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알파] 시 읽는 여름밤② 사랑의 기술

시험하고, 실험하며, 재발명하게 하는 것

김행숙 _ 시인


‘눈싸움’이라는 걸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겨루고 있다. 이 싸움을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게임의 규칙이 팽팽한 시선을 요구하지만, 그런 눈빛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패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의 형식이 가능한 것. 이내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상대방을 향해 직진하고 있던 눈빛을 무너뜨린다. 번번이 그렇게 두 손 들었던 ‘눈싸움’, 거기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당신에게 레이저 같이 강력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기술. 아니 그건 사랑의 은유가 아닌가.

변화가 없으면 의심하라

그런데 시인 김수영은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노래한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그렇게 강렬한 발음으로 시작하는 그의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은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며, ‘불란서 혁명의 기술’이며,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로 재발명된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아르튀르 랭보에게서 읽은 문장이다.

사랑에 빠진 많은 연인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눈을 빤히 뜨고 있는 기술, 계속 뜨고 있는 기술, 일명 ‘눈싸움’의 기술이야말로 사랑의 기술이라고 우길 것이다. 눈싸움 속에서 눈이 머는 것, 그것은 연애에 관한 낭만적 통념이기도 하다. 눈을 감는 것은 ‘두 사람’으로부터 ‘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닌가. 그것은 사랑의 은유가 아니라 이른바 사색과 고독의 은유가 아닌가. 그런 질문을 <사랑의 변주곡>의 시인에게 날려보자.


이른바 사색과 고독은 사랑의 사건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것. 사랑은 ‘한 사람’에게 ‘두 사람’이 스며드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와 너’(두 사람)의 관계가 나(한 사람)를 사로잡고 흔들며 시험하고 실험하며 재발명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관계의 재발명이면서 주체의 재발명인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사랑은 ‘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건이다. ‘눈을 떴다 감은’ 그 고요한 시간에 사랑의 혁명이, 혁명의 사랑이 검은 화폭에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이건 진은영 시인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서 읽은 것. ‘나와 너’의 관계가 ‘나’에게로 돌아와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의심하라, 그것이야말로 둘이 하는 사랑이 아니라 혼자 하는 사랑, 이를테면 자위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듯이 어둠에 빠지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은 일단 당신을 어둠과 고요 속에 감쌀 것이다. 이 어둠과 고요의 자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 안에는 아무리 많이 말해도 비밀처럼 남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시의 언어는 비밀에 매혹되듯 침묵의 영역으로 이끌린다. 진은영은 ‘별들의 회오리’를 보았다. 김수영은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 ‘단단한 고요함’을 떠올렸다. 김수영에게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이 빚어낸 고요함은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가능성들, 아직 ‘소리내어 외치지 않’은 혁명의 언어들로 충만하다. 이 충만함의 감각을 이렇게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바로 이 구절에 이어 김수영은 ‘간단(間斷)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 눈을 깜박이겠지만(5초에 한 번꼴이라고 치면, 8시간 잠을 자는 사람의 경우 하루에 11,520회 정도 눈을 깜박인다는 계산이 나온다는군), 좀처럼 ‘사랑을 만드는 기술’로서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기왕 이 시에서 전해 들었으니, ‘사랑을 만드는 기술’,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한 번 사용하여 시를 읽어보면 좋겠다. 그러니까 눈을 감고, 그 어둠 속에서 시를 다시 떠올려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를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재발명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독서는 눈을 뜨고 하는 것인 만큼 눈을 감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놀라운 독서의 경험은 사랑이 그러하듯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변화시키고 창조적으로 만드는 사건이 되어 주는 것이다. 자, 이제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아 보자. 사랑에 빠지듯이 어둠에 빠져보자. 사랑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듯이 어둠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깜깜한 타인 속으로 스미면서 … 환해지고 투명해질 것이다.



필자소개
김행숙은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여 세 권의 시집, 『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를 펴냈다. 고려대 국어교육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강남대 국문과 교수로 현대시를 강의하고 있다. fromtomu@hanmail.net
  NO.137_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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