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야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전시회는 조형적 표현이다”

양지연 _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과 교수

흥미로운 작가나 작품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흥미로운 작가가 아직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내게 남은 시간이 점점 적게 느껴진다.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되어 반갑다. 먼저 2010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임된 소감부터 말해 달라.

우선 인터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 감독으로 뽑힌 것 역시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도 큐레이터의 일원으로 참여했었는데, 그 성과가 이번 선임으로 연결된 것이라면 더더욱 기쁜 일이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 진화의 출발지

올해 10주년을 맞은 부산비엔날레는 2010년부터 현대미술제, 바다미술제, 조각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하는 1인 전시감독 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 세 행사의 성격이 유기적으로 연관되기 어려워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그만큼 감독으로서의 책임과 포부도 클 것이다. 이 세 개의 행사를 어떻게 아울러 부산비엔날레에 녹여낼 것인지 계획을 듣고 싶다.

세 개의 다른 전시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은 전시의 테마나 작품의 다양성을 갖는 한편, 관람객에게는 다소 복잡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하나의 테마에 집중하고, 커다란 하나의 전시가 복수의 전시장에서 펼쳐지는 형식을 취할 예정이다.

다만, 하나의 테마 안에서도 행사장 별로 특색이 드러나게 할 생각이다. 그 부분에서 바다미술제와 조각프로젝트가 갖고 있던 특성을 이어가고 싶다. 특히 이번 테마에는 '진화'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징인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진화는 바다에서 시작한다. 즉, 이 테마 설정 자체에도 '바다미술제'라는 명칭의 영향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부산비엔날레의 몇 가지 특성을 염두에 두고 그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내는 전시를 실현시키고 싶다.

지금까지 밝혀진 비엔날레 주제는 ';삶과 진화(Life & Evolution)';이다. 어떤 의도인가?

아즈마야 다카시이번 테마는 우리 인간이 두 가지의 시간 축을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중 하나의 축은 개인의 '인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무수한 사람들의 인생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진화'이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품이 인류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하거나 인류의 지적 진화에 공헌한다면 그가 실감하는 행복은 더더욱 클 것이다. 이런 점은 예술가뿐 아니라 과학자, 철학자, 사업가, 그 밖의 많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의 일부가 인류의 '진화'와 교차하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최고의 기쁨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작품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인생'과 '진화'가 교차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과 '진화', 이 두 가지를 대비시킬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진화'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개인의 '인생'을 불행하게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과학적 발명이 전쟁에 이용되어왔고, 자본주의의 발달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 개인의 인생이 다음 세대나 미래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만들고 싶다.


외국인 감독,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관계의 형성

자국의 비엔날레에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것은 최근 아시아권 신생 비엔날레의 새로운 경향으로도 보인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2006년 첫 행사에 이어 2회 행사를 일본의 평론가 후미오 난조(Fumio Nanjo)에게 예술감독을 의뢰했고, 광주비엔날레도 2008년 행사에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갖고 있는가.

문화는 상이한 가치관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른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에 관용적이어야 한다.

관객과 대화중인 아즈마야 다카시
나 역시 도쿄의 모리미술관에서 다음 시드니비엔날레의 감독을 맡은 데이빗 엘리엇(Davit Eliot) 관장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것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첫 외국인 관장이었는데,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유럽 사람들과 일본의 큐레이터나 미술가 사이에 큰 신뢰관계를 남겨주었다. 나도 그 후 상사와 부하라는 관계를 떠나 이따금 메일 등으로 그의 조언을 받고 있다.

즉, 외국인을 전시 감독이나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초빙하는 것은 그 당시뿐 아니라 미래의 문화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이번에 나 자신은 스스로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일 거다. 부산비엔날레는 애초에 한국과 일본의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회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첫 외국인 감독이 일본인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나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세계의 예술을 바라본다는 부산비엔날레의 관점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더불어 '외국인'으로서 그동안 한국의 전시기획에 참여한 경험의 이면을 들려 달라.

이따금 유럽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는 한국의 전시회를 조직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절차를 관료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관료적이라는 점에서는 일본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나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국의 전시회를 보면서 항상 놀라는 것은 시공업자들의 작업 방식이다. 전시실에 어제까지 없었던 벽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멋지게 서 있는 거다! 그들의 작업 속도와 집중력은 정말 놀랍다.


독립큐레이터, 미술관의 기본 업무 익혀야

도쿄 세타가야미술관 학예실에서 5년 근무 후, 주로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해 왔다. 일본과 한국의 전시문화와 독립큐레이터의 활동 여건에 대해 비교해 본다면?

독립큐레이터는 여하간 가난하다. 그 점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도 마찬가지이지만, '독립큐레이터'라는 단어만 유행하면서 미술관에서 기본적인 업무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독립큐레이터'라고 자칭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품의 취급방법이나 전시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필요한 팀워크 등, 미술관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독립큐레이터'라는 말은 자유롭고 화려한 인상을 줄 지 모르지만, 나는 착실히 연구하는 미술관의 큐레이터 중 존경할 만한 분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런 큐레이터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카시 감독의 큐레이팅 철학이랄까, 신념에 대해 들려 달라.

2009 부산 비엔날레 현장
'전시회는 조형적인 표현이다'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작품의 내용이 시각적으로 보다 더 잘 전달될까, 그걸 위해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야할까,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테마나 컨셉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도 분명 큐레이터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큐레이터가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 축적되어온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작가 만나면 남은 시간 부족하게 느껴져

2010년 행사 때까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 남았다. 그때까지의 일정이 궁금하다.

올해 안에 출품 작가를 대부분 결정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현재 매일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작가나 작품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흥미로운 작가가 아직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내게 남은 시간이 점점 적게 느껴진다.

어떻게든 남아있는 시간 안에 좋은 만남이 있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그리고 한국의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다. 지켜봐 달라.
 

아즈마야 다카시(Azumaya Takashi)- 1968년, 일본 미에현에서 태어나 도쿄국립예술대학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5년간 도쿄 세타가야미술관 학예실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근무했으며, 도쿄오페라아트시티갤러리, 요코하마트리엔날레 2001 스태프를 거쳐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도쿄의 모리미술관에서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02년 미디어시티서울 커미셔너, 2008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게스트 큐레이터에 이어 2009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독립큐레이터로서 전시기획과 집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기획한 주요 전시로는 <롯폰기 크로싱 2004> <KUSAMA Yayoi: Kusamatrix>(이상 도쿄 모리미술관)<OP Trance!>(2001, 오사카 KPO 기린플라자)<Tragible Sound>(2000, 서울) <Art/Domestic-Tempertature of the Time>(1999, 도쿄 세타가야미술관) 등이 있다.




양지연  

필자소개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덧글 0개

덧글입력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