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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제작 지원의 오늘과 내일을 상상한다
조용신_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예술감독공연예술은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예술가의 노동을 대체할 수 없다. 매년 물가는 상승하고, 절감하지 못하는 인건비는 결국 제작 비용 증가로 이어지며, 만성적인 비용 불균형이 발생된다. 생산성이 낮은 공연예술의 내재적 특성이다. 예술의 자생력 확보는 자본주의 공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임을 미국 경제학자인 보몰과 보웬(Baumol & Bowen)이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1966)”라는 책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만 맡겨두어서는 기초예술이 살아남을 수 없고, 예술의 가치를 국가가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어 공공 지원금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지원 규모는 민간부문에 비해 공공부문이 약 7배 이상 압도적인 규모를 차지하며 매년 조금씩 증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수에 비해 지원 예산은 한정적이다. 예술지원을 통해 민간 예술단체의 자생력과 시장경쟁력이 향상될 거라는 전망은 환상에 가깝다. 다른 상상이 필요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이 매번 열광한다” 뮤지컬 <썸씽 로튼>에 나오는 예언자의 대사다. 배우가 대사 중에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스토리와 관계없는 탭댄스를 추고 단체 안무와 밴드 연주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대에서 벌어지는데도 말이다. 바로 뮤지컬 이야기다. 공공부문의 직접지원 외에 민간 공연예술분야 프로듀싱 지원방식을 발전시켜오고 있는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STATE UP)’ 조용신 예술감독을 만나 그 힌트를 구했다.
현재 뮤지컬평론가, 뮤지컬연출가, 작가, 연출가, 예술감독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뮤지컬계에 어떻게 처음 발을 디디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소개해 달라. 뮤지컬을 포함한 공연을 좋아하는 공대생이었고, 무대기술에 관심이 있었다. 첫 직장인 케이블티비 KMTV를 그만두고 스테이지 테크놀로지를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공연예술시장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뉴욕 현지인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할인제도가 있어 공연이라는 상품을 단순 재고로 흘려보내지 않고 끝까지 유통을 시키는 선진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장기공연을 상시로 하는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 뮤지컬은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공연 할 수 있을까? 다른 연극이나 콘서트는 어려운데, 그 차이를 뮤지컬 특유의 창작시스템과 활력있는 프로덕션, 극장 시스템 등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직업인으로서 뮤지컬을 선택했다. 뮤지컬 그 자체의 활력을 즐기기도 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하나의 직업으로서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04년 귀국해 설앤컴퍼니에서 <미녀와 야수> 뮤지컬 한국 라이선스 공연을 첫 작품으로 작업했다. 해외 기술팀과 국내 기술팀을 연결하는 테크니컬 매니저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캣츠>,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대형 투어공연과 <아이러브유> 같은 작은 공연도 진행했다. 이후 5년여 간 제작감독으로서 정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돈을 잘 써야하는지를 배웠다. 유학 시절 국내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뮤지컬 이야기』라는 책을 냈고 공연 칼럼도 썼다. 하지만 메인은 뮤지컬 프로덕션 감독이었다.
이후 2009년 회사에서 독립하여 작가에 도전했다. 로컬 시장에서 아쉬운 사례들을 많이 봤었고 제작 스태프로 참여하기보다 좀 더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2010년 뮤지컬 <모비딕>으로 CJ문화재단 크리에이티브마인즈 첫 번째 지원 작품에 선정되었고, 이듬해 두산아트센터에서 본공연을 가지며 창작자로 데뷔했다. 그 후에는 연극 <지구를 지켜라>,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대본을 썼다. 현재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예술감독으로 젊은 창작자들을 지원해 그들을 직업인으로 서게 하는 기획을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심사위원을 구성하여 선정팀을 결정하고, 멘토링을 기획하여 각 팀당 멘토로 선배 연출가나 작가, 프로듀서를 붙여주는 작품 개발자 역할이다. 대면 멘토를 할 때 같이 참가해 멘토링을 진행하기도 하고, 지원 작품들의 무대연출 도 해오고 있다. 연말에는 아직 상업 공연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작품들의 대표곡을 모아 공연하는 <언성(Unsung) 콘서트>의 구성과 연출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서울 마포구 창전로에 CJ아지트 광흥창이 처음 문을 연 이후 올해로 10년차를 맞이했다. 2016년 이곳 CJ아지트 대학로 오픈에 이르기까지 CJ문화재단 공연제작지원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한 걸로 안다. CJ아지트에 대해 소개해 달라. CJ아지트 광흥창은 대중음악 공연에 최적인 공간으로 CJ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뮤지컬 공연도 처음에는 이곳에서 진행하다가 CJ아지트 대학로를 새롭게 오픈했다. 이곳은 인큐베이팅 전문 공간으로 객석은 200석 규모의 블랙박스 형태의 소극장이다. 극장 외에도 회의실, 피아노가 상시 비치된 연습실 등이 있어서 언제든지 쉽게 뮤지컬 개발을 위한 미팅과 연습을 할 수 있다. 대학로 한복판이라는 장점이 있다보니, 공연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서 대학로의 흐름이나 창작자들의 활동을 한 눈에 파악 가능하다.
CJ아지트 대학로가 하고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으로서의 공연제작지원의 특징은 무엇인가? 극장 개관 이후 지원이 보다 강화되었다. 신인 창작자들의 작품 개발을 위한 ‘스테이지업’ 이외에도 극장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을 추가하여 작품을 이미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 ‘공간지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극장이 생기기 전에는 신인 창작자들이 업계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가진 예술 직업인으로 가기 위해 가능성을 찾아주는 사업 위주였다면, 극장 개관 후에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콘텐츠 퀄리티와 유통까지 가능한 인력 시스템을 이미 갖춘 제작사, 극단을 대상으로 공개경쟁 프리젠테이션 과정을 거쳐 무료대관 및 제작지원금으로 2천만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의 지원작들로는 뮤지컬 중에 극단 걸판의 <앤>, <안녕 크로아티아>, <구> 등이 있고 연극으로는 극단 그린피그의 <두뇌수술>이 있다. 또한 업계에서 신작 쇼케이스를 필요로 한다면, 내부 절차를 거쳐서 장소도 무상으로 제공해왔다. 뮤지컬 <아랑가>나 <미아 파밀리아> 제작발표회를 여기서 했다.
기본적으로 공연 콘텐츠는 극장 베이스로 개발되는 게 최적이라 생각한다. 작품 투여 인력이 한 자리에 모여야만 진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극장은 부동산 개념이라 감가상각비 등도 따져야 한다. 부지와 건물을 소유한 극장 측 또는 제작자 측에서 직접 개발 프로그램을 돌리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고 안정성도 높아진다. 작가, 작곡가, 배우, 연출가 등 제작진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실과 연습실이 필요한데, 극장에서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공연을 발표할 무대와 창작 준비과정이 기록되는 모든 공간이 한 곳에서 있어, 원스톱 제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대학로에서 민간 대기업의 뮤지컬 전문 인큐베이팅 극장은 CJ아지트 대학로가 유일한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2019년 ‘스테이지업’ 뮤지컬 공모가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지원사업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을까? 2010년에 시작된 CJ문화재단의 신인창작지원 뮤지컬 부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발전된 방식이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뮤지컬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초 자산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내가 맡은 뮤지컬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페어 지원을 원칙으로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작가와 작곡가로 구성된 페어가 만든 대본과 음악으로 공개 경쟁을 치룬다.
한 창작자가 업계에서 직업인이 되기 위한 기본을 갖추기 위한 워크숍 지원방식이 ‘스테이지업’의 전신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라면, 현재는 작품이 향후 제작사 매칭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지점까지 고려한다. 그리고 재단이 지정한 대행사에 전문 PD를 두어 제작시스템을 간접경험 할 수 있도록 했다. 창작자는 개발비를 지원받으며 PD가 배우들의 캐스팅부터 연습까지 스케줄링과 비용 정산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진행 속도도 빠르고 작가와 작곡가는 창작에만 집중 가능하다. 레파토리 혹은 대관공연을 하는 LG아트센터나 두산아트센터와 다르게 인큐베이팅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 극장 지원방식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를 고민한 결과가 ‘신작 리딩 워크숍 지원’이었다. 리딩 워크숍이란 배우들의 의상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작품 분위기에 맞게 기본적인 상징물을 무대에 배치하고, 조명도 세팅해 무대에서 낭독하는 형태다. 작품 완성의 중간형태를 가졌지만, 일반 관객이 있는 무대다. 이후 리딩 워크숍이 업계의 작품 개발의 하나의 스타일과 장르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2015년부터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의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등 공공 영역에서의 공연예술 지원 규모도 상당히 크다. 공공부문 창작뮤지컬 지원시스템에도 참여한 것으로 안다. 민간영역에서의 지원시스템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달라. 공공영역의 사업들은 창작자, 예술가로서의 가능성을 찾는데 방점이 찍혔다고 보면 된다. 창작자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받아 생활하다가 창작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재능이 있음에도 포기하는 건 안타까우니 자신을 시험하는 기회를 주고, 그 결과물을 공공에서 지원한다.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창의인재지원사업’, ‘한국뮤지컬협회 뉴 뮤지컬’ 등 뮤지컬 창작을 지원하는 각각의 기관들의 공공사업은 5-6개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부 기관인 콘진원에서 청년 인력을 연수생 개념으로 단기 고용하는 것이다.그래서 월급을 제공하는 인턴 방식으로, 대체로 35세 이하 청년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단기고용을 한다는 건 일을 주는 건데 일이 곧 창작인 셈이다. ‘스테이지업’은 별도의 나이 제한 없이, 작품 경험 수가 4작품 이하인 신인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창작 초기 작품에 멘토링을 붙어 전격 개발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공공부문 지원을 받은 창작자들이 그 결과물을 들고 ‘스테이지업’에 신청하여 선정되는 경우도 있고 작품과 운이 모두 좋으면 바로 제작사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뮤지컬 지원사업에는 공통적으로 멘토링 시스템이 보편화 되어 있다. CJ문화재단은 2010년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시절부터 이미 전문 포인트 멘토링을 해왔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이자, 뮤지컬 산업이라 할 만큼 많은 제작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공연예술분야 대표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공공영역에서도 민간 영역 못지않은 비영리창작공연에 대해 꾸준히 지원하고 있으나, 관객들이 계속해서 찾지 않으면, 무대공연을 지속하기 어렵다. 또 공연의 성과로 실제 공연시장에서 관객 팬심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시장에서 유통될 때 유명세가 있는 소수의 작품이 공연상품으로서 승자가 되는 ‘승자들의 독식’이 뮤지컬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창작뮤지컬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덧붙여 ‘스테이지업’에서 지원하는 작품이 실제 제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라이센스 뮤지컬과 창작뮤지컬의 구도를 다른 장르에 빗대어 예를 들어 보자면, 인디밴드나 단편영화 같은 키워드로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상업화·유통화에 이르기엔 아직 거칠지만 특유의 매력과 완성도가 있어서 관객들도 인정해준다면 제대로 된 유통망에 접근이 필요하다.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고 해서 모두 시혜적 관점으로 동정표로 접근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아이디어가 좋고 협업이 잘 되며, 음악과 드라마의 조화가 아주 특별히 잘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그 작품은 시장도 작고, 유통망도 별로 없지만, 향후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거기서 확장성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대학로 지역에서 실험적인 작품이 나오고 그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층이 점차 커져서 가족과 친구들을 흡수하고, 라이센스 뮤지컬은 보지만 작은 창작 뮤지컬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대극장 뮤지컬에선 할 수 없는 매니악한 작품들,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 등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창작 작품들도 많이 나오길 바란다.
연간 국내에서 공연화 이전에 창작 워크숍을 갖는 뮤지컬이 약 100편 정도다. 관련 대학, 각 지원프로그램, 아카데미까지 합치면 더 많아진다. 매년 ‘스테이지업’ 지원작들 중 절반 이상이 상업화가 되고 있다. 바로 제작사 매칭이 되는 경우도 있고 우리가 직접 기획공연을 만든 사례도 있다. 창작자들은 상업 공연을 통해서 비로소 작품으로 로열티를 받게 되는 거다. <여신님이 보고계셔>, <풍월주>, <아랑가>, <판>, <붉은 정원> 등이 그동안 CJ아지트에서 배출한 상업 공연들이다.
뮤지컬은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나름의 유통 생태계가 구축되어있다. 서울 집중 현상에서 최근 부산에 뮤지컬전용극장 드림씨어터가 오픈하는 등 지역 시장 형성 움직임도 보인다. 국내 창작 뮤지컬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나? 뮤지컬은 장기공연이 필요하다. 한 회 유지비용이 엄청나다. 그걸 티켓가격으로 충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극장 프로덕션으로 장기공연을 하는 거다. 배우를 교체해가며 오픈런을 유지하고 규모의 경제학 개념을 실행할 수 있는 건 대극장에 특화된 장점이다. 그러나 티켓 비용이 너무 비싸 관객이 고려하는 지점이 생긴다. 그게 뭘까. 첫째가 외국에서 완성도 검증이 된 네임 밸류 즉 유명세, 두번째는 출연하고 있는 배우, 호감있는 배우다. 네임 밸류는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이 압도적이다. 창작 뮤지컬은 그런 면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커왔던 시행착오를 국내도 지금 겪는 거니까 같은 시장에서 같은 티켓가격으로 경쟁하기에 불리하다. 그러나 라이센스 뮤지컬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들이 창작 뮤지컬에도 출연한다면 앞의 리스크를 많이 극복할 수 있다. 프로덕션의 역량은 배우들이 대본, 음악을 봤을 때 공연에 참여하고 싶게끔 만드는 능력이다. 배우들로 인해 붐업되며,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라는 게 증명되는 셈이다.
창작 뮤지컬은 대극장용이 적고 중·소극장용 작품이 많다 보니 배우 의존도가 커질 수 밖에 없으며, 배우의 역량이 뮤지컬 완성도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캐릭터와 인물, 배우 지명도, 즉 대학로 관객이 선호하는 배우들이 흥행의 첫 번째 요소가 됐다고 본다. 국내 배우 역량이 늘어났고 그들의 창작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배우들도 창작 초반에 창작자들과 함께 대사와 캐릭터 등을 만들어가는 등 적극적이다. 창작 뮤지컬은 앞으로 배우와 함께 성장해 갈 것으로 전망한다.
얼마전 뮤지컬 <엑스칼리버>의 작곡가 와일드 혼의 인터뷰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 뮤지컬 산업을 “매우 젊은 산업”이라 평가한 바 있다.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 한국에서만의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파악하더라. 한국 뮤지컬 산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한국 뮤지컬 산업의 핵심은 앞으로 ‘창작’이 되어야겠지만 아직은 부족하고 현재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배우를 한 배역에 여러 명 캐스팅 해서 공연의 색깔을 바꾸는 게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게 사실이다. 물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원캐스팅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공연은 회차별로 동일해야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더블, 트리플 캐스팅으로 캐스팅마다, 회차마다 작품의 느낌이 달라진다면 평론의 의미가 없어지는 엉뚱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관객이 원하는게 뭔지 파악하고 그걸 해주는 게 뮤지컬이기도 하다. 어떻게 지금의 뮤지컬이 만들어져 왔느냐를 짚어보면 노래가 좋고, 인기가 있는 배우들, 심지어 그 배우들을 멀티캐스팅으로 소개하는게 관객이 원하는 것이었고, 이를 따라 한국적 시장이 만들어진거다.
사실 멀티캐스팅은 창작자도 헷갈리고 연출도 연습을 여러 번 해야해서 힘들다. 그러나 그게 한국 시장에서 확실하게 매출로 이어진다면 우린 그것을 도입하는게 맞다. 사실 과거에는 <빌리 엘리어트>처럼 어린이 배우 보호를 위해 멀티캐스팅을 하는게 아니라면, 주연 배우들 각각의 회차가 적어서 완성도가 우려된다는 주장을 많이 했다.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원캐스팅이 좋지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결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핵심은 협소한 관객층 중에서도 관객이 원하는 게 선호도 높은 배우이기 때문에 그 배우를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게 한국시장에 맞춘 특화된 방식이다. 굳이 브로드웨이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
뮤지컬 진출을 꿈꾸는 차세대 예술가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일단 좋은 뮤지컬을 볼 기회가 예전보다 많아 졌으니, 작품을 많이 보라고 하고 싶다. 무대 이면을 이해하고, 대본을 곱씹을 수 있는 자양본을 만들어야 한다. 뮤지컬 작가에게는 무엇보다 프론티어 정신이 중요하다. 뮤지컬은 작가의 펜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할 만한 소재와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진지하게 설득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면 연극이나 소설을 쓰는게 맞다. 왜 뮤지컬이냐는 질문을 앞으로 지겹게 받을 테니까. 작곡가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생각만큼 인정받지 못해서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뮤지컬의 역사는 작곡가 중심으로 쓰여왔다. 결국 끝에 관객들이 흥얼거리는 건 작곡가의 노래이고, OST도 작곡가의 손에서 나온 곡이다. 뮤지컬만큼 음악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은 공연이 없다. 보상이 적다는 게 힘든 점이긴 하지만 작곡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작곡하는 사람들은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항상 시간에 쫓길 것이고, 손봐야 할 것도 많고, 요구받는 건 많겠지만 뮤지컬은 작곡가의 장르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뮤지컬은 혼자 할 수 없다 보니 협업이 필수다. 친구를 많이 만들고, 설득력을 기르고 자신을 양보할 수 있는 마인드도 중요하다. 혼자 돈 벌고 혼자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세상이지만, 뮤지컬에는 여전히 다수가 모여서 티격태격 해야하는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꼭 필요한 고통스런 아날로그 과정이 필요하다. 뮤지컬은 n분의1 정신,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를 만든다는 공동체 정신과 협업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변순영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미술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문화기획을 실천해 왔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입사한 후, 예술창작 레지던시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 개관준비팀장을 거쳐 인천문화재단 브랜드 사업인 ‘인천왈츠’, 재단의 모금사업 ‘아트레인’을 런칭했다. 현재는 예술지원팀장을 맡아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예술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