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텔링마케팅-세라자데의 시대가 왔다 ①

살고 싶으면 이야기하라

정영선 _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연재순서:  ①살고 싶으면 이야기하라

이른 아침, 그녀가 길다란 비단 옷자락을 끌며 왕궁 복도에 나타났을 때, 시녀들은 들고 있던 물병을 떨어뜨렸다. 대신들은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수문장은 자기 창끝에 발등이 찍혔다. 그녀의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페르시아 왕궁에서 그 정도의 미모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흔하다. 더욱이 요즘은 매일 한 명씩 보아오던 터다. 비록 목이 잘린 상태였지만.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후 샤푸리 아르 왕은 분노와 증오심에 사로잡혔다. 매일 밤 여자를 갈아치우며 욕정을 채웠고, 새벽에는 처형해 버렸다. 여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공포에 떨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애교를 부렸다. 뛰어난 방중술로 승부수를 던진 여자도 있었다. 그러나 예외 없이 아침에는 모두 목이 잘린 시체로 실려 나왔다.

 

참조 이미지 - 세헤라자데 일러스트



이야기로 목숨을 구하다

그런 와중에 귀족의 딸 '세라자데'가 제 발로 왕을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혹은 그녀의 아버지가 출세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었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에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법의 동굴을 아시나요? 도적들이 보물을 잔뜩 숨겨둔 곳이랍니다. 주문을 외야만 그 동굴의 바위 문을 열 수 있어요. 자, 주문이 뭘까요?" 왕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음 착한 청년 알리바바가 마법의 동굴을 여는 주문을 알아내 부자가 된 이야기였다. 욕심쟁이 형 하심이 보물을 훔치다가 주문을 잊어 버려 '열려라 보리' '열려라 들깨' 등을 외치다가 도적에게 죽임을 당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이야기가 끝날 때 쯤, 태양이 떠올랐다. 왕은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세라자데는 왕의 침실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목이 붙은 채 제 발로 걸어 나온 최초의 여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었다. 왕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녀의 처형을 하루 이틀 미루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흘렀다. 왕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변해 가기 시작했다.

온갖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모험을 떠난 신밧드를 생각했다. 질투심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친 자기가 얼마나 옹졸하고 잔인한 인간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도둑 두목을 죽인 알리바바의 여종은 또 어떠한가?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것이 인간이다. 그것은 남녀의 구분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왕비와 신하들에게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해 주었을까?'

이윽고 세라자데와 천 번째 밤을 보내던 날, 왕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많은 동화가 그러하듯이, 세라자데는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샤푸리 아르 왕은 성군이 되었다. 흐뭇한 해피엔딩이다.


'세라자데 마케팅'

참조 이미지 - 세헤라자데 일러스트
어느 업종이건 서비스 교육의 핵심은 하나다. '고객 만족!', 혹은 '고객은 무조건 옳다!' 그러나 어느 업종 종사자건 실상 속마음은 이렇다. '고객은 정말 변덕스럽다.'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소비자는 분명 왕이다. 불행히도 샤푸리 아르처럼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옹졸하고 유치하면서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다. 그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은 (더 분명히는 마케터들은)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품질을 향상시키고(방중술), 화려한 이벤트와 광고를 동원하고(춤, 노래), 자신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얼마나 고객을 위해 헌신하는지를 알린다(눈물).

하지만 소비자들은 냉정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써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린다. 디자이너들과 마케터들이 과로에 시달리면서 정성껏 만든 제품이 목 잘린 미녀들의 시체처럼 허무하게 버려지고 파묻힌다. 진짜 왕이라면 암살이라도 시도해 보겠지만, '소비자'라는 왕은 암살도 못한다.(수요자 없이 공급자가 존재하겠는가?) 방법은 하나다. '변덕스런 왕을 감동시키고 나(기업, 제품)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제품과 광고 홍수 속에서 사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왕은, 마케터들의 웬만한 자극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대부분의 제품이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추고 있으니 '품질경쟁력'이라는 말도 힘을 잃어 가고 있다. (품질에 감동하던 순진하고 너그러운 선왕이 그립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 남은 카드가 우리에게 쥐어졌다. 스토리텔링 마케팅, 즉 '세라자데 마케팅'이다. 자고로 마케팅은 매혹적이고 도발적이어야 하는 법. '세라자데', 이보다 더 도발적인 마케팅이 있을 수 있을까?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만약 세라자데가 왕의 침실에 들어가 그래프와 숫자로 도배가 된 양피지 자료를 펼쳐놓고 나라 정세와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하! 전하의 잔인한 성품에 반감을 느낀 백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67%라는 통계자료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정확한 데이터이고 정보들이니 신뢰하셔야 합니다." 아마 마지막 문장을 다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는 허공에 매달렸을 것이다. 물론 세라자데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품을 만든 사람은 제품의 성분과 함량에 민감하지만 정작 그것을 쓰는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소비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추억'과 '사랑'속에 살고, 그 감정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에 자주 사다 주시던 과자의 이름, 초등학교 입학할 때 처음 선물 받은 가방의 상표, 친구들끼리 놀러갔던 놀이동산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 기억들 속에는 모두 '이야기'가 들어 있다.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큼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그것을 건드리는 순간 소비자는 변덕스런 '왕'에서 따뜻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세라자데는 왕의 마음을 헤아렸고, 그 마음을 울릴 이야기를 들려 준 끝에 그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창의력과 이야기 콘텐츠만으로 이룩한 성공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핵심이다.


살고 싶으면 '이야기'하라

오늘도 수많은 상품들이 변덕스럽고 인정 없는 왕의 침실로 걸어들어 간다. 과연 목이 달린 채 살아나올까? 왕의 마음에 선명한 러브마크를 새기고 왕비가 될 수 있는 상품이 몇 개나 될까? 치열한 마케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세라자데를 초빙하고자 한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상품에 적용해야 할지, 변덕스런 소비자를 어떻게 감동시킬 수 있는지를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비단옷 스치는 소리를 내며 걸어온 세라자데가 고혹적으로 웃으며 속삭인다. "살고 싶으면 이야기하라."고. 이제 '세라자데 마케팅'의 시대가 시작된다.




정영선  

필자소개
정영선은 ';살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세라자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토리텔러. 어릴 때는 구연동화로, 커서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작가로서 이야기 장사를 해 왔다. 현재 Storytelling Agency '(주)브랜드스토리'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기업과 도시 브랜드, 관광상품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덧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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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 2009-07-08 오전 9:26:05
새로운 코너네요 ^^ 다음이야기가 기대됩니다.[Del]
  • 정영선
  • 2009-07-23 오전 12:05:56
독자님/ 처음 달아 주신 댓글에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고맙습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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