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클래식계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30여 년 간 민간 기획사와 기획자의 주도적인 역할로 성장해 왔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는 공연장을 대신하여 세계적인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의 프레젠터(presenter)로서, 그리고 지역 공연장에 예술 콘텐츠를 제공하는 프로모터(promoter)로서 그리고 실력 있는 예술가들을 키워내고 성장시키는 아티스트 매니저(artists manager)이자 문화예술행사의 프로듀서(producer)로서의 역할을 민간 기획사들이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 기획사들이 느끼는 현실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지난 2018년 1월 29일 서초동 코스모스 홀에서는 (사)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주최로 100여명의 민간 기획사 대표 및 직원 들이 참여하여 현 클래식계 현황을 진단하면서 각 사가 갖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여 보다 발전적인 클래식 공연 시장을 건설하고자 토론회를 마련하였다. 토론회의 주요 담론을 바탕으로 민간 기획사를 둘러싼 클래식계 상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한국 클래식계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 민간 기획사의 어려운 점들이 거론되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주요 클래식 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대표적인 공공 공연장들은 자체 기획 공연에 집중하기보다 대관 중심의 사업에 집중하였고, 그 사이 민간 기획사들이 순수예술의 해외 초청공연 및 기획공연을 직접 제작하고 또한 아티스트를 발굴하며 클래식 시장을 성장, 발전시켜왔다. 유럽이나 미국, 그 어느 나라의 경우를 보아도 클래식 공연은 순수예술로서 정부 혹은 기업의 후원과 협찬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민간 기획사들이 정부지원보다는 오롯이 기업 후원에 의지하거나 자체 재원으로 이 모든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단체 초청공연 시 개런티·항공료·체재비는 기획사에서 부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비용에 대한 소득세율을 22%로 일괄 적용함으로써 공연제작비에 영향이 미치고, 이는 티켓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해외 유명 단체의 초청공연의 고가 티켓 논란이 지속되는 이면에는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높은 세율을 감당해야하는 사정이 있었다. 세율을 조정해 제작비 상승의 요인을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연제작비 마련의 어려움을 그나마 해소해주었던 기업의 후원·협찬 유치도 2016년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여파로 급속히 감소했으며 현재로서는 클래식 공연 시장의 직접적인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김영란법의 취지에는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해당 법안으로 인해 시장이 위축되고 그 부담이 관객들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는 순수예술분야의 실정을 고려한 예외조항을 두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둘째로 정부의 지원사업이 예술단체·예술가 위주로 직접지원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소외 문제가 있다. 그간 타 장르의 예술단체·예술가에 비해 직접지원에 선정되는 비중이 극히 적었다. 예를 들자면 대체로 많은 클래식 기획사에서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성화 지원사업(대관료 지원사업)의 2017년 선정 결과 중 기획사로 지원 받은 단체는 전체 52건 중 11건에 그쳤다. 공공기관들은 이를 기획사(기획자)가 영리를 추구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공연 제작을 위해 필요한 홍보마케팅·기획·재원조성·정산·운영의 모든 일들을 기획사(기획자)가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지원사업에서는 이들을 위한 인건비나 대행료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적어도 클래식계에서 기획자는 또 다른 의미의 창작자이자 개척자이며, 예술가가 이런 기획자와 함께 할 때 공연 시장 역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술가 지원 시 반드시 클래식계 내부의 기획사(기획자)의 특성을 인정하고 감안하는 지원사업의 요소가 수립되길 바란다.

셋째는 클래식 아티스트와 클래식 콘텐츠 발굴을 위한 플랫폼이 미비하다는 점과 이들을 성장시킬 에이전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8년 현재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클래식 연주자들의 숫자는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으며, 지난 60년 동안 한국의 음악가들은 전 세계 국제 콩쿠르에서 148번 우승을 차지할 만큼 클래식의 강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음악가들이 이렇게 선전하는 것에 비해 이렇듯 뛰어난 연주자들을 소개할 클래식 전문 TV프로그램은 전무하며, 그나마 기획사에 소속된 몇몇의 연주자들 위주로 소속사의 미디어 플랫폼이나 개인 SNS를 통해 소극적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한 서울을 포함 지역 국공립공연장 조차 대중들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순수 클래식 콘텐츠는 갈수록 회피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으며 예술성보다는 TV나 유명세에 힘입은 대중 콘텐츠 위주로 기획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토론회에서 발제 및 토론에 참가한 8인. 왼쪽부터 ㈜빈체로 송재영 본부장, ㈜마스트미디어&엔터테인먼트 김선화 부대표, ㈜스테이지원 박진학 대표, ㈜컬쳐비즈글로벌 박선미 대표, 부산아트매니지먼트 이명아 대표, ㈜브라보컴 김영인 대표, ㈜크레디아 스타쉽 이강원 이사, 김호정 기자 토론회에서 발제 및 토론에 참가한 8인. 왼쪽부터 ㈜빈체로 송재영 본부장, ㈜마스트미디어&엔터테인먼트 김선화 부대표, ㈜스테이지원 박진학 대표, ㈜컬쳐비즈글로벌 박선미 대표, 부산아트매니지먼트 이명아 대표, ㈜브라보컴 김영인 대표, ㈜크레디아 스타쉽 이강원 이사, 김호정 기자

정리하자면 현재 클래식 콘텐츠를 공급하고 아티스트를 발굴·성장시키는 기획사의 역할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와 인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연장(프레젠터)과 기획사(에이전트)는 연주자를 관리하고 협상과 계약을 대리하여 공연의 완성을 이루어내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공연을 연주자 홀로 완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획사의 역할, 즉 홍보 마케팅·연주자 관리에 대한 수수료·수익의 창출과 배분에 대한 상호 인정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본 토론회가 처음 개최된 만큼 민간 기획자들의 여러 가지 의견과 토론이 오고 갔다. 발제된 의제에 따른 자성의 의견도 많았다. 클래식 시장의 열악한 현 상황은 물론 기획사들의 발전적 노력이 부족했으며, 기획자들 스스로 포지셔닝에 소극적이었던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반성과 개진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공공영역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민간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 할 수 있도록 기획사와 기획자들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고 클래식 시장을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번 첫 토론회를 기점으로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클래식 시장의 성장을 위해 앞으로 더욱 활발한 의견 개진과 논의가 오고 가기를 기대해본다.

  • 윤보미
  • 필자소개

    윤보미는 1996년 ㈜크레디아에 입사하여 100여 회의 해외 아티스트 초청 공연을 진행하였으며 호암아트홀 기획운영 부장을 거쳐 2010년 ㈜봄아트프로젝트를 설립하였다. 현재 피아니스트 박종화, 임현정, 한상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 바리톤 이응광 등 클래식 아티스트를 매니지먼트하고 있으며, (사)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이사 및 영아티스트 포럼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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