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민간문화공간, 마을에 스며들다
터무늬를 새기는 공간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많은 시간 공공재를 활용한 삶이었다. 곁다리로 대학 강사를 할 때도 광주북구문화의집에서 8년여를 보낼 때도, 광주문화재단, 서울시청년일자리 허브까지 15년 동안 공적 필드에 있었다. 아니 대인예술시장 감독까지 합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사업 중 하나인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제8권역 남도맛기행의 PM까지 더하면 족히 20년이 넘는다. 이렇듯 오랜 시간을 공공과 가까운 자리에서 손발을 맞춰왔음에도 여전히 녹록치 않음을 느낀다. 상대가 잘 할 수 있는 것, 하고자 하는 것, 지금 필요한 것, 앞으로 필요할 것에 대한 수요 예측이나 기대효과를 보아야 하는데, 대부분이 계량화되거나 지표로 통일되어 자를 들이댄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일을 시작할 때 담당자가 사안을 이해할 때까지 꾸준히 만나 얘기하고 조율하고 설득한 후 전개한다. 나의 뜻을 옆에서 부추겨주는 전문가를 동반하거나, 책과 자료를 동원하기도하고, 때론 술이 필요하기도 하다. 오래 이 분야에 있다 보니 소위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선배나 동료, 지인들이 많아졌다. 가끔 이들의 힘을 사용하고픈 생각도 들지만, ‘윗선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기관에서 파트너가 되어 줄 담당자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윗선의 도움이라도 도로아미타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착수한 일들은 대부분 성공리에 진행된다. 다소간의 어려움이 따라도 일이라는 것이 관계를 통해 풀어가는 방식도 있고,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도 있고, 뜻하지 않는 변수가 오히려 힘이 되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설립 목적이나 사업의 취지에 부합한 범주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공재, 특히 문화기반 시설에서의 활동이나 문화를 매개로 한 각종의 사업들은 본령의 원칙이 존재했다. 목적 이외의 것, 활동 구역 이외의 일, 타자나 타 단체가 도드라지는 사업은 금기였다. 모든 곳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했다.
태반의 시간을 책임자 위치에서 일을 진행해왔음에도 한계를 느꼈다. 이것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영자에게는 식솔이 딸려 있다. 그릇된 판단과 행위가 제 자신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에게 미치는 파장이 크다. 때문에 프로그램의 유연성이나, 시설의 가변적 운영, 내부 구성원의 주체적 활동 등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 급격한 사회 변화, 지역 문화 전달 체계의 변동, 지방 소멸의 위협, 지방자치제의 강화, 지역문화 전문 인력의 부재 등 긴박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난제가 된 마당에도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현실은 아직 진행형이다. 행정의 일을 전문가에게 위탁한 일도 그러한데, 사실 아직도 문화시설을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 행정 요원이 붙박이로 시설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을 겸직하는 곳은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현장의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결핍을 볼 수 있다. 발목을 잡고 있는 운영 규칙과 조례도 그러하며,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게 현장이다.
이럴 때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이들, 그곳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초탈한 이, 이 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홀연히 제 꿈을 찾아 나타나는 백마의 기사 같은 이들이 있다. 각각의 출발 지점은 다르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비슷하다. 이른바 미세한 가능성이라도 있는 희망의 영토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영토는 빈집이거나, 창고이거나, 마을에서 사용하지 않는 공유 공간 등이 해당된다. 구렁이알 같은 종잣돈을 그곳에 퍼붓고 공간의 개보수부터 시작하며 이들은 마을과 지역을 만나기 시작한다. 유휴지다 보니 마을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데, 웬 낯선 이들이 들어와 낑낑대며 공사를 해대는데, 일해 본 경험도 없어 마치 빈 삽질을 하는 듯한 모습에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이제 관계 맺음이 이뤄진다. 공간의 역사가 나오고, 마을 사람들의 개별적 삶이 드러나고, 공동체의 열망이 무엇인지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며 허물을 점점 벗어나가는 것이다. 낯설거나 낯설지 않거나 이렇게 지역에 합류한 이들의 마을살이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그것은 취미 활동의 확장된 공간이기도 하고, 생업의 공간이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을 나눠 보려는 공간이거나, 누군가와 함께해 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터무니가 생기기 시작한다. 섬 연구가로 알려진 강제윤 시인의 경우, 통영을 배경으로 창작 활동과 통영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레지던스 활동을 해 왔으나, 지자체의 여러 개발사업에서 문제를 발견하자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결국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시인은 섬 연구의 산물인 사진을 팔아 목포의 허름한 여관을 하나 샀다. 그곳에 방 한 칸만 자신의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공장공장이라는 기획팀에서 활용하도록 하였다. 재기 발랄한 공장공장의 성원들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목포에서 여행 프로그램과 괜찮아 마을과 같은 기운생동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젊은이가 찾고 싶은 목포,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도시, 이웃집 어르신과 궁리하며 함께 살아보는 목포를 만드는 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공공이 이런 유연성을 갖기는 어렵다.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데, 검증된 경력도 마땅치 않은데, 하겠다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경제적인 산출물도 불명확한데 그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사업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행정 문서가 아닌 몸의 언어, 결핍이 가져온 온몸의 실천력은 신용보증기금에 증서를 받는 것보다 더 확실한 문장이다. 이들이 시작한 청년 플랫폼은 전국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목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이나 문화도시 조성사업과 같은 영역에서는 쉬이 접근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목포에 젖어서 스스로 상상하고 기획해서 해 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펭귄마을로 유명한 광주 양림동 언덕에는 개화기 선교사들의 사택과 무덤이 있는 양림동산이 있다. 그곳에는 호남신학대학교의 부속 건물로 방치되어 있던 몇 개의 공간이 있는데, 문화예술콘텐츠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아트주’를 운영하는 정헌기 대표가 이곳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학교 측과 협의하여 세 개의 공간을 빌려 게스트하우스와 호랑가시나무창작소라는 레지던스 공간과 주차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아트폴리곤을 만들었다. 누가 보아도 돈이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이 엉뚱함의 기저에는 ‘양림동’이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성과 문화도시인 광주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깔려있다. 훔쳐보기에 익숙한 관광객이 아니라 이 마을이 지닌 삶의 뿌리를 알고 공감하는 마당이자 지역 곳곳에 스며 있는 예술혼을 다시 세워보고자 하는 열정의 산물이었다. 가끔 외지에 나가다 보면 마치 향수병에 걸린 듯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 잘 있냐고 묻는 이들을 만난다. 여행자에게는 쉼터이자 지역과 만나는 접점이 되고,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영감을 일깨워주는 플랫폼으로 알려진 이곳 또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브랜딩을 한 것이고 거기에 공공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을 도모하는 정헌기 대표가 있는 것이다.
고향인 담양에 향토사 전문책방 이목구심서를 운영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시대적으로 민감한 것들에 대한 기획과 실행이 유행처럼 빠르게 번져간다. 그런 와중에 지역의 본디 것, 즉 정체성을 찾는 일들은 저만치 멀어져갔다. 이럴 때 대처에서 어지간한 일들을 경험한 나는, 넘쳐나는 기획 인력들에게 무언가 힘이 되어 보고자 낙향을 택했다. 책을 통해 배우고 실천했던 내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더불어 내가 관과 함께 일할 때 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 내 위치에서 가능한 일, 지역문화에 기여할 일 등을 고려해 팔리지 않을 책방, 팔고 싶지 않은 책을 담은 책방 즉, 문화기획자와 지역활동가, 여행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책방 운영을 도모했다. 그간 모아 두었던 수천 권의 책과 전국 각지의 지인들에게 권유하여 지역사를 담은 책, 역사를 담은 책, 문화를 담은 책을 모아 내고 책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책을 매개로 담양을 찾는 여행자들의 쉼터이자, 문지기 역할과 지역 답사와 지역기획자의 양성, 지역 문화아카데미 등을 꾸려 나갈 생각이다. 이곳이 촉매제가 되어 대도시의 변방이 아니라 문화를 발신하고 공유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산실로 가꾸어 나갈 작정이다. 작고 느리게 스며들면서 또 하나의 터무니를 새기면서 말이다.
위에 언급한 사례들은 어떤 장황한 명분이나 대의가 있어서 만든 곳들이 아니다. 살아기면서 알게 되고 하고 싶었 일들을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 투영했을 뿐이다. 때문에 이런 공간은 유연하고 탄력적이다. 남의 눈치 안 보고, 공공기관과도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다만 지역이 갖는 특수성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남다르다. 목포의 텅 빈 도심의 낡은 여관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도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확장해 나가며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천하는 일이 벌어지리라 누가 예견했겠는가?
낡은 건물을 이곳저곳 붓질하고 망치질하는 과정을 거쳐, 양림동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발표 공간으로 승화됐다. 과거 예술가들의 천국이었던 이곳을 현재 진행형으로 돌이키는 이 작업이 공공기관의 행정만으로 가능했을까?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건립한 다양한 문화시설이 문화의집처럼 정책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한국문예회관연합회처럼 총애를 받으며 기관만 성장하도록 공룡화할 때 실지 현장에서는 오늘 바로 필요한 실천력을 담보한 문화거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혀 낯선 공간에서 그 지역이 지닌 독특한 정체성을 담아내며, 자본보다는 열정이라는 신공을 가지고 말이다.
전고필은 관광을 전공하고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이는 모든 것을 해설하고자 노력하며 자랐다. 그게 인연이 되어 북구문화의집에서 일상의 기획을 펼쳐보다 잠시 경직된 조직에 몸담았지만, 문화판에서 차곡차곡 월급 받아 숟가락을 드는 일은 피하기로 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새긴 것을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했던 이덕무를 흠모하여 문화기획의 기본인 향토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이도 모자라 지인들의 마음을 훔쳐내서 지난 6월 한반도의 대밭 담양에 ‘이목구심서’라는 책방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