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미 피케이엠(PKM) 갤러리 대표

늘 새로운 작가를 주시하라

양지연 _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교수

해외 작가 소개와 국제성 있는 국내 작가 발굴은 갤러리 오픈 후 원칙으로 견지하는 바다. 현재까지 그 비전을 엄밀히 고수해 왔다.

박경미 대표는 한국과 미국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1989년부터 20년 간 줄곧 갤러리 비즈니스에 종사하였다. 첫 10년은 국제갤러리에서 디렉터로서 활동했고, 2001년부터 근 10년 동안 자신의 갤러리를 운영해 오면서 국제 미술시장에 가장 밝은 갤러리스트의 하나로 꼽힌다. 피케이엠 갤러리(이하 PKM)를 설립할 당시의 상황과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박경미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오며 국내시장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해외미술품이 들어오는 저변이 커졌다는 것이다. 80년대부터 미술시장이 커지기 시작했지만 국내 작가 위주였고, 90년대 시장도 주류는 국내 작가였다. 그런 상황에서 해외 작가 전시를 활발히 유치했다. 국내 작가도 국내시장에서 호응이 높았던 성향의 작가가 아니라 국제 미술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국내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키워드였다.

개인적 입장에서 이 두 가지, 즉 해외 작가 소개와 국제성 있는 국내 작가 발굴은 갤러리 오픈 후 원칙으로 견지하는 바다. 현재까지 그 비전을 엄밀히 고수해 왔다.

그러나 국내 미술시장을 볼 때, 해외 작가 시장은 커졌지만 한국 작가 시장은 아직 8~90년대에 인사동에 등용한 스타일의 작가들 위주라서, 솔직히 아직은 내가 추구하는 한국 작가들이 판매 면에서 국내 미술시장의 메인스트림, 주류는 아니다. 오히려 마이너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길까 생각해봤는데, 우선 국내 정서에 맞는 취향이 있고, 한국 현대미술에는 미학적인 메인스트림이 없는 것이 원인인 것 같다. 미술시장이나 갤러리 문화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다양한 시장이 있지만 현대미술의 메인스트림이 분명히 존재한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있고, 미술관이나 전문가 호응이 좋은 작가도 있다. 그 안에서 큰 방향이 있고 조금씩 다른 것이 공존하지만, 우리나라는 크게 한 방향으로 가는 메인스트림은 없다. 그래서 국내 시장에서 잘 통용되는 작가 위주로 다루다 보면 교집합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게 된다.

작가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함께 커나가는 갤러리스트는 아트딜러와 굉장히 다르다. 아트딜러가 단지 상품을 유통시키는 중간자라고 한다면 갤러리스트는 문화를 개척하여 아티스트와 컬렉터가 따라가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문화의 수준이 향상되고 미술의 가치와 자산적 가치가 공유되는 지점이 생기게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글로벌 컨텍스트가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그런 작가들과 함께 가고 싶은 것이 우리 갤러리가 보는 긴 비전이다.

어떤 작가가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작가인가.

작업을 통해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가 동시대 미술이지 않나.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를 좋아한다. 또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는 기초가 단단한 작가이다. 기초가 단단한 작가들은 결국 전문가 집단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것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것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 한다.


중국 현대미술이 아니라 국제적 통로가 중요

2006년 베이징에 지점을 개설하고, 작년에 강남에 지점을 내는 등 국내외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영 측면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어떤 것인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세 군데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긴 해도 갤러리의 성격적인 요체가 크게 다른 건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내가 꼼꼼하게 챙기고, 많은 직원을 고용하지는 않지만 직원들과 철저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작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최종적으로 의사결정하고, 담당 작가를 분담하여 관리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범아시아적 교류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미술시장에 진출한 경험과 현지의 상황을 소개해 달라.

중국은, 어떤 사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현지화가 중요한 성공 요건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쪽 방향으로 좀 더 강화하려고 한다.

현지화의 의미는? 현지 시장의 취향을 고려한다는 뜻인가.

중국 시장의 현지 취향에만 맞추다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중심과 조금 달라질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색깔을 최대한 공유 하면서 그 쪽 콜렉터들이 조금 더 교육되고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는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중국 미술시장도 사실은 이제 현대미술이 시작되는 시점에 있기 때문에 아주 길게 봐야 되는 게임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인 콜렉터들이 늘었지만, 아직도 주로 유럽 콜렉터들이 주요 고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 콜렉터들의 구매가 잦아들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나 궁극적으로 중국 자체는 거대한 시장이라 잠재성이 있다.

우리가 중국에 진출한 목적이 중국 현대미술에 집중하려는 것이 아니고, 한국 갤러리의 로컬 아이덴티티를 업고, 국제적인 통로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작가를 진출시키고, 중국작가, 서구작가를 함께 소개한다.
 

박경미



"작가와 직접 교류하라"

PKM은 주요 국제 아트페어에 매년 참여해 왔다. 올해 처음으로 뉴욕 아모리 쇼에 참가하는 등 해외 갤러리와의 교류가 활발하다. 한국 갤러리들이 국제 미술시장에서 추구해야 할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가 교류하는 해외 갤러리들은 모두 명성이 높은 갤러리들이고, 소위 메인스트림으로 가는 창구이다. 이런 곳들은 전속작가 제도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다.

우리 갤러리가 해외 작가를 들여올 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작가가 전속되어 있는 '마더 갤러리'(mother gallery)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직접 작가와 연락해서 들여오는 경우이다. 이상적인 것은 작가와의 직접 교류하는 것이다. 현지 갤러리를 통한다면 우리는 사실 2차 시장밖에 안 되니까.

점점 글로벌화되고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는 국제 미술시장에서 전 세계 갤러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아트페어가 굉장히 많아지고, 한국 고객들도 해외 아트페어를 다니며 구매한다. 아트페어에서 우리가 마더 갤러리를 통해 들여 온 작가를 취급할 때, 마더 갤러리도 같이 출품하게 되면 우린 이미 시장 경쟁에서 밀리는 거다.

그래서 우리 같은 아시아 갤러리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든 좋은 외국 작가를 직접 섭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완전히 수면에 떠올라서 전 세계 콜렉터들이 다 아는 명성 있는 작가가 아니고, 지금은 수면 밑에 있지만 궁극적으로 메인스트림의 주요작가가 될 작가들, 즉 아직 계약 조건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작가를 우리의 경험과 능력으로 미리 선점해서,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앞으로 이 부분에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시장 잠재력, 미술관 문화가 관건

한국 갤러리, 혹은 미술시장의 강점과 한계는 무엇일까.

일단 모든 면에서 굉장히 반응이 빠르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규모나 미술시장 자체가 아주 작다고 할 수는 없어서 충분히 잠재력은 있는데, 미술시장이라는 게 돈만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은 아닌 것 같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장규모가 커졌고, 미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나 굉장히 퇴보했다고 보는 요소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미술관 문화이다. 현재 사설 미술관만 해도 미술관이라는 호칭을 부담 없이 줄 수 있는 곳이 세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개인 컬렉터의 숫자만 많아진다고 미술시장이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 문화를 좀 더 수준 있게 만들어야 되고, 사설 미술관은 결국 기업들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그 부분에 있어 우리나라는 막혀있고 최근에는 더욱 퇴행했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앞에서 갤러리스트는 아트딜러와 다르다고 했다. 본인이 지향하는 갤러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필자 양지연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경미
갤러리스트의 역할에 아트딜링이 포함되어 있지만, 갤러리에서 아트딜링만 하는 건 아니다. 갤러리스트가 하는 일은 결국 작가의 이미지에 관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다고 할 때, 그 가치가 캔버스 값이나 물감 값이 비싸서 생기는 건 아니다.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아우라를 소장하는 거다. 아우라라는 것은 그 작가가 그 시대를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냈는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지녔는가에 달렸다. 재능은 표현력일 수도 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삶 자체일 수도 있다.

작가의 재능은 일단 전문가의 인정을 받은 뒤 컬렉터에게 가고, 그 과정에서 이미지의 가치를 유지시키고 향상시키는 일을 작가와 작가의 콘텐츠를 갖고 있는 갤러리가 하는 것이다.


"유연하되 원칙을 버리지 말라"

마지막으로, 젊은 갤러리 종사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오픈마인드를 갖고 늘 새로운 작가를 주시하는 게 중요하다. 유연성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계속 새로운 작가가 나오고 시장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니까. 그 변화하는 시대에서 더 적극적으로, 더 먼저 다가가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또 유연성을 갖되 원칙은 버리지 말라고 하고 싶다. 본인이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가졌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이 때 더 편하다. 그런 원칙이 없으면 매번 새로운 틀을 찾아야 되니까.

그런데 무엇보다 미술을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문화비지니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이 분야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최근에 많은데, 미술 시장은 자본이나 경제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해나가려면 미술에 대해 알아야 하고 미술을 좋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음이 쉽게 무너진다. 이 일 접고 다른 일 할래 하는 식이 되는 것인데, 이런 것은 사실 미술계를 흐리는 행위가 된다.
 

박경미 대표-이화여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국제 갤러리 디렉터로 해외 주요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전시들을 기획했으며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피케이엠(PKM) 갤러리 대표를 맡아 현재 화동, 청담동, 중국 베이징, 세 곳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PKM은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Art Basel), 영국 프리즈 아트페어(Fieze Art Fair), 미국 아모리쇼(The Armory Show) 등 참가 기준이 엄격하고 현대미술 시장의 동향을 대변하는 주요 국제아트페어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며 국내외 작가의 국제적 프로모션에 주력하고 있다.

 


양지연  

필자소개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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