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듣다] 구자흥 명동정동극장장

“문화를 쇼핑하는 거리를 만들고 싶다”

이승엽 _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

금년 11월 17일, 구자흥 당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이 명동정동극장장에 임명되었다. 그보다 달포 전에 그는 금년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 의정부와 안산에서 문예회관을 맡아 전국 최고로 이끈 CEO인 그가 금년 말에 한꺼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정동극장 근처의 정동극장 극장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임명된 지 2주 쯤 지났지만 안산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데다 감기 끝이라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와의 CEO 인터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히 내년 개관을 앞둔 명동예술극장이다.

 

'당연'하지만 엄청난 '적공'(積功)을 필요로 하는 기대들

명동예술극장, 어떻게 이끌지 다들 궁금해 한다.

구자흥맞다. 궁금함을 넘어 너무 큰 기대를 건다. 과도하다. (예를 들면?) '연극 중흥의 기대' 같은 것이다.(웃음) '이제 명동극장이 돌아가면 연극이 당장 활성화될 것이다'라고 말씀들 하신다. 내가 보기에 지극히 '당연'하지만 엄청난 '적공'(積功)을 필요로 하는 기대다. 일이 재미있겠다 싶어 맡기로 한 일인데 만만찮고 부담된다. 생각해보라. 하고 싶다고 공연장이라는 것이 당장에 명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작품마다 모두 잘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좀 차분하게 보도록 하자. 앞으로 명동극장은 어떤 극장이 될 것인가?

열정 있는 공연예술인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시민들은 재미와 의미를 찾으실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것은 차차 밝히겠지만 새 극장이 내게뿐만 아니라 연극인들에게 어떤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명동예술극장을 연극극장이라고 봐도 되는가? 당초에 정부는 '극예술전문극장'이라고 포지셔닝한 바 있는데?

그렇다. 그렇게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 '극예술전문극장'과는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별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연극과 무용의 장르간 장벽은 없어진지 오래 아닌가? 댄스 시어터도 공연할 것이다. 중심 프로그램이나 생각의 출발을 연극으로부터 전개하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짤 것인지 밝힐 수 있나?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 구체적인 구상은 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그림을 밝혀보면 이렇다. 첫째 대관이 없는 극장이 될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여러 수준의 기획공연으로 짤 예정이다. 자체 제작을 비롯해서 초청공연, 합작 공연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프로그램 포트폴리오를 구상해보겠다. 국립극단도 주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국내외의 주요한 축제들이나 공연장들도 협업의 파트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우리 공연예술계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도 올리고 싶다. 젊은 시절 내가 목격한 명동 옛국립극장의 인상 적인 프로그램이나 역할을 되살리고 싶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초반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오태석, 정일성 등이 참여한 겨울철단막극시리즈를 통한 젊은 모색 같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의미 있는 무대다. 명동예술극장이 그런 역할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 투자가 필수적일 텐데?

투자가 넉넉했으면 좋겠다. 이 극장이 상업극장이 아니고 본연의 미션을 달성하려면 안정적인 투자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현재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넘어가 있다. 내년에 30-35억원의 예산이 확보될 것으로 본다. 물론 그 정도는 충분한 예산이 아니다. 당장 자체 수입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예산 핑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가을에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한참 공사 중이더라. 그 와중에도 참 좋은 극장이 하나 만들어지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형을 보존한 것도, 힘은 들었겠지만, 참 잘한 일 같다. 개관에는 지장이 없겠는가?

임명이 되고 나도 가보았다. 공정이 80%가 좀 넘었다고 하더라. 엄청나게 땅값이 비싼 지역이라 한계가 크다. 예를 들어 연습실이나 사무실 공간도 부족하다. 명동 옛국립극장을 생각해서 극장장실을 예술인 사랑방으로 내놓을 생각을 했었는데 헛물을 켠 셈이다. 평당 4억원(!)이라고 하니 뭐라고 말도 못하겠다. 지금 남은 결정은 객석 의자 색깔이나 사양을 정하는 정도다. 내부 인테리어에 바짝 신경을 써 최대한 관객이 편안하도록 해보겠다. 하드웨어는 웬만큼 정해진 셈이다. 콘텐츠로 승부해야하는 극장이다.

명동예술극장은 공연예술인들도 그렇지만 명동지역의 상인을 비롯해 지역에서도 관심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상가번영회가 이번 명동예술극장의 복원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내일 그 분들도 만날 생각이다. 기본적으로는 그분들의 기대를 존중하겠다. 다만 극장이라는 데가 금방 화끈하게 결과가 나오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설득할 생각이다. 또 그런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리겠다. 극장이 본연의 임무를 다할 때 지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번 명동극장의 복원이 명동이라는 지역을 명품을 쇼핑하는 지역에서 문화를 쇼핑하는 지역으로 변화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본격적인 예술극장의 운영이 명동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을 것으로 확신한다.

구자흥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더 잘 할 것 같다"

화제를 좀 돌려보자. 연세가 지긋해서 중앙에 진출한 셈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는데 특히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사실 중앙의 번듯한 기관에서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에서 일할 때가 참 보람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재미있었다. 지역의 여건이라는 것이 좀 그렇지 않나. 열심히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그런 것이 흥미로웠다.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의정부와 안산에 특별히 빚을 진 사람이다. (그러나 세평은 그가 두 도시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정성을 기울인 베세토(BeSeTo)도 있지 않나?

베세토는 좀 특별하다. 좀 자랑하자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 연극인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금년에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스즈키 다다시가 공동제작한 작품이 있다. 스즈키가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가 형편없이 작은 우리 몫 제작비를 보태서 기꺼이 공동작업에 참여한 것은 그동안 쌓은 신뢰의 덕이라고 본다. 2000년에 국립극장에서 <춘향전>을 우리 스타일과 함께 가부키, 경극 스타일로 공연한 적이 있다. 그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열린 베세토연극제에서만 공연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성의를 보이면서 참여한 것은 한중일 연극인들 사이에 유대와 연대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예술경영을 하는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런 질문 하지 않을 수 없나? 나는 그런 것들이 싫다. 그래도 얘기해야한다면,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더 잘하는 것 같다. 요즘 같았으면 내가 대학이나 다니고 공연기획자로 행세할 수나 있었을지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처음 1만 원의 월급을 받고 실험극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 일반적인 사회 초년생들의 평균급여가 3만 원 정도 되었다. 지금도 그 정도 되지 않나? 당시 나는 궂은 일 전문이었는데 그만큼 경쟁률이 낮은 시장이었다. 그 덕을 봤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고 본다. 어려운 환경은 마찬가지지만 젊은이들이 일에 대한 철학도 또렷하고 인문학적 교양도 풍부하다. 그들과 얘기하거나 업무를 논의할 때 기분 좋은 적이 많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으면 조만간 연출가들의 독선을 제어할 그룹으로 역할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꿈이 있다면?

염치없는 희망인지 모르겠다. 낙향해서 한 2-300석 되는 극장을 운영하면서 소위 경영적 효율과 최고의 예술적 품격을 자랑하는 공간을 최고의, 그러나 소수의 팀으로 운영해보고 싶다. 그런 극장을 런던에서 본 적이 있는데 좋아 보이더라.

 

 

구자흥 극장장은 누구?
구자흥1945년 경기도 광주 출신.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또는 연극반 활동을 열심히 하고) 실험극장, 민중극장 등의 극단생활을 하다가 LG애드 등 광고부문에서 오래 일했다. 1990년대에 들어 다시 본격적으로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2001년에 의정부 예술의전당 초대관장을 맡으면서 예술기관의 CEO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6년 법인화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초대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에 명동정동극장의 초대 극장장을 맡으면서 초대관장 연속 3회라는 진기록을 썼다. 1994년 베세토연극제가 시작된 때부터 간여하다가 2005년부터는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금년에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명동예술극장은?
명동예술극장1935년 메이지좌(明治座)라는 이름의 영화관으로 개관했다가 해방후 1962년부터 1973년까지 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다. 남산에 국립극장이 개관하면서 폐쇄된 후 금융사에 매각되었다가 2003년 다시 정부가 사들여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6년 착공하여 내년 3월 개관할 예정이다. 552석 규모의 공연장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명동 최고의 요지에 있다.


 


(재)명동정동극장은?
1995년 개관한 정동극장과 2009년 개관할 명동극장을 통합 운영할 새 법인이다. 기존의 (재)정동극장은 1997년 출범했다. 문화관광부 소관 법인으로 이사장 및 극장장은 장관이 임명한다. 정부의 재정지원과 공연수입이 주요한 재원이다.

 


 

 

이승엽필자 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덧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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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춘
  • 2008-12-11 오후 10:28:48
정말 축하드리면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멋진 명동정동극장을 기대하겠습니다[Del]
  • 수현
  • 2008-12-12 오전 9:55:13
대관이 없는 극장이라니!! 힘드실 수 있겠지만 정말 기대됩니다~ 극장장님 화이팅!![Del]
  • 대한
  • 2008-12-12 오전 11:53:52
다시 복원된다니 정말~~!! 기대됩니다.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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