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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이 제시하는 4가지 관점
2019 서울아트마켓 팸스살롱 Ⅰ10월 초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공연된 호주의 레스트리스 댄스 시어터(Restless Dance Theatre)의 <친밀한 공간(Intimate Space)>은 관객을 호텔로 초대하여 무엇이 사적인 행동이고, 어떤 것이 공적인 영역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장소 특정형 무용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장애·비장애 예술가의 협업으로 장애 예술가의 신체 특성과 감각의 차이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품 홍보 문구 어디에도 ‘장애예술’이라는 꼬리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 초 방영되었던 <눈이 부시게>는 한국 드라마에서 늘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치매와 노인이라는 소재를 ‘삶과 노화의 의미’ 면에서 새롭게 접근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치매에 걸린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노년의 일상, 즉 대단치 않지만 충분히 살아갈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또한 올해 공공극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산예술센터가 구자혜 연출의 <7번 국도>를 시작으로 장애인 관객의 공연 관람 접근성 확대를 위한 수어, 문자, 오디오,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예술 현장에서 지금까지 복지와 인권 그리고 향유자 확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던, ‘장애’, ‘나이 듦’, ‘젠더’, ‘여성’, ‘성 정체성‘, 그리고 ’성소수자(LGBTQ)‘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예술가들의 관점과 창작 방식이 달라지고 있으며, 공공극장과 축제 등에서도 관객의 관람 접근성 확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예술 영역에서도 기회균등성(Equal Opportunity), 접근성(Accessibility), 다양성(Diversity)과 포용성(Inclusion)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열렸던 서울아트마켓(PAMS)의 팸스살롱(PAMS Salon) 프로그램은 ‘새로운 리얼리티와 예술의 대응-예술, 사회적 실천, 국제 협력과 이동성 확대-’라는 대주제 아래,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6개 세션들로 구성되었다. 그중 이번 글을 통해 다룰 첫 번째 세션은 ‘공연예술의 다양성, 접근성, 포용성과 국제 교류 확대’라는 주제로, 변화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예술의 다양성, 기회균등성, 접근성 그리고 포용성은 무엇인가?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다양성과 포용적 접근의 창작 개발은 무엇이고, 관객 개발은 무엇인가? 또한 이러한 분야의 국제 교류와 협력 그리고 국제 이동성 개발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기획되었다. 장애, 나이 듦, 젠더, 성 정체성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예술가와 국제문화기관, 기금지원 재단 그리고 축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세 명의 매개자가 발제와 토론에 참여했다.
먼저 연극배우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원영의 발제는 지난 20년간 법률적인 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장애와 관련한 권리의 진전이 있었다는 발언으로 시작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최소한 동등한 경험, 자유 등에 관한 권리 보장과 제도적 변화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더 큰 질문은 “법이 장애로 인한 차별로부터 보호하더라도, 타인으로부터 나는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가?”였다. 즉 어떤 법률이나 규범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손상된 몸에 대해 수용해 줄 수 있는지,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이 있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환경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배우로서 그는 초기의 연극 작업인 <테레즈 라캥>, <멕베스>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욕망을 드러냈다. 이후 2019년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초연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서는 ‘그럼 언제까지 나를 감추면서 장애를 표현할까’라는 질문을 내놓았다. 여러 시도를 통해 장애를 가진 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도전한 창작 관점의 변화를 공유한 것이다. 또한 한국 관객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해외 장애 예술가들과의 국제 교류 경험을 통해 얻은 ‘장애 예술의 수평적 정체성’ 개념을 언급하였다.
두 번째 발제자는 엘리 이소코스키(Elli Isokoski)로 핀란드에서 안무가와 무용수로 지난 18년간 어르신들과 함께한 현대무용과 참여형 댄스필름 프로젝트의 경험을 공유하였다. 요양원, 양로원, 어르신의 자택을 방문하여 극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과 현대무용 창작을 함께하는 ‘예술 창작의 다양한 접근성 확대’를 이야기하였다. 또한 나이 든 몸과 일상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은 ‘댄싱 핸즈(Dancing hands)’ 프로젝트를 통하여 일상 속의 예술 콘텐츠와 어르신이 창작자로 참여하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발제자는 스스로를 규범에 충실하지 않은 남성이라고 표현한 스웨덴에서 온 다니엘 페르손(Daniel Persson)이었다. 그는 젠더, 문화적 정체성, 성 소수자 등의 주제에 대해 ‘자기표현’, ‘자유’, ‘해방’ 그리고 ‘나 스스로가 되는 것’이라는 창작적 관점을 공유하였다. <시시 밤(Sissy Bomb), 덧없는 시선>이라는 그의 현대무용 작품을 공유하면서, ‘예술가가 자율적인 존재로 사회 속에 존재하면서 나의 이야기, 나의 정체성에 대한 발언을 창작으로 연결해 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네 번째 발제는 런던 영국문화원의 프로그램 매니저 캐롤 맥파던(Carole McFadden)이 맡았다. 그는 지난 40년간 영국 장애예술의 변화에 대해 전해주었다. 영국문화원이 어떻게 영국의 장애예술을 국제 공연예술 현장에서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진행된 다양한 국제 교류와 협력, 지원 방식을 공유해 주었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문화 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언리미티드(Unlimited)’ 축제가 새롭고 창의적인 장애예술을 국제무대에 소개한 것을 장애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의 가장 큰 시작점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축제가 지속적인 창작 개발 지원을 하고, 세계 다른 나라들과 장애예술의 관심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국제 플랫폼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문화원에서는 2년마다 개최하는 에든버러 쇼케이스(The British Council’s biennial Edinburgh Showcase)를 통해 장애 예술을 더욱 전략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사후 작품의 해외 투어를 지원하고 있음을 전했다. 그 밖에 문화원에서 다양한 국제 단체들 및 기관들과 협력 진행하는 장애 예술 페스티벌, 국제교류 네트워크 개발 사업, 장애 예술가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Sync), 국제 공동제작 및 워크샵 개발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이처럼 문화지원 기관의 정책(Equality, Diversity, Inclusion 정책)에 기반하여 어떻게 전략적으로 장애예술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가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하였는데, 이는 한국에서 장애예술의 국제 교류와 이동성 확대를 위한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다섯 번째 발제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업운영팀장 오세형은 시작 단계에 있는 한국의 장애예술 정책과 장애 예술가 육성, ‘이음’이라는 장애예술 공간 활성화와 국제 교류에 대한 미션과 비전 그리고 전략에 대한 현재의 고민을 공유하였다. 그는 ‘장애인 문화와 예술이 비장애 중심의 기존 예술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야 하며,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장애예술 활동 환경이 녹록지 못한 현재 지점에서 창작자 지원과 관객 개발의 방안은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을 던졌다. 또한 국제 교류를 통한 장애예술 현장 활성화와 정책 개발, 교류 프로그램, 해외 기관과의 협력 사업 개발 그리고 향후 페스티벌 개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다.
마지막 발제자는 안티 현대 공연예술제(ANTI- Contemporary Art Festival)의 요한나 투카넨(Johanna Tokkanen)으로, 도시의 일상적인 공공장소에서 지역민과 지역사회를 참여시키는 ‘도시+예술+축제’라는 과정 중심의 현대예술축제 경험을 공유하였다. 그는 먼저 다양성과 포용성의 관점에서 현대 예술이 어떻게 소외 계층을 포함한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할 것인지 질문하였다. 또한 축제 작품 제작 단계를 3단계로 구분해 각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먼저 예비 선정 단계는 지역에서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예술가와 공간을 선정하고, 함께할 지역민을 리서치하는 과정, 다음 단계로 예술가와 참여 지역민과의 대화가 중심이 되는 두 번째 과정,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선정된 주제를 실제 참여형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중요한 노하우를 공유하였다. 그는 다양성, 접근성과 포용성의 관점에서 현대공연예술축제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축제 창작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어떻게 주인 의식을 가지게 할 것이며 프로젝트의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며 토론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등을 강조했다.
예술 현장이 좀 더 다양하고, 포용적이고, 열린 접근성을 가진 곳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이번 2019 팸스살롱 세션의 토론과 발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겨 주었다. 첫 번째는 장애, 나이듦, 젠더 그리고 성 소수자와 관련한 예술은 지금까지 전통적인 개념의 예술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 다름의 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다름의 미학을 위하여 예술 창작자의 관점, 태도 그리고 사회적 인식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토론에서도 많이 언급되었듯이, 매우 견고하게 제도화된 우리 예술계와 학계의 공고한 카르텔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물론 공공극장과 축제 등 제도화된 공공영역에서 그 변화가 천천히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제도화된 예술계 내부의 변화와 전환은 국가 정책이나 문화와 예술 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이 분야의 창작 실험과 방법론 개발 그리고 새로운 창작 환경 만들기이다. 장애 당사자의 다른 감각으로의 창작, 나이 든 몸의 미학에서 출발하는 창작, 성 소수자와 여성 스스로의 정체성으로부터 창작 방법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의 기금 지원 시스템과 제도적 지원 장치 그리고 매개자들의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분야의 국제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환기와 국제 이동성 개발에 대한 것이다. 배우이자 변호사인 김원영이 발제 중 언급했듯이 국가, 민족, 부모, 종교, 도제식 예술 공동체에서 물려받는 수직적 정체성의 표준적이고 통념된 감각의 예술언어가 아닌,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한 공통의 주제에 대한 수평적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들의 연대와 경험 공유라는 차원에서 국제 교류와 협력 그리고 국제 이동성 개발에 대한 다양한 정책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석규는 최근 2년간 동시대 중요한 화두 중, ‘예술과 도시’, ‘예술의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예술과 테크놀로지’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 워크숍, 레시던시를 하고 있다. 또한 춘천마임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2017-18 한영상호교류의 해 등의 공연예술축제에서 축제감독과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2005년 창립한 아시아나우(AsiaNow)를 통해, 지난 10년간 한국연극의 국제교류, 다양한 국제공동창작, 국제레지던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프로듀서와 드라마투루기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014년부터 시작한 아시아 프로듀서들의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인 ‘Asian Producer’s Platform’과 APP Camp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