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남북정상회담에 놓인 ‘북한산’을 넘어설 동력
남북 시각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제언남북정상회담 이후 문화계도 많이 들떠있는 듯하다. 앞다투어 남북교류 프로그램을 들고 누구보다 먼저 성사시키고자 움직이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만남’이라는 이벤트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일 수 있으나, 지난 교류 사업들을 되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하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회문화교류는 그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확대 발전되었다. 교류 초기의 단일성을 벗어나 다양한 방면의, 전문분야로의 교류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2000년 전반기에 집중되었고,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급속히 단절되었다. 다른 사회문화교류와 마찬가지였지만, 미술교류의 경우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요인에 의해 진행되어왔으며, 이에 따라 미술교류의 독자적인 관계망을 형성하지 못하고,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에 이끌려왔기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미술교류는 남북교류가 활발했던 시절에도 주로 북한 미술작품을 남한에서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남한미술의 북한 내의 전시를 추동시켜내지 못하였다는 한계 또한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주로 제3국에서 진행되었던 남북 미술교류가 남북한 중심으로 옮겨왔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남한 대중들이 북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경험할 기회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시작됨으로써(2018년 5월 현재는 중단되어 있다) 북한 현지에 가서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길이 열렸으며, 그 과정에서 작품 판매처에 나와 있는 북한의 작가들을 남한의 대중들이 만나게 되는 기회도 발생하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 미술작품을 남한에서 전시하게 되면서 작품 내용에서 이념성은 배제되었다. 특히 남한 미술시장에서 북한 작품이 남한의 대표적 작가의 작품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북한 미술교류 전시는 ‘투자’를 위한 공간으로 남한 대중에게 빠르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교류 전시 후 작품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기보다는, 남한의 미술교류 주최자가 교류를 전제로 북한 작품을 일괄 구입한 후 남한에서 전시하는 방식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여 집 안에 걸어놓고 감상하고 싶었던 대다수 대중들의 욕망이,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북한미술작품들을 주목하게 된 요인 또한 크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2000년대 전반기 남한 미술시장 자체가 매우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이러한 대중들의 욕구와 이에 부흥한 미술교류의 양적 증가의 확대 재생산은, 미술계의 검증 없이 자체 동력으로 굴러가면서 작품의 진위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드러내게 되었다. 미술교류가 단절적이고 이벤트적인 사업 위주로 지속되면서, 북한미술연구자를 길러내지 못하였다. 특히 작품 중심의 교류와 인적교류의 제한성으로 인해 미술인들 간의 인적 네트워크 또한 형성하기 어려웠다. 그럼으로써 시장에서 급증하는 작품의 진위문제에 대한 요구를 해결해내지 못하였고, 이는 북한미술을 둘러싼 미술시장의 급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 미술계는 자신의 미술품이 해외 융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후 북한은 외화벌이용 미술문화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술정책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남북 미술교류가 남북간의 정치적 문제로 안정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자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으로 진출해나가기 시작하였다. 먼저 아시아권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미술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북한 최고의 미술 창작단체인 ‘만수대창작사’ 중국 베이징에 미술관을 위탁 운영해 미술작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물론 북한도 자신들의 작품의 진위 문제가 시장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술관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함으로써 미술가들이 직접 와서 작업을 하고 이 작품을 판매하는 운영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제3국에서 주문한 그림을 그려주고 외화를 버는 전문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의 백호무역회사는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에서 주문한 그림을 제작하기 위해 관련 장인들을 몇 백 명씩 현지에 직접 보내는 방법까지 시행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행보가 이어지자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명단에 ‘만수대창작사’가 포함되게 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 시장의 속성을 생각하면 아쉬움 또한 많은 정책이기도 하다. 북한이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해외용 미술 작품을 유통한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미술가들이 세계인의 미적 취향을 의식하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남한 및 세계미술계의 주류 시장이 북한미술을 외면하고 있다. 그 사이에도 중국 단둥과 같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북한미술품 시장을 둘러보면, 구매자의 취향이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안목 있는 딜러, 미술계의 주류 시장과 북한미술계의 접촉면이 넓어져야 하는 이유이고 이는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이기도 하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북한미술품을 선별적으로 구입함으로써 북한미술계를 추동해낼 뿐만 아니라 북한미술에 대한 남한 내부적 지식을 축적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매우 시급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난 남북미술교류가 활성화 되었을 시절에도, 미술계의 전문가들이 이를 주도하지 않았음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왜 남북 미술문화교류를 하고자 하는 것인가?
남북 간에 민족공동체, 특히 사회문화공동체가 형성되기 위한 첫 출발은 사회문화 교류·협력에서 시작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들 간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문화’의 가치규범 체계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의 첫 출발점 또한 사회문화 교류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규범이란, 인본주의 정신과 관용 정신의 고양, 다문화에 대한 포용정신 강화, 서로 다른 가치간의 조화,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가치의 계발 등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는 남북한 사회문화공동체 형성은 남한 내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문화를 포용할 뿐만 아니라 이질화된 북한의 독특한 문화를 인정하는 다문화의 양상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족공동체가 형성될 때, 통일 시 남북주민 간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갖는 남북 사회문화교류의 성과는 통일이라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더 직접적으로 지난 십년간과 같이 남북 간의 대결과 단절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때, 실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남북 관계가 단절된 지난 십년간 그 이전 시기의 사회문화교류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 남한에서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많이 변화되었다는 대국민 설문조사 발표에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북한의 지배자들은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돼지코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21세기에 설마 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급격히 변화하는 설문조사의 수치에, 그 동안 남북 사회문화교류의 성과는 과연 있었다고 할 수 있나 반문하게 한다. 지난 교류가 ‘만남’이라는 1회성 이벤트에, 눈앞의 투자가 가치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미술문화가 정치적 행사에 장식품으로서만 동작되지는 않았는지 차분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는 그 순간 매우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치적 변화와 함께 그 동력을 상실한다. 지속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인식변화를 추동해내었다면, 문화의 속성상 그 성과는 하루아침에 문이 닫혔다고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남북 사회문화교류를 통해서 상대방 문화를 다문화주의와 문화다원주의 시각을 가지고, 우리와 ‘다른’ 문화를 ‘차별’로 다루지 않고 ‘차이’로 포용함으로써 문화통합의 첫걸음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는 열린 가치관과 문화적 상대주의 관점을 생활화하여 다양성을 창조해 낼 줄 아는 능력을 갖도록 교육하는 통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의 수립이 미술인들 내부에서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박계리는 남과 북의 현대미술 분석을 통해 21세기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