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춘천마임축제 ‘돌발상황’

그래도 준비된 시스템이 대책!

김소연 편집장

축제의 '돌발상황'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축제의 활력과 역동성의 발화점이기도 하다. 물론 돌발상항이 긍정적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이에 대처하는 축제 스탭들의 매끄러운 진행은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해도 '돌발상황'은 항상, 말 뜻 그대로, '뜻밖에' '갑자기' 일어난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축제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치 전쟁터의 무용담을 듣는 것 같다. 축제를 만드는 일은 프로그래밍, 홍보, 마케팅, 공연진행과 같은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천, 사고, 민원 등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상황들로 축제 스탭들은 축제 내내 초긴장 상태를 보내야 한다. 예보가 있건 없건 '비'는 항상 축제 스탭들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그나마 날씨는 그래도 가능한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준비라도 할 수 있다. 급작스러운 돌풍에 홍보 게시물이 도시의 허공을 떠도는 사고가 벌어지는가 하면 밤샘 난장이 벌어지는 공연장 바로 옆에서 상을 치루는 주민의 민원이 날아들기도 한다. 그 뿐인가. 외국 초청팀이 자국의 급박한 사정으로 입국이 불가능해지는 상황도 있다.



항상 준비된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돌발상황'

특히나 야외공연예술축제에서 이러한 돌발상황은 시시때때로 벌어진다. 많은 공연들이 도로, 거리, 건물의 앞마당, 숲, 공원 등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다보니 일상과 축제가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크고 작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그러한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준비된 프로그래밍을 뛰어넘어 축제의 활기를 만들고 일탈의 해방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연자와 관객들이 쏟아지는 비를 모두 맞으면서 치러진 공연이 더 강렬한 감동으로 남기도 하고, 민원으로 만난 지역 주민이 축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또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축제의 '돌발상황'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축제의 활력과 역동성의 발화점이기도 하다. 물론 돌발상황이 긍정적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이에 대처하는 축제 스탭들의 매끄러운 진행은 필수요소이다. 때문에 축제마다 여러 다양한 상황에 대한 경우의 수를 놓고 예행연습까지 거치며 준비한다. 그러나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해도 '돌발상황'은 항상, 말 뜻 그대로, 준비된 시나리오를 벗어나 돌발(突發), '뜻밖에' '갑자기' 일어난다.

항상 벌어지는 이런 저런 예기치 않은 상황만으로도 초긴장으로 축제를 치르게 마련인 것을 생각하면, 2009춘천마임축제는 '천재지변' 속에서 축제를 치렀다 할 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2009춘천마임축제는 5월 24일부터 31일까지 8일간의 축제 기간 중 6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과 그대로 겹쳐있었다. 국민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2009춘천마임축제는 그간 축제가 진행되던 고슴도치섬을 떠나 춘천 시내 공지천과 어린이회관 일대로 장소를 옮기면서 새로운 장소에서의 진행을 놓고 여러 가지 준비가 분주했었다. 그런데 축제 개막일 전날 서거 소식이 전해졌고, 개막식을 치른 다음날 국민장 기간의 모든 야외공연과 영결식이 있던 금요일 밤에 열릴 예정이었던, 축제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미친금요일'을 취소한다는 기자회견을 갖게 된다. 2009춘천마임축제는 축제의 돌발상황에 대한 여러 경우의 수를 보여준다.


매뉴얼보다 중요한 것은 판단,
사회적 이슈에 열려있는 '축제성'이란 무엇인가

축제에서 시시때때로 만나는 우천과 같은 돌발상황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판단'이다. 지금 공연을 접을 것인가 아니면 지속할 것인가. 판단이 내려지고 나면 각각의 상황에 대한 대처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을 하면 된다. 즉 실행은 어느 정도 준비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맞닥뜨린 그 순간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가는 매뉴얼로 준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의 우천의 경우에도 강우량만이 아니라 공연의 형식이나 내용에 따라, 제반 시스템의 상황에 따라, 공연 당시의 분위기에 따라 최선의 판단은 달라진다. 이 때문에 돌발상황의 대처는 항상 준비를 넘어서 벌어지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이다.

추모퍼포먼스국민장 기간 야외공연 전면 취소라는 결정이 있기까지 공식적인 절차는 기자회견 직전 열렸던 이사회였지만, 서거 소식이 전해진 후 결정이 발표되기까지 꼬박 이틀간 예술감독을 비롯한 축제사무국과 (사)춘천마임축제 이사진들은 이 '비상한 시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해왔다. 계속 변화하는 상황, 상황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검토하면서 최종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춘천마임축제의 '축제성'이다.

물론 그동안 춘천마임축제는 미친금요일, 도깨비난장 등의 '난장' 프로그램이라든가, 수신과 물신의 싸움, 우주에서 떨어진 도깨비들의 우다마리 전설, 공지어 전설 등 신화만들기를 통해 개별 공연작품들의 프로그래밍을 넘어 일상의 시공간이 틀어지고 변형되는 '축제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축제가 지향하는 '축제성'은 비단 이와 같은 일상의 삶으로부터의 벗어남만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 대한 개방성에 있기도 하다. 이번 상황에서처럼 사회적 이슈가 뜨겁게 부각되는 시기에 축제는 이에 대한 열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개막식에서의 추모퍼포먼스라든가, 본래 미친금요일에서 난장 프로그램으로 공연될 예정이었던 이해경 만신의 굿이 영결식 바로 다음날 열린 도깨비난장으로 옮겨져 추모와 통합의 해원굿으로 펼쳐지는 등 공연과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흐름과 축제를 통합하고자 하는 한편 국민장 기간 동안 야외공연을 모두 취소함으로써 '추모'라는 사회적 이슈에 동참하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이 최선의 판단인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이번 결정이 '축제성 야외공연 중단'이라고 전해지면서 '축제성'을 삶과 유리된 놀이로 이해한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축제성'을 고민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말이다. 상황과 판단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이 좀더 폭넓고 진지하게 이루어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축제성'에 대한 논의는 물론, '천재지변'이라 할 급박한 상황에서 (과정까지를 아우르는) 최선 판단은 무엇인가는 함께 고민해 볼 문제다.


공연자 협의 "계약서 관련 조항이 ... "

공연취소를 알리는 거리현수막
축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미 개막식을 치르고 난 후 행사를 대폭 축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공연 취소에 따라 공연자들과의 협의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 공연스케줄을 다시 재조정해야 하고 공연장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또 변경된 사항을 짧은 시간 내에 관객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러한 진행상의 추가 업무는 물론 행사의 대폭적인 축소는 티켓 및 기념품 판매 등 수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축제 평가에서 공연편수나 관람객 수와 같은 객관적 지표의 감소는 쉽게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러한 결정과 판단에 대한 또 다른 의견과 관점까지를 설득해야 한다. 물론 축제를 그대로 진행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결정과 판단이고 그에 따른 설득의 과정은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한 결정이었고, 그것이 최선의 결정인가는 결정에 따른 제반 사항들에 대한 대처를 통해 판단되는 것이기도 하다.

공연자들과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그러나 공연 취소에 따른 후속 조처들은 필요하다. 이번에 후속 조처를 진행하면서 축제 사무국에서도 새삼 깨달은 것이 계약서의 중요성이었다. 협의과정에서 공연자들은 대부분 계약서의 관련 조항을 먼저 찾았다. 그러나 공연계약서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 결정의 근거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이번에 발견한 것이지만 공연취소와 관련한 내용이 공연자에 의한 공연취소에 대한 것으로 이번 경우처럼 축제측이 공연을 취소하는 경우에 대한 내용이 부실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축제 측에 대한 공연 취소를 포함해 계약서를 합리화할 예정이다.

결국 구체적인 협의는 축제사무국이 별도로 마련한 공연행정처리안을 놓고 이루어졌다. 행정처리 1안은 최대한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2안과 3안은 공연료가 이미 입금된 경우와 아닌 경우로 나누고 다시 각각에서 경우의 수를 나누었다.
 

 

분류

내용

1

주말 공연 진행이 가능하고 이에 동의하면, 주말 공연으로 진행한다.

2

이미 입금이 된 공연팀은 공연의 재공연 여부와 상관없이 진행한다.

3
(그외)

춘천에 도착하지 않은 경우 공연료는 50% 지급
춘천 도착했으나 공연을 하지 않은 경우 70% 지급
춘천 도착했고 공연을 시작한 경우 100% 지급



돌발상황이 만들어낸 예기치 않은 결과

공연 취소가 결정되면서 사무국은 축제 참가 공연자들을 위한 워크숍을 기획했다. 이미 축제가 개막한 후에 공연취소가 결정되면서 축제 참가를 위해 춘천에 도착한 공연팀들을 위해 행정적 협의와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관객과 만나는 공연만이 아니라 예술가들과의 교류도 축제의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워크숍을 새롭게 기획하면서 본래 예정되었던 워크숍과는 진행방식을 달리했다. 예술가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론을 '전달'하는 것이 기존 워크숍 방식이었다면 이번 축제에서는 워크숍 내용부터 예술가들의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진행방식도 일방적으로 다른 이를 '대상'으로 놓고 자신의 방법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받은 방식이었다. 비록 소규모로 진행된 워크숍이지만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변경된 공연스케줄을 정리하는 와중에 급하게 기획된 프로그램이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러한 내용의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제가 아닌 별도의 시기에 진행할 예정이었고 구체적 내용은 다르지만, '예술가들이 서로의 방법론을 피드백 하는 워크숍'이라는 컨셉으로 기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축제사무국으로서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이처럼 준비된 시스템은, 그것이 급작스럽게 펼쳐지는 돌발상황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 대처하는 가장 적극적인 대책이다. 축제기간에 공연이 이루어지 못했던 작품들 중 몇몇은 축제가 끝난 후 '춘천마임축제 다시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올렸다. '춘천마임축제 다시보기'는 축제 후속프로그램으로 매년 진행해오고 있었기에 이러한 기획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비단 공연자들과의 협의나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과의 약속과도 연관된다. 공연을 기다려온 관객들의 양해가 필요한 것이다. 마임의집에서 진행되는 '춘천마임축제 다시보기'는 유료공연으로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산토리니에서의 야외공연과 도심 거리공연이 추가되었다.


조직의 소통과 유연성

물론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비단 급작스러운 행사 취소와 프로그램의 재조정만이 아니라 고슴도치섬에서 공지천 주변으로 축제 장소가 변경되면서 발생한 예기치 않은 상황들도 부기지 수다. 그런데 또한 여러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고슴도치섬에서 공지천 등으로 장소를 옮긴 도깨비난장은 올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본래 한 무대에서 밤새 진행되던 것을 붉은달, 푸른달, 화이트존, 블랙존 등 네 개의 구역을 나누고 각각 서로 다른 성격으로 프로그래밍을 했었던 것. 첫 시도에 바짝 긴장해 있던 데다가 평일 야외공연을 비롯해 미친금요일이 취소되었던 공연들이 도깨비난장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공연수가 늘어나면서 각 공간의 성격이 좀 더 분명해지고 그에 따라 각 영역의 성격이 대비되면서 의도했던 결과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그냥 우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돌발상황은 항상 준비된 상황을 벗어나서 벌어지지만 준비된 시스템이 대책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돌발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나 매뉴얼에 앞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은 조직의 원활한 소통과 유연성이다. 모든 것을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축제의 역동성이라면 전개되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최선의 실행을 위해 축제 조직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책이다. 그러고 보니 소통과 유연성은 비단 돌발상황이나 축제운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아닌가. 쉽지 않은 문제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 편집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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