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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은 지나갔으나,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상반기 시각예술 분야 결산 좌담2019년 미술계는 최근 몇 년간 시장을 달구었던 단색화 열풍이 사그라들며 활력이 많이 떨어지는 분위기다. 이는 단순히 미술시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가군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다. 미술 정책 차원에서도 표준계약서, 세제 개선, 감정 기능을 포함한 미술은행 개편안 등이 논의되었지만 미술계 전체의 활력을 끌어올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상반기에 열린 전시와 시장 상황, 창작의 경향, 정책에 대한 현장의 온도까지 전문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각예술 분야의 흐름을 짚어봤다.
일시/장소 : 2019. 7. 3.(수) / 예술경영지원센터 회의실
진행 :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 김수현(갤러리 수 대표)
박경신(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백기영(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이한빛(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 웹진≪예술경영≫ 편집위원)
최두수(스페이스 엑스엑스 대표)
상반기 언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시 및 행사를 꼽아 보자면 <데이비드 호크니 展>(이하 호크니전)과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아닐까 싶다. 이 두 곳을 모두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이 외에 개별적으로 중요한 전시나 작가들이 있었다면?
김수현 작년에 파리 퐁피두에서 열렸던 호크니전을 무척 감동적으로 봤었다. 이번 전시는 오픈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외에 비싼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중요한 작품은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 베니스 비엔날레도 하반기에 갈 예정이라 언급하신 두 건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 미술관 전시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마르셀 뒤샹>전(2018년 12월 22일~2019년 4월 7일, 이하 뒤샹전)이었다. 갤러리들은 여전히 서양 작가들을 소개하는 추세인데, 그나마 협동조합처럼 갤러리스트들이 모여서 하는 페어들이 한국 젊은 작가를 보여주는 창구였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미술시장을 주도했던 ‘단색화’ 경향이 퇴조를 보이면서 재조명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윤형근, 이배, 김종학 선생님 같은 분들이 다음 주자로서 해외 미술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여러 갤러리에서 재조명해 보려는 단색화 시대의 다른 몇몇 작가들은 생각보다 해외 미술계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이슈를 더 이상 지속해 나가지 못하는 여러 현상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최두수 양질의 해외 기획전이 열리는 건 시민들에게 좋은 일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국내 청년·중견 작가들의 도약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 몇 년간 멈추었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젊은 모색>전이 열렸지만, 소규모의 그룹전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단색화 이후의 도전을 보여주는 국내 경향이 부재하다.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결과 발표 지연으로 기존의 전시 계획이 밀려 어느 순간 신생·대안 공간으로 전시가 몰리는 현상이 있었다. 사실상 상반기가 5-6월에 시작된 느낌이다.
박경신 호크니전은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를 직접 본 입장에서 주요 작품들이 빠져서 아쉬웠다. 물론 다수의 일반 관람객을 위한 소위 대형 전시도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필요할 것이다. 그 외에는 금호미술관의 <금호영아티스트: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3월 21일~4월 21일)과 같은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많았던 점이 눈에 띈다.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컬렉터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실제 작품 구매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 이는 컬렉팅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컬렉터나 기존 고가의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젊은 컬렉터들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 구매를 선호하고 있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한빛 뒤샹전은 10년 안에 이 정도 규모의 전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곽인식>전(6월 13일부터 9월 15일까지)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회고전으로, 전체적인 미감, 작가의 고민했던 흔적들을 보니 저평가될 작가는 아니었다고 본다. 호크니전은 주요 작품들이 오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작가의 전체 작품을 훑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평론가들 입장에서는 기존 비엔날레의 문법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비엔날레 감독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했다고 보는데, 새로운 실험들이 많았고 작품 선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두 분이 언급한 ‘청년 작가’에 대해서는 풀(pool) 자체가 넓어졌다는 생각이다. 국민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거론할 수 있을 만큼 특정 학교, 특정 연령층의 활동이 많아졌다. <젊은 모색>전의 경우 4~5명 규모가 보통인데 9명이나 묶어 냈다. 선택적 소개보다 이걸 다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경향으로 볼 수 있겠다.
백기영 먼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셔서 매우 성공적으로 전시를 치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마르셀 뒤샹>전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는데, 최근 미술계의 블록버스터 전시의 유형이 다각화되고 크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인상주의 유명 예술가 아니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서양 미술 중심의 특별 기획전에서 이제 우리나라 관람객들이 동시대 미술 주요 작가들을 이해하고 또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호크니전은 젊은 층에만 한정하지 않고 전 연령층에서 고른 관람객들이 찾고 있어서 이 또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관람을 아직 못했지만, 지난해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가 표방했던 “좋은 삶”과 매우 유사한 태도를 보여준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베니스의 주제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는 지금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다각적인 위기에 대한 역설적인 제목이다. 최근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디어 아마존: 인류세 2019>나 백남준 아트센터의 <생태감각>, 부산현대미술관의 <자연, 생명, 인간>, 아트선재센터의 <색맹의 섬>등 생태계를 다룬 전시들과 연결해서 주목해 볼 만하다.
한국 미술시장은 2013년 최악의 해를 보낸 이후 서서히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미술시장 규모는 5천억 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시장 상황을 그리 낙관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상반기 미술시장 동향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한빛 경매시장 성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3년간의 단색화 열풍이 훅 꺾이면서 경매시장도 변했다. 전체 경제 시장이 좋지 않더라도 그게 100% 미술시장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데, 이번에는 경제가 좋지 않아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좋은 작품들의 가격이 모두 상승해서 투자자나 컬렉터들에게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상반기에 ‘달항아리(백자대호)’가 31억 원에 낙찰되면서 단색화의 뒤를 이을 대체제로 떠올랐던 것은 특이한 지점으로 언급할 만하다.
박경신 단색화와 같은 기존의 블루칩 작품들의 매력이 시장에서 다소 반감된 경향이 있다. 위작 논란도 영향이 있겠지만 유사한 작품들이 경매에 출품되는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다음 경매에서 또 볼 수 있겠지’라는 심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다. ‘달항아리’는 고미술이나 기존의 중견 작가들의 작품 이외에도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해외에서의 반응이 좋아 전시나 구입이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국내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있었기도 하고.
김수현 세계 미술시장 속에서 아시아 미술시장 동향을 파악하려고 할 때 통상적으로는 상반기 아트바젤 홍콩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올해 1월에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가 타이베이 당다이(Taipei Dangdaiㆍ台北 當代)의 첫 회를 오픈하며 연초부터 아시아 마켓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보통 3월 홍콩 아트바젤, 6월 스위스 아트바젤, 그 이후 국내에서는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이하 키아프)의 흐름이다. 1월 말 오픈 예정이었던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가 개최 1주일 전에 돌연 취소되었고, 이어 당다이 아트페어가 열리게 되면서 한국과 비슷한 실정의 대만 미술계에 큰 기대를 갖게 했다. 대만의 1월 마켓은 다소 보수적으로 보였다. 첫 회인 까닭에 메이저 갤러리들이 상대적으로 퀄리티 있는 해외 작품들을 가지고 나왔지만 대부분 합리적인 가격의 3만 불 안팎의 작품들이 판매되었다. 3월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또 성적이 괜찮았다. 중국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중국 컬렉터들과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줄었고 또, 한국에서 많은 컬렉터 그룹이 방문하여 다수의 구매가 이루어졌다. 아트바젤에서 큰손으로 소문났던 한국 컬렉터들 덕에 서양 메이저 갤러리들이 한국 마켓에 점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매 마켓에서는 ‘단색화’ 작품의 수급과 가격의 밸런스가 벌어지면서 이제는 점차 열풍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에서 다음 세대 작가들에 대한 미술관 전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단색화와 같은 시장적 성과를 다시 이룰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나 빼로탕(Galerie Perrotin), 페이스(The Pace Gallery)와 같은 메이저급 갤러리들이 윤형근, 김종학, 이건용 작가들을 전속하고 있지만 그들 갤러리 작가들의 볼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 작가들의 프로모션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유심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 외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다녀온 한국 젊은 작가들도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몇백만 원 단위의 작품을 구매하는 젊은 층의 컬렉터들이 많아져서, 그들만의 모임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수준과 볼륨이 매우 작다. 갤러리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비슷한데 시장 볼륨은 점점 작아지니까, 운영자 입장에서 시장적 체감은 좋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작가를 발굴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최두수 시장의 위가 성장해야 그 아래 시장도 잘 돌아갈 텐데, 몇백만 원 단위의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들은 작품성보다는 트렌드를 따라 아이템을 찾는 경향들이 있다. 홍콩 아트바젤 관계자들도 ‘피가 마른다’고 했다. 해외시장에서도 2차 옥션 시장(경매시장)으로 들어갈 작품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그러다 보니 투자자나 컬렉터 입장에서도 작품 가격이 상승하길 원하고 있었다.
김수현 고미술 시장의 경우 오랫동안 저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최근 LA 로스엔젤레스뮤지움(LMCMA) 청전을 비롯한 한국 서예전이 열리고, 중국 북경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전>이 열리고 있어, 고미술과 고수묵화 시장이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기대할 만한 상황이다.
안태호 중저가 작품 판매 경향과 동시에 경매 시장에 김환기 작품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는 기사가 흥미로웠다.
김수현 김환기는 옛날 경매에서는 고작 해, 달 시리즈가 인기가 많고 작품가가 비쌌는데, 단색화 때문에 점화가 더욱 비싸고 유명해졌다. 당분간 김환기 쏠림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백기영 먼저, 올해 홍콩 아트바젤은 36개국 242곳의 갤러리가 참가해서 1만 점이 팔리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들었다.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면서 국제 미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 아트페어가 얼마나 더 승승장구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홍콩의 경우, M+가 아직 개관을 준비하고 있고 경찰서 감옥을 개조해서 만든 타이쿤 같은 공간들이 홍콩 미술계의 새로운 제도로 자리매김하면서 아트페어가 가진 위상이 상업적 영역의 거래에만 한정되지 않고 미술 인프라로 체계를 갖추는 데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동시에 홍콩은 우산혁명 이후, 청년 세대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요구가 동시대 미술시장으로서의 아트페어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해 볼 만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트부산 같은 지역 아트페어가 4일간 6만 명을 동원하면서 급부상하고 있다. 아직은 한계가 많지만, 명실상부 국제 아트페어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잉카 쇼니바레, 사라 루카스, 아이웨이웨이 등 국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젊은 층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아트페어로 활력을 더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인선과 관련해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있었다. 공공미술관 인사와 관련한 생각들을 말씀해 달라. 주로 원로들이 관장으로 임명되는 트렌드가 바뀌며 40~50대 기획자들이 기관장을 맡기도 하는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김수현 국립현대미술관은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인 만큼, 관장은 공모제보다는 전문가 대우를 제대로 해주면서, 지명 제도를 운영하는 편이 더 좋겠다. 문화예술은 한 나라의 중요한 품격의 기준이 되는데 좀 더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과정을 통해 국가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인선된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의 문화예술을 대표하고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한빛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러하듯 차관급 기관장이라면 국회 검증을 거쳐 임명할 수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그렇지 않으니 공모제 형식으로 시험과 면접을 통해 임명하고 있다.
김수현 관장의 역할을 어디에 포커스를 크게 둘 것인가도 문제다. 국영 미술관의 입장에서 펀드 유치와 체계적인 경영 능력을 원할 것인지, 좋은 전시 즉 차별적이고 선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원할 것인지 시대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논란이 많았던 전 마리 관장은 외국인으로서 경영과 리더십이 아쉬웠을지 모르지만 큐레이터 출신으로 좋은 전시, 한국 작가들의 국제화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게 했던 관장이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올해 상반기 뒤샹전도 필라델피아 뮤지엄에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한빛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션과 비전은 한결같이 ‘한국 현대미술의 중흥, 한국 미술의 세계화’가 목표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정부에서 원하는 문화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포커스를 뛰어난 스페셜리스트 큐레이터를 외부에서 데려오고 관장은 사람을 만나는 역할을 하거나, 관장이 스스로 큐레이터 역할을 하던가 해야 할 텐데. 경기도나 여타 미술 관련 기관의 공석이 점차 채워지는 시점에서 느낀 건 ‘관장 전문 직업’이 생겼다는 거다. 한번 기관장을 맡게 되면 다른 곳의 기관장으로 옮기기 쉽다는 거다. 주어진 임기 3년 동안 미술관을 색깔 있게 바꿔 놓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례들은 많지 않다.
안태호 기관 움직임도 파악하고 성과도 만들기에 2, 3년의 임기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
최두수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작은 아티스트런 스페이스도 지난 3년간 운영하면서 그 성격과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하물며 거대 조직을 움직이려면 3년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기본 10년은 있어야 변화와 움직임이 생기는 것 같다. 전문 미술관장으로서의 조직과 미술계를 위해 헌신하는 리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백기영 사실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나라 미술관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여러 가지 논쟁점이 있지만, 마리 관장이 3년 동안 일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체질도 상당 부분 국제화되고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미술관 스스로 만들어 온 성취들에 대해서 존중하고 이 바탕 위에서 더 비전을 이어 갈 수 있는 역량 있는 전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윤범모 관장 시기 국립현대미술관의 성공을 위해서 미술계에서 각별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해 보인다.
2월부터 미술품 구입과 관련해 1백만 원 한도 문화접대비 포함, 1천만 원 한도 비용 인정 등이 시행되었다.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시장 활성화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김수현 느끼지 못하겠다. 예술 작품이 아니라 아트 상품, 크래프트, 굿즈를 살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굿즈 시장이 커지는 건 예술 작품에 대한 대체제 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에 위험하다. 미술관, 비엔날레급 국제적인 작가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정책들이 필요한데 그것들이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미술품 구매에 대한 세제 혜택, 투명화 이런 것들만 강조하다 보면 작가들이 점점 공예적인 혹은 상업적인 작은 마켓에 집중하게 된다.
박경신 법인의 미술품 구입 손금 인정은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1,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시장에서의 거래 평균 가격을 감안하여 책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미술품 관련 세제 정책의 논의 과정에서 시장에서 요구한 손금한도 범위는 이보다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손금한도 액수를 높이는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법인의 미술품 구입 손금 인정이 실효성 있는 미술품 구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손금 한도의 범위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술품 구입에 대한 문화접대비 인정이나 7월부터 시행된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 입장료의 소득공제 인정이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백기영 올 한 해가 지나고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공제를 받고 나면, 더 실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다음해에는 문화예술 관련 지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피부로 실감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올해부터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가 도입되었다. 역시 현장에서의 반응과 온도가 궁금하다.
최두수 젊은 작가들은 표준계약서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보호받고자 하며, 실제로 계약서 작성에 적극적이다. 우리 단체는 계약직 근로자나 큐레이터들 외에도 사소하더라도 건건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런 계약이 체계화, 습관화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다만 계약서의 효력이 커졌을 때 법적 분쟁으로 커진다면 어디까지 보호될 수 있을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계약서 때문에 고민인 건, 아티스트 피(Artist Fee)도 그렇고 큐레이터 등급도 그렇고 국공립 전시가 기준으로 되어 있어서, 국공립에서 전시하면 A-가 등급, 민간에서 하면 0.5점인 등 너무 국공립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표준계약서의 취지 자체는 좋지만, 한편으로 기획자나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업무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너무 많은 규제가 자율적인 미술 현장과 시장의 활동과 성장에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경신 아티스트 피와 관련해서 학술 용역 단가 기준을 작가나 기획자에게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아티스트 피의 경우 기준 단가가 가장 문제될 것 같다.
김수현 우리 갤러리의 경우 해외 작가들과의 작업이 많아서 국제적으로 영문 계약서를 진행하는 편이고 내용도 훨씬 디테일하다. 계약서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의 많은 갤러리들을 평균적으로 고려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갤러리들이 각각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수정하여 맞추어 사용하면 될 것 같다. 갤러리 비즈니스가 다른 산업과 다르기 때문에 사실 계약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호 신용과 관계에 있다고 본다.
박경신 알다시피 예술인복지법상 서면 계약이 의무화되었고 기금 지원사업의 경우 사실상 서면 계약이 필수 요건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면 계약 조사권 신설을 골자로 하는 법안까지 발의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면 계약 체결 자체보다는 계약의 내용이 중요해 보인다. 아울러 올해 3월 정부가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11종을 고시하였는데 5월 한국화랑협회에서 자체적으로 6종의 표준계약서를 발표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계약서를 사용하고자 하는 당사자, 특히 작가들의 경우 어느 계약서를 사용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한 비교 검토나 가이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한빛 표준계약서에 수익을 몇 대 몇으로 나눌지 등이 숫자로 다 써 있다. 물론 예시로 든 것이지만, 정부에서 그런 예시를 들어버리면 처음 보는 사람으로서는 가이드처럼 느끼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주의해야 한다.
박경신 물론 표준계약서의 경우 계약 당사자들이 상황에 맟게 수정해서 사용해야 하고 추후 수정 보완될 부분들이 있다. 가령 현재 논의 중인 예술인 고용보험은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이더라도 소정의 기간 동안 일정 일자 이상 용역을 제공한 경우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는 경우 원천징수 등 관련 사항이 표준계약서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수급 요건을 비롯한 제도 설계에 있어서 미술 분야 용역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백기영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는 미술계의 풍토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정책으로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없는데, 지난 정부에서 아티스트 피(artist fee) 정책과 표준계약서를 연동해서 지나치게 과장한 부분이 없지 않다. 예술가들이 계약도 없이 전시에 참여하거나 최소한의 인건비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고 이를 이해한다면, 각자의 현장에서 보다 투명한 노동 조건을 만들어 가는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지난해 시범사업 이후 국공립 미술관 차원에서 전시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피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서 더 피부에 와닿는 정책적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미술은행의 이원화된 운영 구조를 일원화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국립미술은행이 감정 기능까지 포함한다는 발표에 대해서 민간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는데, 의견을 부탁드린다.
이한빛 국가에서 감정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만일 위작 시비가 붙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영원히 져야 하기 때문인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하기도 힘든 일이다. 시스템을 잘 짜서 민간에 넘기는 게 최선이다. 작품 감정 역할을 어느 한곳에 다 맡기지 말고, 연구소별로 시대와 장르에 따라 분산시켜 맡기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김수현 감정 평가를 어디서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 앞서 기본적으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나 아카이브가 선행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에 대해서는 따로 파운데이션이 만들어져 관리가 되고, 증명서나 수리, 복원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박경신 특정 단체가 특정 작가에 대한 감정을 독점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이와 관련하여 독과점 문제가 발생하기도 있다. 아울러 기존의 데이터가 활용되는 경우에도 해당 데이터가 논란이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백기영 미술은행은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미술은행을 통한 작품의 다양한 활용을 위해서 설립되었는데, 실질적으로 미술관 소장품과 별 차이가 없고 최근에는 작품의 질 문제가 대두되어 1억 원 이상의 작품들을 구매하면서 일반 대중들의 감상을 위한 작품 활용의 목적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 제도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문제 제기만 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정부와 민간 기구가 이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책 설계를 위한 연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한빛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해산했는데 일부 주주들이 별도의 감정평가 회사를 세웠다. 기존 평가원이 17년간 축적한 DB(데이터 베이스) 처분을 두고 새로 만든 조직과 갈등을 빚고 있다. 새로 만든 회사에서는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편에서는 한국 미술의 역사라 없앨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안에는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담겼는데, 권한은 소유주에게 있다. 평가원의 소유가 아니다.
박경신 상식적으로도 이러한 DB 폐기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미술품 유통과 관련한 분들이 감정에서 배제될 수는 없지만 이익 충돌의 방지나 자기 거래 금지와 같은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월 김영주 의원이 발의한 미술품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안이 6월 소위원회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추후 계류 중인 법안의 제정 추이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수현 현대미술이든 고미술이든 시장에 대한 전문가 그룹이 부족하다. 상대적으로 경험을 많이 한 상인들이 주도하고 있으니 이해관계가 얽히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으며 문제가 발생한다. 차라리 환수 조치하고, 모두 재조사, 재수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전문적이고 건강한 방안을 만들어서 검증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백기영 미술 진흥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보다 큰 차원에서 문화예술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고 미래 지향적인 시각예술 문화를 확대하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미술진흥원 같은 기구를 만들기 위해서 수립된 단순한 진흥 계획에 대한 종합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작가나 공간, 행사, 작업 경향을 비롯해 상반기에 주목할 만한 동향이 있으면 의견을 부탁드린다.
박경신 사진 찍기 좋은 전시, 소위 SNS에 적합한 전시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전시 공간 자체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최두수 전혀 다른 층위의 작가들이 생겨난 거다. 우리가 기존에 유명하다고 언급하는 작가들의 SNS 팔로워 수는 고작해야 천 명 미만인데, 미술계가 아닌 기업과 컬래버레이션하는 작가들은 몇만 명 팔로워에 제품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술관에서의 유명세는 필요 없다. SNS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미술관보다는 스팟 위주로 전시하고, 전시 자체의 홍보와 판매도 SNS를 통해 하고 있다. 미술계와는 상관없지만 하나의 경향이라고 생각하고, 막을 수 없을 만큼 판도가 많이 변했다. 보수적인 미술계가 이에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더 고립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김수현 SNS 프렌들리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는 것 또한 하나의 트렌드이고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미술이 그만큼 진입 장벽을 허물 수 있다면 긍정적인 차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공립 미술관들의 전시는 시대 담론을 갖추고 한국 작가와 미술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기획해야 한다. 공공교육의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관람객을 늘리기 위해 유행을 따라가는 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이나 비영리 기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미술상이나 대표전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스타 작가를 키운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한빛 큐레이터의 일은 천 명, 만 명의 작가 중 될 사람 1명을 꼽아내는 일이다. 여럿을 뽑아 놓고 그중 한 명이 잘될 거라고 기대하는 건 책임 의식 문제도 있는데, 행정기관은 치열하게 일하기보다는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무난하고 잘 보이는 전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백기영 최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도 <근대의 꿈: 꽃나무는 심어놓고>라는 근대미술 명화전을 오픈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의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절필의 시대>와 더불어 근대미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대구시립미술관의 <박생광>전 같은 무속화풍의 전통을 연구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게 된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지난봄에 열렸던 <그림 그리기 좋은 날>은 지역의 풍경화가 왕철수, 김형식 같은 작가를 발굴해서 소개한 의미 있는 전시였다. 전국적으로 57개의 국공립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 중 과반수 이상이 최근 5년 이내에 지어진 것들이다. 특히, 새로 생긴 지역 미술관들의 활동이 주목할 만한데, 작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전시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태호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