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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참가자의 눈으로 본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제12회 해비치아트페스티벌 리뷰올해 6월에도 어김없이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이하 ‘해비치 축제’)이 개최되었다. 지난 6월 10일부터 13일, 부대 행사를 포함하면 16일까지 일주일간 열렸던 이번 행사는 어느덧 12회를 맞이했다. 한쪽에서는 성료를 선언하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해비치 축제는 주관 단체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전국의 문예회관들을 위해서 시작되었다. 한문연이 이 사업을 10년 이상 주관하고 있는 것은 해비치 축제가 문예회관들을 위한 고유한 목적 사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이하 방방곡곡 사업)과 해비치 축제가 현재 문예회관들을 회원사로 둔 한문연의 핵심 사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축제는 전야제와 개막식, 폐막식까지 4~5일간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프린지 공연은 약 10일간 진행된다.) 해를 거듭하면서 예산이 늘어나고, 분야가 확장되고, 공연 장소도 다양해졌으며, 참여 예술가들과 관계자들,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연적으로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공연 분야 외에 관광과 전시 분야까지 확장되어 해비치 호텔 쪽에도 부스들이 설치되었다. 문예회관들이 전시 공간과 예술교육 공간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니 이런 콘텐츠의 확장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읽힌다.
1년에 한 번 문예회관 회원 단체들이 모여서 이러한 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회원 행사에 많은 국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좋은 작품 많이 보고, 공부도 하고, 교류도 해야 지역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해비치 축제가 성장해가는 만큼 ‘민간 공연단체와 함께하는’ 아트마켓으로서도 성장하고 있는가? 정체되거나 퇴보하지는 않았는가?
민간 공연 기획자에게 해비치 축제는 포기할 수 없는 연례행사다. 요즘처럼 표를 팔아서 온전히 공연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창작 지원금만큼이나 공공의 초청 공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매년 참가하고 있고, 근 10년 동안 부스, 쇼케이스, 라운드 테이블 등에 부지런히 참여해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를 거듭할수록 해비치 축제에 가지고 가는 홍보물의 무게도, 마음의 부담도 가벼워지고 있다.
10년 전에는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독특한 홍보전을 펼칠까 고민하며 눈에 띄는 홍보물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최소한의 홍보물만 준비한다. 이런 소극적 태도로의 변화는 내 작품들이 문예회관 관계자들이 원하는 인기 콘텐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사이는 오랜 시간 오고 가며 생긴 인연들로 눈인사를 나누며 관계를 쌓고, 안부를 물으며 정보를 알리는 편이다. 결국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 없이 참가에 의의를 두는 셈이다. 해마다 조금씩 변모하는 해비치 축제를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고, 올해의 축제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어느 해부터인가 아트마켓 홍보 부스에 등급과 가격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위치가 정해질 때가 있었다. 공공에서 하는 건데 꼭 이렇게까지 해서 ‘있는 제작사’와 ‘없는 극단’을 나눠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홍보 부스를 신청하면 숙소와 식권이 함께 주어졌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패키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또 어느 해인가부터 숙소는 따로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고, 또 몇 년 후, 그나마 제공되던 식권도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반발심이 생겼다. 사정과 상황을 공유해 주면 좋겠는데 그런 친절함은 없었다. 홍보 부스 운영을 위한 경비 부담이 커지면 아무래도 부스를 활용하는 단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정도 부스 참가 비용에 대한 저항은 없었다. 여전히 부스 신청은 빠르게 마감되는 듯했다. 결국은 돈을 내더라도, 숙소와 식사비를 별도로 부담하더라도 부스 전시를 필요로 하는 단체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부스의 수요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체감하기에 다음과 같은 이들이 아닐까 싶다. 첫째, 부스 전시를 통해 실적을 올리는 공연 단체들, 둘째, 일단 한번은 가 볼 필요를 느끼는 신진 단체들, 셋째, 큰 기대 없이 인사차 오는 사람들, 넷째, 우수 부스에 선정되어 내년 방방곡곡 사업의 우위를 노리는 사람들이다.
“올해 유독 코미디언(개그맨)들이 많이 왔어요. 다들 옷도 맞춰 입고 작정하고 영업하러 왔네요.”라고 전한 어느 기획자의 말처럼, 올해는 TV에서만 보던 개그맨들이 곳곳에서 영업을 진행 중이었다. 옷을 맞춰 입은 개그맨들이 문예회관 관계자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단가표를 들고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하고 있었다. (그런 적극성은 배우고 싶기도 하다.) 점점 준비 없이 방문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인 그들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은 이 마켓에 어울리는 콘텐츠는 저들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문예회관 기획자에게 이런 작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단다. 일단 윗분(?)들이 좋아하고, 가격도 맞춰 주고, 알아서 객석까지 채워 주는 콘텐츠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곳 아트마켓에서 상당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개그 콘텐츠를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방방곡곡 사업에 들어와 많은 지원금을 받아간다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거란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는 하다.
부스에 의욕적으로 참가하는 이들 중에는 신진 예술 단체들이 있다. 다양하고, 새롭고, 젊은 단체들이 늘어나고 있고, 서울 중심의 단체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준비한 홍보물의 물량도 많다. 한편으로는 판로가 없는 단체들이 이곳에 뭔가를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너무 의욕적으로 들어왔다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제 그런 단체들은 별로 없지만, 2010년 전후에 단번에 봐도 팔기 어려운 작품들을 홍보하러 이곳을 방문하는 단체가 있었다. 작품 소개용 CD도 100장 넘게 준비해 오셨다. “처음 오셨죠? 너무 큰 기대하지 마시고 함께 즐기다가 가시는 게 편하고 좋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차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이후 그분은 아트마켓을 다시 찾지 않았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일반 관객의 시선에서 어렵고 난해한 작품들이 이곳에 진입하거나 거래가 성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단체들은 문예회관과의 매칭이 아닌 다른 데 의의를 두고 참가하기도 한다. 주로 10년 동안 마주치면서 얼굴을 익힌 반가운 팀들인데, 그들은 한결같이 “그냥 왔다. 준비는 많이 안했지만, 그래도 와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오래 다니다 보니, 식권이나 숙소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섭섭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행사들과 비교해 아쉬운 점들, 디테일을 살렸으면 하는 몇 가지 지점이 있다. 2019년 홍보 부스 형태가 오픈 테이블 형태에서 박람회형 부스로 변경되었다. 박람회형 부스는 주최 측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둡고 답답했다. 한 선배 기획자는 “오픈 테이블이었을 때 예술 단체들끼리 인사도 하고 분위기가 편안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높고 좁아서 아쉬웠다.”라고 전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한 음악가는 “인터파크, 한국관광공사, 현대자동차쪽 부스에는 전구를 두 개씩 달아 주고, 예술 단체 쪽은 창문도 없어서 동굴 같다! 그 어두운 곳에 있는데 전구 하나 밝혀 주지 않았다.”라며 불만을 이야기했다. 다음날 직접 가서 살펴보니 말 그대로 부스의 전구에도 급이 있었다. 이건 해비치 축제 개막식 맨 앞줄에 원형 테이블을 두고 VIP들을 앉혀서 무대와 관객을 갈라놓은 것과 같다. 눈에 뻔히 보이는 그런 구분들이 결국은 상위기관, 협찬사, 후원사, 문예회관 그리고 민간단체라는 피라미드 구조를 스스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디테일을 하나 더 말하자면, 민간단체들은 문예회관 관계자들의 소속과 직함, 이름을 궁금해한다. 예술 단체들이야 현수막과 전단, 명함 등 다양한 홍보물로 우리의 존재를 상대방에 노출하지만, 문예회관 관계자들의 이름이나 소속을 바로 알기에는 명찰이 작았다. 명찰에 이름과 소속은 좀 크게 써 주면 좋겠다.
예술지원을 받기 위해 심사를 받는 것은 끝나지 않는 입시를 치르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은 심사 없이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올해는 사라져 다행이지만, 작년에는 문예회관이 예술 단체에게 별을 주기도 했다. 단체들은 이 별을 얻으면 뭐가 좋은지도 모른 채 “별 하나만 주세요.”를 외치며 부스 홍보를 했다. 문예회관 관계자들은 자신의 명찰 뒤에 넣어둔 별 스티커를 한 개씩 나눠주었다. 친한 팀이 있으면 몰표를 주기도 했다. 사업을 주관하면서 서로의 스킨십을 만들 재밌는 요소들이 필요했을 터이나, 예술 단체들이 문예회관 관계자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한다.
이보다 더 큰 이슈는 부스 심사를 통해서 차기 년도 방방곡곡 사업 선정 단체를 10% 정도 뽑는다는 것이다. 문예회관들이 모이는 자리이니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들은 아트마켓의 기본 기능을 교란시키고 다른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쇼케이스 행사 역시 심사를 통해 방방곡곡 사업에 사전 선정되는 특전을 제공한다. 예년에 지원하던 200만 원 수준의 쇼케이스 지원금이 사라졌음에도 쇼케이스에 적극 참가하는 단체들이 있다는 것은 이 방방곡곡 사업 사전선정이라는 특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식권과 숙소를 주지 않으니 좋은 지점들이 생겼다. 가격만 비싸고 먹을 거 없는 호텔 조식 대신 만 원짜리 보말칼국수나 고기국수를 먹고, 예술 단체들끼리 펜션을 함께 얻어 편하게 뒤풀이 시간을 가진다. 고민을 나누고, 응원하는 자리를 갖기도 하고, 서로 비용을 나누며 연대감을 키운다. 민간도 축제의 변화에 맞춰 긍정적으로 변해 갈 수 있다.
다만, 해비치 축제가 아트마켓으로서 더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려면 축제성을 담보 해주고, 수요자만큼 공급자들에게 공정한 정보가 주어지는 공개적인 경쟁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트마켓을 ‘희망고문, 들러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일컫는 민간의 기획자들을 루저로 낙인찍지 말고, 좀 더 나은 모습들을 그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계량적인 성과와 외연의 확장에 집중하지 말고 한문연 소속 단체들이 다양한 작품을 소개받고, 연결하여 지역의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방법을 민간단체와 함께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아트마켓 장소를 내륙으로 옮겨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문예회관 사람들이 제주니까 오지. 딴 곳이면 이렇게 많이 오겠는가?”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그런 것 같다. 큰 성과는 없어도, 내 자식 같은 공연들이 촉망받지 않아도, 제주 바다라도 실컷 보고 갈 수 있어서 방문한다. 이왕 오는 거 더 신나고 즐거운 축제가 될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 덧붙이자면, 이 칼럼을 쓰면서 여럿의 의견을 구했다. 해비치 축제의 운영과 관련된 토론회라도 하게 되면 ‘나 좀 꼭 불러 달라.’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꼭 한 번, 아니 여러 번 토론회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오준석은 극단 아리랑에서 공연기획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극단 오징어의 피디와 MJ Planet(엠제이플래닛)의 대표 피디로 활동했다. 결혼 이후 생존형 전투 기획으로 각종 축제와 음악회와 공연 홍보 대행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스타 마케팅보다는 스타 메이킹을 해 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30대를 보냈고, 40대 중반이 다가오면서 가내 수공업 시스템으로 공연을 즐기면서 제작하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와 대한민국연극제, 거리예술축제와 같은 공연예술축제 현장에서 일하기를 재밌어하며 무주세계태권도대회의 연출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음악극, 모노드라마, 뮤지컬, 판소리 음악극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다양한 공간에서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