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알파] 음식읽기① 만화『심야식당』

스트리퍼가 전갱이구이를 주문한 까닭

김선미 _ 요리칼럼니스트

마릴린이 심야식당에서 주문했던 음식은 주로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이 좋아하던 것들이다. 반쯤 구운 명란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날 때는 명란을, 한국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는 김치를, 뼈를 잘 발라주는 안마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꽁치를 주문했다.
 
 

연재순서: ① 만화『심야식당』
 

미식의 취미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식당도 많고 맛난 음식도 풍부하다. 매스컴과 블로그를 통해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맛집에 관한 정보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지리멸렬하게 느껴진다. 넘쳐나는 음식 정보가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식당들 이외에 아무도 모르는 조그만 나만의 식당, 조용하고 소박한 작은 섬 같은 식당을 꿈꾼다.

그런데 정말 그런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 무렵까지. 사람들은 이름 없는 이 식당을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대체 손님들이 오기나 할까 잠시 걱정이 되겠지만, 의외로 이 식당에는 손님이 꽤 많다. 메뉴는 '원하는 대로'. 식당주인 겸 주방장 아저씨는 될 수 있는 대로 모두 다 만들어 주려고 하는 편이다. 이쯤 되면 이 식당이 도대체 어디냐고 묻고 싶어질 것이다. 심야식당은 일본의 만화 작가 아베 야로가 어느 뒷골목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박한 그림체로 그려낸 만화 속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기대와 달리 적당히 속은 기분이 든다면 당장 만화 『심야식당』의 한 페이지를 열어보자.

 

   

마음을 달래는 영혼의 음식

만화 심야식당 ⓒ 小学館

만화 심야식당
ⓒ 小学館

식당의 주방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10명 남짓 빼곡히 앉을 수 있는 이 작은 식당의 메뉴는 손쉬운 달걀말이나 문어 모양의 소시지 구이에서부터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스파게티까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척척 가능하다. 음식의 맛은 그때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에피소드라는 조미료가 첨가되어 더욱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세상 밖 어느 식당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 이 작은 식당에서는 자정을 넘긴 어두운 시간 단지 이곳만의 작은 등불을 밝히며 시작된다. 매일 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이 작은 식당의 주인공은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든 심야시간대에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니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불량배, 조직 폭력배, 동성애자, 안마사, 신문배달부 고학생, 살찐 고독녀, 장가 못간 대머리, 시집 못간 노처녀들, 밤무대 스트리퍼…. 그들은 일을 마친 늦은 시간 어두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심야식당의 빨간 등불을 보고 모여든다. 식당은 단지 식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충을 함께 이야기하고, 쓸쓸한 인생의 아픔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장소가 되곤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먹는 음식은 저마다 그들의 소울푸드가 된다.

그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직업과 인물이 있는데 다름 아닌 스트리퍼인 마릴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이름처럼, 가슴이 크고, 과감한 스트리퍼 연기로 매일 밤무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히로인이다. 개방적이고 솔직한 그녀의 직업처럼 그녀의 성격 역시 마찬가지여서 잦은 남성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현실과 달리 이 만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어두운 인물들은 마릴린처럼 미워하거나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각각의 인물들의 어두운 현실의 깊이에서 보이는 내면의 아픔과 진실을 함께 보여주는 아베 야로의 이야기와 소박한 그림체로 만들어가는 심야식당이 든든한 배경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주문메뉴가 '나'를 말한다

드라마 심야식당의 한 장면

드라마 심야식당의 한 장면
ⓒ2009安倍夜郎·小学館「深夜食堂」製作委員会

숱한 남성들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벗어야만 하는 마릴린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역시 순진무구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만화 5권쯤에 등장하는 멋쟁이 할머니는 과거에 스트리퍼로 이름을 날렸던 '로즈'라는 인물. 그녀는 많은 재산을 모아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귀부인 풍모로 등장, 심야식당 사람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로즈의 과거가 만화 속에 작은 반전을 만든다. 로즈의 정체는 심야식당을 매일 드나들다시피 하는 현직 스트리퍼 마릴린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다가 스트리퍼가 된 마릴린을 비난하는 옛 동료의 비웃음에, 로즈는 뮤지컬에서 춤을 추는 것과 밤무대 스트리퍼로서 춤을 추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항변한다. 그와 동시에 스트리퍼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로즈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기억하고 추종하는 남자 손님들을 통해 확연히 정체를 드러낸다.

그동안 마릴린이 심야식당에서 주문했던 음식은 주로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이 좋아하던 것들이다. 반쯤 구운 명란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날 때는 명란을, 한국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는 김치를, 뼈를 잘 발라주는 안마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꽁치를 주문했다. 자기 자신보다는 항상 사랑에 빠진 상대방에게 귀속되는 그녀의 소박한 심성을 보여주는 주문이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고 가족과 여생을 보내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까지 얻은 노년의 전직 스트리퍼는 과거의 삶에 대해 매우 주체적이면서도 확고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로즈가 심야식당에서 주문하는 음식인 '벌린 전갱이구이'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잘 구운 전갱이처럼 솔직담백하게

참조 이미지 - 전갱이 구이

전갱이는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생선 중 하나로, 감칠맛이 나고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구이나 회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20센티 정도 되는 크기의 전갱이가 맛이 제일 좋으며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좋다. 전갱이구이는 특히 내장을 제거하고 생선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깊숙이 칼집을 넣어 완전히 가운데를 벌어지게 한 다음 구워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전갱이구이는 스트리퍼로서 당당한 로즈, 그녀의 자부심에 가득 찬 삶과 어쩐지 어울리는 음식이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 그녀의 인생은 감칠맛 나고 잡냄새 없이 깨끗하고 담백한 전갱이구이 같은 것이다. 그녀 스스로 말하기를 "전직 스트리퍼니까 당연히 '벌린' 생선이 끌린다"는 소박한 이유가 그 전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심야식당』에서는 이렇듯 비사회적인 주인공들이 삶의 희로애락을 들려준다. 식당 주인과 손님들은 그렇게 매일 밤 모여 밥을 먹고 단골손님이 되고 나중에는 결국 가족이 된다. 로즈가 마릴린을 대변해주고 위로해주듯. 손님들은 손님들끼리, 혹은 심야식당의 주방장 겸 주인아저씨에게 위로 받고 의지한다. 인생의 어느 모퉁이, 쓸쓸하고 찬바람이 휑하니 부는 자정의 낯설고 어두운 뒷골목을 걷다가 단지 '밥'이라고 쓰인 빨간 등을 보면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보자. 이곳 심야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는 조금 달라진다. 따뜻한 음식 한 그릇과 함께 따뜻한 인간미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그런 곳, 서울에도 어딘가 이런 식당이 하나쯤 있다면 언제고 문을 열고 들어가 나에게 위로가 되는 소박한 무언가를 주문하고 싶다.



 
김선미 필자소개
김선미는 서강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강사로 활동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요리에 입문해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전통음식, 전통주, 전통차 분야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 인천여성복지관의 요리강사로 활동하며 요리와 음식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저서로는『런~의 맛있는 컬처 레시피』『휘리릭 밥상』『휘리릭 떡 해먹기』가 있다. 블로그
 
  NO.118_201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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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야식당
  • 2011-03-17 오후 4:11:59
너무 좋아하는 만화인데, 웹진에서 만나보니 너무 좋습니다. 저도 늘 심야식당 같은 식당을 만나길 꿈꾸죠. 잘읽었습니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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