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신청] 멘토와 함께 한걸음④ 실행후

얼지 말고! 당신은 코끼리야!

김정이 _ 지식에너지연구소 대표

면담신청은 예술경영(예비)종사자들의 현장업무, 커리어개발, 진로, 조직생활 등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면담신청시즌1에 이어 새로운 형태로 시작하는 시즌2에서는 한 사람의 고민을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이를 심층적으로 풀어나가는 상담의 진행과정을 웹진상에 공개합니다. 이러한 진행과정을 통해 비슷한 입장에 처한(예비)종사자들이 각자 자신의 일상 영역에서 유의미한 맥락을 찾아갈 수 있게끔
내용을 공유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시즌2의 상담을 맡은 김정이 멘토는 다향한 문화예술 기관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과 관련 연구, 컨설팅, 자문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 김정이 멘토와 함께 약 4개월 간 이어지는 면담신청 시즌2에서는 고민의 구체화 과정 속에서 발견해 나가는 문제인식, 설정된 과제와 미션 수행, 그리고 상담을 받은 신청자의 소감 등이 게재될 예정입니다. 전개과정 ①탐색전 ②구체화 ③미션 ④실행후 이페이지는 실행후 과정 내용입니다.
 

바위 속 불상

얼마 전 '1박 2일'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천년고도 신라 답사여행'이란 코너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이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통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무감각의 원인을 속시원하게 정리해낸 바 있는 유홍준 교수가 출연했었다. 누구나 한번쯤 수학여행을 다녀왔을 경주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을지언정 단연코 수학여행 1번지의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유 교수의 명쾌한 해설을 통해 TV에 비춰진 경주는 과연 내가 가본 그곳과 정녕 같은 곳이란 말인가. 나 또한 '1박 2일' 멤버가 된 듯 경주 남산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해가며 함께 감탄하다보니 어느덧 하나의 물성으로서의 돌을 쪼개고 파내어 만든 부처님 조각상은 인식에서 사라져 버리고 그저 부처만 계시게 된다. 참 이상하다. 유럽의 유명한 조각상들은 매우 아름답지만 대리석이란 물성은 그대로 남아 잘 조각했다 싶은데 말이다. 순간 유 교수의 해설이 들린다. "불상을 조각한 선사들은 자신들이 불상을 조각한 게 아니라 바위 속에 들어있는 불상을 발견해 냈을 뿐이라고 합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코끼리

"4000년 전, 중국 전역에는 코끼리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서식지인 숲이 인간의 경작지로 바뀌고 운반과 의식의 도구 혹은 요리 재료와 상아를 얻기 위해 그들을 살육하면서 코끼리는 점차 인간의 주변에서 사라졌다.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면 이미 살아있는 코끼리를 직접 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산 코끼리를 보기 힘들게 되자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 그림을 그려 살아있는 모습을 떠올려보곤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상'(象)이라 말한다."(한비자, 해로 편)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상상(想象)의 어원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뼈를 앞에 놓고 실체 없는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행위, '상'(象) 자가 이미지의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상기 편에서 난생 처음 보았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코끼리란 형상을 논하고 있다. 처음 코끼리를 본 사람들이 저마다의 논리로 코끼리의 모습이 그러한 까닭을 밝히려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 코끼리의 코가 긴 것은 코끼리가 먹이를 먹기 위해 코를 자주 사용하기에 점점 길어진 것이라 하자 연암은 많은 동물들이 이빨로 먹이를 취하므로 만약 먹이를 구하기 위해 코가 길어진 것이라면 차라리 어금니가 짧아지고 코도 작게 만들면 되지 왜 어금니도 길게 하고 코도 길게 했겠냐고 한다. 연암은 직접 코끼리를 보면서도 직접 본 코끼리도 알 수가 없는데, 이보다 몇 만 배 더 복잡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셈이다. 즉,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현상에 현혹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연암은 코끼리라는 메타포를 통해 제시한 것이다. 피카소 역시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종종 보지 않고 믿는 것을 의심하지만 오히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

초보 기획자와 멘토의 관계

초보 기획자와 멘토의 관계

앞서 긴 이야기를 푼 것은 돌이자, 뼈이자, 냉장고로서의 '초보' 문화기획자를 얘기하고 싶어서다. 그들은 초보이기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은 돌이고, 뼈고, 냉장고라 생각할 뿐 자신들 안에 숨어있는 부처와 코끼리를 발견해내지 못한다. 어떤 특정 물성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면 그 순간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돌을 깎아 조각을 만들어 어떤 형태로 변형되더라도 돌일 뿐이고, 냉장고는 그 안에 어떻게 커다란 코끼리가 들어있겠느냐고 반문할 뿐이다. 보는 대로 믿고, 보지 않았다고 믿지 않는 한 절대 진실을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상상하지 않으면 진실과 마주칠 수 없게 된다.

생각해 보건대 웹진 면담을 내게 의뢰하면서 부여한 역할의 본질은 부처와 코끼리를 발견하고 꺼내주는, 한마디로 말해 석공이자, 진짜 코끼리를 보러 여행을 떠난 사절단이자, 냉장고에서 코끼리를 꺼내는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부처를 발견하기 위해, 진짜 코끼리를 보기위해, 냉장고에서 코끼리를 꺼내는 다양한 방법 중에 어느 것을 고를지 판단하기 위한 과정이 지난 4개월간의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이 망치, 저 망치 바꿔가며 두드리고 깨내었으나, 돌이 스스로를 여전히 돌이라고 믿는다면 내 눈에는 부처로 보이는 형상도 그에게는 한낱 부처의 모양을 돌 하나일 터이다. 사실 서울에 있는 돌들만 다뤄온 터라 다른 지역 돌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서툴렀던 것도 같다. 단단한 줄 알아 너무 세게 쳐서 어느 한 귀퉁이가 날아간 건 아닌지, 스스로를 가둔 껍데기를 빨리 깨고 나와 더 넓은 세계를 보라고 한 것이 아직 여물지 않은 그래서 한동안은 더 껍데기가 필요했지 않았나 하는 별별 걱정이 들기도 한다.

냉장고 속 코끼리 꺼내기

냉장고 속 코끼리 꺼내기

코끼리를 품고 있는 냉장고를 위해 선택한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사전

냉장고는 지금 있는 집에서 다른 집으로 팔려 가면 어떨지, 어떻게 해야 성능 좋은 냉장고가 될지 궁금해 한다.

 
1

냉장고에게 거울을 보여준다. 거울을 보고 냉장고는 원래 자기가 에어콘이 될 뻔 하다가 냉장고가 된 사연이 있었다고 한다. 에어콘의 경험이 있기에 다른 냉장고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냉장고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

 
1과 2사이

냉장고가 살고 있는 집이 이사를 가게 되었고 새로 이사 가는 집은 전기가 없을지 모르니 당분간 전기 없이 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냉장고는 충전기능이 전혀 없는 냉장고이다.

 
2

5~10년의 선배들과 왁자지껄한 소셜키친에서의 네트워크 파티를 즐기며 냉장고를 뛰쳐나온 다양한 코끼리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냉장고 안의 코끼리를 흥분시켜 춤추게 한다. 냉장고는 홀몸이 아니라 그 안에 뭔가 있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1과 2사이 사건을 선배들에게 얘기하자 선배들은 '너는 어떤 코끼리를 가졌냐'고 묻는다.

 
2와 3사이

냉장고에게 위대한 코끼리, 코끼리 사회의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책과 사람을 만나게 한다.

 
3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대선배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냉장고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코끼리일거라 생각하기 시작한다. 강원도의 건강한 숲을 트래킹하며 코끼리는 코끼리랑 만나서 일해야 한다는 대선배의 조언을 듣고 그를 쳐다보자 냉장고인줄 알았던 선배가 사실은 지혜로운 코끼리였음을 알게 된다.

 
3와 4사이

자기 안의 코끼리 꺼내는 방법을 생각해서 적어보라는 워크시트지를 받은 냉장고, 자꾸 좋은 냉장고 쓰는 법만 써낸다.

 
4

냉장고에서 코끼리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온다.


초보기획자들은 건강하고 젊은 코끼리들이다. 그들은 아직 지혜롭진 않지만 무엇이든 해낼 건강한 열정을 품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를 냉장고라 여기는데 있다. 그들을 코끼리라 믿어주고 그 옆에서 우리 또한 계속 코끼리로서의 삶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냉장고에서 그들을 스스로 걸어 나오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 나이 때는 그랬던 것 같다.

아래는 당테스 군이 앞으로 설계한 코끼리되기 계획표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서툰 부분이 많긴 하나, 계획표는 수정되기 위해 작성되는 것일 뿐 변경될 기록의 과정이다. 앞으로 당테스 군은 수없이 많은 업그레이드 버전의 계획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본 원고를 끝으로 공식적 만남은 이번이 마지막이나 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한다.

당테스 군의 코끼리되기 계획표 보기
 
김정아 필자소개
김정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센터 교육프로그램 기획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지식에너지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문화재단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에서 실시한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 및 인력양성 관련 연구, 강의, 컨설팅, 자문에 참여하였다. orchidkr@nate.com
 

 

  NO.152_2011.11.17  

덧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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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이팅
  • 2011-11-21 오전 11:30:11
멋지게 성장할 당테스군을 응원합니다!!^-^[Del]
  • 이하성
  • 2011-12-29 오후 10:13:41
이제 막 시작 하는 저에게 아주 큰 힘이되는 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Del]
  • 김정이
  • 2012-01-05 오후 7:10:54
파이팅님, 당테스군을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에게 이런 댓글이 아마 큰 힘으로 남을 겁니다. 작은 기사에도 열심히 반응해주신 파이팅님도 멋진 화이팅의 새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Del]
  • 김정이
  • 2012-01-05 오후 7:11:38
이하성님, 막 시작 한다는 건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지요. 지금도 종종 힘들어질때면 그때 그 마음을 생각해냅니다. 작은 일이라도 그때 그 마음을 담으면 늘 열심히 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게 되더군요. 큰 힘이 되셨다니 넘 고맙습니다. 이하성님도 늘 잘 되시길 마음속으로 이름 석자 꼭 기억해놓고 늘 화이팅 외치고 있겠습니다. [Del]
  • 김정이
  • 2012-01-05 오후 7:13:12
원래 제목은 [쫄지마~~ 당신은 코끼리야] 였는데, 카피의 흔적(ㅋㅋㅋ, 나름 오마주였건만)때문에 편집과정에서 변경되었나봐요. 여튼 우리 모두 쫄지말고 당당한 2012년 우리가 만듭시다. [Del]
  • 이지호
  • 2012-01-12 오전 4:56:21
최신 덧글에 올라와서 다시 읽었는데 지금에서야 말씀드리지만 그간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당테스군 연재가 끝난건 정말 아쉬워요 ㅜ 그런데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은 실제 컴퓨터 활용능력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그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라 좀 그렇기는 한데 하여튼 뭐 그렇다고요.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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