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리소설읽는밤② 일본 사회파 추리

일상에 편재하는 범죄와 사회악

김봉석 _ 대중문화평론가, 컬처매거진 [Brut] 편집장

② 일본 사회파 추리- 사회파 추리소설은 중년 남성의 불륜 이야기나 회사에서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부패 등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독자에게 실제 주변의 일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했다. 즉 추리소설이 특이한 사건과 기발한 트릭만을 묘사하는 '게임'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 편재하는 범죄와 사회악을 그리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것은, 일본 추리소설의 한 경향을 이른다. 일단 『검은 집』의 작가인 기시 유스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스터리의 번성기에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등을 필두로 엽기적이며 괴기스러운 환상적인 미스터리가 주류였고 이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가 대두했다. (중략) 한편 엘러리 퀸이나 S. S. 반 다인의 영미권 고전 추리소설을 주로 읽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논리로 의문을 규명한다는 원점으로 회귀하자는 운동이 생겨났다. 이것이 신(新) 본격 추리소설이다." 아주 거칠게 정리한 것이지만, 이것이 일본 추리소설의 커다란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사건, 기발한 트릭을 넘어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초사회파 추리소설이 시작된 것은 1958년의 일이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새롭게 추리소설 붐이 일어났다.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추리소설 애호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마츠모토 세이초를 필두로 한 '사회파' 추리소설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사회현상이 되었다. 마츠모토 세이초는 추리소설이 '너무 트릭만을 중시하며 유희적 경향으로 빠지는 것에 반대하여 극한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고들 것'을 주장했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등장한 후 모리무라 세이치, 미즈카미 츠토무 등의 작가들도 기이한 사건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보다는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작품의 사회성과 범인의 동기 그리고 심리를 중시하는 작품들을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불렀다.

마츠모토 세이초가 인기를 끈 이유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통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중년 남성의 불륜 이야기나 회사에서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부패 등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실제로 주변의 일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했다. 즉 추리소설이 특이한 사건과 기발한 트릭만을 묘사하는 '게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 편재하는 범죄와 사회악을 그리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추리소설 마니아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가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게 된 것에는, 그런 핍진성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2007년 TV 드라마화된 비트 다케시 주연의 <점과 선>하지만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단지 동기와 사회적 근원만을 추적해간 것은 아니다. 『점과 선』은 규슈 지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녀의 치정에 얽힌 동반자살로 보였지만, 이면에는 기업의 부정부패가 뒤얽힌 오직(汚職) 사건과 은폐된 진실이 있었다. 1958년 당시는 신칸센이 막 운행을 시작했을 때다. 마츠모토 세이초는 도쿄에서 규슈의 하카타, 그리고 다시 홋카이도까지 연결되는 신칸센을 이용하여 교묘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어낸다. 기존의 추리소설 독자라면 『점과 선』에는 치밀하게 짜인 알리바이에 도전하는 즐거움이 있다. 일반 독자에게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즐거움이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마츠모토 세이초의 강건한 필력에 힘입어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소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에 거대한 사회악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추리의 재미만이 아니라, 사회의 어둠에 대한 것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범인은 오히려 희생자들…권력의 범죄 폭로

『점과 선』『제로의 초점』의 마츠모토 세이초와 『야성의 증명』『인간의 증명』의 모리무라 세이치가 형성, 발전시킨 사회파 추리는 일본 특유의 범죄소설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사회파 추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테마로 삼고, 탐정보다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는 스타일로 발전해갔다.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오히려 희생자인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과거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하여 범죄를 계획한다. 사회파 추리는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개인이나 집단의 피해, 정치권력의 폭력 등 명백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권력의 범죄를 폭로하는 소설로서도 역할을 했다. 사회파 추리는,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다양한 범죄와 음모를 그리는 소설인 것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을 거칠게 정의한다면,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파고드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추리소설 중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사건이란 대체 무엇이 있을까? 니시오 이신의 『잘린 머리 사이클』처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캐릭터가 등장하여 전혀 있을 법 하지 않은 기이한 사건들을 풀어가는 것? 귀신이나 요괴 등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사건들? 최근의 라이트 노벨 같은 경우는 예외이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나 코넌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 등 초기의 추리소설들 역시 기이한 사건들을 풀어가다 보면, 현실 속의 범인과 동기가 드러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시리즈. <인간의 증명><야서의 증명>은 한국어로 번역 · 출판되었다.


범죄의 끝에는 세계와 인간의 내면이

사실 사회파는 일종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사회파 추리를 '본격추리소설'과 대립되는, 독립된 장르로 보지는 않는다. 트릭과 구조를 중시하는 본격이란 것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제에 사회성이 있고, 논리적인 수수께끼 풀이가 공존하는 것은 결코 모순된 일이 아니다. 사회파가 나오고, 다시 신본격이 나오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융합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는 고층빌딩의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트릭이 중요하게 제기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범인의 심리 또한 중요하게 그려진다. 『죄와 벌』처럼, 범죄의 이유를 쫓아가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인간 내면의 탐구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크스의 산』의 다카무라 카오루와 『그로테스크』의 기리노 나츠오 등은 이미 추리소설의 범주로 제한할 수 없는 광대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본격 미스터리를 읽고 싶다면 『점성술 살인사건』의 시마다 소지, 『도착의 사각』의 오리하라 이치, 『십각관 살인사건』의 아야츠지 유키토,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의 우타노 쇼고, 『쌍두의 악마』의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의 작품이 있다. 사회파 추리의 대표작으로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화차』, 다카노 카즈아키의 『13계단』, 가키노 료스케의 『와일드 소울』 등을 들 수 있다. 서구 미스터리에서는 사실 사회파와 본격이라는 구별이 별로 의미가 없으니 마이클 코넬리, 데니스 루헤인 등 유명 작가의 작품부터 찾아 읽는 것이 좋다.

 



김봉석  

필자소개
김봉석은 [씨네21] [한겨레]에서 기자로 재직했으며 현재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컬처매거진 [Brut]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전방위 글쓰기』등의 책을 썼고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등을 엮었다.


 

 

 

 

 

 

덧글 0개

덧글입력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