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텔링마케팅-세라자데의 시대가 왔다 ②

스토리텔링은 아우라 만들기

정영선 _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연재순서:  ② 스토리텔링은 아우라 만들기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서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반대로 서먹서먹해질 수도 있다. 일단, 어떤 대상에 정이 들고나면 그 대상에게는 아우라가 드리워진다.



여기 열쇠가 하나 있다. 별로 당신의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이 열쇠, 얼마나 할까? 놀라지 마시라. 1억 5천만 원이다.

참조 이미지 - 열쇠

자, 다시 열쇠를 보라. 이번에는 이 열쇠가 좀 달라 보이지 않는가? 가격을 듣자마자 새삼 이 열쇠가 달라 보이는 게 속물스럽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길!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마케팅 포인트니까 말이다.


열쇠 이야기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Southampton)항. 축포와 함께 오색 리본 다발이 비처럼 유람선 갑판 위로 떨어졌다. 항구에 선 사람들도, 유람선에 탄 사람들도 환호성을 울렸다. 이윽고 웅장한 팡파르 소리에 맞춰 배는 사우샘프턴 항을 떠났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의 첫 출항이었다. 이때 한 남자가 멀어져 가는 타이타닉호를 뿌루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블레어. 원래는 타이타닉호의 이등항해사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출항 전날, 갑자기 선원 명단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그는 바다를 향해 '퉤' 침을 뱉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닷새 후, 데이비드 블레어는 사우샘프턴 항구의 한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신문뭉치를 안은 소년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호외요, 호외!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어요!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깜짝 놀란 데이비드 블레어는 서둘러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어 보았다. '타이타닉호, 빙산과 충돌!' 4월 10일 사우샘프턴 항구를 출발한 타이타닉호가 4월 14일 23시 40분에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바다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기사였다. 타이타닉호의 감시원이 육안으로 전방 450미터에 높이 20미터 미만 정도 되는 빙산을 발견했지만, 한 발 늦어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충돌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블레어는 어이가 없었다. '미쳤군! 밤중에 육안으로 바다를 살피는 바보가 어디 있어? 망원경을 사용했다면 겨우 전방 450미터에 있는 빙산을 그렇게 늦게 발견할 리가 없었을 텐데.....' 그러나 다음 문장을 읽는 순간, 데이비드 블레어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놀랍게도 타이타닉호에는 쌍안경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쌍안경은 있었지만 꺼낼 수가 없었다. 쌍안경이 든 사물함의 열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쌍안경을 쓸 수 있었다면 이 엄청난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블레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작업복 주머니를 뒤졌다. 작은 열쇠 하나가 나왔다. 타이타닉호의 쌍안경이 든 사물함 열쇠였다. 갑자기 선원명단에서 제외된 걸 안 날, 미처 후임자에게 이 열쇠를 전달해 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95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여름, 이 열쇠는 영국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중국인 보석전문가 손에 들어갔다. 낙찰가는 120만 위안, 한국 돈으로 1억5천만 원이었다. 

처음에 이것은 그저 작고 낡은 열쇠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당신에게 이것은 적어도 1500명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생명의 열쇠'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유람선의 비극, 간발의 차이로 죽음의 운명을 비껴나간 젊은 뱃사람의 행운,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작은 열쇠를 1억5천만 원짜리 보물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사과 이야기

보다시피, 사과다. 만약 당신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이 사진을 보자마자 선악과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임신한 아내가 유독 즐겨먹던 과일이라는 걸 기억해 내고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뉴턴'의 만유인력을 떠올릴 것이고, 신화에 일가견이 있다면 파리스의 사과를 생각할지도 모른다.

 

참조 이미지 - 사과

일본의 대표적인 사과 산지 아오모리 현은 끝없이 펼쳐진 사과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그런데 어느 해 큰 태풍이 불어 닥쳤다. 얄궂게도 태풍은 꼭 수확기 직전에 잘 몰려온다. 잘 영글어 있던 사과들은 태풍에 휩쓸려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수가 아오모리 전체 사과의 90%에 달했다. 간신히 나무에 매달려 있는 건 고작 10%. 그나마도 대부분이 상처를 입어 상품으로 쓸 수 없을 정도였다.

농부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일 년 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때 한 농부가 외쳤다. "여러분! 이 사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요!" 사람들은 그가 실성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말에 귀가 솔깃했다. "지금이 입시철이잖아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뭐죠? '떨어졌다'예요. 제일 좋아하는 말은 '붙었다'지요. 자, 이 사과들을 보세요. 90%의 사과들이 '떨어졌'지만 이 사과들은 '붙었'어요! 그러니까 이 사과를 먹으면 무조건 대학에 '붙는'거지요."

이렇게 해서 태풍 맞은 사과들은 '합격사과'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나가게 되었다. 사과는 불티나게 팔렸다. 일반 사과보다 10배나 비싸고 당도도 떨어졌지만 소비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태풍에도 살아남은 '행운'이 '합격'으로 연결된다는 '이야기'가 그들의 지갑을 연 것이다.


아름다운 아우라를 씌워라

참조 이미지 - 어린왕자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는 '길들이기'에 대해 가르쳐 준다. "나는 밀을 먹지 않아. 하지만 이제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날 거야. 네 머리가 황금색이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금발소년들이 있지만 나에게 넌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금발소년이 되는 거야." '길들이기'라는 말을 좀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면 '의미 부여하기', 좀 더 한국적으로 표현한다면 '정들이기' 정도가 될 것이다.

정이 들려면 서로를 알아야 한다. 서로를 알기 위해서는 정보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서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반대로 서먹서먹해질 수도 있다. 일단, 어떤 대상에 정이 들고나면 그 대상에게는 아우라가 드리워진다. 이 세상에 흔하게 널린 여우, 흔하게 널린 금발소년, 흔하게 널린 열쇠, 흔하게 널린 사과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소중한 존재'로 격상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름다운 이야기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은 상품의 가치를 몇 배로 올려 준다. 설령 그것이 낡은 열쇠나 태풍을 맞은 사과라 할지라도.




정영선  

필자소개
정영선은 ';살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세라자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토리텔러. 어릴 때는 구연동화로, 커서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작가로서 이야기 장사를 해 왔다. 현재 Storytelling Agency (주)브랜드스토리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기업과 도시브랜드, 관광상품 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덧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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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망망
  • 2009-07-10 오후 4:29:30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느끼게되네요^^적절한일화감사드려요..[Del]
  • 혜미
  • 2009-07-13 오후 4:30:25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꿈 꿉니다~^^[Del]
  • 정영선
  • 2009-07-23 오전 12:04:38
망망망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Del]
  • 정영선
  • 2009-07-23 오전 12:05:15
혜미님. 혹시 벽화 그리시는 혜미님이 아니신가요? 아니시라면 죄송.. 맞으시다면.. 반가워요~^^[Del]
  • 희야
  • 2010-08-10 오후 7:01:14
스토리텔링은 단어 몇 개로 전달될 수 도있는 어떠한 정보에 가치를 더해주는것같네요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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