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리소설읽는밤③ 미스터리 시리즈의 즐거움

미스터리, 인간이라는 수수께기 풀기

김봉석 _ 대중문화평론가, 컬처매거진 [브뤼트] 편집장

연재순서- ③ 미스터리 시리즈의 즐거움: 범죄 사건이나 트릭에 매혹되는 것 이상으로, 탐정이나 형사의 캐릭터에 빠져드는 것이 또한 추리소설의 즐거움이다. 독자들로서는 홈즈나 포와로처럼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집어들면 익숙한 캐릭터의 매력과 함께 신작에서는 어떤 독창적인 사건과 전개를 만날 수 있을까 설레는 것이다. 작가로서는 심혈을 기울여야 제대로 만들어지는 캐릭터를 작품마다 창조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셜록 홈즈, 에르퀼 포와로, 브라운 신부, 미스 마플, 필립 말로우, 마이크 해머, 긴다이치 코스케, 신주쿠 상어…. 추리 소설 독자라면 당연히 기억하는 이름들이 있다. 추리소설에서 탐정이나 형사의 캐릭터는 가장 중요한 매력 중 하나다. 누구는 오로지 머리만으로 사건을 풀어내고, 누구는 오로지 몸으로 부딪쳐서 결국은 사건의 핵심을 짚어낸다. 말 많은 탐정도 있고, 폭력적인 탐정도 있고, 아웃사이더인 형사도 있고, 사회부적응자인 탐정도 있다. 범죄 사건이나 트릭에 매혹되는 것 이상으로, 탐정이나 형사의 캐릭터에 빠져드는 것이 또한 추리소설의 즐거움이다.

길버트 윌킨슨이 그린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미플독자들로서는 홈즈나 포와로처럼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집어들면 익숙한 기대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피어난다. 여전한 캐릭터의 매력과 함께 신작에서는 어떤 독창적인 사건과 전개를 만날 수 있을까 설레는 것이다. 작가로서는 심혈을 기울여야 제대로 만들어지는 캐릭터를 작품마다 창조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주인공 캐릭터에 투여할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온전히 사건과 트릭 자체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캐릭터에 이미 빠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도 예상할 수 있다. 단 캐릭터의 매력에만 기대어 안이한 작품을 쓴다면, 아무리 매력적인 탐정이라도 쇠락하는 건 금방이다.


홈즈, 포와로, 미스 마플… 형사 탐정 캐릭터의 매력

전통적인 탐정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가 있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자이기도 한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는 남녀 탐정이 콤비로 사건을 해결한다. 잔혹하고 비극적인 범죄를 해결하면서 켄지와 제나로가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이 곁들여지면서 달콤씁쓸한 여운을 안겨준다. 『전쟁 전 한 잔』『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신성한 관계』『가라, 아이야 가라』『비를 바라는 기도』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아직은 『800만 가지 죽는 방법』과 『무덤으로 향하다』 두 권만 출간된 매튜 스커더 시리즈도 암울하기로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이상이다. 경찰 재직시에 오발 사고로 무고한 이를 죽였던 매튜 스커더는 죄책감 때문에 가정마저 깨지고, 알콜중독자로 전락한다. 지독한 절망 속에서, 자신의 처지보다도 비참한 희생자들을 만나면서 매튜 스커더는 조금씩 '알콜중독자 탐정'으로서 성장해 간다.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와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서구 미스터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데니스 루헤인과 「비를 바라는 기도」의 영문판과 한글판 데니스 루헤인의 탐정소설은 대부분 한국어로 번역 · 출판되어 있다.

 


철저하게 증거물에 기반을 둔 과학적 논리

요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CSI〉와 〈NCIS〉이다. <더 록> 등을 제작한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만든 〈CSI〉는 라스베가스 경찰의 과학수사대를 무대로 범죄 현장의 증거를 모으고 분석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화제를 모았다.〈CSI〉는 총이 인체를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나 뼈가 부러지는 과정, 내장이 파열되는 모습 등을 모형과 그래픽을 통하여 그대로 보여준다. 과학수사대원들이 증거를 통해 실제 범죄를 추정하는 과정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한 것이다. 시청자는 〈CSI〉를 통해 개별적인 증거가 어떻게 모여 범죄의 전체 윤곽을 잡아내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CSI〉를 시작으로 〈NCIS〉〈BONES〉등 법의학 증거를 통해 철저하게 과학적인 분석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수사물이 대거 등장했다.

〈CSI〉같은 이야기를 책으로 읽고 싶다면, 일단 퍼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가 있다. 『법의관』『흑색수배』『흔적』 등 13번째 작품까지 나온 스카페타 시리즈는, 버지니아 주 법의국의 컴퓨터 분석관으로 일하며 600여 회의 부검을 참관했던 작가의 경험을 한껏 살려 부검, 각종 잔류물, DNA 감정, 해킹 추적 등 과학적인 수사과정을 만날 수 있다. 화면의 사실적인 부검이 부담스러웠다면 여성이 수사의 주체로 활약하며, 내면의 불안과도 함께 싸워가는 스카페타 시리즈는 탁월한 선택이다. 또한 현장 수사 담당 형사 피트 마리노와 범인의 심리와 행동을 예측하는 프로파일러 벤턴 웨슬리가 섹시하면서도 명석한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와 협력하고 부딪치며 하나의 팀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영화 <본 컬렉터>의 한 장면. 소설에서 백인으로 등장하는 안락의자 탐정 링컨 라임 역은 덴젤 워싱턴이, 아멜리아 경관 역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스카페타 시리즈와 쌍벽을 이룰만한 것으로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가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본 컬렉터』를 비롯해 『곤충 소년』『사라진 마술사』『브로큰 윈도우』 등 8종이 나와 있다. 탁월한 법과학자였지만 사고로 척추를 다쳐 거의 전신불수가 된 링컨 라임이, 현장에서 그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아멜리아 색스 경관과 콤비 플레이를 전개하여 교활하고 지능적인 연쇄살인마들을 붙잡는 이야기다. 안락의자 탐정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라임은 철저하게 증거물에 기반을 둔 과학적 논리를 전개하여 범인의 의중을 감지하는 현대적인 명탐정이다.


공포, 모험활극, 요괴… 정통 미스터리에 다양한 장르 캐릭터 버무려

일본 추리소설에도 수많은 명탐정과 형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내가 죽인 소녀』의 사와자키, 『이방의 기사』『점성술 살인사건』의 미타라이, 『예지몽』『용의자 X의 헌신』 등의 탐정 갈릴레오 등등.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만화로 널리 알려진 소년탐정 김전일이 아닐까? 그런데 그 만화의 원류가 있다. 김전일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그는 바로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탐정이다.(긴다이치를 한글로 그냥 읽으면 김전일이 된다.) 『옥문도』『팔묘촌』『악마의 공놀이 노래』『이누가미의 일족』 등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70년대 말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며, 긴다이치를 일본 최고의 탐정으로 인식시켰다. 일본의 설화나 전승 민담 등에서 소재를 끌어온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을 받아 때로 공포소설에 가까울 정도로 섬뜩하게 뒤틀린 인간성을 보여주면서도, 때로는 모험활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액션도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추리소설의 본령인 수수께끼 풀이에도 정통한 작품이다. 일본인들이라면 더욱 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들 마음속의 어둠을 직시했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향취가 전혀 바래지지 않았다.

가장 일본적인 탐정을 하나 더 꼽는다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다. 신사의 신주이며 기도사, 음양사이기도 하고 고서점까지 운영하는 교고쿠도와 사람을 보기만 하는 것으로 과거를 읽을 수 있는 탐정 에노키즈, 그리고 교고쿠도와 에노키즈 사이에서 방황하며 기이한 사건에 말려들어 진술하는 역할을 맡은 소설가 세키구치는 『우부메의 여름』에 처음 등장하여 『망량의 상자』『광골의 꿈』『철서의 우리』로 이어진다. 외전으로는 에노키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백기도연대 시리즈';가 있다.

일본에서 1994년에 발표된 『우부메의 여름』은 정통 미스터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약간 특이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것, 사변과 요설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한다는 것, 직간접적으로 요괴가 사건의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 등등 특이한 성향 때문에 화제를 끌었다. 기묘한 트릭을 만들어 놓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독자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본격 미스터리 작가와 초자연적 존재인 요괴를 연구하는 요괴 전문가의 공존 자체가 아주 기이한 조화인 것이다. 우부메, 망량, 광골 등 요괴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 '교고쿠도' 시리즈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이 벌어진다. 요괴나 악마 같은 뭔가 초자연적인 설명이 아니고는 도저히 사건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요괴나 악마의 장난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교고쿠도' 시리즈에 존재하는 것은, 미망에 현혹되어 스스로 요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다. 결국 미스터리란, 인간이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장르인 것이다.






김봉석  

필자소개
김봉석은 [씨네21] [한겨레]에서 기자로 재직했으며 현재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컬처매거진 [BRUT]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전방위 글쓰기』등의 책을 썼고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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