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김의준 LG아트센터 대표

벤치마킹에서 벤치메이킹으로

이승엽 _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CEO에게 듣다]는 문화예술분야의 CEO를 만나 예술경영의 철학과 방향을 듣는 기획이다. 최고경영자들의 경험과 비전이 현장실무자와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주


 

"남이 하지 않은 것,
생각은 했을지 모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
하기 까다로운 것으로 특화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공연시장에서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 '다른 기호'를 가진 관객을 확보하자고 생각했다.
자체제작 능력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프리젠터 역할을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김의준

 


김의준 대표가 LG아트센터 건립프로젝트에 뛰어든 것은 1996년이다. 극장이 개관한 것이 2000년이니 개관 4년 전에 일을 시작한 셈이다. 그가 예술의전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예술의전당 음악당 개관 4년 전이었다. 당시 그는 건설 부문에서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하드웨어 건립이 아닌 아트 센터 경영자의 역할을 전제로 한 것이다. 건립과 소프트웨어를 다 아는 전문가는 지금도 드물지만 당시에는 전무했다.

국내 여느 공연장들과는 달리 다양한 사전조사와 긴 준비기간을 거쳐 2000년 3월, LG아트센터가 개관했다. 5개월간 계속된 개관축제에는 데레보, 피나 바우쉬, 로얄 세익스피어 컴퍼니, 써커스 오즈, 홍혜경 등 쟁쟁한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그 축제의 슬로건이 "밀레니엄 크로스 오버"다.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한 LG아트센터 개관은,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 공연장 판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 않은 것, 하기 까다로운 것 그리고 다른 기호를 찾아라

LG아트센터는 그 후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으며 공연예술부문의 독특한 리더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는다. 최근에는 연달아 '가장 좋은 공연장' 또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공연장'으로 선정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1900년대 후반에 예술의전당이 그랬던 것처럼 2000년대에 LG아트센터는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했다.

그는 LG아트센터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믿었을까?

"글쎄. 오히려 근심이 많았다. 알다시피 바로 옆에 예술의전당이라는 거대한 예술센터가 있지 않나. 예술의전당과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1천석 규모의 홀을 하나 가진 공연장인데다 후발주자다. 하나 있는 극장은 소위 다목적공연장이라 예술의전당의 전용 공연장 뭉치와 경쟁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당시 예술의전당은 이미 시장에서 독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남이 하지 않은 것, 생각은 했을지 모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 하기 까다로운 것으로 특화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공연시장에서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 '다른 기호'를 가진 관객을 확보하자고 생각했다. 자체제작 능력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프리젠터 역할을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데 다른 제작자나 공연장은 할 수 없었을까? 불과 10년 안쪽의 일이지만 새삼스럽다.

"인프라도 그렇고 스킬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한 곳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극장들은 1년 단위의 예산편성에 의존하거나 재정안정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모기업으로부터 받은 안정적인 펀드를 가지고 시작했다."



국내 최초 시즌제 도입과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지속성의 경쟁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 그의 선택을 뒷받침한 것은 국내 최초의 시즌제 운영이다.

"현장에 투입된 것이 개관 4년 전이다. 여러 생각을 했다. 해외에 출장 나가보면 지하철 같은데 1년치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것을 보고 참 부러웠다. 우리도 해보고 싶었다. 적어도 1년 단위의 시즌 프로그램은 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 그것은 시차 없이 국제적인 현대 공연물을 좋은 환경에서 공연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이름을 알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LG아트센터'하면 떠오르는 공연이 무엇인가 물어보니 피나 바우쉬 같은 대가들의 이름과 함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빠지지 않는다. 그 덕을 본 것 아닐까?

2001년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우리 뮤지컬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큰 이정표를 남긴 작품이다.

"사실이다. 개관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직원들이 차 앞뒤로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TV광고도 해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이 한 방 터트려준 것이다. 이런 뮤지컬은 예술성과 완성도도 뛰어날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성사하기 어려운 조건의 뮤지컬이었다. 극장과 제작자 모두 윈윈한 사례라 본다."

그런데 그런 전략이 계속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LG아트센터가 블루오션에 처음 발을 디뎠다면 지금은 그 디딘 곳이 어느새 레드오션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 공연예술계가 그동안 몰라보게 성숙했다.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 여전히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데 쉽지 않다. 지역적으로 빈 곳을 노리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유럽과 미주 편중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 어떨까. 아프리카나 남미, 중동, 서아시아 등이 대상이 될 것이다. 공동제작도 비중을 넓히고 싶다.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와 한국의 아티스트가 공동 작업하는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다."

김의준과 필자 이승엽

소신껏 일하는 조직환경과 전문가에 대한 경청

최근 LG아트센터는 고객만족도 조사 등과 같은 조사에서 예술의전당 등 시장의 강자들을 제치고 연속해서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전략 같은 것이 있을까?

"특별한 전략은 없다. 그런데 우리 조직이 소통에 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콘센서스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정책적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LG아트센터라는 조직의 강점이다. 유연하면서도 전문성 높은 조직을 이끌어온 그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오는가?

"LG라는 기업이 그렇다. 일단 일을 맡기면 그냥 맡긴다. 내가 이 극장을 맡은 지 13년쯤 되었는데 항상 '극장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라'다. 나는 이것을 극장 조직에도 적용한다. 팀장과 담당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그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한다. 사실 나는 예술적 백그라운드가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장르의 선호도 없다. 우리 같이 다양한 장르를 수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연히 전문가나 전문 인력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이 일하는 것을 돕는다는 기분으로 일한다."

세금이 40%, 정부도 좀 도와줬으면

LG라는 기업 브랜드를 가진 것이 꼭 장점이 되지만은 아닐 것이다.

"왜 기업이 예술에 투자를 하겠는가? 결국은 기업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재정적으로는 손해지만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통해 보이지는 않는 큰 이익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경영자는 현명하다. LG아트센터가 관객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공연장과는 다른 미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관객지향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특별한 대접을 받는 극장'을 원한다. 초대권을 없앤 것도 그 생각의 일환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지불한 관객을 소중히 여긴다. 이를 통해 예술과 기업 사이의 매개자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다. 우리가 잘해서 기업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다른 기업들도 부러워하면서 이 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는가?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기업이 돈 벌려고 문화예술에 투자하겠나. 그런데 정부도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업을 하는데 세금이 40%다. 공익사업에 투자한 기업으로서는 좀 답답한 노릇이다."

소위 벤치마킹의 시대는 갔다

기업의 고위급 회의에서 LG의 1등 브랜드 상품으로 LG아트센터를 꼽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 그는 규모도 작고 매년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공연장이지만 결국 제 몫은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에 방문한 BAM의 카렌 브룩스 홉킨스 대표와 만난 얘기를 꺼낸다.

"우리 극장을 보고 '와, 세계에서 우리와 형제 같은 극장은 처음 본다'며 좋아하더라. 인사차 그가 특강하는 데 갔는데, 미안하지만, 새로운 것이 없었다. 생각이나 고민 등이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소위 벤치마킹의 시절은 갔다고 본다.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특강에서 돌아와 우리 직원들에게 우리는 '벤치메이킹'을 하자고 말했다. 예를 들어 LG아트센터에는 예술감독이 없다. 이런 사례를 해외에서는 신기해한다. 상식적으로 프로그램에서 예술감독이 없는데 수준과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프리젠팅 씨어터로서 LG아트센터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우리 식으로 한다'고 말해준다."

빠르게 선두주자로 나선 만큼 앞으로 10년은 긴 시간이다. 이 극장의 다음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홀 하나 있는 극장에 아트센터라 이름 지었다. 눈치 채었는지 모르겠다. 이 극장을 교두보로 명실상부한 아트센터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은 내 몫은 아니다. 10년 후의 미래는 미래의 선장에게 물어보라."

LG아트센터의 상징과 같은 그도 언젠가는 LG아트센터 호의 선장 역할을 마무리해야 한다. 두 메이저 공연장 생활을 마감하고 난 뒤 그의 미래는 무엇일까.

"모르겠다. 문화예술 근처에 머물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근처'는 어디일까? 혹시 그는 세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입이 무거운 그에게서 그 이상은 들을 수 없었다.

김의준 대표는 누구
1950년 경북 김천 출신.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주로 현장근무를 하다가 예술의전당 건립공사를 계기로 예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예술의전당 개관 이후에도 예술의전당에 남아 예술경영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96년 LG아트센터의 개관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예술경영인의 길에 들어섰다. 예술의전당 12년, LG아트센터 13년 등 25년 동안 두 공연장의 건립과 개관, 영광을 모두 맛본 드문 이력의 소유자. 현재는 연암문화재단의 부사장으로 LG아트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승엽
필자 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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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해웅
  • 2008-11-14 오전 10:25:24
질문과 답변 모두 빛이 나는군요. 귀 담아 들을 내용이 많은 좋은 인터뷰 기사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 계속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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