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슨 푸아 에스플러네이드 CEO

호텔리어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경영 CEO로

이승엽 _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

이번 호 인터뷰는 벤슨 푸아(Benson Puah)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CEO 와 이메일로 진행하였다. 인터뷰 내용은 영문으로도 볼 수 있다. 다음 달에는 리처드 에반스(Richard Evans) 시드니오페라하우스 CEO를 같은 형식으로 인터뷰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1998년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 CEO로 임명된 이래 공연예술경영 부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부문 글로벌 네트워크인 국제공연예술협회(International Society of Performing Arts, ISPA)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 인터뷰 진행 중 싱가포르예술위원회(National Arts Council Singapore, NAC)의 CEO도 겸직하게 되어 주가를 한껏 높이고 있다. 우리 식으로 보면 예술의전당 사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한 사람이 맡게 된 것과 같다.

1998년에 임명되었으니 금년으로 에스플러네이드 CEO를 맡은 지 11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가? 아니면 당신의 뛰어난 경영능력 때문에 생긴 드문 일인가?

싱가포르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싱가포르에는 대개 기간을 정하고 고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종신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일을 잘 못하면 고용한 회사가 1~6개월 전에 그만두라고 통보한다.

당신의 경력을 보니 에스플러네이드에서 일하기 전에는 예술이나 문화와 관련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예술기관에서 일하기로 결심했을지 궁금하다. 게다가 그 당시 에스플러네이드처럼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기에는 상당히 젊지 않았는가?

벤슨 푸아
그렇다. 당시 나는 41살이었다. 모두들 놀랐다. 나도 정부로부터 이 일을 제안 받았을 때 놀랐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 전에 나는 서너 분야를 가로지르며 일해 왔다. 주로 창업이나 혁신과 관련된 일이었다. 내 짐작으로는 그 덕에 조직 구축자와 인력 개발자라는 명성이 쌓인 게 아닌가 싶다. 그 전에 예술분야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성장기의 나는 항상 예술과 함께였다. 음악, 무용, 연극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내게 큰 영향을 미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에스플러네이드 참여를 요청받았을 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삶의 핵심에 예술이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예술을 사람들 가까이 가게 하는 기회로 여긴 것이다.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된다고 보았다. 호텔리어로서 가진 내 역량을 발휘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호텔리어라는 일이 내게 좋은 서비스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게 해준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당시 에스플러네이드가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은 분명했다. 그것을 위해 나의 비전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사상가와 경영자가 공존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 에스플러네이드처럼 큰 아트센터의 CEO가 갖춰야 할 것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대형 아트센터의 CEO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 아트센터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예술계 상황은 어떤지, 훈련된 인적 자원을 얼마나 활용가능한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의 경우는 건축 단계에서 결합한 케이스다. 싱가포르는 생동감은 넘치지만 아직 다양성과 깊이가 부족한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진 공연예술계를 가지고 있다. 무대기술이든 예술행정이든 가용한 스태프도 없었다. 싱가포르 역사상 이런 규모의 아트센터를 지어본 경험 자체가 없었다. 나는 '무'에서 출발한 셈이다.

사정이 그러니 공사 진행을 감독하고 예산을 관리하며 특수 설비를 정하여 구입하는 등 아트센터가 필요에 맞도록 지어지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그런 한편 개관과 그 이후의 운영을 준비하기 위해 경영, 회계, 운영 시스템을 수립하고 여러 수준의 사람들을 채용하여 개발, 훈련, 조언해야 했다. 이 일에 그 동안 조직을 이끌고 관리한 나의 경험이 모두 쓰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술적 방향성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었다. 모두를 위한 공연장이 되자는 우리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20년 계획을 만들었는데 크게 두 시기로 나누었다. 당시 에스플러네이드는 거시적 관점의 사상가와 디테일을 볼 수 있는 경영자가 한 몸 안에 공존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궤도에 오른 다른 아트센터는 아마 이런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스플러네이드는 싱가포르의 예술 아이콘이자 랜드마크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트센터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2002년 공식 개관 후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이런 것들을 이룰 수 있었나?

에스플러네이드가 아름답다거나, 건축적으로 뛰어난 랜드마크라고 칭찬받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고자 한 비전과 용기를 가졌던 건축가와 싱가포르 정부의 공이다. 우리가 한 일은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삶을 활기차게 만들고, 이 안으로 삶을 끌어들여서 모든 사람이 오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이 개관을 준비하던 때부터 우리의 미션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이 사람들에게 적당한 것인지, 우리의 미션에 맞는 것인지를 항상 체크했다.


"미래를 위한 견고한 바닥 정도를 만들었을 뿐"

 

에스플러네이드의 야경

에스플러네이드에 대한 자랑 좀 해 달라.

기관으로서 에스플러네이드는 아직 무척 어리다. 우리 스스로가 성공했다고 느끼려면 훨씬 더 많은 세월 동안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미래를 위해 견고한 바닥 정도를 만들었다고 보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2002년 10월에 개관한 이래, 연간으로 운영해본 첫 해인 2003/2004년에 1,500개의 공연에 90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는데 작년에는 유료와 무료를 합쳐 2,500개 공연에 17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았다. 관객을 포함한 방문객 숫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3/2004 운영연도의 600만 명에서 2007/2008 운영연도에는 850만 명으로 늘었다.


사람들이 쉽게 와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에스플러네이드의 연간 스케줄은 12개의 축제와 21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장르를 가로지르고 민족 간의 벽을 넘나든다. 폭넓은 층의 관객들이 갖는 서로 다른 기호와 특별한 기호도 배려한다. 우리의 연간 공연일정의 기본은 예술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들여 즐거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이 중에는 민속 명절축제기간에 예술을 통해 커뮤니티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주요 문화축제도 있다. '화이–중화권 예술 축제'는 음력설을 축하한다. '칼라 우트사밤–인도예술축제'는 디파발리힌두교 명절로, 빛의 축제라는 뜻를, '페스타 라야–말레이시아 예술축제'는 하리 라야 푸아사이슬람의 최대 명절로 라마단 종식을 축하하 를 기념한 것이다. 특별한 날에는 이에 맞춘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제야, 중추절, 건국기념일, 어린이날 같은 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갈 만한 장소도 제공하고 해당되는 날을 축하할 수 있게 한다.

에스플러네이드의 야외공연장
물론 장르 중심의 축제와 공연도 있다. '모자이크 뮤직 페스티벌' 'dan:s festival' 'Baybeats인디 음악 축제'; 등은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고 기존 관객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편으로는 공동창작, 워크숍, 마스터클래스 등을 통해 국내외 예술가들의 교류를 촉진하여 싱가포르 예술가를 발전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싱가포르 인력개발국싱가포르 중앙정부의 인적자원개발부 산하에서 공인한 평생 교육센터이기도 하다. 분야는 공연 기술 산업 분야다. 이 분야 노동자의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창조산업 부문 직업능력자격 시스템(WSQ)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프로그램은 싱가포르에서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기초과정부터 전문가 과정을 모두 운영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공연예술 아트센터', 에스플러네이드가 내세우는 비전이다. 어떻게 '모두'라고 하는 그 많고 다양한 대중을 대상으로 할 수 있나? 특별한 전략이나 정책이 있을 것 같다.

우리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은 연령, 민족, 문화적 공동체, 사회계층, 기호와 선호 등을 넘어 모두 중요하다. 모든 예술은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보기 때문에 '고급' 예술과 나머지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건설 현장 노동자이든, 고위 공무원이든, 대단한 부자이든 간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한다. 모든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프로그램 기획을 할 때도 고려되는 사항이지만 아트센터에서 일하는 스태프 개개인이 일을 하는데 동기부여촉진제로도 작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스태프가 동료를 존중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친절, 열정, 성실, 겸손 등 기본원칙으로 제시한 태도로 동료를 대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다"

에스플러네이드라는 조직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영철학도 밝혀 달라.

벤슨 푸아내가 조직을 이끌고 지휘하는 방식은 이렇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 목적을 성취하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지원한다. 그들이 길을 잃을 때는 안내하고 조언도 한다. 나는 에스플러네이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다. 바로 손에 닿는 곳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솔선수범의 룰을 믿는다. 그러나 나의 위치는 그들의 뒤다. 뒤에서 스태프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결정을 내리거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 내 일이다. 스태프들은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우리 스태프를 모두 알고 있다. 매니저급 이상은 인터뷰에 모두 간여하고 있고 그들의 개별적인 커리어 성장에 관심이 많다. 나는 또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다. 그러면서 직원들과 대화한다. 누구든 옳지 않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우리 조직에는 형식이나 위계가 거의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투명하다.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 결정된 사항은 널리 알린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두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태프는 나와 얘기하기 위해서 미리 약속을 정할 필요가 없다. 이직률은 매우 낮은 편이며,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구직 광고도 거의 내지 않는 편이다.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도 당신은 주요 아트센터의 성공적 CEO로 알려져 있다. 당신의 예술경영자로서의 성공의 비결을 알려 달라. 아트센터 CEO로서 당신의 장점도 말해 달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 세대가 지나 사회와 정부가 예술을 삶의 필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예술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전에는 내가 한 일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맡고 있는 내 책임은 예술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에스플러네이드나 내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다.

혹 단점은 없나?

의미와 성과에 집착하는 완벽주의가 내 단점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유 없이 그냥 하는 일은 믿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활동이나 결과일 뿐이다.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태프들이 미치겠다고 하기는 한다.


"내 역할은 아시아의 영양 불균형 바로잡는 길을 여는 것"

당신은 국제공연예술협회(ISPA)의 이사장이 된 첫 아시아인이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아시아태평양공연예술센터협회(Association of Asia Pacific Performing Arts Centers, 이하 AAPPAC)의 회장으로 일해 왔다. 국제 관계와 협업에 매우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런데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가?

수백 년간, 특히 지난 세기에, 서양은 우리 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오래 식민 지배를 경험했거나 산업발전과정을 추구한 구세대들은 서구 양식을 좇기를 열망했다. 그것이 문화의 수준을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서양 예술 장르를 수용하기 위해 공연장들을 지었다. 서양의 대도시들처럼 문화적 역동성을 가지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예술 양식이 아니라 서양 예술 양식인 오페라, 발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통해서였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우리 예술가와 우리 예술 양식을 발전시키는 데는 인색했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테크닉을 배우더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찾고, 우리 자신의 어휘를 개발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문화를 빌려와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다른 문화를 감상할 수도 있고, 연습할 수도 있지만 우리를 정의해주는 문화가 될 수는 없다. 그 같은 조직에서 내 역할은 아시아가 이런 '영향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벤슨 푸아
난양예술대학 예술경영과 교과개발위원회 의장을 맡는 등 예술경영교육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그들의 미래의 직업에 대해서도 좋고 학업 중에 할 일에 대해서도 좋다.


모든 예술 장르에 활짝 문을 열고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교육은 지식을 주고, 현장에서의 작업은 경험을 준다. 이 경험은 시간과 함께 지혜를 선사한다. 바라건대. 하지만 젊다는 것이 일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시스템에 도전하되, 냉소적이지 말고 시스템과 함께 하라. AAPPAC의 최신호 뉴스레터에 남아프리카에서 매우 유명한 배우이자 극작가인 존 카니라고 하는 분이 '오직 진실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더라. 그 글을 좀 꾸어와야겠다. "삶은 계주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달려와 바통을 넘겨주면서 당신에게 '이제 남은 레이스를 계속하는 건 네 책임이야.'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바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 바통을 받아 내야 한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우리의 때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 책임을 가질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선배로서 한국의 젊은 예술경영자들에게도 한 말씀 해 달라.

한국은 발견(discovery)과 발전(development)의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본다. 뭔가 다른 것을 만들자. 한국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시아에서 한국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발견해 보라. 밖의 세상은 더 크다. 서로 연결하고 관계를 유지하라.

한국에 여러 번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문화예술부문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보았는가?

방문할 때마다, 심지어는 직접 오지 않아도, 변화의 격랑을 느끼고 짐작할 수 있다. 정말 흥미롭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세대 중에는 아직도 서양의 고전 예술 양식에 집착하거나 엘리트 고급 예술과 나머지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에너지는 젊은 세대들에게 물려줘야 할 고유한 문화유산에 있다. 근대화와 진보가 곧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예술이 동양에서 (또는 아시아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가도록 나도 응원하고 싶다.
 

벤슨  푸아(Benson Puah)는? 영국 서레이대학에서 호텔, 식음료 및 관광 경영을 공부했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1982년부터 힐턴, 상그릴라 등 초특급 호텔에서 일했다. 싱가포르에서 주요 두 문화예술기관의 최고경영자를 같은 사람이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자리 모두 상임이다. 에스플러네이드(The Esplanade)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해변극장'(Theatres on the Bay)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2000석의 대극장, 1600석의 콘서트 홀 등 다양한 크기와 용도의 옥내외 공연장 5개와 식당가, 쇼핑몰, 전시장 등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이다.


인터뷰 영문 보기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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