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김주호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예술경영 테크노크라트 1호

이승엽 _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

CEO나 기관장에게는 정치적 배경이나 네트워킹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취약하다. 전문적인 경영능력이 내가 비빌 유일한 언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다. 이런 타입도 후배들에게는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보람이라면 보람이고 한계라면 한계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이팔성 대표이사가 금융계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어 있던 자리에 김주호 대표이사가 취임한 것이 지난 2월이다. 전임 대표가 사퇴한 것이 그로부터 9개월여 전이니 꽤 긴 공백 끝이다. 2006년 초에 취임한 정명훈 예술감독이 가져온 '정명훈 효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서울시향으로서는 늦었지만 반가웠을 것이다. 그만큼 새 대표에 거는 기대도 크다. 그를 서울시향 대표이사실에서 만났다.

서울시향을 맡으면서 내세운 목표가 있었을 텐데 소개해 달라.

김주호간단히 말하면 아시아의 일등 오케스트라가 되자는 것이다. 내 임기가 3년이다. 더 큰 꿈도 있지만 임기 중에 달성 가능한 목표로 삼았다. 1등 오케스트라라 할 수 있으려면 질적인 면도 있고 양적인 면도 포함해야 한다. 말하자면 지표가 필요한데 나는 경영자로서 구체적인 지표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연주회수, 단원수, 보직 단원수, 재정 규모 등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지표로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잴 수 있나? 예를 들어 연주회수 같은 지표는 무엇을 말해주나?

우리는 연간 120회 정도 연주를 한다. 이 숫자는 국내의 교향악단으로서는 이미 가장 많은 숫자다. 하루에 두 번 연주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전체 연주회수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도 중요하다. 음악의 질적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주회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교향악단의 청중을 정기연주회에 오는 사람들로 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시향은 서울시로부터 약 80%의 재정지원을 받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커뮤니티 오케스트라의 성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정식 음악홀이 아닌 구 단위의 공연장이나 학교, 교회, 공공시설 등을 찾아가는 아웃 리치 프로그램 등 공공성이 강한 연주를 비중 있게 펼쳐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약 50% 수준인데 60% 수준으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공공성 프로그램 6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단원은 어떤가?

오케스트라는 좋은 단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좋은 예술감독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미 우리는 정명훈이라는 둘도 없는 예술감독을 모셨으니 다음은 단원의 문제다. 좋은 단원을 찾는 데에는 국적도 따지지 않는다. 현재 107명의 단원 중에 약 20% 정도가 10여 개국에서 온 외국 국적의 연주자다. 좋은 단원을 확보하는 것은 급여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환경도 중요하고 오케스트라 활동과 병행하는 개인적 음악활동의 여건도 변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의 수준이고 명성이다. 이런 것들을 잘 조화시켜서 좋은 단원을 확보한다. (인터뷰한 날 시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는 이 날 이루어지는 오디션의 안내문이 한글과 영어로 붙어 있었다) 좋은 연주자는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매년 오디션을 통해 상대평가로 최상과 최하의 5%를 가르게 되어있다. 하위 5%는 오디션을 통해 탈락한다. 지금은 단원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단계다.
 

김주호

이런 목표를 예술감독 등과 합의한 것인가?

대체로 교감하고 있다. 정명훈 감독은 신중한 분이다. 그는 아직 시향이 더 많은 변화를 감내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사실 지난 3년간 서울시향은 그에게 큰 빚을 졌다. 그가 일년 중 3분의1 정도의 시간을 서울시향에 할애하는데 마음 씀씀이는 그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시향에 대한 그의 애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다고 느꼈다. 그의 음악적 생애의 정점이 그가 목표하고 있는 시향의 완성도 높은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서울시향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커 가는 데 필요한 안정적 기반을 원한다. 좋은 단원과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연장선에서 우리는 차세대 지휘자를 키우는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적 리더를 키우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다.

2000년대 초 당시 서울시향이 세종문화회관의 전속단체였을 때 외부 전문컨설팅사가 서울시향의 국내 랭킹을 3위로 분석해서 논란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서울시향은 이 논란을 불식했다고 보는가?

그렇다. 국내만 보면 1등이다. 당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에서도 NHK교향악단 정도가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더 고무적인 것은 우리는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는 사람이 자산,
내부고객인 단원들과의 소통 중요

오케스트라의 CEO로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가?

있다. '소통'이다. 오케스트라는 오페라단이나 극단처럼 레퍼토리가 자산인 예술단체와는 다르다. 사람이 자산인 것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는 공통의 언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심지어는 서로 지향하는 목표가 다를 수도 있다. 여러 수준을 가진 다양한 사람 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경영자로서의 카리스마와 이를 통한 하모니도 중요하지만 나는 수평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일종의 내부고객인 셈인데 외부의 관객이나 후원자, 시민, 언론, 시 등과의 소통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 지금 일이 그 전에 하던 일과는 좀 다르지 않은가?

이 일을 하기 직전에 3년 동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을 맡았었다. 당시는 예술교육이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모두 초창기에 해당될 때여서 주로 공평하고 합리적인 일처리가 화두였다. 정책의 실행창구가 되어 적절한 분배가 관건이었다. 일의 형태도 모듈이 정해져 있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일은 훨씬 쇼 비즈니스적이다. 역량을 창출하고 좋은 예술작품을 생산해내는 흥행사적인 요소도 강하다. 수월성과 접근성으로 설명하면 지금은 수월성을, 이전에는 접근성을 좀 더 강조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테크노크라트 1호, 보람이고 한계

김주호예술경영 CEO으로서의 본인을 스스로 평가해 달라.

어떤 사람이 나를 '예술경영부문의 테크노크라트 1호'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에 참 수긍이 간다. CEO나 기관장에게는 정치적 배경이나 네트워킹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점에서 취약하다. 전문적인 경영능력이 내가 비빌 유일한 언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다. 이런 타입도 후배들에게는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보람이라면 보람이고 한계라면 한계다.

얘기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1990년에 영국으로 예술경영 공부를 떠났다. 동기가 있었나?

예술의전당에 들어간 것이 1987년이다. 해외도 그렇지만 특히 국내에 예술경영이나 예술행정이라는 말이 참 생소하던 시절이다. 게다가 예술의전당은 영국식 모델이다. 일을 하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본고장에 가서 그 정체를 파악하고 싶었다. 일종의 보충학습 차원이다.

당시 유학했던 런던 씨티대학은 어땠나?

필자 이승엽
당시 학교에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모였다. 과의 이름 자체가 팬시했다. 예술행정(Arts Administration)이란 말에 솔깃했던 모양이다. 당시 영국은 대처리즘이라 불리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던 대처가 수상에서 물러나면서 예술정책부문에서도 논쟁이 막 불붙던 시기였다. 대처 이후에도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었기도 하지만 대처가 이끌었던 개혁의 후폭풍 안에 있었던 것이다. 예술정책만을 보면 대처의 정책은 전통적으로 국가와 공공부문이 감당했던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럽형에서 미국형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그 과정에 예술단체가 도산하고 재무제표를 읽지 못하는 단체장들의 역량이 의심을 받았다. 경영을 아는 사람들이 예술단체에 영입되었다.

학교 커리큘럼은 어땠나?

나는 예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보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커리큘럼이 복식부기, 법률, 회계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예술기관의 CEO에게 필요한 것이 그런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예술경영 대학원의 커리큘럼은 생각해볼 점이 있다. 미국식과 유럽식이 절충된 우리 시스템에서는 어느 한 쪽을 따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예술경영, 예술과 예술가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지금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있거나 예술경영 일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원을 뽑기 위해 많은 면접을 보았다. 1천명 쯤 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공통된 점이 있었다. 예술에 대한 애정은 충분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애정의 태도가 예술경영자나 예술행정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누구나 예술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객관화하기는 어렵다. 하려고 하는 일은 숭모하던 예술과 예술가를 만나 사적인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예술과 예술가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 김주호 대표이사는? 1960년생. 고려대 노문과와 언어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1987년 예술의전당에 입사해서 중간에 런던 씨티대학에서 예술행정석사를 마친 것을 포함해 만 10년 동안 일했다. 1997년 LG아트센터로 옮겨 운영국장으로 일하다가 메타기획컨설팅을 거쳐 2005년부터 3년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을 지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945년 설립한 고려교향악단을 뿌리로 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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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희
  • 2009-06-04 오후 9:15:14
엘지 개관 초기부터 어셔로 일하며 뵈었던 분을 이렇게 뵐수있어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예술경영인을 지망하는 학생으로 열심히 그자리에서 일하시는 모습에 박수치고 싶습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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