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알파] 음식읽기③ 영화 <노팅힐>

초콜릿이라는 인생처방

김선미 _ 요리칼럼니스트

 

연재순서: ③ 영화 <노팅힐>
 

출처 www.experiencechocol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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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초콜릿 한 조각에 우리는 종종 많은 의미를 담는다. 발렌타인데이에 여자들은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 박스를 내밀며 사랑을 고백한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초콜릿 한 조각은 어려운 인생의 전환점을 잘 이겨내라는 격려와도 같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검프의 엄마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집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이 선택한 초콜릿을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어떤 맛의 초콜릿인지 알 수 없듯, 인생에서도 끝까지 해보기 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영화 <초콜릿>은 마법과도 같은 신비한 사랑이야기가 부드럽게 녹인 초콜릿처럼 다양한 에피소드와 잘 버무려져있다. 신비로운 초콜릿가게 주인, 줄리엣 비노쉬 역시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초콜릿을 통해 새로운 인생에 눈 뜨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이나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초콜릿처럼 인류를 달콤하고 아름다운 유혹에 빠지게 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 달콤하기도 하지만 쌉쌀한 뒷맛이 주는 묘한 여운처럼 우리는 초콜릿을 종종 사랑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초콜릿 상자에 비유해도, 사랑을 초콜릿 그 자체라고 말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노팅힐>(1999) 속 초콜릿 역시 인생과 사랑의 함의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가장 불행한 이에게 초코 브라우니를

ⓒ working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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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은 마을 노팅힐을 배경으로 헐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안나 스콧과 평범한 서점주인 윌리엄 대커의 사랑은 시작된다. 어느 날 우연히 대커의 작은 서점에 아름다운 여배우 안나 스콧이 책을 사러 들린다. 일시적이며 더 이상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유명 배우와 평범한 남자 사이의 만남은 의외의 순간 다시 이어진다. 대커가 길모퉁이를 재빠르게 돌면서 들고 있던 오렌지주스를 안나 스콧의 셔츠에 뿌리는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불가피하게 대커의 집에 들려 젖은 셔츠를 갈아입고 문을 나서던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대커와 진지한 키스를 하고 만 것. 서로에 대한 작은 감정이 싹트고, 안나 스콧이 영국을 떠나 헐리우드로 가기 전날 밤, 그녀는 대커 여동생의 생일파티에 함께 가기로 한다. 대커의 평범하지만 다양한 친구들이 모인 조촐한 생일 파티에서 그들은 마지막 남은 초콜릿 브라우니 한 조각을 놓고 인생에 대해서 농담을 섞되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의 역할은 의미심장하다.

헐리우드의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고 있는 여배우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더욱 더 초라하게 느끼던 친구들은 마지막 남은 초콜릿 브라우니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우리 가운데 가장 팔자가 사나운 사람에게 초콜릿 케이크를 상으로 주지"하며 삶의 고통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한 친구는 직장에서 구박받고 여자친구 하나 없다고 하소연한다. 다른 친구는 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고, 아기마저 가질 수 없다며 자기의 팔자가 제일 사납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른 적수가 나타난다. 마르고 예쁘지 않아 남자친구가 없다며 자신의 팔자가 가장 사나우니 초콜릿 케이크는 자기 차지라고 말하는 대커의 여동생. 이에 질세라 대커 역시 장사가 잘 안 되는 서점을 하고 있으며 사랑을 잃은 이혼남이니 역시 케이크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출처 www.solo-d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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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케이크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 못했던 화려한 헐리우드의 여배우 안나 스콧은 다이어트와 성형, 사생활이 전혀 보호되지 않는 현실,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했고, 그리고 언젠가는 잊힌 배우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등 여배우로서의 삶의 고충을 말한다. 순간 케이크의 주인공이 그녀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침묵이 흐르지만 대커는 그녀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구의 삶의 고통이 더 크다 작다 말할 수는 없지만, 여배우의 삶 역시 달콤해 보이는 겉과 달리 나름의 쌉쌀한 고통 속을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안나와 대커, 그리고 그의 여동생과 친구들은 작은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거기 모인 모두일 수밖에 없다.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초콜릿 같은 인생 속에 또한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그들의 사랑이 함께 하니 말이다.

일반인과 유명 여배우와의 사랑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그녀의 유명 배우 남자친구의 등장으로 주춤한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장애물 이외에도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벽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된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은 한 조각의 초콜릿 케이크처럼 더욱더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럽고 쌉쌀하다.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료약

출처 www.optimallyorgan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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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쌉쌀하고 고통스러운 순간, 혹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도 우리는 초콜릿 한 조각으로 위로를 받고 또한 사랑을 함께 나눈다. 이러한 초콜릿이 우리 곁으로 오는 길은 사실상 멀고도 험했다. 초콜릿은 아마존강 유역과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 유역이 원산지라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빈이 유럽에 유입된 것은 콜럼버스에 의해서다. 콜럼버스가 항해 중에 원주민으로부터 빼앗은 카누에는 카카오빈을 비롯한 농산물이 쌓여 있었는데 이것을 스페인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 카카오가 유럽에 처음 들어온 계기가 되었다. 초콜릿은 다양한 약리작용은 물론 피로회복, 뇌의 흐름을 활성화 시키는 작용, 공복감을 컨트롤 하는 작용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모든 것을 떠나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은 세상 어느 음식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준다.

초콜릿의 다양한 효능은 사랑이나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약리작용과 사뭇 다르지 않다. 우리의 인생과 사랑은 순탄하게 무르익어갈 때는 달콤한 초콜릿 같지만 무언가 이겨내기 힘든 장애물이 가로막혀 있다고 느낄 때 그것은 또한 쌉쌀한 초콜릿의 뒷맛과 비슷하니 말이다.



 
김선미 필자소개
김선미는 서강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강사로 활동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요리에 입문해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전통음식, 전통주, 전통차 분야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 인천여성복지관의 요리강사로 활동하며 요리와 음식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저서로는『런~의 맛있는 컬처 레시피』『휘리릭 밥상』『휘리릭 떡 해먹기』가 있다. 블로그
 
  NO.120_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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