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텔링마케팅-세라자데의 시대가 왔다 ⑤

'스토리'로 지역 브랜드를 만든다

정영선 _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연재순서: ⑤ '스토리'로 지역 브랜드를 만든다
내가 가진 것을 목청 돋우어 자랑한다고 시선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톤을 낮추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이 역으로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줄리엣이 살지 않는 '줄리엣의 집'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걸작이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간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이야기의 무대가 이탈리아의 '베로나시'라는 사실이다.

베로나시 공무원들은 이 점을 살려 보고 싶었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대적 배경에 해당하는 12, 3세기경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을 찾아내고 발코니를 붙였다. 로미오가 발코니를 타고 올라가 줄리엣과 키스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 위해서였다. 발코니에 딸린 방에는 줄리엣의 방을 만들고, 줄리엣이 썼을 법한 장신구와 가재도구, 옷가지 등을 진열해 놓았다. 그리고 '줄리엣의 집'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
 

<줄리엣의 집> 외관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세계 각지의 연인들이 이 집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 흉내를 내며 발코니에서 키스를 하기도 하고, 벽에 사랑의 맹세를 쓰기도 했다. 이렇게 젊은 연인들이 모이자 근처에는 멋진 카페촌이 형성되었다. 줄리엣이 살지 않는 줄리엣의 집은 베로나시의 관광수입원이자, 지역브랜드가 되었다.


이순신과 온천을 연결할 수 없을까?

"미국의 수도는?" 하는 질문에 곧장 "워싱턴 DC"하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외로 "뉴욕?" 하다가 "아니, 참, 워싱턴! 워싱턴 DC!"하고 대답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충무공 이순신의 고향은?" 한국인이라면 의외로 "아산!"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틀렸다.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은 한양에서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이순신' 하면 '아산'을 떠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현충사'가 아산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충사에는 이순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순신은 오늘날에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손꼽히는 구국의 명장이다. 그러니 아산은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지역 대표 캐릭터를 가진 셈이다. 하지만 아산은 아산 나름대로 고민을 안고 있다. 남쪽 해안지방이 앞 다투어 이순신을 소재로 한 축제를 벌이고, 명량대첩을 비롯한 해전을 재연하는 바람에 정작 이순신의 고향이라는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산시 역시 '성웅 이순신 축제' 기간 동안에라도 이순신의 해전을 멋지게 재연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산은 바다가 멀다. 그나마도 서해안이라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다. 바다 사나이 이순신을 축제의 콘텐츠로 하고 싶은데 바다를 활용하기 힘든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아산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온천'이다. 실제로 온양온천은 조선시대에 왕실가족의 행궁이 있을 정도로 수질과 약효를 인정받은 온천이었다.『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조선의 왕들이 온양행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각지에서 최신설비를 갖춘 새로운 온천들이 유명해지면서 온양온천의 인기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자신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아산시는 이순신과 온천을 연결 짓는 문제에 집중했다. 해마다 열리는 '성웅 이순신 축제' 기간 동안에는 온천 입장료를 할인해 주기도 하고,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온천물로 이순신 동상을 씻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기야 평생을 바다에서 산 이순신과 따뜻하고 조용한 온천을 연결 짓는다는 것이 쉬운 작업일 수는 없었다.


베스트셀러를 변주하다



판화가 오윤의 작품 <칼노래>

아산시의 고민을 듣고 나는 김훈의 베스트셀러『칼의 노래』를 떠올렸다. 이순신이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 소심하고 질투 많은 임금 선조는 그를 역모죄로 잡아들인다. 모진 국문 끝에 겨우 목숨만 살아서 돌아오던 이순신은 아산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곳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자 사랑하는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전령이 달려와서 대성통곡을 했다. "장군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순신의 어머니 변 씨는 현숙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강단 있는 여성이었다.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애국심이 남다르고 도덕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그런 어머니의 장례식이지만 역적으로 몰린 이순신은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밤새 술을 마시며 울분을 달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고문을 당하고 장독이 오른 사람이 밤새 술을 마신다면 몸에 해롭지 않을까? 차라리 온천물로 상처를 씻거나 몸의 피로를 풀면 어떨까? '온천'은 땅에서 나오는 물이다. 신화학에서 '땅'은 '어머니'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땅에서 나오는 온천물은 어머니의 젖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온천물은 따뜻하고 우유처럼 뽀얀 색깔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을 키우고 치유하는 효능까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아산은 이순신이 어머니 변 씨의 훈육을 받으며 자란 곳이자 이순신의 어머니가 임종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즉, 아산은 '영웅을 낳은 어머니의 땅' 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내용으로 현충사에서 현장극을 한다면 어떨까?


구국의 영웅을 낳은 어머니의 땅

어린 시절 이순신이 전쟁놀이를 하다 다쳐서 돌아오면 어머니 변 씨는 온천물로 이순신의 상처를 씻어 주며 이렇게 말한다. "그냥 흘러 버리는 물이 되지 말고, 이 물처럼 뜨겁고, 쓰임새 있는 물이 되어라. 네 상처를 고쳐 주는 이 온천물처럼 너 역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네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해야 한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전장을 누볐다. 그런데 지금 그는 역적 누명을 쓰고 장독이 오른 몸으로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고향 입구에 서 있다. 그는 온천물에 상처를 씻으며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 "네 상처를 고쳐 주는 이 온천물처럼 너 역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네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해야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충정을 몰라주는 왕에 대한 서운함을 접고, 백의종군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끝내 풍전등화 같던 조국을 구해낸다. 이순신의 일생을 다룬 베스트셀러『칼의 노래』를 이렇게 변주한다면 바다 사나이 이순신과 온천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내 고향의 물은 나를 키워 바다로 보냈다'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홍보 이미지

이렇게 해서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기간에 현충사에서 새롭게 변주한 <칼의 노래> 현장극을 공연한다면 이것은 축제의 막강한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현충사 안에 어린 시절을 보낸 고택까지 있기 때문에 현장극의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런 후 아산의 각 온천에 '치유의 온천''화해의 온천''재기의 온천'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아로마 테라피와 연계하여 실제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온천이나, 기분을 고조시키는 온천을 만든다면 어떨까? 아주 싫어하는 사람과 손잡고 '화해의 온천'에 들어가 30분만 온천욕을 하고 나오면 사이가 좋아진다는 말이 돌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휴양 온천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용기를 얻고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수련의 장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내 고향의 물은 나를 키워 바다로 보냈다'. 위의 설계를 바탕으로 만든 슬로건이다. 아산은 이순신을 낳고 키웠지만 자기 지역을 위해 잡아 두지 않고 먼 바다로 보냈다. 그리하여 조선은 국운을 되살릴 수 있었다. 이순신은 분명 숱한 전쟁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 몸으로 습한 바다에 나가면 얼마나 상처가 쓰리고 아팠을까? 그때마다 그는 어머니와 아산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아산의 따뜻하고 영험한 온천물에 자신의 상처를 씻고 싶지 않았을까?

이순신이 바다에서 왜군을 맞아 싸운 것처럼, 현대인 역시 '사회'라는 바다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모함 받고 간난신고를 겪은 이순신이 어머니의 젖 같은 아산의 온천물로 상처를 씻었듯이 현대인들 역시 지친 몸과 마음을 아산 온천에서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아산은 더 이상 다른 지역처럼 무리해서 해전을 재연할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아산은 영웅을 낳고 키우고 치유한 어머니의 땅이다. 이 이상 가는 찬사가 있을까? 요란한 해전 재연 행사보다는 이순신의 리더십과 인간적인 이야기, 이순신의 어머니이자 스승이었던 변 씨의 가르침 등이 어우러진 이미지를 갖는 것이 아산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내가 가진 것을 목청 돋우어 자랑한다고 시선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톤을 낮추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이 역으로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지역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지역이 최고'라고 핏대를 올릴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내기만 하면 된다. 모두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정영선  

필자소개
정영선은 ';살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세라자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토리텔러. 어릴 때는 구연동화로, 커서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작가로서 이야기 장사를 해 왔다. 현재 Storytelling Agency (주)브랜드스토리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기업과 도시브랜드, 관광상품 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덧글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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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랑
  • 2009-07-31 오후 1:46:04
매주 기다리는 연재였는데.. 잘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오래 담아두고 싶은 글을 만난 것 같습니다.[Del]
  • 꿈꾸는자
  • 2009-07-31 오후 2:26:31
아. 벌써 마지막 연재이네요... 너무 아쉽습니다.. 그 동안 좋은 글 감사합니다.[Del]
  • 단골만들기
  • 2009-07-31 오후 5:59:26
동감... 아쉽습니다.[Del]
  • 정영선
  • 2009-08-01 오전 1:54:51
이랑님/ 매주 기다려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사실 이런 곳에 글을 내다 보면 혼자 독백하는 것 같아서 쓸쓸해지기도 하고, 좀 무서워지기도 하거든요. 혼자가 아니었군요.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Del]
  • 정영선
  • 2009-08-01 오전 1:57:21
꿈꾸는자님/ 요리처럼 스토리도 오랫동안 갈고 닦으면 발전할 수 있냐고 물으셨지요? 당연하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자체를 '즐기는'것이겠지요. 어깨에 힘 빼고요. 그런데 저도 그게 잘 안 된답니다.^^[Del]
  • 정영선
  • 2009-08-01 오전 1:58:32
단골만들기님/ 제 글에 단골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젠가 단골만들기님의 글이 올라온다면 저 역시 님 글의 단골이 될 듯합니다.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Del]
  • 에고
  • 2009-08-11 오후 7:18:08
그동안 너무 잘 읽었습니다 ^^!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Del]
  • 정영선
  • 2009-08-18 오전 12:20:45
에고님/ 친구가 님의 덧글을 알려 주어서 부랴부랴 들어와 인사 남깁니다. 빈 방에 따뜻한 흔적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더더욱 기쁩니다.^^[Del]
  • 김상희
  • 2009-09-11 오후 2:36:18
읽을때 마다 감동이었습니다. 마지막이라니 너무 아쉽습니다.[Del]
  • 이현옥
  • 2009-09-22 오전 9:24:25
제주도에서 교육을 통해 선생님 알게된것. 너무 감사드립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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