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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미디어, 참여와 체험의 즐거움
.트랜스미디어(Transmedia)는 축자적 의미(literal meaning)로는 미디어 간 경계를 가로지르는 융합 현상 혹은 그 결과물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융합은 산업적 수요에 의한 미디어 플랫폼 간의 생산적인 이동 또는 참여와 체험을 기반으로 한 조형적, 개방적, 유목적인 향유자의 즐거움 추구 과정을 의미한다. 트랜스미디어 콘텐츠 혹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과 유사한 의미로 통칭하는 트랜스미디어는 미디어의 생산, 유통, 향유 과정에서 미디어 간 경계를 넘어서 역동적으로 창출되는 융합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이 글에서는 트랜스미디어와 트랜스미디어콘텐츠 그리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글의 취지 자체가 세 용어를 적확하게 풀이하는 일이 아닌, 트랜스미디어의 다양한 시도와 결과들을 통해 이 현상을 짚어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랜스미디어는 탈중심의 포스트모던 사회, 고도화된 디지털 문화 환경, 다양해진 스마트 미디어 인프라, 탈영역화한 콘텐츠 비즈니스 환경, 참여와 체험 중심의 향유 문화를 전면화함으로써 활성화되었다. 즉, 디지털 문화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 집단 지성, 참여와 공유에서 오는 즐거움 등이 일상화되고, 스마트 미디어가 소통과 놀이의 장(場)으로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됨으로써 생산과 향유 그리고 텍스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발적인 참여, 적극적인 체험, 지속적인 향유가 가능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기술 구현과 문화적 환경 조성이 트랜스미디어가 탄생의 된 배경이 된 셈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작가 중심주의, 원본 중심주의, 텍스트 중심주의의 신화들이 자연스럽게 붕괴되고 탈중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즐거움을 강화할 수 있는 체험과 참여가 전면화된 것도 트랜스미디어 급부상의 주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보다 선명하게 전개하기 위하여 이제 트랜스미디어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으로 초점화해 보자. 이는 향유를 지속, 강화, 확산하기 위하여 복수의 미디어와 장르를 가로질러 스토리월드(Story World)를 확장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스토리텔링 전략 혹은 그러한 세계를 의미한다. 즉,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향유자들이 다양한 장르와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참여해, 기존의 스토리월드를 단편화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창출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지칭한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①향유를 통한 지속적인 가치 창출, ②집단 지성의 실천적 참여와 자발적 생산, ③개방성과 자율성의 최대 보장, ④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모듈로서만 완결된다는 점, ⑤지속적인 컨버전스의 개방적 시도를 그 특성으로 한다. 특히 컨버전스의 방향이 ‘연계→통합→확산→탈경계의 섞임→이주와 유목’ 등의 선택적 순환 기조로 한다는 점과 그 핵심 동력은 향유이며 그에 따른 놀이적 성격과 그것의 생산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스마트 혁명을 통해 확보된 연결성(connectivity), 확장성(scalability), 이동성(mobility)을 적극 활용하여 향유자는 개인별로 차별화된 체험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향유를 통한 텍스트 생산까지 가능해짐으로써 스토리월드의 흥미로운 밀도와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 구현된다. 이처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지속적으로 구축·증식·확장하는 스토리 세계를 기반으로 전개되는데, 이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Transmedia Story World)라고 한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는 다수의 매체와 장르 전개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현재 진행형의 증식성과 개방성을 지향한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는 헨리 젠킨스가 그의 저서 『컨버전스 컬처』에서 주장하듯 ①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며, ②각각의 새로운 텍스트가 전체 스토리에 분명하고도 가치 있는 기여를 하고, ③프랜차이즈로의 진입은 자기 충족적이어야 하며, ④어떤 상품이든지 전체 프랜차이즈로의 입구가 되어야 하고, ⑤새로운 수준의 통찰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만 하는 특성을 지녔다. 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모든 콘텐츠는 개별적·자급적 형태로 창작되지만, 동시에 본래의 거대한 스토리 월드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서 기여한다.
트랜스미디어를 연구하면서 썼던 논문 「웹툰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 연구」에서, 트랜스미디어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나누었던 적이 있다. ①거시 서사를 전제로 프리퀄(Prequel), 시퀄(Sequel)의 발표를 뒤섞거나 그 사이사이에 다른 장르나 팬덤 텍스트(Fandom Text)의 확장적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구축하거나(스타워즈의 예), ②독립적인 텍스트가 필요에 따라 텍스트, 장르, 플랫폼의 경계를 허물고 이합집산하거나(어벤저스의 예), ③창작 및 발표 시기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다른 장르의 텍스트를 창작하거나 팬덤 텍스트를 활성화하여 담론을 확장하거나(매트릭스의 예), ④드라마와 영화 등의 장르가 대체현실 게임(Alternate Reality Game)과 결합하여 프로모션하거나 상호 서사를 보완하거나(로스트, 다크나이트, 마리카에 관한 진실 등의 예), ⑤향유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 인지-경험-첨부의 체험을 통해 대체현실 게임을 활용하여 독립적인 프로모션 텍스트를 구성(Decode Jay-Z with Bing, The Art of the Heist의 예)이 그것이다. 위의 다섯 유형과 같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그 정체의 개방성과 역동성으로 인하여 정주하여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목적과 지향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와 층위의 새로운 양상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나갈 것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기본적으로 향유자 주도의 참여와 체험을 통한 즐거움의 가치 창출을 동력으로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경제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콘텐츠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대규모 자본의 투입으로 인한 리스크 헤지(Risk hedge)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그 현실적인 방안으로 전환(adaptation), 프랜차이즈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픽사, 마블, 루카스 필름 등의 합병을 기반으로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를 출범한 것처럼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은 멀티 플랫폼 미디어 환경이 요구하는 콘텐츠 구현 전략으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결국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은 참여와 체험을 통한 가치 창출이 원활해진 향유자, 그들의 놀이터인 향유의 장에 대한 생산적인 고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적 요구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시발로서 의미를 지닐지는 몰라도 보다 중요한 것은 향유자의 요구, 향유 방식, 놀이로서의 향유 등의 각기 다른 양상이다.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서고 심지어 텍스트에 직접 개입하여 즐기고 있는 지금 이곳의 향유 양상이 트랜스미디어 혹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박기수는 문화평론가,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으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전문가로서 실천중심의 연구에 힘쓰고 있다.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과 함께 문화콘텐츠 향유 전략, 문화콘텐츠 비평, HCI기반 스토리텔링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계를 통한 실천적인 학문의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애니메이션 서사구조와 전략』, 『アニメは 越境する』,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구조와 전략』, 『윤태호』, 『강도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전략』 등이 있다. 페이스북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