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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공연예술 관객 개발의 가능성 연다
.최근 공연예술에는 창작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미디어 파사드 등 디지털 영상과의 결합은 물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활용,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의 적용 등을 통해서 말이다. 적어도 창작의 영역만을 놓고 보면 기술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표현과 소통 방식의 융합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 보인다. 새로운 표현방식을 추구하는 예술의 속성 상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고, 근대 이후 서로 멀어지려 했던 두 영역이 다시 화해한다는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전향적 변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 영역의 변화와 별개로 현재 우리 공연예술계는 곳곳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연예술인들의 약 62%가 월수입 5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경제적 빈궁(공연예술인노동조합, 2017), 이로 인한 예술가와 매개자들의 잇단 자살, 공연예술의 메카라는 대학로의 젠트리피케이션 조짐 등 공연예술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공연이 제작되는 탓이라 하기도 하고,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투자 등 시장 시스템의 문제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공연예술은 본래가 시장실패의 영역이므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더욱 확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필자가 보기에 공급과잉이든 부족한 시장시스템이든 공연예술의 근본적 문제는 관객 수의 정체에서 비롯된다. 좀처럼 넓어지지 않는 관객층이 문제인 것이다. 실제로 연 평균 예술행사 관람횟수에 관한 정부통계를 보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무용만 0.01회에서 0.05회로 늘었을 뿐 연극(0.2회), 서양음악(0.1회) 등에서는 변화가 없다. 이렇게 관객이 늘지 않으면 눈부신 창작의 성취도 제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예술가들을 탓할 수는 없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을 모을 수 있는지 여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관객과의 소통보다 차원 높은 예술적 성취에 있다. 창의적 자율성에 입각한 예술적 수월성의 추구야말로 대중예술과 구별되는 순수예술 또는 기초예술의 가치이자 존재 이유다. 이전의 예술이 역사적으로 어떤 동기로 만들어졌든지 간에 이 시대의 순수예술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혼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공연예술은 시대적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로 인해 정부지원의 합리성 또한 획득한다.
그렇다면 관객은 어떤가? 이제까지 순수예술을 접하지 못한 소비자들에게 관람경험과 습관을 길러준다면 관객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소위 예술교육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교육을 통한 공연예술 향유의 습관 형성 또는 자질 함양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교육과 예술교육이 다르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에겐 예술향유의 경험도 있고 19세기 노동자 계층처럼 예술을 향유할 여유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결국 공연예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공연예술의 유통은 소비자에게 공연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는 모든 경로와 수단을 의미한다. 공연예술 유통 활성화는 소비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기본 전제로 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보다 매개자에게 있다. 프로듀서, 프로모터, 프리젠터, 기획자 등 명칭이야 어떻든 간에 매개자는 관객개발을 통해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속에 정체를 보이며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공연예술의 경제적 어려움과 현안들을 해결해야 하는 주체들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관객개발이라고 하면 주로 개인의 감과 경험에 의존해 관객의 성향과 변화를 감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도 사실이다. 설령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오프라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인터뷰, 대표집단 분석 등에 국한됐다. 실질적인 관객개발과 충성도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연예술 소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정치·경제·사회·기술 등 거시환경적 요인들과 역사·민족·계층·하위문화 등 문화적인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개별 작품의 유통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거시적 요인들보다 소비자의 개인적 요소에 대한 파악이 더욱 중요하다. 여기서 개인적 요소는 성격, 태도, 동기 등 심리적 요인이나 나이, 직업, 경제적 여건, 가족 상황, 생애주기에서의 위치 등을 말한다.
공연예술의 수용과정을 연구한 소셜마케팅 학자 안드리아슨(Andreason, 1998)을 인용해 보자. 그에 따르면 공연예술 관객은 무관심·관심·시도·긍정적 평가·수용·확신의 단계로 진화한다. 미국의 경우, 1년간 한 번이라도 공연예술을 관람한 ‘시도’ 이상의 단계에 속한 관객은 30% 정도로 추정된다. 이제까지 공연예술에서 개별 작품에 대한 홍보마케팅은 이들과 신규 관객개발 관점에서 접근하는 약 22%를 차지하는 ‘관심’ 단계에 위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무관심’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1년간 공연예술 관람의 경험이 전혀 없으며, 관심조차 없는 ‘무관심’ 그룹은 47%를 차지한다. 안드리아슨은 이들을 공연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들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소비자들은 전통적 관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무관심 그룹이라고 해서 교육을 통해서만 공연소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영원히 무관심층으로 남으리란 근거도 없다. 1970년대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P. Bourdieu)는 공연예술을 포함한 예술에 대한 취향의 차이는 계층(hierarchy)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슨(Peterson)은 옴니보어(Omnivore) 이론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의 예술적 취향은 사회계층, 종교, 국적 또는 인종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것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결정하는 데 매우 능숙하기 때문이다.
고된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난 하류계층을 포함한 현대의 관객은 계층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문화적 계층과 문화들 중에서 선택하는 주체들이다(Kolb, 2005). 이 시대 공연예술의 매개자들은 소비자 분석에서 계층의 구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보다 포괄적 범위의 사람들이 공연상품을 좋아하고 소비하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공연상품을 전혀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분석의 폭을 넓혀 원인 파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신규 관객을 개발하는 길이다.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로 인해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공연예술에 대한 정보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적다. 하루에도 1,300여 개에 달하는 전국의 공연장마다 각기 다른 공연이 올라가지만 일반인이 수많은 정보 속에 묻혀있는 공연 정보를 캐내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연장이 마니아나 전문가들로 채워지고 관객이 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순수 공연예술이 대중예술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 대부분 영세한 규모의 공연단체나 공연장의 사정으로 볼 때 그렇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연예술의 특성 상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관객개발의 측면에서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맞춤형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대부분의 공연예술 단체들은 객석 점유율, 관객의 정체성, 관객 수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정량적인 통계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관람 동기와 관객들이 원하는 편익을 밝히려는 정성적 연구에는 관심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Kolb, 2005). 추측이나 설문조사 등만으로도 관객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현장에서 일어나버린 과거의 것일 뿐 향후 실연될 공연에 대한 예측자료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설령 재공연일지라도 지역과 시기에 따라 관객은 바뀐다.
누가 어떤 공연을 보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 공연을 보았는가’이다. 공연 관람의 동인을 알아야 그에 부합하는 공연을 픽업할 수 있고, 맞춤형 큐레이션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데이터의 수집, 저장, 분석 기술 발달은 빅데이터 시대를 열었다. 방대한 양의 정형데이터는 물론 비정형데이터를 포괄하는 빅데이터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관객분석을 기본 요체로 하는 공연예술의 유통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관객들의 인구통계학적 특성별 공연 평가, 선호도, 연관 소비 행태처럼 복합적인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 분석을 광범위하게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수집된 정형(매출데이터) 혹은 비정형(SNS) 데이터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유통 활성화 방안을 고안할 수 있다. 물론 정책입안자들에게도 공연예술정책을 결정하는 근거 자료로서 빅데이터 분석의 효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맥킨지(McKinsey, 2012)는 빅데이터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다섯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산업 투명성 증대, 소비자 니즈 발견·트렌드 예측·성과 향상, 소비자 맞춤형 비즈니스 및 고객 세분화, 자동 알고리즘을 통한 의사결정 지원과 대행, 비즈니스 모델·상품·서비스 혁신 등이 그것이다.
결국 빅데이터는 데이터마이닝을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는 ‘지식발견 단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사결정단계’에 이룰 수 있을 때 그 진정한 가치가 발현된다(장영재, 2014). 공연예술은 그동안 경험재로 정의돼 왔으나 탐색재의 속성 또한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과 모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 공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공연정보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77%가 페이스북, 76.7%가 트위터, 70.8%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더 뮤지컬, 2016). 이는 SNS 데이터 분석만으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정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특정 공연의 관람요인에 대한 정성적 분석이 가능하다. 공연 시작 이전과 이후 시점별로 주로 언급된 키워드와 연관어 등 소셜 반응을 분석하면 공연 중 인기 있는 장면을 비롯한 공연관람 요인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아울러 SNS별로 버즈(buzz)량의 추이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인지 경로의 분석도 가능하며, 인지도 확산의 추이와 마케팅의 전파력을 가늠할 수도 있다. 나아가 소셜데이터와 매출데이터를 매시업하면 그룹별, 구매공연별, 구매시간별 정성적 구매요인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영포티’, ‘혼공족’ 등 최신 트렌드를 카드데이터로 확인함과 동시에 소셜데이터를 통해 그들의 정서와 취향을 추출해 낼 수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공연예술 성수기다. 빅데이터 얘기를 하다 보니 이 시기와 관련된 연관어에 공연예술 관련 단어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뮤지컬을 제외한 공연예술 관련 연관검색어가 상대적으로 적으리라는 걱정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분석과 이를 통한 유통의 활성화를 위해 공연예술 매개자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관계망과 인터넷상에 보다 많은 공연예술 관련 연관어들의 출현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향후에는 빅데이터 분석에 의한 정보 또는 큐레이션을 통해 보다 많은 신규 관객이 공연장을 찾게 되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로 새롭게 단장한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공연장을 말이다. 빅데이터를 다각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공연 유통 활성화 방안을 고안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테크M 제56호 (2017년 12월)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