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텔링마케팅-세라자데의 시대가 왔다 ③

중요한 것은 '텔링'이다

정영선 _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연재순서 ③ 중요한 것은 '텔링'이다
이야기 자원을 모아 책이나 안내판으로 정리해 두는 것은 좋은 재료를 쌓아놓기만 하고 조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손님을 끌려면 이 재료로 맛있고 대중적인 음식을 개발하는 조리 과정이 필요하다. 그 조리 과정이 바로 '텔링'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는 '루나'라는 경주마가 있다. 2007년 6월에 한국마사회의 마일 경주(KRA CUP MILE)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류마다. 놀랍게도 이 말은 다리를 전다. 타고날 때부터 왜소한 체구에 허리인대 염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억 넘는 것이 예사인 경주마 경매에서 '루나'는 겨우 960만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그 후 루나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해 6억여 원의 상금을 받았다. 경매에서 매겨졌던 자기 몸값의 7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꼴찌 경주마 하루우라라 이야기

경주마 하루우라라일본에 '고치(高知)현'이라는 작은 소도시가 있다. 뚜렷한 산업도 없고, 그럴싸한 공장이나 학교도 없다. 이곳에 경마장이 하나 있었다. 경마장도 대단한 건 아니다. 중앙경마장에서 밀려난 2류 경주마들이 달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 2류마 중에서도 가장 못 달리는 말이 하나 있었다. 늘 꼴찌만 하는 그 암말의 이름은 '하루우라라(ハルウララ)'.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중간에 한번은 꼭 1등으로 치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승선이 가까워오면 자꾸자꾸 추월당하면서 결국에는 꼴찌로 들어온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이 말이 중간에 한번 1등으로 치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초반에 자기 몸이 감당할 있는 수준 이상의 속도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힘에 가속도가 붙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데도 하루우라라는 늘 꼴찌였다.

사실 하루우라라는 꼴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몸집이 작고, 다리가 가늘고, 심지어 그 다리가 짧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루우라라는 경주마를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연인지 녀석은 경주마가 되어 달리고 있었다. 결국 고치 경마장은 하루우라라를 안락사 시키기로 했다. 그러자 관리사가 눈물로 호소했다.

"저는 오랫동안 말을 보살펴 왔기 때문에 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말들은 때로 달리기 싫어 게으름을 피우고 짜증을 냈지만 하루우라라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눈을 보면 '아, 오늘도 달리고 싶어. 열심히 달릴 거야.'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석 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면 자기 사료값 정도는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신문 기자가 하루우라라의 사연을 신문에 냈다. 그러자 곧 공중파 방송에까지 알려져 하루우라라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열심히 달리지만 늘 꼴찌를 한다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한 하루우라라를 살리고자 마권을 사 주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자 고치 경마장은 하루우라라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우라라는 어느덧 고치 경마장에서 가장 마권이 많이 팔리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하루우라가가 100번째 경기에 나가게 되자 일본 열도는 흥분했다. 공중파 방송은 일제히 하루우라라 경기를 생중계했고, 모두들 한마음으로 하우루라라를 응원했다. 그날, 하루우라라는 꼴찌에서 두 번째로 결승선을 밟았지만 우승마보다 훨씬 큰 박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우라라 캐릭터가 박힌 팬시용품, 인형, 학용품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하루우라라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고치시는 유명한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고치현은 하루우라라에게 '고치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고, '관광공로상'을 주었다. 상으로는 홍당무 1년치. 꼴찌만 하는 3류 경주마가 죽어가는 도시 하나를 살린 것이다.


만약 루나의 경매낙찰에 주목했다면
 

참조 이미지 - 경주마 인형

겉으로 보기에 하루우라라와 루나는 참으로 닮아 보인다. 둘 다 선천적으로 경주마로서는 부적합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 장애를 딛고 승리자가 되었다.

그런데 차이도 있다. 하루우라라는 한 번도 일등을 하지 못했지만, 루나는 수차례 우승을 했다. 하루우라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 각국에 소개된 데 반해 루나의 이야기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소재로만 본다면 루나가 훨씬 극적인데 말이다.

원인은 두 말을 바라본 두 나라 사람들의 시선 차이에 있다. 일본인들은 하루우라라가 가장 비참한 처지에 처했을 때 그 말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을 응원했다. 죽을 위기에 처했던 말이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나중에는 영웅이 되었다. 하루우라라와 그 과정을 함께했기에 사람들은 하루우라라의 캐릭터 인형이나 팬시용품에 열광했고, 불원천리 외진 고치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루나를 보는 우리는 어땠는가? 사실 소재를 보는 눈이 있었다면 경매장에서 장애마가 960만원이라는 헐값에 낙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 '과연 저 말이 죽을까? 아니면 제몫을 하게 될까?' 호기심 반, 연민 반으로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연습을 하다가 장애를 이기지 못해 몇 번이고 주저앉는 모습, 이제 더는 안 되겠다며 안락사 이야기가 오가는 현장, 그 모든 것을 담아 두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루나가 우승했을 때 한국인들 전체가 함께 기뻐했을 것이다. 어쩌면 경마가 국민 스포츠로 부상했을지도 모른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인기 있는 관광코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루나가 우승을 했을 때, 그제야 관심을 보였다. 루나가 밑바닥에서부터 몸부림치며 올라오는 과정을 함께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저 '거참 대견한 말이네'하는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스토리보다 중요한 것은 텔링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시작한 이후 지자체로부터 컨설팅 의뢰를 자주 받는다. 그때 가장 많이 듣는 것이 "우리 지역은 '이야기 자원'이 아주 많아요.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렇죠."하는 말이다. 사실 설화와 민담을 수집하여 책으로 발간하고 안내판을 세우는 데 열심인 지자체들이 많다. 그러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지역의 민담과 설화는 하나의 '이야기 자원'일 뿐이다. 즉, 요리로 치면 '재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야기 자원을 모아 책이나 안내판으로 정리해 두는 것은 좋은 재료를 쌓아놓기만 하고 조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손님을 끌려면 이 재료로 맛있고 대중적인 음식을 개발하는 조리 과정이 필요하다. 그 조리 과정이 바로 '텔링'이다.

고치현은 '하루우라라'라는 콘텐츠 하나에 집중해서 효과적인 '텔링'을 전개했다.(물론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먼저 그들은 '꼴찌를 하는 말을 응원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루우라라가 방송에 소개될 때마다 "꼴찌를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최악의 불경기로 명퇴자, 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하루우라라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했다.

이렇게 해서 주목을 받게 되자, 고치현은 곧 하루우라라의 100번째 경기를 기획하게 된다. "일본인 여러분! 최선을 다해 달리는 꼴찌마 하루우라라를 딱 한 번만 우승마로 만들어 봅시다"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일본에서 제일가는 기수 다케 우다카로 하여금 하루우라라를 타게 하고, 명퇴자, 재수생, 불치병 환자 등을 초대하여 하루우라라의 우승을 기원하게 했다. 그와 동시에 하루우라라 캐릭터 상품을 출시했다. 이렇게 하여 100번째 경기를 일본 열도 전체의 큰잔치로 만들고 고치현을 관광명소로 부각시킨 것이다.

실력 있는 요리사는 부실한 재료로도 좋은 음식을 만든다. 하물며 좋은 재료임에랴. 그러나 우리는 '루나'라는 훌륭한 '재료'를 가지고도 '조리'에서 졌다. '스토리보다 중요한 것이 텔링'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재료 탓을 하지 않는 감각 있는 요리사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정영선  

필자소개
정영선은 ';살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세라자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토리텔러. 어릴 때는 구연동화로, 커서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작가로서 이야기 장사를 해 왔다. 현재 Storytelling Agency (주)브랜드스토리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기업과 도시브랜드, 관광상품 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덧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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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자
  • 2009-07-22 오후 3:35:40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있듯이, 스토리텔링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Del]
  • 정영선
  • 2009-07-23 오전 12:03:26
꿈꾸는자님/피나는 노력, 빛나는 재능, 미련할 정도의 끈기... 이3박자가 다 필요한 것이 문화 파트인 것 같지요?^^[Del]
  • 최용석
  • 2009-09-28 오후 9:45:21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세상에 많은 스토리 중에 어떤 것이 선택하여 텔링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누구를 대상으로 말이죠^^[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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