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이인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충돌과 문제노출이 나의 몫

양지연 _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교수

항의하러 갔다가 취직한 셈,
미술관 현실 보며 그림 접어

이인범 감독을 떠올릴 때 근대미술, 공예, 미술관 제도의 세 축으로 인식된다. 실천적 영역에서는 초창기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사를 거쳐 현재 치우금속공예관 관장과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개인사의 측면에서 각각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사실 홍익대 미학미술사 대학원 4학기 때까지도 그림을 그렸다.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입상도 한 촉망받는 화가였다.(웃음) 근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시 미술계 현실에서 화가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작업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부터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한국근현대회화사를 내 손으로 정리한 뒤 그 지점에서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미술을 공부하려니 일단 자료도 별로 없고 한국미술을 나름대로 읽어낸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였다. 그래서 대안으로 들여다 본 것이 딜타이(Dilthey)의 예술 해석학이다. 딜타이가 생각하던 역사성의 문제, 삶의 문제에 기초해 한국미술을 방법적으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학위논문을 제출하고 얼마 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1만평 규모로, 전시장 면적 만도 4800평 규모로 세워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처음 출강하던 충북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과천에 덕수궁 시절보다 6배 규모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지만 큐레이터 양성이 문제라는 조선일보 정중헌 기자가 쓴 기사였다. 작은 규모의 미술관 운영으로도 미술계를 어수선하게 했던 미술관으로서 말이 되는가 싶었다.

젊음을 빙자해 서울역 터미널에서 내려 덕수궁미술관으로 찾아갔다. 개관 이전 준비로 한창 바쁜 미술관의 당시 김석진 과장을 붙잡고 한 시간 정도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고 돌아왔는데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관 이전 프로젝트를 도와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항의하러 갔다가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게 된 셈이다.

미술관에 가보니 너무 황당했다. 선배도 전혀 없고 큐레이터라는 말도 생소하기만 하던 시절 일이다. 그게 1986년 6월의 일이다.

개관이 임박했는데 미술관 벽은 마르지도 않아 마티에르가 두터운 김환기, 유영국 선생 작품들이 걸레 같이 축 늘어져 있던 처절한 상황도 목격했다. 참담한 경험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당시에 누군들 미술관이 뭐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았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미술관 일은 나의 소명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화가 꿈은 뒤켠으로 하고. 이 책 저 책 뒤지며 독학으로 뮤지엄 스터디즈를 공부하고 고민했다. 그 뒤 문예진흥원에 처음 배정된 큐레이터 해외연수 예산에 힘입어 일본 사이타마현립근대미술관에서 4개월 동안 연수를 하며, 혼다 마사요시라는 너무나도 훌륭한 은사 밑에서, 나카무라 마코토라는 이제는 평생지기가 된 큐레이터를 만나 도움을 받은 것도 이 때인데, 네 달 동안 전시 세 개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많은 것을 배웠다.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 관한 관심을 뛰어넘어 인류가 고안해낸 명쾌한 제도인 미술관 제도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늘 존경하는 김홍남 관장 같은 외국에서 활동하던 선배를 만나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공예에 대한 관심은 한참 뒤의 일인데, 한국미술의 정체성 논의에 언제나 감초같이 거론되는 야나기 무네요시에 눈길이 가면서이다. 애초에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관심은 문화적 피식민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콤플렉스로 갖고 있는 야나기를 극복하지 않은 채 한국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한국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예론자로 혹은 한국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사람으로 이야기되지만, 정작 내가 도달한 지점은 한국문화예술에서 근대성 문제, 서구 근대 이래의 공예-순수미술이라는 이분법적 구획의 타당성 문제, 그리고 불교미학 등 탈 서구, 탈 근대적 미학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 고마운 분이다. 지금으로선 공예(craft)에 기초하지 않은 현대의, 특히 우리의 파인아트 논의가 조금은 서구의 트렌드에 따라 떠다니는 부유물들 같이 보일 때도 있다. 

치우금속공예관 관장직도 그래서 맡아왔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개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몇 번 발제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 삶의 매트릭스로서의 예술, 공예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에 공감한 서울대 공예과 유리지 교수께서 공예전문미술관을 지으며 관장직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감독을 맡게 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비엔날레는 문화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는 장

미술문화 제반에 대해 항상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제도 비평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이라는 타이틀은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존재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던 ‘비엔날레’에 대해 어떠한 시각과 대안을 갖고 있는가.

비엔날레에 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비엔날레가 무엇인가에 대한 미션 스테이트먼트에 관한 합의가 제대로 안 되어있다. 미션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지럽기만 할 뿐이다. 비엔날레는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나 혹은 일련의 페스티벌과는 크게 다른 것 아닌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그리고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어떤 문화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비엔날레 본연의 이념이자 쓰임새이다. 그에 대한 이해가 없고 미션에 대한 이해가 불분명한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광주비엔날레 이래 한국에 봇물을 이룬 비엔날레들은 국민의 정신을 명석하게 해주고 창의성, 상상력을 경험하는 공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우리의 미래에 비전을 도모하는 장소는 아니다. 소비적인 엔터테인먼트, 그러면서도 혼탁한 탁류가 뒤얽히는 장소가 되어버린 듯하다. 기획자에게 관람객 수는 예민한 문제다. 하지만 비엔날레는 대중의 향락을 위한 방만한 장소는 아니다. 비엔날레를 대중코드로만 얘기들을 하는데, 대중들을 멍들게 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을 안길 철학적 문제나 새로운 삶을 향한 생산적인 대안들이 모색되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나의 임무는 비엔날레를 비엔날레 아닌 문화형식으로부터 분리해 내어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하고 비엔날레라는 문화형식의 고유한 생산성을 입증해내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때 청주시라는 지방정부와 비엔날레 감독 간의 인식의 격차, 공예계와 지방작가 등 여러 이익집단간의 인식의 차이를 조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결국 비엔날레의 지배구조, 즉 감독체(거버닝 바디)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정치적 대표성을 갖는 명백한 권위주체인 청주시장이 있고, 권위주체가 그것을 실행해내기 위해 구성해 놓은 문화재단이 있고, 문화재단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구성한 운영위원회가 있고, 전문성에 기초해 그 실행을 지휘할 감독과 스태프 구조가 있는데, 이 관계설정이 애매모호한 상태에서는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화프로젝트에서 행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형식적 제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정리하는 일은 2009 감독에게 주어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임시적인 감독의 입장이지만 항구적일지도 모를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2009 비엔날레를 성공시키는 방법도 여의치 않다.

전문가로서 나의 임무는 그것이 유용한 문화형식이라면 비엔날레를 성공시키든가, 그것이 소비적이거나 향락적이거나 부패해서 무용한 것이라면 무력화시키든가, 둘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으로 대처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술이 가진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어떻게 매개할 것인가이다"

미술문화 기획, 경영에 있어 이론과 실천, 그리고 교육의 단절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이제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입장에서 이에 대한 고민이나 방안을 듣고 싶다.

이제 예술이 삶과 유리된 신비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예술이 진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삶의 형식이라고 믿는다면, 예술기획이건 경영, 행정이건 바로 '예술'을 그 한가운데 놓을 때에야 비로소 순기능을 하리라 생각한다. 요즘 대학이나 문화예술계의 화두들은 대중과 예술의 소통과 매개, 예술시장의 활성화라는 문제에 몰려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예술, 즉 삶의 진정한 한 형식으로서 예술의 문제는 간과한 채, 초점이 경영, 기획, 행정 같은 관리의 문제로 기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술, 즉 삶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술적이고 도구주의적 차원에서 예술경영이나 그 관리만을 얘기한다면, 우리의 삶 자체를 권력과 돈의 위력 아래에 식민화 시킬 위험성이 너무도 크다. 예술을 신비화 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일은 삶에 대해서 그렇듯, 그 삶의 한 형식으로서 예술에 대해 외경심 없이 결코 가능치 않다. 예술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는 문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매개할 것인가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에 대한 외경심이 없는 사람들이 잔재주를 부린들 무슨 소용인가.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 아닌가. 

올해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이다. 실제로 큰 조직의 책임을 맡고 보면 제3자로서 바라보던 입장과는 다른 시각도 갖게 될 것 같다.

역사 공부도 현실이 안겨주는 답답증 속에 미래의 희망을 모색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있을 때 도대체 어떤 역사를 갖고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뮤지엄마저 실현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현실적인 것이 이상적인 것이고, 이상적인 것이 현실적이다"라는 헤겔의 명제였다. 어찌보면 그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한 이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동안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뮤지엄 제도 연구도 하며 글도 쓰고 제도비판에도 나서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변화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참담한 생각이 든다.

이번에 역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질적인 가치, 다양한 이익집단들을 조화롭게 아우르며 훌륭한 비엔날레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얼마나 소박한 것인지 잘 안다. 다만 나는 지금 상황에서 좀더 모두가 솔직해질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만약 우리의 비엔날레 형식이 문제가 있다면, 혹은 기대할 만한 그 어떤 것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그 문제와 기대 수준을 함께 읽어내어 과제로 삼을 수 있도록 보다 명료하게 구체화 시켜 펼쳐 보여주는 게 감독의 역할 가운데 하나 아닌가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제를 개혁해서 훌륭한 비엔날레 모델을 하나의 사례로서 제출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눈이 어두웠다. 그렇지만 이제 충돌 그 자체를 즐기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들을 노출시켜 문제로서 자각하게 하는 일 역시 감독의 역할 가운데 하나 아닌가 하고 겸허하게 생각한다.


“이 땅에 태어나서 해볼 만한 일이 예술!”

현장의 문제들은 나선형으로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리 미술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국 무한한 애정과 깊이 있는 관찰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한국에서 미술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후학들, 예술경영 분야에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많은 이들에게 예술현장의 문제는 자신의 취업이나 진로, 혹은 단지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한 아이템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걱정과 근심보다는 예술이 우선은 진정한 삶, 진실을 향한 용기와 비전을 갖는 창구가 되었으면 싶다. 물론 그런 윤리적인 태도는 수많은 사례분석과 그에 바탕을 둔 지식과 정보를 두텁게 축적하고 전문성을 갖추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 전문가 사회에서 비전문성은 비윤리성 혹은 죄악이다. 거기에 덧붙여 무엇보다 한번 사는 인생으로서 예술이 자신의 생을 불사를 만한 비전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진실을 향한 용기와 결단, 비전, 꿈.

근본적으로 현실 초극에 문화예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현실의 각박함에 발목 잡혀서 문화예술을 할 때 오는 서글픔은 다른 어느 경우보다 훨씬 더 크다. 문화예술 전문가는 다른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고생할 때 그분들을 대리해서 세상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열기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다. 통 큰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난 예술대학에 들어와서 환경이 열악하고 한국 미술계가 형편이 좋지 않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단 한 번도 그 자체를 후회해본 적은 없다. 이 땅에 태어나서 해볼 만한 일 가운데 하나가 예술인 것 같다.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이 눈앞의 이익이나 효과를 위해 진실을 외면한다든가 현실과 권력에 비겁하게 굴종하거나 거짓을 행사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이들이 버젓이 활개치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어떻게 감당해야할 지 아직도 당황스럽다. 적어도 문화예술계가 끌어안아야 할 핵심 과제는 진실을 다시 우리 모두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 또 다시 '전문성'과 ‘윤리성'이라는 화두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좋은 예술경영자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오늘날 문화상황이 조금은 암담하게 느껴진다. 삶의 자발성, 진정한, 진실한 것에 대한 어떤 경외심이 발동될 여지가 별로 없다. 지금 예술계, 혹은 시장, 예술현장의 혼돈은 잘못된 문제설정과 무관하지 않다. 천박한 전시, 문화행사가 시민들을 싸구려 소비시장으로 내몰며 후기 산업사회의 악취를 풍기고 있는가 하면, 삼류정치와 짝을 이루는 프로젝트들이 우리의 삶을 분칠한다. 다소 버겁더라도 근본적인 가치를 다시 우리 선택의 중심에 놓았으면 싶다. 말단 정치나 자본의 하수로 도구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위기는 다른 말로 하면 기회에 다름 아니다. 좋은 예술경영자란 위기를 호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여 고통스럽더라도 새로운 비전을 열 줄 아는 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이 기사는 5월 14일에 재편집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덧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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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 2009-05-08 오전 10:58:02
저희 비엔날레 공식 블로그에 글 올리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http://blog.okcj.org [Del]
  • 재채기소녀
  • 2009-05-10 오후 6:43:11
개인적으로 이인범교수님의 주관과 해학, 그리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 너무 좋아합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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