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미호 <빌리 엘리어트> 제작사 매지스텔라 대표

“영화 공연에 걸친 경력을 높이 산 것”

김소민 _ 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

 

지난 11월24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론칭 간담회. 웨스트엔드에서 태어나 시드니와 맬버른, 브로드웨이를 거친 뒤 서울로 점프한 '빌리'를 만나려는 사람들로 간담회장은 빈자리가 없었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한국 공연에 대한 높은 관심과 더불어 쟁쟁한 대형 제작사를 물리치고 한국 공연권을 획득한 신생제작사 매지스텔라도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워킹타이틀, 직접 뮤지컬 제작해 대성공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런칭 간담회장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국 영화제작사 워킹타이틀의 2000년도 개봉작으로, 80년대 영국 북부의 탄광촌에서 편부 슬하에 치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11세 소년 빌리가 권투수업 도중에 우연히 참가한 발레 레슨에서 자신의 재능에 눈 뜨면서, 역경을 극복하고 발레리노의 꿈을 이룬다는 감동 스토리다.

뮤지컬은 2005년 5월 웨스트엔드 빅토리아 팰리스 시어터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를 감독했던 스테판 달드리(Stephen Daldry)가 연출하고 엘튼 존(Elton John)이 작곡을 맡았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의 투명한 목소리와 역동적인 춤은 보는 이들에게 놀라움과 뭉클한 감동을 안겨줬다. <빌리 엘리어트>는 전세계 뮤지컬계에서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작품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주목 받는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에 비해 위축돼 있던 영국 웨스트엔드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전세계 뮤지컬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초연 이후 런던에서 3년째 1500회 이상 공연하면서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으며, 2007년 12월 호주 시드니와 맬버른, 2008년 10월 미국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흥행 신화를 이어가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노팅힐> <러브 액추얼리>같은 영화로 잘 알려진 워킹타이틀이 뮤지컬 시장에 진출해 대성공을 거뒀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들의 성공으로 인해, 다른 영화제작사들도 자체 콘텐츠를 활용한 뮤지컬 창작의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오디션 방식도 새로웠다. <빌리 엘리어트>는 준비된 배우를 뽑지 않고, 기본적인 가능성을 검증 받은 어린이들에게 1년 여 동안 춤과 연기, 화술 등을 두루 가르쳐 '빌리'로 키워냈다. 무료로 진행되는 트레이닝 과정은 그 자체가 유력한 홍보ㆍ마케팅 수단이자,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공연을 보기 전부터 꿈을 향해 도전하는 어린 빌리들을 보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인종을 넘어선 예술적 포용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빌리는 백인으로 설정돼 있지만, 빌리가 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아프리카인이든, 아시아인이든 상관 없이 빌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빌리' 발굴이 가장 중요한 제작과정이자 홍보 마케팅 수단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말 그대로 초대형 프로젝트다. 빌리를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교육시켜서 최종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데까지만 2년 가까운 시간이 소비되는 데다가 엄청나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총 제작비가 135억에 달해, 장기 공연을 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론칭 기자 간담회 이후, 서울 신사동 매지스텔라 사무실에서 문미호(40) 대표를 만나 좀 더 자세한 마케팅 계획을 들어봤다. 그는 "2010년 8월부터 6개월간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1차 시즌 공연이 끝나면 지방도시를 순회할 계획이고 흥행이 이어지면 전용관을 마련해 상시 공연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작품에서는 '빌리'를 발굴해서 키워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공연 모습내는 과정이 제작의 일부분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홍보ㆍ마케팅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어느 쪽방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어린 아이가, 산골이나 바닷가 소년이 빌리가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들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는 겁니다. 그런 빌리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죠. 하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아요."

문 대표는 서울까지 오디션을 보러 오지 못하는 지방의 숨겨진 '빌리'을 찾기 위해 '찾아가는 오디션'도 계획중이고, UCC를 통해서 오디션에 참여하는 방법도 마련할 생각이라고 했다. 또, "탈락한 참가자들도 역경을 딛고 성공한 빌리처럼 다른 곳으로 도약할 수 있게 정서적으로 세심하게 배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드보이> 해외 프로모터였다는 것 알고 신뢰

문미호어떤 이들은 문미호 대표가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줄 알지만, 사실은 그는 공연계에서 잔뼈가 굵다. 97년부터 99년까지 기획사 태인 프로덕션을 설립해 록그룹 토토와 스모키 등의 내한 공연을 유치했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설앤컴퍼니 협력프로듀서(이사)로 일하면서 <델 라 구아다> <캣츠>의 수입 등 해외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2004년부터는 영화제작사 쇼이스트 이사로 재직했는데, 그 때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공연이 찾아왔다. 자신이 '2000년도의 잊을 수 없는 영화'로 손꼽는 <빌리 엘리어트>가 뮤지컬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것이다.

"2004년 가을부터 '빌리 엘리어트' 제작사인 워킹타이틀에 "당신들의 작품에 관심 있다"고 이메일을 보냈어요. 뮤지컬이 완성되기도 전이죠. 답장이 안 왔지만 계속 이메일은 썼어요. 담당자가 누군지라도 알아두려고 무턱대고 회사에 찾아간 적도 있었죠."

뮤지컬의 개막일이 2005년 5월 12일로 정해지자, 마침 UK영화제 때문에 런던을 방문했던 문 대표는 현지 관계자를 통해 5월 9,10일 프리뷰 공연 티켓을 구했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렸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탄생을 목격했다.

"첫날은 그냥 어딘가 얻어맞은 느낌이었는데, 둘째날 다시 보니까 장면 하나하나에 노래, 연출까지 가슴에 꽂히더군요. 해외 작품 중 한국 사람의 정서에 이렇게 딱 맞는 대형 뮤지컬은 없었어요. '꼭 수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문 대표는 한층 적극적으로 구애 작전을 폈다. 진심이 통했을까. 처음에는 묵묵부답이던 워킹타이틀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빌리 엘리어트>에 지독하게 관심 많은 한국인 제작자가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올드보이>의 해외 프로모터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화와 공연에 걸친 폭넓은 경력과 열정을 높이 샀다. 훨씬 많은 개런티를 제시한 경쟁사도 있었지만, 워킹타이틀은 결국 문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발판,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우리 뮤지컬 수출"

매지스텔라와 함께 <빌리 엘리어트>를 제작하는 신시뮤지컬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는 문미호 대표의 등장을 두고 "2세대 프로듀서의 탄생"이라고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1세대 프로듀서'가 국내에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소개하고 시장을 웬만큼 끌어 올렸다면, '2세대 프로듀서'는 해외 작품을 들여오는 것뿐 아니라 우리 작품을 들고 나가 밖에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3세대'에 이르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작품처럼 우리 뮤지컬이 세계 각국의 무대에 자유롭게 오르내리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문미호 대표 역시 "<빌리 엘리어트>를 발판 삼아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우리 뮤지컬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과 구분해서 '창작뮤지컬'이라고 부르지만, 앞으로 그 '창작'이라는 명찰을 떼어 낼 만큼 우리 것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민
필자소개

김소민. 헤럴드경제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지만 엉뚱하게 기자가 됐다. 사회부에서 경찰서를 내 집 같이 출입하다가 문화부 공연담당으로 온 뒤 밤낮으로 공연장을 들락거리고 있다. 공연보고 글쓰는 게 삶의 가장 큰 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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