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알파] 음식읽기② 고서『도문대작』

홍길동을 쓴 선비, 최초의 음식품평서를 쓰다

김선미 _ 요리칼럼니스트

먹는 것고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며 생명에 관계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을 밝히고 그것에 대해 기록하는 일은 당시의 선비로서는 불가능한 편견이 있었다. 아마 보통의 선비라면 이러한 기록은 상상 속에서만 끝났겠지만 허균에게서는 그러하지 않았다.
 
 

연재순서: ② 고서『도문대작』
 

아침에 일어나 보름 전쯤 담가둔 방풍나물 장아찌를 열어 보았다. 방풍나물의 독특한 향기와 새콤달콤 어우러진 장아찌 달임장의 어울림이 만족스럽다. 봄이 되면 각종 나물과 식재료들이 조금씩 풍부해지기 시작하는데, 그중 단연 으뜸은 방풍나물이다. 거칠고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방풍의 향은 어떻게 이토록 감미로울까?

허균이 쓴 음식품평서

도문대작이 수록된『성소부부고』

도문대작이 수록된『성소부부고』

흔히 미각이 예민한 여성들과 달리 술과 담배 등의 기호식품에 탐닉하는 남성들의 미각이 둔하다고 하지만, 일찍이 방풍의 향기에 취해 그것으로 죽을 끓이고 그 맛의 향취에 빠진 조선시대의 선비가 있었다. 그는 조선시대 역모사건으로 옥사한 정치가이자 당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진보적인 의식을 담은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이다. 그의 예민하고 뛰어난 미각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품평서의 하나인 『도문대작』을 저술하도록 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가 되었다.

정치가이자 소설가로서의 허균의 면모 이면에 『도문대작』이라는 그의 음식품평서가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도문대작』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음식재료와 그것의 맛과 품질에 대한 품평서이다. 『도문대작』에는 병이류 11종목, 채소와 해조류 21종목, 어패류 39종목, 조수 육류 6종목, 기타 차, 술, 꿀, 기름, 약밥 등과 서울에서 계절에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 12종에 대한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도문대작』은 그야말로 음식의 무릉도원인 셈이며, 식재료와 음식 공부에 전념하는 요리사라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선비마저 반하게 한 미각과 향기

방풍죽

방풍죽
ⓒ강릉시청

허균이 소개한 수많은 음식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풍을 예방한다는 의미를 지닌 방풍(防風)나물로 끓인 방풍죽이다. 『도문대작』의 맨 첫 번째 식재료로 소개된 방풍죽은 그의 표현만으로도 충분히 향기롭다."나의 외가는 강릉이다. 그곳에는 방풍이 많이 난다. 2월이면 그곳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을 맞으며 처음 돋아난 싹을 딴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다 끓으면 찬 사기그릇에 담아 뜨뜻할 때 먹는데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은 가시지 않는다…."

한 번 먹으면 달콤한 향기가 입 안에서 사흘을 간다는 방풍죽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등과 함께 팔도의 대표 음식으로 꼽혔을 정도로 유명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구하기 힘든 재료였지만, 방풍의 효능이 재조명되면서 곳곳에서 조금씩 방풍을 재배하기 시작해 이제는 흔하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봄나물이 되었다. 방풍나물은 특히 강릉과 태안지역 같은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서 많이 나고 호흡기 질환이나 중풍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거친 느낌을 주는 겉모양과 달리 그 향기는 감미롭기까지 한데, 부드러운 쌀죽을 끓여 향과 맛을 음미했던 허균의 남다른 미각을 알 수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문대작』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다보면 어떻게 허균에게서 이러한 예민한 미각과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가능했는지 궁금해진다. 그가 『도문대작』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가보자.

푸줏간 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귀양살이

『도문대작』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는 어린 시절에는 고위직책에 있던 아버지 덕에, 나이 들어서는 잘사는 집에 장가든 덕으로 산해진미를 맛보았으며, 임진왜란 때 전쟁을 피해 지내던 외가 강릉에서는 각종 기이한 해산물을, 벼슬길에 나선 뒤에는 전국 팔도를 돌며 우리나라에서 나는 별미를 맛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 명가출신으로 절대 미각의 축복을 받음은 물론 학문과 예술에 대한 재능을 겸비했던 허균은 매우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정치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홍길동전>의 내용만 보아도 양반인 아버지와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 출신 홍길동이 벼슬길에도 오를 수 없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나아가 진로가 막힌 그가 선택한 길은 의적이 되어 적서차별을 폐지하고 탐관오리를 규탄하는 사회비판적인 그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진보 지식인인 허균이 당대 현실에서 순순히 받아들여졌을 리 없다. 허균은 광해군 3년(1611년), 43세의 나이에 과거 시험관으로 있을 때 조카와 사위를 부당하게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함열(현재의 전라도 익산시 함라면) 지방으로 귀양 보내지게 된다.

허균이 유배생활을 했던 함열지방 지금의 전북 익산시 함라마을

허균이 유배생활을 했던 함열지방
지금의 전북 익산시 함라마을
촬영 오성

허균은 함열에서 1년여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옛글들을 정리한 『성소부부고』 64권을 저술했는데 '장독을 덮을 정도로 하찮은 책'이라는 겸손한 뜻을 지닌 『성소부부고』에는 시, 사, 부, 문 외에도 음식품평서로 알려진 『도문대작』이 실려 있다 . '도문대작(屠門大嚼)'의 의미를 살펴보면 고기를 먹을 형편이 못되어 '푸줏간 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당시 유배지에서 귀양살이를 하느라 허기지고 상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전국의 진미를 그리워하던 허균의 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제목이다.

비록 유배생활의 궁핍함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그가 머물던 함열 지방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평야지대의 풍부한 농산물, 인접해 있는 서해바다와 금강 만경강에서 잡아올린 물고기, 그리고 높고 낮은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미식가였던 허균으로서는 과거에 먹었던 많은 식재료를 다시 구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처지였지만 그것을 다시 되새기고 기억을 끌어내서 하나하나 기록할 만큼 유배지의 식재료는 풍부했다. 그야말로 허균은 도문대작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배고픈 상상력과 의식은 남성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품평서로 형상화되었다.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며 생명에 관계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을 밝히고 그것에 대해 기록하는 일은 당시의 선비로서는 불가능한 편견이 있었다. 아마 보통의 선비라면 이러한 기록은 상상 속에서만 끝났겠지만 허균에게서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록된 수많은 도문대작의 식재료들은 당대는 물론 현대에 와서도 생생하고 살아있는 자료가 되었다. 또한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욕망과 부귀영화는 무상하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도문대작』의 교훈은 풍부한 식재료가 넘치는 세상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더 필요한 말이 되었다.



 
김선미 필자소개
김선미는 서강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강사로 활동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요리에 입문해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전통음식, 전통주, 전통차 분야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 인천여성복지관의 요리강사로 활동하며 요리와 음식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저서로는『런~의 맛있는 컬처 레시피』『휘리릭 밥상』『휘리릭 떡 해먹기』가 있다. 블로그
 
  NO.119_20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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