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대표

아시아 중심 네트워크의 꿈

양지연 _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교수

[CEO에게 듣다]는 문화예술분야의 CEO를 만나 예술경영의 철학과 방향을 듣는 기획이다. 최고경영자들의 경험과 비전이 현장실무자와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주

제도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젊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장으로서 지난 10년간 대안공간이 미술생태계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1999년 출발한 대안공간 루프는 대안공간의 문화를 주도해 온 곳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대안공간들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나가고 있는 이즈음 대안공간 루프 서진석 대표를 만나본다.

 서진석

지난 10년간 대안공간 루프가 겪어온 변화의 주요 전환점은 어떤 것이었는가?

먼저 2000년 경 대안공간에 정부 지원이 시작된 것이 구조적인 전환점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었고 정부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그나마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3년 전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건물은 2005년에 신축한 것인데, '대안공간'답지 않은 규모로 인해 오해도 있었다. 이 하드웨어가 루프의 활동에 어떻게 작용했는가?

9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 흐름이 크게 볼 때 세계화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 이전에는 서구 주류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의 간극이 있었지만 지금은 간극이 줄었을 뿐 아니라 동시적으로 가고 있다. 4~5년 전부터 우리 루프가 다른 대안공간과 차별화 해 온 지점은 국제교류였다. 여기 이사 온 3년 전부터는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이제는 과거처럼 우리나라 안에서의 대안성이나 우리나라와 세계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고 보았다. 세계 미술이 거의 동시적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미술계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루프가 추구하는 대안성이다. 루프는 5~6년 전부터 조금씩 국제교류를 해왔지만 이쪽으로 이사 온 다음 그런 개념의 국제교류를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지금은 "GO EAST"의 시대

그렇다면 향후 5년간의 계획은 어떠한가?

내적으로는 개인적인 아이디어나 에너지가 4~5년 지나면 소진될 것 같고, 지금 3~5년이 아시아 미술계에 너무나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기회가 많이 오는 시기다. 21세기가 되면서 사회 경제의 헤게모니가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여러 가지 환경들이 과거의 서구주도형 현대미술이 아니라 아시아 스스로 세계무대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주도하는 시기가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꿈은 아시아 미술계의 루프, 세계 미술계의 대안공간 루프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향후 5년의 계획이다.

그래서 그런 준비를 실질적으로 해왔다. 예술과 자본의 결합 양상을 살펴보는 '아트 앤 캐피탈'이라는 포럼도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계속 진행 할 프로젝트이고, 미디어아트 아카이브의 네트워크를 위한 포럼은 내년 2월에 3회째 열게 된다. 여기에는 세계 주요 미디어아트 전문기관들이 참여하여 공동 상영 프로그램이나 담론을 만들어낸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그 허브를 한국에 만들고 싶은 거다. 현재 러시아 현대미술전을 하고 있고, 내년 1월에 터키 현대미술전, 4월 일본 현대미술전, 5월 영국 현대미술전 등 국제현대미술전을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젊은 큐레이터 포럼이 있다. 일생일대의 꿈의 프로젝트인, 비엔날레나 아트페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문화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과거 우리 원로 작가들이 100을 노력하여 100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200-300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고, 우리가 안하면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데서 한다. 1~2년 안에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면 접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로 중요한 대안성이다.

많은 문화예술 기관들이 서구일변도의 국제교류에서 좀더 다양한 국가들과의 문화교류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실제로 느낀 것은?

매우 재미있다. 외국 큐레이터들과 만나면, 이제 모두 "고 이스트(Go East)"라고 말한다. 과거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서구 주도의 불균형적 세계화가 진행되어왔다면, 적어도 미술계에서는 균형화된 세계화를 만들 수 있고 이상적인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개념에 다들 정말 좋아한다.

외국 큐레이터들과 많은 것을 같이 하고 싶다. 누구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돈도 있어야 하지만 네트워크의 문제인 것 같다. 여러 국제행사를 하며 느낀 것은, 비지니스적인 관계보다 '인터 퍼스널 릴레이션'(inter-personal relation)이라는 게 더욱 중요하는 것이다. 국제행사를 할 때는 좋은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좋은 네트워크, 인터 퍼스널 릴레이션십을 가지면 너무도 수월하게, 똘똘 뭉쳐서 잘 만들어갈수 있겠더라.

돈 많이 받고 들어와서 발제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버리면 그만인 그런 초청행사는 무의미하다. 작가든 큐레이터든 돈보다는 좋은 일을 같이 하는 데서 동기가 생긴다. 그런 관계만 만들어지면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언어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미술 발전, "시장자유주의적 경쟁논리와 반대로 해왔기 때문"

대안공간 운영의 실제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 대안공간들이 지속성의 관점에서 스스로 최대 난점으로 꼽아온 것은 재정적인 부분이다. 루프는 재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사실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대안공간들을 구민센터처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각대안공간 루프 전경(맨위)과 내부(위) [사진출처: 대안공간루프 홈페이지] 구마다 대안공간이 하나씩 있다. '얼터네이티브 스페이스', '아티스트 런 센터', '아트 이니셔티브' 식으로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눌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안공간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미술관이나 상업화랑들과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실험성을 지향하다보니 대중과는 약간 괴리가 있어 입장료 등을 통해 대중의 직접적인 후원을 받기도 힘들다. 상업화랑처럼 작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떳떳이 할 입장도 안 되고. 대안공간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작게나마 정부지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후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리나라 미술계가 아시아에서 90년대 말부터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미술정책이 타국가에 비해서 시장자유주의적 경쟁논리와 반대로 해왔기 때문이다. 영국은 모든 것이 시장으로 다 개방되어 버리지 않았나? 그것이 붐은 만들었지만 지금은 몰락하고 있다. 그 반대로 했던 것이 우리나라 미술계가 업그레이드되는데 굉장히 도움되었다고 본다. 정부가 대안공간에 지원하는 것에 일본과 중국에서는 놀란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요즘 정책은 오히려 바뀐다는 징후가 농후하여 굉장히 염려되는 부분이다.

솔직히 루프는 여기로 이전한 후 정부 기금 자체가 큰 혜택은 못된다. 정부 지원은 전체 경비의 30%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해결한다. 기업 컨설팅이나 기업 아트 마케팅을 통해서 충당하거나 이 안에 디자인 사무실이 있어서 거기서 돈 되는 일은 다 한다. 작가 리플렛, 도록, 출판, 디자인 등등. 그러나 이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기업 후원도 한창 되다가 지금 끊기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해답은 잘 모르겠다.

기업의 후원은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져 왔는가?

그렇다. 이제 기업 후원 쪽에 선수가 되었는데(웃음), 우리나라에는 순수한 메세나 개념은 없는 것 같다. 아트 마케팅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에서는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묻는다. 심지어 방송 편성표까지 짜서 갖다 줘야지 돈이 나온다. 윈-윈하는 식으로 마인드를 바꿔야지, 어쩔 수 없다.



문화허브, "철저히 사람이 만드는 것"

미술계의 최대 아젠다는 무엇이라고 보나?

먼저 선택과 집중이다. 정부 지원이든, 기관 운영이든, 선택과 집중이 되어서 뭔가 제대로 된 곳에 투자하고, 제대로 마케팅 해야 한다. 현대 예술의 정수를 보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아우라(aura)만 만들면 그게 바로 문화허브가 된다. 그런 문화 중심은 대형 행사나 하드웨어가 아니라 철저히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창작 중심이 아니라 창작-유통-소비의 다면적, 유기적 지원이라든가 경영전략이 필요하다. 창작만 집중적으로 부흥시키는 전략만 짜면 유통이나 소비가 주저앉게 된다. 요즘에 얘기 되는 것처럼 세계적인 스타 작가뿐만 아니라 스타 큐레이터도 나와야 하고 스타 콜렉터도 나와야 한다. 대상을 내국인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인으로 두고, 창조적인 전시, 미래지향적인 전시와 소통 방식을 만드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대중문화의 한류는 일단의 반대급부도 있지만, 순수예술의 한류라면 그런 것을 걱정 안 해도 된다. 동양의 독자적인 감성을 가지고 순수예술의 대중화를 통해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양지연필자 소개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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