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신청] 멘토와 함께 한걸음③ 미션

롤 모델을 찾아서

김정이 _ 지식에너지연구소 대표


 
 

선배그룹에 속하는 문화계 분들에게 여쭤보면 대부분 '멘토'라는 말을 꽤 부담스럽게 여긴다. 멘토링을 하고 나면 좀 찜찜하고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 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한두 번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긴 하다.

잘해야 본전, 멘토의 오만가지 걱정

간혹 평상시 아끼던 후배들이 찾아와 진로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속 얘기는 아무에게나 털어놓는 것이 아닐진대 나를 믿고 인생의 조언자로 생각해준 것이 오히려 고마워서 주저리주저리 먼저 경험한 삶이 선사한 지식의 범주에서 멘토링 한답시고 열심히 조언을 해주게 된다. 상담이 끝나면 후배들은 아주 상쾌한 얼굴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며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나 또한 오늘하루 뭔가 보람된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 불쑥 '만약 내 조언이 틀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내 조언으로 인해 오히려 잘못된 길을 가게 되어 나중에 원망을 듣는 건 아닐지 등등 오만가지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한마디로 멘토의 부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누군가 나를 의지와 신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어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기대는 늘 실체보다 크다.

둘째, 타인의 삶에 개입해야 한다.
의무도 아닌 일에 책임이 발생한다.

셋째, 내 판단이 옳았는지는 늘 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
늘 옳은 판단을 하면 신이다. 난 신이 아니다. 고로 내 조언이 잘못될 수도 있다.

넷째, 내 삶도 현재 모호함의 진행형일진대 내가 누굴 조언해줄 입장인가.
완성된 삶이란 없다.

결과적으로 멘토링이란 밑져야 본전인 게 아니라, 잘해야 본전인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본 면담코너의 제목이 '멘토와 함께 한걸음'이나 난 그 단어대신 퍼실리테이션(facillitation)이란 촉진자의 역할을 선호한다. 한마디로 개인의 삶에 관련된 문제의 해법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기반해 다양한 각도로 그 해법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자 함이다.

미션수행1 : 지식을 획득하고 조직화하기


어언 당테스 군을 만난 지 세 달이 되어간다. 당테스 군을 둘러싼 상황은 애초 기대한 것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게 전개되었으며 당테스 군은 매우 훌륭하게 그 과정을 소화해내며 변하고 있다. 두 번째 면담 기사보기에서 예고한 것처럼 당테스 군에게는 스스로 지식을 획득하고 조직해나가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내기 위한 과정으로 '읽기'와 '관계맺기'의 미션이 주어진 바 있다. 당테스 군은 미션으로 주어진 책 여섯 권1) 중 세 권을 읽고 본인의 고민과 책의 내용을 연계한 아주 훌륭한 독후감(?)을 보내왔다. 이제 차분하게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변화된 당테스 군을 위한 세 번째 기획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롤 모델을 찾아서'라는 컨셉의 여행을 제안했다. 갑자기 떠나자는 제안에도 그는 흔쾌히 응했다. 롤 모델의 대상이었던 선생님은 상황에 대한 설명도 없이 그저 후배들과 함께 놀러가도 되냐는 물음에 기분 좋게 허락하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분과의 인연이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나 일없이 놀러간 적은 없기에 괴이쩍고 웃기신 모양인 듯 싶다.

저녁이 되어 도착하니 반바지 차림의 선생님이 빨래를 한가득 안고 푸짐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늘 그렇듯 편안하게 스튜디오를 이곳저곳 안내하시면서 지역의 서사와 현재가 공간 내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활용되고 있는지 설명해주신다. 또 늘 그렇듯 선생님은 미리 알아서 배고픈 여행자들을 위한 만찬을 산꼭대기 저녁하늘 아래 준비해 놓으셨다. 급하게 정해진 여행이기에 경비도 부족한 터라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스튜디오에서 대충 얻어 자거나 여의치 않으면 저녁때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되돌아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 알아서 준비해놨으니 그저 편히 자고 가면 된다고 하신다. 난생 처음해 보는 빈대형 여행. 덕분에 여행은 풍성해지고 마음은 한가득 고마움으로 충만해진다.

700빌리지라는 펜션은 700 고도에 위치해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0년간 1년에 한두 번씩 꼭 방문해왔으나 늘 한결같고 정갈할 뿐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업데이트되는 공간으로 방문 후에는 늘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져 힘들고 지칠 때마다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공간이다. 다음날 아침, 3시간 정도 소요되는 트래킹에 나섰다. 당테스 군은 산길을 가볍고 경쾌하게 휙휙 올라가고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겨우겨우 그의 뒷모습만을 쫒아가니 저질 체력이 원망스럽고 예전보다 많이 늙었음을 스스로 체감하게 된다. 힘든 산을 오르는 일행들의 가벼운 발걸음마냥 인생의 험난한 고비도 그렇게 잘 헤쳐가리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당테스 군을 볼 때마다 진중하고 견실한 젊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에 오르니 그의 품성이 산과 같음을 알게 된다.

미션수행2 : 롤 모델과 관계맺기


산을 따라 당테스 군과 선생님의 얘기가 깊어진다. 한 시간 가량의 대화를 통해 당테스 군은 현재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 대한 애정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즉, 예술단체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그 방향이 발전적이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냉정하게 살필 필요가 있고 좋은 단체에서 진득하게 일을 해나가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으로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다양한 경험을 하다보면 길이 조금씩 보이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또 잘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면서 배우고 다듬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표님은 제 나이 때 어떤 일을 하고 계셨나요?

대학 때부터 문화예술계 현장 중심의 일을 많이 해온 것 같아요. 닥치는 대로 일이 있는 곳에 찾아다녔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해외 곳곳을 돌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당테스 군 나이에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죠.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당시 학과장님이 예술경영계에서 아주 영향력 있는 분이셨는데 그분은 항상 현장으로 나가라고 하셨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할 거면 먼 나라까지 왜 왔냐고 하시면서 현장경험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덕분에 지역커뮤니티 기반의 작은 극장에서 인턴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 극장은 단순히 공연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도서관, 커뮤니티 룸 등 한마디로 지역민들이 문화예술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공간이 조성된 것은 의도된 결과라기보다는 당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시설이 파괴된 영국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던 것이었죠. 남아있는 시설에서 시급하게 해야 할 문화예술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넣다보니 공연과 교육이 한데 어우러지게 된 거죠.

저 또한 유학을 고민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예술경영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스크랩해 신줏단지 모시듯 했거든요. 해외여행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정보의 양은 매우 한정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죠. 좋은 정보가 너무 많아요.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이며 유학을 가는 시기는 좀 지난 것 같아요. 물론 당테스 군이 공부를 하다가 필요와 상황에 유학을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막연히 예술경영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떠나기보다는 일단 국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뒤 그것을 기반으로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학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있는 단체는, 많은 예술단체가 그렇겠지만, 다양한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지원금 사업이 중단되자 바로 사무국에 타격이 온 상황이고요. 콘텐츠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어떻게 기획을 해서 단체의 방향을 설정할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단체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단체 자체도 기획이나 창작보다는 행사 위주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전 제시보다는 돈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어 씁쓸합니다.

예술단체가 단순히 돈만을 추구한다면 삼류 단체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술단체는 우선적으로 좋은 기획이 무언가를 고민하고 그 이후 돈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체의 리더가 예술적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획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분이 아니라면 존경심이 생길 수 없죠. 저는 비전제시가 뚜렷한 곳(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예술가)에서 진득하게 일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본인이 의지와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 하다보면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고 그 소문이 퍼져서 그 이후에는 저절로 길이 열립니다. 조급함을 갖지 말고 하시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퍼실리테이터다. 꼼수를 부리며 처세에 능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겠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마음깊이 우러나는 행복은 후자의 몫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난 당테스 군이 문화예술계에서 성장해 나가면서 겪게 될 다단한 시련과 불안 때문에 간혹 타협하고 싶거나 꼼수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번 과정에서 겪은 사람들과 산을 기억해내길 바란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새로운 관계를 엮고 맛있는 음식과 지구의 맨살과 교감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여행은 에너지이다. 그 길에서 길을 발견해낼 수 있음을 믿길 바란다.

다음회가 당테스 군 사례의 마지막 회이다. 마지막회는 질문하는 당테스 군이 아닌 대답하는 당테스 군의 모습을 통해 그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 감자꽃스튜디오의 이선철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1) 본 면담코너를 보신 많은 분들이 과연 어떤 책이 미션으로 주어졌는지 궁금해 하시는 듯하여, 책 목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선정된 책은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기반에 둔 선호와 현 시점에서 (비전과 가치를 수립해야 하는) 당테스 군에게 이런이런 내용이 필요하리라는 주관적 판단 하에 선정되었을 뿐 예술경영 분야의 정식 필독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경영학의 진리체계』(윤석철) 『권력이동』(앨빈 토플러)
『청중의 탄생』(와타나베 히로시) 『미디어아트: 예술의 최전선』(진중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짐 콜린스)
『끌리고쏠리고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클레이 서키)


 
필자소개
김정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센터 교육프로그램 기획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지식에너지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문화재단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에서 실시한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 및 인력양성 관련 연구, 강의, 컨설팅, 자문에 참여하였다.orchidkr@nate.com
 

 

  NO.145_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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