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F1]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

동인제극단의 레파토리 성공기

김소연 편집장

 

이제 연극제작도 전문적인 프로듀서시스템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소극장 100개 시대 제작 기획의 전문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나 또한 여전히 동인제 극단의 역할도 필요하다. <오아시스세탁소> 15만의 성공신화에서 15만의 숫자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대학로.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명륜동 일대를 아우르는 이곳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소극장 100여 개가 밀집해 있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다는 이곳은 한국연극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이나 다름없다. 채 50석을 만들기도 어려운 혜화동1번지가 있는가 하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접 운영하는 아르코극장이 있고, 규모 있는 민간극장으로는 선구적이라 할 동숭아트센터가 있는 곳이다. 대학이 직접 운영하는 강의실과 극장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는가 하면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제작 중심의 소극장이 속속 개관하고 있고 또 한편에는 여전히 동인제 극단을 유지하면서 극단이 직접 운영하는 극장들이 있다. 갓 학교를 졸업한 젊은 연극인들의 공연부터 스타캐스팅 등의 제작능력과 저널의 연극지면을 쥐락펴락하는 홍보력을 갖춘 규모 있는 제작사들의 공연들이 있고 그런가 하면 마치 극장이 실험실인양 자신이 추구하는 연극방법론을 묵묵히 지속하는 공연들이 있다. 대학로가 그 자체로 한국연극을 일컫는 말인 것은 이렇게 한국연극의 온갖 시도와 시행착오, 성공과 좌절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라이어'도 '연극열전'도 못 만든 '오아시스세탁소'의 성공

세탁기 모양을 본딴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 티켓부스지난 11월 8일 15만 관객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돌파한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이하 <오아시스세탁소>)은 이미 대학로 성공 신화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채 100석도 되지 않는 작은 극장에서 시작하여 불과 3년여 만에 이룬 이 기록은 지난해 10만 관객을 돌파할 때부터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이다"는 평가처럼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이즈음 소극장 100개 시대를 두고 관객층의 뚜렷한 변화 없이 늘어나는 극장들이야말로 도리어 우려되는 현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은 이즈음 <오아시스세탁소>의 성공은 매우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로의 연극제작 환경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오아시스세탁소>의 성공은 비단 15만이라는 경이적인 숫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 흥행 성공작으로 치자면 시리즈까지 제작될 정도로 탄탄한 관객층을 가지고 있는 <라이어>는 지금과 같은 기획제작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이미 대중들의 기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고 이를 토대로 성공적인 콘텐츠를 발굴하여 흥행을 일구었다. 올해 공연가 화제의 첫 손에 꼽아야 할 '연극열전2'는 스타마케팅, 검증된 희곡 등으로 오픈런과 같은 장기 공연이 아닌 다양한 레퍼토리로 흥행에 성공했다. 매출액만이 아니라 '연극열전'이라는 브랜드 가치까지를 셈한다면 대학로 소극장 제작으로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오아시스세탁소>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획기적인 제작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아니다. 이즈음 제작비의 압박으로 2인극이 성행하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10명의 배우가 무대에 선다. 웃음은 있지만 잘 계산된 코미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멜로드라마는 더욱 아니다. 처음 전용극장을 열었던 당시에 이미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관람료가 2~3만원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에 <오아시스세탁소>는 그 절반이라 할 만원으로 티켓 가격을 낮춤으로써 다른 제작자들이나 극장으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세탁소>는 극단의 정기공연 레파토리를 15만 관객의 대중적 작품으로 일구었다. <오아시스세탁소>의 성공을 기반으로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극장 모시는사람들을 개관했다. 연극을 만드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극장과 레파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BR>


전용극장, 입소문 3개월 제작비 1억원의 종자돈이 되다

15만 신화가 시작된 당구장을 개조한 100석 전용극장이 문을 연 것은 2005년 9월 이었지만 <오아시스세탁소>가 처음 공연된 것은 2003년 자유소극장에서 이다. 초연 당시 짧은 일정의 극단 정기공연임에도 <오아시스세탁소>는 매회 객석을 가득 메웠다. 작품에 대한 평도 좋아 서울연극제공식초청작으로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한편 그해 '올해의 베스트 연극' '동아연극상 희곡상' '연극협회 우수연극상' '희곡작가협회 희곡문학 본상' 등을 수상한다. 이듬해에는 성당극장 순회공연도 치르게 되는데 대학로로 상징되는 연극관객들과는 또다른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순회공연에서도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아시스세탁소>는 이렇게 몇 차례의 공연을 통해 작품의 가능성에 대한 1차적 검증은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많은 동인제 극단들도 경험하는 것이다. 축제, 지역순회 등 여러 무대를 통해 일정하게 검증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극단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학로에서의 장기공연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많은 극단들이 정말 '좋은 작품'으로 대학로 장기공연을 도전하지만 고배를 마시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극단이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텅 빈 객석은 창작자들의 열정마저도 차갑게 빨아들인다.

한 작품만을 위한 전용극장이 개관하기는 최초였던 오아시스세탁소 전용극장은 입소문 3개월, 제작비 1억 원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다. 정말 좋은 작품이다, 관객들이 찾아만 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홍보수단이라 할 입소문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 기간을 3개월이라 할 때 대관료 등을 포함해서 최소한의 제작비가 1억 원이었다. 극단으로서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용극장이었다. 낡은 건물 지하 당구장을 극장으로 만들기 위해 극단 식구들이 함께 먼지를 쓸고 곰팡이를 닦아냈다. 객석도 사무실 의자를 잘라 만들었다. 지인이었던 건물주는 파격적인 임대료로 이 무모해 보이는 작업을 격려해줬다. 특별한 장치나 디자인도 없었다. 극장의 설비는 최소한으로 했다. 하지만 협소한 극장 자체는 '동네의 오래된 세탁소'라는 작품의 공간에 딱 들어맞는 절묘한 '간지'를 발했고 바짝 당겨 앉은 객석과 무대는 교감의 밀도를 높였다. 전용극장은 이렇게 높은 대관료를 해결함으로써 그 자체가 <오아시스세탁소>의 가장 중요한 종자돈이 되었다.

지금은 오프대학로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극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불과 3년 전 <오아시스세탁소> 전용극장이 개관할 당시만 하더라도 혜화로타리에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 했던 그곳은 명륜동 주택가였다. 최초의 시도는 다시 이어졌는데 극단의 기획실에서는 극장 위치를 안내하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비록 좁고 불편한 극장이지만 관객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하고자 노력했다.


박리다매와 10만까지의 욕심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 티켓부스 앞에 길게 줄을 선 관객들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오아시스세탁소>는 극장을 옮겼다. 지금은 라이프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객석도 150석 정도로 많아지고 무엇보다 혜화로타리 4번 출구 바로 앞이라는 극장의 위치가 장점이다. 그러나 극장을 옮기고 대관료의 부담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하여 극장을 옮기면서 '만원'이라는 파격적이었던 관람료를 100% 인상하게 된다.

전용극장을 열고 파격적인 저가 관람료를 결정하기까지 극단도 고민이 많았다. 기획 홍보 등의 스탭을 제외하고도 공연 한편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출연 배우만 10명인데다가 조명 음향 등의 오퍼레이터와 극장 진행요원이 필요하다. 아무리 극장 대관료를 파격적으로 줄였다고 하지만 극단 내부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학로의 공연제작팀들의 눈길도 곱지 않았다. 또 저가 티켓이 꼭 마케팅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저가 티켓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낮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저가 관람료를 결정했던 것은 마케팅적 측면에서의 고려가 아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연극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제작자든 기획자들 작가든 배우든 연극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 로망을 밀어붙였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았던 셈이다. 무엇보다 대상층이 넓은 작품의 특성과 맞아 떨어졌던 것. 초연부터 지난 16일 일요일 공연까지, 고집스러운 세탁소 주인 강태환으로 분하여 <오아시스세탁소>의 역사를 써왔던 배우 조준형은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가족극이 아닌가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세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공연을 봤다. 입소문은 학생들의 리포트에서 시작되었다. 극단과 친분이 있는 선생님 몇 분이 학생들에게 공연을 추천했다. 학생들은 과제를 위해 극장에 왔지만 "공연을 보면서 많이 생각났던" 엄마와 함께 극장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또 자신의 엄마를 모시고 극장을 찾는다.

하지만 넓은 관객층이라는 작품의 특징은 '고안'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오아시스세탁소를 운영하는 강태환의 어느 이상했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강태환과 그의 세탁소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블루사이공> 등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전작들이 사회 역사적 소재를 다루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하찮은 일이라 여길 수 있는 세탁업을 아비로부터 물려받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주인공 강태환은 사회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도 작은 것, 여린 것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두드러졌던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전형적인 인물형이다. 자신의 일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통찰하는 자의 지혜에 대한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모심'은 이 작품에도 여전히 드러난다.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세탁소를 아비처럼 그렇게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꿈의 전부인 것 같은 강태환의 소박함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우리의 시대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 작은 이야기에서 각자 저마다의 자기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초연과 전용극장 이후 작품의 변화가 없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배우 조준형은 완고한 고집쟁이에서 재미있는 아저씨로 부드러워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관객과의 호흡에서 온 변화이지 장기공연을 위한 '고안'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10만까지는 욕심을 부렸지만" 그 다음부터는 숫자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에는 성공한 대박 콘텐츠의 주인공이라는 자부심보다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연극을 많은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다는 뿌듯함이 더 강하게 묻어난다.


15만을 넘어 <오아시스세탁소>는 또 다시 실험 중

<오아시스세탁소>는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지만 되돌아보면 무모해 보이는 선택들이 있다. 주택가 상가건물에 전용극장을 열었던 것이 그렇고 저가 공연료가 그렇다. 그럼에도 그러한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선택이 되었던 데에는 연극을 만드는 모든 이들의 확신, 즉 작품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주요했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오늘도 한국연극의 많은 이들은 '좋은 작품'에 대한 신념으로 최저생계비를 훨씬 밑도는 경제적 조건에서도 연극을 만든다. 그렇지만 경제적 조건이 말해주듯이 그러한 신념이 곧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오아시스세탁소>의 성공요인의 첫 번째를 '좋은 작품'에 대한 신념으로 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무모할 수도 있었던 선택들이 성공요인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믿음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연극제작도 전문적인 프로듀서시스템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소극장 100개 시대 제작 기획의 전문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나 또한 여전히 동인제 극단의 역할도 필요하다. <오아시스세탁소> 15만의 성공신화에서 15만의 숫자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내년이면 <오아시스세탁소>는 지금의 공연장을 떠나 다시 전용극장을 열 계획이다. 마로니에공원 뒤편, 시쳇말로 대학로 강남 노른자위다. 명륜동 주택가 상가건물에서 시작해서 15만의 신화를 만들고 대학로 중심부로 들어서는 <오아시스세탁소>는 이제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떠한 예기치 않은 성공이 놓여 있을지, 아니면 난관이 놓여 있을지 이들의 새로운 시도가 또 궁금하다.
 


 

김소연필자소개
김소연 편집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 <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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