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힙합&비보잉, 날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③

비보잉 크루에서 현대무용까지

성기완 _ 시인, 뮤지션

연재순서: 비보잉 크루에서 현대무용까지
유독 우리나라에서 비보잉이 강세인 것은 , 우선은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와 연관시켜야 할 것이다. 비보잉, 나아가 힙합은 본질적으로 도시 문화이다. 도시에 적응해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이른바 '도시 문화' 속에서 길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한국 비보잉을 대표하는 크루들은 이제 세계 최고의 비보잉 크루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세계 대회에 나가려면 한국 예선을 당연히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한국 비보잉의 수준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많은 비보잉 크루들이 있지만 그간의 활약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몇 크루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리버스 크루(Rivers Crew)

리버스 크루앞서 잠시 소개한 익스프레션과 함께 한국 비보잉 원년이라 할 1997년에 결성된 '리버스 크루(Rivers Crew)'는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한국 비보잉 크루라 할 수 있다. "힙합의 기본 뿌리에 중심을 두고 그 올바른 전통을 배워나가 그 시초의 움직임을 실천"한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리버스 크루는 김효국(비보이피직스)라는 스타 비보이를 중심에 두고 있다.『대한민국 비보이(B-boy) (춤으로 세계를 제패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김효국은 전설적인 '엘보우 스핀 16바퀴'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라 할 수 있다. 힘찬 움직임과 예술적인 안무가 리버스 크루의 핵심이다. 또한 '각나그네'와 디제이 렉스 같은 탄탄한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 그루브감 넘치는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기도 하다. 2002년과 2007년에 영국 '유케이 비보이 챔피언십'(UK B-Boy Championship)에서 우승했으며 2007년 미국 뉴욕 유엔총회 축하의 밤 한국 홍보 대사로 공연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② 갬블러 크루(Gamblers'; Crew)
 

갬블러 크루

갬블러 크루는 2002년에 결성됐다. 에어트릭 토마스나 나인틴나인티 같은 파워 무브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연수(the end)를 비롯, 잘 다져진 팀워크를 구사하는 14명의 비보이로 구성되어 있다. 2004년, 비보이들의 올림픽이라는 독일 '배틀 오브 디 이어'에서 우승을 하면서 일약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잉 크루로 떠올랐고 이후에도 미국 뉴욕 '일 스킬 킹즈'에서 우승하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UV 댄스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후배들 양성에도 힘쓰고 있으며 중국에 비보잉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팀으로도 알려져 있다.

③ 익스트림 크루(Extreme Crew)

익스트림 크루
장기 공연을 하고 있는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익스트림 크루는 부산 출신 '오보왕'에서부터 탄생한 대표적인 지방 비보잉 크루다. 이들은 2007년 배틀 오브 디 이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크루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개인 대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실력파 비보이 정영광 등 열 명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에서 비보잉 행사인 '익스트림 어웨이'를 주최하는 등 지방 비보잉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④ 라스트 포 원(Last for one)

라스트 포 원라스트 포 원은 각종 대회에서 우승한 것뿐만 아니라 댄스 뮤지컬 <스핀 오디세이>를 통해 힙합 댄스의 새로운 지평을 연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7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에서 소개된 이 뮤지컬은 '새로운 국제적 예술 형태'([뉴욕 타임즈])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준우승, 2007년 '에든버러 캐슬 락 배틀' 우승 등 국제적 수상 경력이 있으며 숙명 가야금 연주단과 함께 공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⑤ 예술이 된 힙합, 이인수 댄스 프로젝트

이제 힙합 댄스는 현대 무용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2008년,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에서 기획된 '힙합의 진화 II'라는 테마는 평단과 관객, 그리고 미디어의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힙합의 진화 II'는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인 '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난해함으로 인해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현대무용을 다시 우리의 일상 안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세계적으로 소통 가능한 보편적인 몸의 언어라 할 수 있는 힙합 댄스의 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는 이 제안은 2007년 이후 시댄스의 주요 테마의 하나가 되어 왔다.

이인수 댄스 프로젝트
시댄스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댄서가 바로 이인수다. 실제로 로컬 스트리트 댄서로 활약하다가 아카데미로 들어온 이인수는 <오뚜기>라는 작품의 안무로 힙합과 컨템포러리라는 두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박진감 넘치는 힙합의 움직임과 현대 무용의 개념들이 잘 녹아 있는 이 춤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현대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에 이르기까지 두루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미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인기 뮤지컬을 통해 무대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은 힙합 댄스는 이렇듯 현대 무용의 문법을 통해서 예술적으로 재해석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인수는 <오뚜기>를 내놓은 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근본적인 것은 힙합과 컨템포러리 움직임을 잘 어우러지게 하되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근육의 쓰임새다. 힙합은 웨이브라는 근육이 있고 무용은 라인의 근육이 있다. 근본적인 이들의 움직임, 그 자체에서 나오는 근육의 쓰임새를 가지고 작품을 완성시켜 나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인수 춤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몸 그 자체를 파고들어 '근육'의 차원으로까지 내려간다. 힙합 댄스는 바로 근육의 힙합적인 쓰임새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인수의 댄스에서 힙합의 일상성이 무대 위로 올라간 이후에도 변질되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정신, 힙합의 본질로 치밀어 올라가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자발성의 청소년 도시문화

2006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비-보잉은 한국 청년문화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다른 지역에 전파하는 이른바 '한류'의 중요한 레퍼토리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물론 주류 무대로 올라가면서, 정부나 문화기관의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소개되는 과정에서 스트리트 댄스의 힘, 힙합 특유의 날 것의 힘을 온전히 유지하는 일은 예전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크루들은 그와 같은 변화과정을 통해서 힙합의 본질인 '생활문화'의 측면을 잊지 않고 한국 젊은이들의 삶을 춤 속에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라스트 포 원은 예를 들어 '윷놀이에 제기차기', '팽이 돌리기' 같은 전통적인 테마를 춤과 연결시키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비보잉이, 다른 아시아권의 나라에 비해 강세인 것은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와 연관시켜야 할 것이다. 비보잉, 나아가 힙합은 본질적으로 도시 문화이기 때문이다. 도시에 적응해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이른바 '도시 문화' 속에서 길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하나 힙합은 그야말로 자발적인 문화다. 힙합을 누가 시켜서 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이처럼 완벽한 자발성이 보장되는 문화가 우리 청소년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메시지나 몸짓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힙합이 억압된 청소년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이것은 당신 것이다"

힙합은 언어를 가리지 않는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랩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힙합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일상을 당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라." 비트에 사설을 얹어 메시지를 전하는 간단하고도 독특한 방식, 비트에 몸의 기운을 실어 허공에 휘두르는 파워풀한 방식은 세계 어느 언어에도 '랩'이라는 장르를 실험하도록 만들었고, 어느 젊은이들의 몸으로도 브레이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콩고계 프랑스 래퍼인 '압드 알 말'(Abd Al Malik)은 프랑스어로 자기 자신의 상황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의 독특한 프랑스어 랩은 이른바 '해체주의 랩'(deconstructionist rap)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랑 코르 말라드'(Grand Corps Malade)는 아랍계 유럽인들의 삶의 조건을 힙합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간단하다. 힙합의 비트와 정신은 당신에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당신의 것이다."

그러므로 힙합의 틀 안에서 세계 어느 나라의 문화도 함께 어울릴 수 있다. 스리랑카 출신의 여성 뮤지션 ';엠아이에이';(M.I.A.)의 아버지는 타밀 지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게릴라였다. 엠아이에이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랩핑한다. 그녀의 라임은 혁명의 라임이다. 그녀의 비트는 힙합과 타밀 비트의 비밀스럽고도 행복한 대화를 시도한다. 그렇게 힙합은 그녀 안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이런 식이다. 힙합은 다른 지역문화가 결합하는 하나의 모듈로서 작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세계적인 진화방식이다. 그래서 힙합의 진화는 방향성이 없고, 인간적이며, 누구나의 것이 된다. 우리는 그 힘을 믿는다. 힙합은 내 것과 당신 것이 만나 이야기하는, 내 앞에 놓인 아무렇지도 않은 보통 테이블이다. 우리는 그 평범한 테이블의 힘을 믿는다.





성기완  

필자소개
성기완은 시인,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하여 시집『쇼핑 갔다 오십니까?』(1998)『유리 이야기』(2003)『당신의 텍스트』(2008)를 낸 바 있고 산문집으로『장밋빛 도살장 풍경』(2002)이 있다.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로 세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솔로 앨범으로《나무가 되는 법》(1999)《당신의 노래》(2008)를 발표했으며 그밖에 여러 실험적인 음악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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