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진보와 그로 인한 다양한 분야의 혁신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문화예술 분야도 기술진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기술혁신은 문화예술의 기획·창작·유통 그리고 소비 측면에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소위 산업혁명 4.0시대에 문화예술정책은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다양한 논의들이 있어 왔다. 기술의 진보가 문화예술의 제 측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그 파괴력이 엄청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그 영향력이 과장되어 있고 실제 크게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으로 보는 입장들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기존 문화정책을 보면 문화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문화 분야의 정부예산 상당 부분이 문화기술분야에서 집행되어 온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화예술의 기획·창작·유통·소비의 제 측면에 있어 기술, 특히 최근 강조되고 있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들 기술이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굉장히 많은 것을 해결하여 줄 것으로 믿는 일부 광신적인 태도에 대하여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8,000달러에 판매된 구글 인공지능 ‘딥드림’의 작품 ⓒ구글 8,000달러에 판매된 구글 인공지능 ‘딥드림’의 작품
ⓒ구글
스스로 작곡하는 인공지능 ‘쿨리타’ ⓒ유튜브 스스로 작곡하는 인공지능 ‘쿨리타’ ⓒ유튜브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들, 예컨대 넷플릭스의 추천시스템 등이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사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제한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수년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국제 세미나에서 한국 측 인사가 넷플릭스 드라마의 성공요인으로 빅데이터를 들었으나, 넷플릭스 관계자가 빅데이터는 그 드라마의 성공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상세히 반박한 웃픈 해프닝도 있었다.

상기한 기술들은 수단이며 이들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는데, 현재 주장되는 논의들을 보면 마치 이들 기술들이 목표이고 우리가 이들 기술들을 배우면 문화예술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거의 저절로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발표나 신문기사들을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우리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소프트웨어 코딩을 반드시 가르쳐야 하고 이를 가르치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부 견해들도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코딩보다 본질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그 감성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창의력이며, 이는 코딩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우리의 기획자, 창작자, 매개자, 소비자들이 풍부한 감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그들의 감성이 다양하게 구현되는 과정에서 코딩,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 전문가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서로 상대를 설득하면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기쁘게 하는 유무형의 어떤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혁신은 실상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켜켜이 쌓이는 가운데 진보된 기술의 도움을 받아 무언가 의미 있고, 새롭고, 재미있고, 조금은 놀라운 것들을 만들고, 다듬고, 부수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이러한 과정이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집중되어야 한다. 문화기술에 대한 지원을 과감하게 줄이고 타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에 대한 지원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연결되어 꽃을 피울 수 있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면 된다.

정리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여 기술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적어도 문화정책에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문화정책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우리의 상상력, 창의력의 산물들이 기획·창작·유통·소비의 제 측면에서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및 간접적 지원, 그리고 각종 유무형의 장애요인인 규제 요소의 제거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본 원고는 이창진 박사(MDS 개발팀장, 예술학 박사)와 공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 김재범
  • 필자소개

    김재범은 런던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예술대학 교수이다. 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의 중기재정평가위원(문화체육관광부)이었으며, 국회입법조사처 조사분석 자문위원이다. 현재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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