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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정체성과 함께한 도약
리뷰_2017 ISPA(국제공연예술협회) 몬트리올 총회세계 공연예술 관련 리더들이 모이는 ISPA(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s, 국제공연예술협회)는 1948년 첫 총회를 시작으로 201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100회를 맞이하였다. ISPA는 매해 1월에 뉴욕총회를 개최하며, 1987년 런던을 기점으로 5~6월에 세계 다양한 도시가 주관하는 국제총회까지 연 2회의 활발한 국제교류의 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56개국 500명이 넘는 세계 유수 문화 인사들이 회원 또는 조직위원회로서 소속되어 있어 명실공히 세계최대 공연예술 리더들의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ISPA 100회 특집을 준비하는 몬트리올은 이미 축제 중이었다. 2017년 5월 22일은 캐나다 건국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도시 몬트리올의 375주년을 축하하는 잔치로 도시는 풍성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ISPA 총회를 진행하는 시나르(CINARS) 담당자들도 바쁘게 뛰어다니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었다. 쥐스탱 트뤼도(Junstin Trudeau) 국무총리와 캐나다예술위원회(Canada Council for the Arts)의 사이먼 브롤트(Simon Brault) 대표는 문화예술 분야의 전체 예산을 두 배로 증가시키면서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상기된 모습이었다.
100회를 맞이한 ISPA 총회는 '정체성(Identities)‘이란 주제로 5월 24일(수)부터 27일(토) 4일간 캐나다 몬트리올 멀티플렉스 공연예술 메카인 라플라스데자르(La Place des Arts)와 몬트리올 미술관(Musee Des Beaux-Arts De Montreal), 그리고 국립서커스학교와 태양의 서커스 본부가 있는 서커스 전용 공연장 토후(TOHU)에서 열렸다. 최근 ISPA는 펠로우십(fellowship) 제도를 도입하여 젊은 공연예술 리더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총회가 시작되기 전 23일(화)~24일(수) 양일간 학술심포지엄과 그룹 워크숍을 별도로 진행하였다. 이러한 젊은 리더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적인 활동은 ISPA가 더욱 생기 넘치고, 계층과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살아있는 조직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ISPA 국제총회는 매회 새로운 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세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고 네트워킹을 진흥하는 피치뉴워크(Pitch New Works)와 PROEX(Professional Exchange),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공연장들의 현장답사와 공연체험 및 문화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매해 공연예술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을 뽑아 수상하는 ISPA 어워드(PRIX ISPA AWARDS)와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하는 피날레 축하파티가 있다.
데이비드 베일(David Baile) ISPA 회장의 개막축사를 필두로 라플라스데자르(La Place des Arts)의 마크 블롱도(Marc Blondeau) CEO의 환영인사로 세션이 시작되었다. 이번 100회 특집의 주제인 ‘Identities : 정체성’에 대한 각계각층의 다각적인 논의가 펼쳐졌다. 총 6개의 세션 중 첫 번째로 예술가로서 또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민자, 토착민, 피난민 예술가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각각의 정체성 충돌은 실제로 문화의 탁월한 혼합을 이끌어 내고, 공연예술에서의 혁신적인 경험으로 이어지게 한다. 또 개인, 기관, 공동체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해 정체성의 모든 측면을 활용하는 것은 발견되지 않은 잠재력을 열어 놓는 강력한 촉매제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두 번째 세션은 ‘New Practices to Cross Borders’로 국경을 넘어 진행되는 제작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공유했다. 특히 < Aisa Dance Connection : HOT POT >이라고 명제한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가장 많은 패널들의 질문을 받았던 화제의 세 번째 세션은 ‘In Search of an Audience’라는 주제로, 다양성이 가득한 남미와 싱가포르 그리고 남부프랑스의 사례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중 싱가포르의 가우라브 클리팔라니(Gaurav Kripalani) SIFA 페스티벌 디렉터는 “축제의 현장으로 맛있는 도시락과 함께 소풍 오세요(Bring your foods and doing a picnic)”라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문턱을 낮추고, 눈높이에 맞는 참여 독려형 축제 정책이 축제 성공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몬트리올 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된 또 하나의 뜨거웠던 세션은 ‘Funding Models: Embracing Diversity and Identity’ 즉, 펀딩모델에 대한 토론이었다. 3개의 다른 나라 펀딩모델을 비교하면서 열띤 토론을 이끌었는데, 패널로는 미국 NEA의 의장인 제인 추(Jane Chu)와 네덜란드 공연예술기금(Performing Arts Fund NL) 총괄매니저인 헨리에트 포스트(Henriette Post), 그리고 캐나다예술위원회 사이먼 브롤트(Simon Brault) 대표가 발제했다. 사이먼 캐나다예술위원회 대표는 토착민과 피난민, 그리고 이민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그들의 자유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큰 박수와 호응을 이끌었으며, 네덜란드의 헨리에트 총괄매니저는 공연예술 펀딩모델은 양적인 지원에서 질적인 지원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치로 기록되는 산출물을 넘어 질적인 성과에 가치를 부가하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세계 각국 공연예술 인사들이 교류를 통해 정보를 나누고 상호자극을 촉진하는 국제모임인 ISPA가 100회를 기념해 선택한 주제는 ‘정체성’이다. 흔히 다문화 국가로 대표되는 ‘캐나다’와 영어와 프랑스어를 고집스러울 만큼 동시 사용하는 도시 ‘몬트리올’은 이번 주제인 ‘정체성'과 매우 자연스러운 접점을 이룬다. 일찍이 토착민과 이민자 각각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는 다문화 이민정책으로 저마다 자신들의 혈통과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캐나다에서 정체성이란 매우 특별한 이슈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국경이 무의미하다 할 만큼 급속도로 글로벌해지고 있고, 그로 인한 정책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유럽 등에 유입되는 각국의 난민문제와 사회적 문제는 언제나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동일 문화권 내에서도 정치, 종교, 이념과 관념 등 다수와 소수가 나뉘고 갈등하는 문제는 언제나 존재한다. 즉, 정체성은 비단 캐나다만의 주제가 아니라 여러모로 세계적인 이슈이자 현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총회의 각 세션에서는 난민과 이민자, 소수민족, 소외계층을 대변하여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사회정치학적인 관점에서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전환하여 보다 확장된 시선으로 다루는 계기가 되었다. 정체성의 존중은 다양성의 존중을 그 기반으로 하며 그렇게 보장된 정체성과 다양성은 다방면에서 창의성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데 그 근거를 든다. 즉, 정체성이 어떻게 다양성을 확보하는지 다양성이 어떻게 창의성으로 진화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검증하고 논의했다.
한국적인 특징을 가진 국내의 작은 공연들을 해외에 소개하는 국제교류사업을 10년 가까이 해온 개인적인 입장으로도 이번 세션들의 사례와 논의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던 작은 공연들이 해외의 페스티벌에서 좋은 평가와 주목받는 결과를 만들고, 다시 국내에서 재조명되는 사례들을 실제로 수차례 겪어봤기 때문이다. 정체성 있는 작품은 다양성이 보장된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그것이 다시 작품에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전혀 낯설지가 않다.
다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화정책적 모델로 진화하는 국제적인 기류는 주시할 만하다. 정체성과 다양성을 이슈로 한 각국의 정책적 사례들과 펀딩모델 비교는 단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충분한 화제의 세션이었다. 특히 성과위주의 양적평가에서 탈피해 공연의 의미와 가치를 중요시하는 질적평가로 전환된 모델링을 제시했던 네덜란드의 공연예술펀딩이 실제 공연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소외되기 쉬운 분야의 진출과 도약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 총회가 마땅히 설 곳을 찾기 힘든 국내의 중소규모의 공연예술인들에게 기존의 체제에 편향되지 않아도 된다고, 정체성을 가져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되길 바라며, 다양성이 보장된 정책이 논의되고 실현되는 근거가 되길 바라며, 보다 창의적인 작품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유선정은 단국대학교 회계학 석사를 마치고 현장경력을 쌓은 후, 영국 에든버러 퀸마가렛대학교에서 축제·예술경영학 석사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관객의 행태 분석을 연구하며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 국제문화예술경영학회(AIMAC)의 박사심포지엄에서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고,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국내 중소규모의 한국적인 창작공연예술의 국제교류 및 투어 개발사업을 돕는 코레아뮤저(coreamuser)의 대표로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