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문화예술CEO]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

콘텐츠가 힘이다

최윤우 _ 공연칼럼니스트

“바둑에도 급수가 있다. 급수대로 실력이 나온다. 18급도 장고를 거듭한다. 그래도 두지 말아야 할 곳에 두고 만다. 우리도 급수를 높여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은 작품인지,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 지금처럼 작품을 너무 단기간에 뚝딱 만들어 내면, 그러면 망하는 거다”
 


1995년 라이선스 뮤지컬이 전부였던 시절, 국내 뮤지컬계에 들고 나온 (명성황후)는 창작뮤지컬이라는 가공하지 않은 원석이었다. 그것을 다듬어 우리 고유의 색과 아름다움을 입혔다. 그렇게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며 한국창작뮤지컬의 역사를 새롭게 그려나간 사람, 바로 에이콤인터내셔날 윤호진 대표다.

무모한 일이라고 손사래를 치던 수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집어 버렸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창작뮤지컬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통해 국내 공연예술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리고 지금도 창작뮤지컬을 세계무대에 선보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조금은 더디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품은 창작뮤지컬에 대한 희망은 그의 손을 거치며 하나둘 영글어지고 있다.

 

도전은 열정의 또 다른 이름

도전은 열정의 또 다른 이름
도전은 열정의 또 다른 이름

"제작여건이 좋아서? 오로지 열정 하나였다. 누구도 믿어주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제작기간에 들어간 비용을 뺀 작품의 순수 제작비만 12억 원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12억 원 매출을 올렸다."

제작기간만 5년이었다. 예산이 없어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수없이 많았다. 대기업 엔터테인먼트에 찾아가서 모든 저작권을 다 가져가고, 막만 올리게 해달라고 사정하기도 했지만 '작품이 너무 어두워서 안 되겠다'며 퇴짜 맞기가 일쑤였다. 그런 과정 속에 탄생한 (명성황후)는 뮤지컬 공연사의 새로운 역사가 되었다.

"1995년 10월8일이 명성황후 서거 100주기였기 때문에, 그때 맞춰서 공연을 올리고 싶었는데, 결국 12월30일에 막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작품을 보고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명성황후)가 나오면서 창작뮤지컬의 수준이 10년 이상 뛰어넘은 것 같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갈 수 있었던 건,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결심 하나였고, 그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리며 그 꿈을 이뤄냈고, 오늘날 우리나라 뮤지컬이 활성화가 된 기폭제가 됐다고 본다."

그랬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명성황후)의 폭발적인 성공은 이후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된 단초가 됐고, 브로드웨이에서 이어진 호평은 국내 창작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적자? 예상하고 갔다.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까. 당시 2백만 불이 들었는데, 입장수입으로 100만 불 수입을 채웠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연일 매진이었지만, 손익을 맞출 수가 없는 일정임을 알고 움직였다. 단지 세계무대에 우리 실력을 알리자는 게 목적이었고, 그것을 인정받았다. 지금 (명성황후)는 세계 어디에 가도 다 알고 있다. 영국에서 영어버전까지 했었으니까."

제작만 서두르지 말고 소재를 개발해야

창작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영화 제작 자금이 뮤지컬 투자로 이동하던 시절, 해외 유명 라이선스 작품이 앞다퉈 소개되는 등 뮤지컬의 활성화되던 시기, 두 편의 대형 창작뮤지컬이 제작됐다. 바로 (댄싱 섀도우)와 (대장금)이다. 오랜 제작 기간과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됐고, 국내 유명 제작사의 작품이었기에 더 증폭됐던 관심은 그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하면서 상쇄됐다. 그리고 지금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대형 창작뮤지컬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뮤지컬전용극장이 들어서고 있는 추세, 작품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대형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다행이 소극장에서는 좋은 작품이 개발되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다보면 그 힘이 이어질 거라는 기대도 있다. 그런데 지금 제작자들을 보면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준비를 못하고 공연을 올리는 것 같다. 그것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물론 전체적인 환경의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극장을 채울 수 있는 작품이 없다는 거다. 더 이상 들어 올 라이선스 작품도 많지 않고, 창작뮤지컬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갑과 을이 바뀔 가능성이 많다. 지금까지 극장이 갑이고, 프로덕션이 을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가진 프로덕션이 갑이 되는 것이다. 결국 부지런히 콘텐츠를 개발하는 프로덕션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덧붙여 소재개발에도 힘을 써야 한다. (명성황후)도 그랬고, (영웅)도 그랬다. 공연이 끝나고 미국에서 소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기존에 브로드웨이 무대를 채웠던 흥미위주의 작품만 보다가, 이야기의 감동을 수반한 작품에 대해 새롭다고 느꼈던 것이다. 말하자면 (레미제라블)과 같은 작품들이 나와야 할 시점이 되었고, 그것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웅) 리셉션

(영웅) 리셉션

(영웅)의 배우 정성화 (명성황후)
(영웅)의 배우 정성화 (명성황후)

개점휴업 상태인 브로드웨이, 지금이 기회

'뮤지컬계의 빅4'라고 불리는 (레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이후로 눈에 띄는 작품들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얼마 전 (라이온 킹)을 연출했던 줄리 테이머의 (스파이더 맨) 역시 혹평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다양한 시도들은 많았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제작사에서도 대형작품 만들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규모 작품들이나 레퍼토리 공연들로 채워지고 있는 무대, 윤호진 대표는 그것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운을 뗀다. 그 동안 해외시장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진출했다면 이제는 충분히 해외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제작 능력이 갖춰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브로드웨이는 극장의 1/3 이상이 닫혀 있다. 그렇다고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예고도 없다. 언제 공연을 할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다. 그건 영국도 마찬가지다. 뭔가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는 건데, 반대급부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거기에 제작능력만 뒷받침이 되면 될 것 같은데, 혼자서 한다는 생각보다는 공동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 예를 들어 아시아 시장을 만든다고 하면, 중국이나 일본과 함께 공동제작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서 아시아적인, 동양적인 소재를 함께 개발하는 것이다. 외국에 갔을 때는 한국, 일본, 중국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줬을 때 진정한 시장이 열린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직접 가서 공연하는 것만이 아닌, 우리가 작품을 개발하고, 현지 배우들을 써서 막을 올리는 방법, 또 우리가 현지 아티스트를 동원해서 작품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좋은 소재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꼭 동양적인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꾸준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투란도트)도 서양 오페라가수들이 분장하고 공연한다. 왜, 우리는 그걸 못하겠나? 소재만 잘 개발한다면 공략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 역시 다시 미국이나 영국 시장으로 간다면, 동양의 판타지를 한번 보여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녹여내고 싶다. 그렇게 되면 그 견고한 시장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작품성에 집중할 때
결국 작품성에 집중할 때

결국 작품성에 집중할 때

최근 뮤지컬계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고, 뮤지컬 시장을 확장시켰던 마니아 관객들의 이탈도 눈에 띈다.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몸값 높은 스타에게 주요배역이 돌아가고, 티켓 값은 치솟아 버렸다. 뮤지컬이 지닌 장르적 특성도 예의 그 색감을 잃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윤호진 대표 역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뮤지컬 제작 시스템의 병폐를 지적하지만, 그것이 결국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일확천금을 꿈꾸고, 여기가 마치 황금시장인 줄을 알고 뛰어드는 젊은 제작자도 많고,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전체가 다 좋아진다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단지, 그런 혼돈 속에서 질서가 하나 나오듯이, 꾸준히 작품의 내실을 다져간다면, 결국은 그것을 진정으로 즐기는 관객이 있지 않겠는가? (명성황후)나 (영웅)은 타이틀 자체가 중요하게 느껴지게 만들었지, 어느 배우가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정성화 같은 배우가 (영웅)으로 유명해졌지만, 반대로 누구나 그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10년도 가고 더 갈 수 있으니까. 그런 배우들이 자꾸 나와야 뮤지컬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결국 좋은 작품이 나와야 시장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왜 저런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체계적인 인력양성 기관이 필요하다. 그 일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결국 좋은 작품은 좋은 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한국연극연출가협회장,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 한국뮤지컬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6년, 연극 (그린 줄리아)로 연출가로 데뷔, 1977년 (아일랜드)를 무대에 올려, 6개월간의 장기흥행을 기록하며 제14회 동아연극상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사람의 아들), (들소), (신의 아그네스) 등의 화제작을 무대에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시절, 1982년 영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캣츠)를 관람하게 된 후 뮤지컬에 빠져든 그는 뉴욕대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공부했다. 1987년 귀국, 1991년 에이콤을 설립하고, (명성황후) 제작에 들어가 1995년 12월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1997년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 2002년 영국 웨스트앤드에 진출하며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지난 2009년 (영웅)을 제작, 2011년 가을 링컨센터에 공연했고, 중국, 일본을 시장을 겨냥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10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2010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 연출상, 2008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 프로듀서상, 2003 대한민국 국회대중문화&미디어연구회 연극, 뮤지컬 부문 대상, 1998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문화상 대상, 1997 문화체육부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박용재 필자소개
최윤우는 2003년부터 2011년 3월까지 월간 (한국연극) 취재기자와 편집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공연예술 관련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parodia@naver.com
 

 

  NO.155_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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