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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대중음악 페스티벌, 성장과 변화의 갈림길
.2018년 3월에 출간한 『2017 음악산업디렉토리북』에 의하면 2017년 국내에서 열린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총 55개이다. 반면 1년 전에 내놓은 『2016 음악산업디렉토리북』을 확인하면, 2016년에는 총 61개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조사에 응하지 않은 페스티벌이 있을 수 있고, 매년 새로 시작했다가 계속 이어지지 못한 페스티벌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해마다 대략 50~60개 규모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꾸준히 열리는 상황이다. 겨울철 네 달을 빼면 매달 7개의 페스티벌이 열리는 셈이다. 봄, 여름, 가을에는 매주 페스티벌이 열리고, 때로는 한 주에 두 개의 페스티벌이 열리는 격이다. 국내 대중음악 페스티벌 역사를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하는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의 악몽과 아쉬움을 딛고,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대중음악 페스티벌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만하다.
*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은 1999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한국 최초의 대규모 록 페스티벌로, 딥 퍼플, RATM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악천후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며 큰 아쉬움을 남겼다.
1) 지역화
이렇게 성장한 한국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최근 지역화, 특성화, 동질화 경향을 보인다. 먼저 지역화다. 대중음악 페스티벌 붐을 일으킨 주요 페스티벌은 모두 수도권에서 시작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인천에서 열리고,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은 경기도 이천에서 열렸으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다. 서울재즈페스티벌과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은 서울에서 열린다. 아직도 대중음악 페스티벌 가운데 절반가량은 수도권에서 열린다.
하지만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전국의 주요 거점 도시로 꾸준히 넓어졌다. 2016년 광주광역시에서는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광주난장사운드페스티벌’, ‘광주사운드파크페스티벌’이 열렸고, 대구광역시에서는 ‘대구국제재즈축제’, ‘대구독립음악제’, ‘대구포크페스티벌’, ‘청년 대구로 청춘 힙합 페스티벌’이 이어졌다. 부산과 울산에서도 여러 페스티벌이 열리고, 경주, 구례, 대전, 영암, 전주, 제주, 제천, 춘천, 파주, 포항 등에서도 페스티벌이 열린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열리지 않는 도나 광역시는 하나도 없을 만큼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늘어났다. 예전에는 수도권 밖에 사는 이들이 대중음악 페스티벌 때문에 일부러 수도권으로 향했다면, 이제는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해 강원도 철원에서 처음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수도권 음악 팬들과 힙스터들이 강원도로 향했고,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여는 화엄음악제를 보기 위해 남행 열차를 타는 이들도 있다.
2) 특성화
그리고 최근 대중음악 페스티벌들은 특정 장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특성화하는 편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록 페스티벌이 강세였는데, 이제는 일렉트로닉 페스티벌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다수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명칭에서부터 록, 월드뮤직, 일렉트로닉, 재즈, 포크, 힙합 등의 장르를 명기함으로써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장르를 뒤섞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페스티벌보다 특정 장르만으로 한정한 페스티벌이 더 많아지는 현상은 장르를 한정해도 흥행할 수 있을 만큼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 성장·분화했고, 오히려 타깃을 명확하게 하는 편이 특정 장르 마니아를 집중적으로 끌어 흥행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지역화와 특성화 경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에 오는 이들이 모두 유명 스타를 보려 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록 스타나 팝 스타를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서 페스티벌에 오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뮤지션만으로도 족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음악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 대중음악 페스티벌에 온다. 그 경험은 자신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경험, 일상에서 만나지 못한 시공간을 체험하는 경험, 평소의 자신과 다른 자신을 전시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서울재즈페스티벌 같은 대형 야외 피크닉형 페스티벌이 성공한 이유이며, 글로벌 개더링을 비롯한 대형 EDM 페스티벌이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근사한 음악이 BGM으로 흐르는 소풍 같은 체험의 장이다. 그 체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추억을 축적한 자신을 소셜 미디어에 전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이나 출연진이 아니라 분위기이며 경험과 자기 전시이다.
작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기간에 평소 관광지로 한 번도 주목받은 적 없는 강원도 철원에 수도권의 힙스터들이 몰려든 이유 역시 평화라는 주제나 유명 출연진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철원이라는 낯선 지역, 그러니까 수도권의 힙하고 핫한 분위기와 거리가 먼 철원의 분위기, 그 낯선 공간에 트렌디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만들어 내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소비하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수도권의 어지간한 지역과 공간은 다 가 본 이들은 이제 수도권 밖의 지역과 공간으로 눈을 돌린다. 요즘은 시간과 지역이 함께 만든 분위기, 단기간에 복제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즐기는 일이야말로 가장 특별한 체험이다. 수년 전부터 서울의 익선동, 연남동, 제주도가 뜬 이유이다. 요즘 강원도 강릉과 속초를 비롯한 지역 여행이 뜨는 이유이기도 하고, 새로 문을 연 카페들 중에 시멘트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마감을 한 카페들이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 대중음악 페스티벌 중에는 이처럼 지역의 남다른 분위기와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활용한 페스티벌이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가평에서 열리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자라섬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다. 이 페스티벌은 자라섬의 분위기만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라섬 와인을 개발하고, 가평 잣, 한우 등을 연결해 가평의 매력을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해서 실질적인 경제 효과까지 창출했다. 그 결과 가평은 더욱 친근한 관광지가 되었고, 여러 음악 페스티벌이 계속 열리는 지역으로 거듭났다. 대전의 구도심에 있는 옛 충남도청 청사에서 열린 도시여행자 여행페스티벌 시티페스타는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대전의 매력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마찬가지이다. 전라북도 전주가 전주국제영화제와 한옥마을 등에 힘입어 대표적인 젊은 세대의 여행지가 되고, 한옥마을은 힙 플레이스가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지역과 페스티벌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해외에도 이 같은 사례는 허다하다. 잘 만든 페스티벌은 지역 자체를 새롭게 브랜딩하며 바꾸는 데 기여한다. 지역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여전히 소외된 지역이 많은 만큼 페스티벌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결코 단기간에 만들 수 없다. 전문 기획자와 지역민, 지역 행정이 함께 뜻을 모으고 준비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때 축제 망국론이 나올 만큼 페스티벌이 많았던 국내에서는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시작했다 중단한 페스티벌이 적지 않다. 대중음악 페스티벌 중에서도 같은 이유로 인해 1~2년 정도 진행하다가 중단한 페스티벌이 여럿이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대규모 예산과 인원을 동원해야 하는 행사이고, 경제적 성과와 문화예술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 이상의 충분한 투자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치밀한 준비와 장기적 계획 없이 시작한 페스티벌은 축제 자체가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여겨지게 하면서, 세금을 낭비하는 원흉처럼 비난받기도 한다. 하지만 축제는 죄가 없다. 문제는 차이와 개성을 갖춘 축제를 만들지 못하는 행정·기획 시스템의 책임일 뿐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어 내려는 조급증과 행정의 지나친 개입, 기획자의 능력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3) 동질화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규모에 비해 유사한 페스티벌이 지나치게 많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특징 중 마지막 특징인 동질화이다. 차별성 있는 페스티벌이 늘어나는 동시에 팝을 중심으로 장르를 뒤섞은 피크닉형 페스티벌이나 특정 장르의 페스티벌이 과도하게 많아지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몇몇 페스티벌이 성공했다 해도 유사한 페스티벌이 늘어나면 금세 질리고 팬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각각의 페스티벌은 다른 음악, 다른 분위기, 다른 콘셉트로 차이를 만들어 낼 때 지속 가능할 수 있다. 그래야 페스티벌 무대에 항상 서는 일부 스타급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신(scene)의 다양한 장르 뮤지션들이 고루 주목받을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며, 지역도 같이 변화한다. 지난해 잔다리 페스티벌에서 열었던 어슬렁 페스티벌과 우와 페스티벌이 좋은 예다. 홍대 앞의 두 거점인 상수역과 와우산로29길 인근에서 열린 두 페스티벌은 평소에도 붐비는 지역의 분위기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냈으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들게 했다. 지금 좋은 음악을 내놓는 새로운 뮤지션들을 주목할 수 있게 했고, 동네와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수많은 뮤지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장이고, 몰랐던 뮤지션을 만날 수 있게 돕는 길라잡이이다. 음악 팬들이 한데 모이는 교감의 한마당이며, 대규모 수익을 발생시키는 상품이다. 음반과 음원 수입으로 생활하기 어려워진 현실에서 공연시장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수익 구조이고, 라이프 스타일을 살찌우는 특별한 체험이다. 지역을 새롭게 브랜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보는 음악에서 느끼는 음악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패턴이 바뀐 상황에서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가능성과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비롯한 케이팝 뮤지션들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색다른 체험을 위해 전국 어디든 기꺼이 찾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60여 개 규모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고, 내한 공연이 일상화되었으며, 나훈아의 공연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모습은 지역·세대·젠더를 막론하고 자신의 음악 취향과 삶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준비가 된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은 변방이 아니라 세계 10위권 규모로 크다. 그렇다고 모든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어떤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여전히 성공한다. 오직 한 번뿐인 체험,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으로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아직 특별하다. 공연과 페스티벌에서 성장한 뮤지션은 TV로 진출하며 발돋움한 후 더 많은 이들을 불러 모은다. 페스티벌은 대중음악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폭제다. 그러나 뇌관은 아무 때나 터지지 않는다. 지금 누가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서정민갑은 대중음악의견가로,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대중음악 웹진 《가슴》 편집인과 대중음악 웹진 《보다》의 기획위원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