는데 한해한해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갈증이 더해진다. 일이 익숙해지고 축제가 안정되니까 그런 것 같다."

연출이나 출연은 부담이 크니까 어렵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극작은 가능하지 않을까?

"쓰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일치감치 포기한 일이다. 한 때 우리 연극계에 작∙연출 겸업의 시대가 있었다. 그때 그게 안 되는 사람으로서의 슬픔이 있었다.(웃음) 그렇지만 좋은 작품을 찾아 무대 위에 잘 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마음을 먹었다."


신문은 꼼꼼히, 좋은 책은 스태프와 돌려보기도

김철리
워낙 범위가 넓고 애매한 질문이지만 축제를 경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보는가? 축제경영은 다른 단체경영이나 극장운영과도 다르다.

"축제의 예술감독은 연출가에게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우도 가능하고 기획자도 가능하다.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한 얘기지만 축제는 축제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삶이나 사회에 대한 골치 아프고 진지한 이야기,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지향하는 우리 축제 같은 경우에는 특히 공연예술에 대한 경험과 안목이 필수적이다. 그것도 국내와 해외를 균형 있게 알아야 한다. 안목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축제를 운영하는 것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인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뜻밖이다. 그런 공부를 찾아 하는가?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스태프들도 하라고 권한다. 초반에는 마케팅 공부를 많이 했는데 관심이 점점 확대되더라. 본격적으로 공부하지는 못하고 신문을 꼼꼼히 보거나 관련된 책을 읽는다. 신문은 경제면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본다. 주식과 부동산 정도가 예외다. 해외에 나가 있을 때는 가지고 다니는 노트북으로 뉴스를 보고 귀국하면 종이신문을 찾아 다시 본다. 가족들도 이걸 아니 구문들을 차곡차곡 모아둔다. 좋은 기사나 책을 발견하면 축제 사무국 직원들에게도 알리고 돌려본다. 우리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 소통과 같은 중요한 의제를 확인하기도 한다."

최근에 돌려본 책을 소개해 달라.

"음...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주로 공항에서 책을 산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전에는 예술 쪽 책을 가지고 비행기를 탔는데 요즘은 주로 경영 쪽 책을 공항 서점에서 사서 탄다. 이 책도 공항에서 산 책이다. 조직의 리더라면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은 위임하라고 하는데, 이 책의 중국인 저자는 맡길 때 무엇을 맡길지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중용이라고나 할까. 다 보고 가져와서 돌려보았다. 그러고 보니「이런 팀장이 회사를 살린다」라는 책도 생각이 난다.(웃음)"


세계를 알고 우리를 돌아보고 그리하여 세계와 공생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로 돌아가 보자. 비전이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 축제의 성장을 세 단계로 가정해보자. 첫 번째 단계는 세계를 아는 것이다. 세계 공연예술계가 어떤 수준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다.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 축제나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른 세계와 공생하는 것이다. 동료, 동업자들과 공동으로 작업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다. 나는 우리가 두 번째 단계에 와있다고 본다. 세 번째를 지향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예술축제이고 상설사무국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행정감독제를 도입해서 예술감독의 역할을 줄인 바 있다. 이런 시스템은 국내에서 최초다.

"사실 그것은 이사회가 제안한 것이다. 아비뇽축제 등 세계 유수의 축제들이 이미 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막상 나는 좀 이르다고 생각했다. 축제의 규모나 우리 수준에는 방향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아마 국립극단 예술감독 시절의 단장, 예술감독 체제의 혼란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왕 받아들일 거면 빨리 정착시키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상으로는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그런데 어떤 조직체제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재원 문제로 흔들린 경험이 있다. 요즘은 어떤가?

"2년 전 사건 (예산이 절반으로 줄을 위험에 봉착했던) 때보다 많이 나아졌다. 나는 우리 축제가 작품의 질이나 양적인 측면에서 모두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예산과 대비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명실상부하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재원이 많이 늘어야 한다. 1.5배 내지 2배는 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축제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해외 초청 공연의 폭도 넓어지고 직접 제작에도 나설 수 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저렴한 가격에 좋은 공연을 불러올까 하고 몸부림친다. 앞으로 나가기가 영 어렵다. 돈에 너무 매이지 않고 프로그래밍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데 돈이 너무 많아도 나는 못한다. 100억을 주고 해봐라 하면 나는 못한다.(웃음) 또 하나의 관건은 재원의 안정성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메우고 있지만 장기적인 계획수립에는 안정적인 재원이 필수적이다."


"발품을 들이고 투자해야 한다"

예술경영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로서의 활동 배경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말씀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어떤 분야의 기획을 하려고 하든지 반드시 해당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 직접 경험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면 적어도 많이 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냥 머리 속으로, 책상 위에서만 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할 수도 없다. 막연한 동경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발품을 들이고 투자해야 한다. 왕도란 없다."

좀 다른 얘기인데, 연극계에서 '불평가그룹 회장'으로 불린 적이 있다. 요즘은 사람이 변했다는 말들을 한다.

"내가 직장(교육방송)을 때려치우고 이 판에 들어왔을 때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딸린 가장이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모든 것 다 때려치우고 온 사람들인데 내 눈에는 술이나 먹고 깊은 고민은 별로 않고 대충 자신이 가진 것으로 때우는 것으로 보여 분노가 굉장했다. 자신들의 작업이나 속한 집단에 갇혀 있는 것도 보기 싫었다. 같은 '쟁이'들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내 성격이 좀 그렇다. 서양식으로, 싫은 얘기를 할 때는 칭찬을 먼저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요즘은 좀 변했다. 생활도 안정되고 하는 일도 안정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또 다른 예술감독 또는 경영자로서 욕심나는 데는 없는가?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일이 중요하다. 앞으로 3년 더 남았다. 3년 동안의 계획은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에 해외와의 네트워크를 확실히 해서 다음 사람이 와서 일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 등이다. 그런 한편 일 년에 한 편 정도 작품 활동을 해도 축제 운영에는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 3년 후에는?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의 3년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호기심을 갖고 있다."

>김철리 예술감독- 1953 서울생.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참 후에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전업 연극인으로 전환한 이후에는 주로 연출가로 활동했지만 가끔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01년 서울연극제와 서울무용제를 중심으로 새로 출범한 공연예술축제다. 매년 가을에 40여 편의 국내외 작품을 초청하여 서울 일원에서 개최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다.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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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인
  • 2009-04-03 오후 1:17:47
김철리 감독님 사진이 참 멋있습니다. 전문 포토그래퍼분이 찍으셨나봐요? 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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