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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산업이란 말이 어울릴까?
예술산업의 현재와 방향예술에 산업이란 말이 어울릴까? 예술론자들은 순수예술이 산업으로 인식되는 순간 예술적 아우라가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스스로 좋아서 창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리적 목적의 산업과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산업관점에서 작품을 만들면 예술을 수요자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작품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나 산업론자들은 예술도 일반 산업에서 나타나듯이 투자, 거래, 소비가 이루어지고, 예술작품에 대한 구매자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융합 등에 의해 신규분야가 나타나는 등 예술을 산업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예술은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는 순수예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이 생산, 유통상의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는, 이른바 예술의 양면성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예술은 범세계적 산업화의 진전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상업적 거래가 활발하여,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미 산업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따라서 급변하는 글로벌 예술산업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한국의 입지가 약화되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으므로 예술을 산업으로 보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렇다면 예술산업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산업은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적 활동을 말한다. 따라서 예술산업이란 생계를 목적으로 예술작품을 창작, 유통, 소비하고 있는 분야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술산업은 예술기업과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예술단체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고, 예술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하면 예술적 특성을 가진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공연예술, 시각예술, 음악, 영화, 문학, 애니메이션, 만화, 방송, 게임, 디자인, 공예 등의 산업이 여기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을 중심으로 보면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의 산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 디자인과 전통예술 등의 산업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그리고 공연과 시각예술 등의 산업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담당하는 분야이다. 물론 영화에서 독립영화, 음악에서 인디음악 등과 같이 각각의 산업 내에는 순수예술적인 성격이 강한 분야는 분명 존재한다.
예술산업에 대한 논의에서 예술산업은 예술의 산업화와는 구별된다. 예술의 산업화란 전근대적 예술의 생산·유통·소비 체계가 합리화, 효율화, 시스템화하는 등 일련의 구조화된 가치사슬 체계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예술 산업화에 따라 생산성 향상, 직업의 전문화, 계층구조의 피라미드화, 소비형태의 획일화, 소비수준의 향상, 소비자의 보호, 법적 제도적 정비 등의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문자 그대로 예술산업은 범주와 단위를 말하는 용어이고 예술산업화는 진행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예술산업은 문화산업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할인, 경험재, 창구효과, 프로젝트 제작 시스템 등의 유사한 특징을 가지지만, 대중적 색채가 강한 문화산업과는 약간 다른 면을 보인다. 첫째, 핵심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대중문화 상품은 소비자들이 대중인 반면 예술상품은 예술성을 중시하는 핵심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충성도는 높지만, 시장성은 떨어진다. 핵심 소비자군을 일반 대중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앤디 워홀과 같은 작가는 대중적인 미술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한 바도 있다. 예술산업에서 예술성이냐 대중성이냐는 항상 논쟁거리이다. 둘째, 창의성이 중시되는 산업이다. 예술산업은 사용편의성보다는 예술성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예술적 창의성을 가지고 차별화된 작품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 중요하다. 즉,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예술적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안목과 역량이 필요한 산업인 것이다.
셋째, 작품의 라이프타임이 길어 장기적 수익확보가 가능한 산업이다. 유명 미술품은 세대에 걸쳐 인기를 유지하고 유명 공연은 수십 년 동안 장기공연을 한다.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산업은 대량복제를 통해 짧은 기간에 대량유통이 가능하지만, 유명 미술품이나 공연물은 대량복제가 어려워 장기간 판매로 수요를 충족시킬 수밖에 없지만, 수익은 매우 높다. 20년 동안 공연된 <라이온 킹>은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던, 그러나 몇 개월 만에 극장상영이 끝난 영화 <아바타>보다 2.5배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일부 성공한 예술작품만이 장기적 혜택을 누리는 반면 그 외의 대부분 작품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부익부 빈익빈의 특징이 문화산업보다 더 극렬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넷째, 가치 측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예술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주관적이고 경험자마다 다르므로 가격 책정이 매우 어렵다. 제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미술품에 책정된 가격은 유통시장이 발전되어 있지 않고 소수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변화되므로 예술적 가치가 반영된 가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예술산업 시장 규모를 미술시장 작품거래 규모와 공연단체의 시장으로 한정해서 보면 2014년 기준 7,400억 원에 이른다. 공연시장 규모는 공연단체 기준으로 3,904억 원인데 이 중에서 뮤지컬이 48%, 콘서트가 41%로 두 분야가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클래식, 연극 등의 비중은 작다. 국내 미술시장은 3,496억 원으로 이 중에서 화랑을 통한 거래가 60%, 이어서 경매 22%, 건축물미술작품은 15%이다. 이들 예술시장은 소득향상에 따른 문화에 대한 관심 증가, 다른 분야로의 활용성 증가 등으로 매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유망산업으로 명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예술산업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산업화가 진전되는 모습은 예술산업의 최근 트렌드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먼저, 기술과의 접목을 들 수 있다. 공연에 기술이 더해지면 연출자가 의도하는 대로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대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K-Live에서 공연하는 싸이의 콘서트는 유사 홀로그램 기술에 의해 싸이를 재현해 놓은 것이고, <태양의 서커스>는 첨단 기술력을 활용한 대규모 특수 장치를 동원하여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랄프 로렌 패션쇼는 패션, 아트, 음악과 향수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결합하여 빛으로 새로운 디지털 공간을 연출한 초현실주의적 패션쇼이자 설치미술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흐, 마네 등 많은 유명작품이 디지털화하여 영상으로 전시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
또 하나의 트렌드는 유통플랫폼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아트페어와 경매 등으로의 거래가 활발하다. 고가격의 작품 거래는 화랑에서 이루어지지만 많은 저가 작품의 거래는 접근성이 높은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층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유통플랫폼에서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유통플랫폼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예술작품의 유통, 홍보, 커뮤니티 조성, 예약, 주문 등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플랫폼은 생산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진입장벽을 줄여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유통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어서 콜라보레이션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최근 패션과 공연의 콜라보, 미술과 의류산업의 콜라보 등 수많은 협력과 협업이 일어나고 있다.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인 루이비통,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BMW 등은 유명아티스트들과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데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콜라보레이션은 아티스트가 가진 창의성과 상상력 등을 아티스트의 브랜드 가치로 인정하여 아티스트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인데, 작가와 기업이 윈윈(win-win)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현재도 많은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외진출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국내 미술작가들이 테이트모던(Tate Modern)과 같은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는 횟수가 많아지고, 해외의 초청 전시도 증가하고 있다. 공연의 경우 2012년 이후 40편 이상이 일본시장에 진출하고 있고, 중국시장에서 라이선스 수출도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예술산업은 국제화 초기에 진입하고 있어, 향후 예술에서의 한류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은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융합을 거듭하고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예술산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분야는 ‘산업의 예술화’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을 모든 산업에 접목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즉, 물건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예술을 입히는 것이다. 디자인,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예술이 제조업과 서비스의 개발, 생산, 유통에 활용되어 제품의 미적 가치와 브랜드를 높이고, 나아가서는 기업경영이나 국가 이미지에도 예술이라는 DNA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이 우월한 DNA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예술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고정민은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교수이고, 문화예술경영, 문화산업, 서비스산업 등을 연구하는 미래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이다. 현재 세종학당 이사, 문화관광부자체평가위원, 콘텐츠민관합동협의회 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고, 과거에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영화진흥위원회 비상임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